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황희 정승의 발자취를 따라서
민병식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황희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의 정승으로써 학자로써 유명하신 분이다. 본관은 장수, 호는 방촌이다. 1363년 고려 공민왕 12년에 태어나셨는데, 정승을 잉태하자 10개월 동안 흐르지 않았던 개성의 송악산 용암폭포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며 흘러 넘쳤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올 정도로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방촌 황희 선생은 고려 말에 성균관학관으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고려가 망하고 72인의 학자들과 칩거 생활을 하던 중 조선 태조 3년에 성균관 학관으로 돌아온 이후 이조판서, 강원도 관찰사, 영의정을 비롯한 3정승을 모두 지내신 분이다.
1394년 조선시대 관직에 복직한 이후, 충녕대군 세자책봉을 반대하다가 유배 생활을 하였고, 그 후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다가 87세까지 관직에서 벼슬을 한 후 은퇴하였다. 은퇴 후 기거한 곳이 바로 경기도 파주이다.
선생께서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평등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인권 존중을 실천한 셈인데 종들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하였고, 옷도 한 벌만 입고 다녀서 겨울에는 퇴궐하는 시간이 빠를 정도로 청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림 : 문길동 선생님
얼마전 주말을 이용하여 파주에 지인을 만나러 다녀 오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황희 정승의 유적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가보게 되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재상이였던 분을 만나게 된다니 역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도 좋은 곳이 있다는 소개를 해주고도 싶고 나도 가보고 싶어서 지인과 산책 겸, 공부겸 해서 가보게 되었는데 우선, 아주 저렴한 천원의 가격으로 입장료가 책정되어있어 부담이 없어 좋았다.
유적지 좌측에 황희 선생 기념관이 있는데 일종의 박물관으로 별도 입장료는 없으며 문화해설사의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기념관을 구경하였으면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보자. 앗! 그런데 문이 3개, 사람은 동쪽문으로 들어가서 서쪽문으로 나와야 하고 중앙에 있는 문은 제사를 지낼 때 신 들이 사용하는 문이란다. 새로운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다음은 황희 정승의 영정을 모신 방촌 영당 이다. 한국전쟁 시 소실된 것을 후손 들이 재건하였다고 하는데, 영정을 볼때 실제 인물과 같은 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당연히 훌륭하신 분에 대한 엄숙함과 경이로움이 느껴졌고 잠시동안 묵념으로 인사를 드렸다. 바로 옆에 황희 선생의 동상과 경모재라는 곳이 있는데 선생께서 일상을 거주했던 곳이란다. 황희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교육자료가 있으니 학생들에게 유익한 공간이 되겠다.
돌계단을 오르면 임진강이 바라다 보이는 반구정과 양지대라는 정자가 있다. 은퇴 후 관직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셨다고 하는데,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물결 위로 선생께서 이곳에서 글을 쓰고 읽으셨을 것을 생각하니 한편의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지대는 원래 반구정이 놓였던 자리에 세운 정자인데 관광객들이 앉아서 쉬어가는 쉼터로도 이용이 되고 있었다.
반구정은 특히 경기도 문화재 자료 1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삼은 정자'라고 이름지었다고 하며, 조선중기의 학자인 미수 허목선생은 그의 저서 '반구정기'에서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각 아래에 있고, 조수 때마다 백구가 강으로 모여들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 9월이면 갈매기가 손으로 온다. 서쪽으로 바다 30리이다" 라고 반구정을 묘사했을 정도로 임진강이 굽이쳐 흐르고 갈메기떼가 장관을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이란다.
황희 정승 유적지 가는 길에 중간에 묘역이 있다. 잘 몰라서 유적지를 관람 후 오는 길에 묘역 참배를 했지만 유적지에 가기 전 들려서 인사를 먼저 드리고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석 이조의 유적지 관람이다.
세종대왕을 모시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상이면서,이조판서로 있던 때는 좀 도둑들이 밤에 민가에 불을 지르고 도둑질을 하여 민가 2,000여호가 불에타고 30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있었을 때 황희 정승께서 지금의 소방서와 같은 '금화도감'을 설치하고, 지금의 지구대 와 같은 '경수소'를 설치했다고 하니 그의 업적은 조선을 튼튼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중심이 되었고, 백성을 누구보다 더 먼저 생각하는 '민본주의'를 실천하셨으니 누구나 존경할 만한 대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의로 유적지는 규모가 크다. 방문하면 그냥 지나가지 말고 하나 하나 눈여겨 읽고 보고 해야할 필요가 있고, 한창 배우는 학생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역사의 현장으로써, 박물관으로써 또 교육 자료로써 가치가 높다는 생각이다.
경기도 파주 하면 분단의 현장, 땅굴, 임진각 등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황희 정승의 유적지를 보게되어 훌륭한 문화체험을 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치하는 가운데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을 쏘고 있고, 우방이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좋지않다. 경제성장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럴 때 일수록 위정자들이 황희 정승처럼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길 바라면서 유적지 탐방을 마친다.
임진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과 저녁 노을이 벌써 하루가 다지나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황희 정승의 숨결이 있는 곳에서 나라 사랑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배운 날이었다.
그림 문길동 선생님
첫댓글 내용도 좋지만 문길동 선생의 그림도 일품입니다.
반구정, 그곳은 제가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곳입니다.
천하무적 보병제1사단 15연대 13중대장으로 복무를 했답니다.
황희 정승에 대한 일화와 유적지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작금의 정치꾼(정치 모리배)들이 황희 정승의 정신을 계승하여
백성을 섬기는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제는 정치하는 것이 직업화 되어서, 거의 매관매직 이상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들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랏 일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고, 조언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일고 갑니다.
인연이 깊으신 곳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