인생을 즐길 줄 아는 노년이 아름답다.
황홀함보다도 처연함이 가슴을 스치는 물든 저녁노을은 빨갛게 타오르며 채석강 쪽에서 바다와 맞닿아 모항에서 바라다본 내 눈을 빛나게 했었다. 저녁노을과 황혼은 노년을 상징한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본다. 많은 상념이 떠오른다. 사회조직에서 연식의 초과로 튕겨져 나온 우리부부는 올해를 기점으로 느린 숨 쉬어가며 연명해야한다.
제 나이에 맞는 삶이란 있는 것일까 우리노년은 연습 없이 실행에 들어간다. 그러니 실행착오도 있고 우연도 존재하고 날벼락도 경험한다. 그러나 힘든 것은 기억력이 떨어지고 생각과 육체가 일체로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진입한 인생오후가 표면과 심층으로 갈마들면서 명시와 암시로 복잡 미묘해진다. 겉으로는 평온한척 하면서 속으로는 불안하고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입맛도 변하여 추억의 달콤한 맛을 경험하기란 어렵다.
이제는 희망과 기대는 사라지고 오직 추억만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삶을 살게 한다. 춘삼월 꽃 같은 청춘이 그립고 단풍 같은 노년의 처지가 서글퍼진다. 노년의 노정에는 명확한 정답은 없다. 세월 따라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이다. 삶의 황혼을 노을 속에 지피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끼며 심연 속에 간직한 추억의 그림을 펼쳐본다. 가끔은 지나간 학창시절이 이해타산이 없는 순수함을 간직한 삶이었기에 더욱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황홀한 노을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당시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입학한 일제강점기 초등학교교정은 나무판자에 먹칠한 일본식 건물이고 운동장 둘레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그늘을 제공해주었다. 언젠가 4.19 학생의거 사진이 걸리기도 했고 1000명의 학생이 교실부족으로 오후반과 오전반으로 나누기도 했다. 지금 나이 많은 동창은 70대가 되었다. 나에게 가난이 불러온 교육의 선택은 중학보다 서당이었다. 13살의 꼬마가 철지난 학문에 몰두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였지만 그 대단한 목적은 제삿날 축 지방을 쓰기위한 것이었다.
굴러가는 시대를 멈출 수 없듯이 천운으로 중학에 입교했으나 조건은 중학으로 끝난다는 약조였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시대는 다시 변모하여 다수확 벼가 생산 소득을 높여줘 내 운명은 농사꾼에서 기능직으로 탈바꿈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 변화의 시도가 대전공업고등전문학교에서 출발되었다. 이것은 배고픔의 역사가 빚어낸 근검절약이 생활의 미덕이지만 밥 먹고 살기위한 수단은 학문으로도 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교복의 추억 파노라마다. 그 이후의 천국 같은 샹그릴라는 우리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위와 같이 추억 속으로 더 달려 나간 영상은 더 좋은 장소와 꿈을 찾아 헤맨 이력이 전부였다. 즉 더 좋은 것을 꿈꾸는 것은 이곳이 무언가 부족한 곳 결핍된 곳이라는 느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더 좋은 것과 좋은 곳을 선택한다. 학교도 직장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모든 현재는 과거의 유토피아였다. 짚신 신던 사회에서 볼 때 현재는 당시 실현 불가능한 사회다.
유토피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누구나 소망하는 상상의 공동체다. 역사는 유토피아가 실현되고 사라진 역사다. 우리부부가 노년에 갈망하는 유토피아는 앞으로 존재하는가. 지독히도 불행했던 시대의 슬픈 지식인들이 만들어놓은 이 시대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절박한 삶의 현실에서 바라보면 꿈의 샹그릴라다. 관점에 따라 판단은 다르지만 인생은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思惟)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가끔 여행을 꿈꾼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싶어서다. 이것이 우리부부의 마지막 소박한 꿈이라면 꿈이다. 배고픔이 단련시킨 절약정신으로는 불안한 여행이 되기 십상이다. 어쩔 수 없이 수 십 년간 몸에 밴 이력을 떨궈낼 수는 없다. 자기성찰과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개념으로 이념을 둔갑시켜야한다.
이제는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를 일들을 앞당겨 불안해하며 오늘을 고민하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그 불안감을 다음세대에 투시하여 그들이 지금 누려야 할 것들을 박탈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사숙고해야한다. 우리부부에게는 과거에 사로잡혀 잠식되기에도, 미래를 미리 걱정하며 희생되기에도, 현재의 시간이 소중하다. 우리부부가 살아가는 현재는 숭고하다.
내 주변에 모든 것을 심미적 대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와 탐미적인 시선이야말로 제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이에 걸 맞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노년이 아름답다.
2018년 8월 8일 오후 3시
율 천
첫댓글 우리의 세대는 배고픔에서 벗어나
교육받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었죠.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 온 댓가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제 노년으로 접어드는 마당에
그간의 열정을 내려놓지 말고
다시 또, 각자의 삶을 여유롭게
베풀고 하면서 노년의 설계를
세워야 겠습니다.
부부 함께, 여행하는 것부터 시작하셨는 것 같은데
마음이 떨릴 때 여행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직은 건강하시니, 부부함께 여행하시는 것부터
하고 계시니, 율천님 내외분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아름다운 황혼 보내시기 바랍니다.
좋은 맘, 좋은생각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심미적대상으로 바라볼줄아는 탐미적시선. 한참을 생각해봅니다
누구 에게나 해당되지 않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수 있는
나이는 60대 이후라 생각합니다.
사업을 하시던 장사를 하시던 직장에 다시시던
대부분 사람들은 60세 까지는
각자의 분야에서 일해야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이 없었습니다.
인생 2막는 은퇴 이후에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퇴직하면 우선는 캠핑카를 구입해서
집사람과 전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1년정도 전국 일주를 마치고 나면
구입 해둔 산촌으로 귀촌하여
나머지 인생은 자연과 벗하며
욕심없이 먹을만큼 작물은 자급자족하며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가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슴에 와 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