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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아달을 파면함 2:26~27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요압을 죽임 2:28~35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9 어떤 사람이 솔로몬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 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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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고향으로 쫓아내고 제사장 직분을 파면합니다. 요압은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장막으로 도망해 제단 뿔을 잡지만, 브나야가 솔로몬의 명령대로 그를 죽입니다. 솔로몬은 요압을 대신해 브나야를 군사령관으로 삼고, 아바아달을 대신해 사독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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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아달을 파면함 2:26~27
솔로몬은 정의를 실현하며 왕권을 공고히 합니다. 그는 다시 반역을 꿈꾸는 아도니야의 배후에 아비아달과 요압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를 죽인 후 대제사장인 아비아달을 파면합니다.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충성했고, 또 하나님의 제사장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되기에 솔로몬은 그를 죽이지 않고 고향으로 보내는 것에서 그칩니다. 이 일은 엘리의 집에 대해 선언하신 하나님 징벌의 성취입니다(27절; 삼상 2:27~36). 엘리 집안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났지만, 다윗이 어려웠던 시절에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다윗을 도운 공로로 다시 대제사장직에 올랐습니다. 누구든 하나님 뜻을 따르면 회복되지만,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징벌을 받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솔로몬이 아비아달을 파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평생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버릴 것과 힘쓸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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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을 죽임 2:28~35
아도니야의 죽음과 아비아달의 파면 소식에 요압은 솔로몬이 자신도 죽일 것을 직감합니다. 그는 성막으로 도망쳐 제단 뿔을 잡습니다. 솔로몬에게 변명할 기회라도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죄를 물어 그를 죽입니다. 이는 다윗의 유언을 따른 것입니다. 요압을 죽이는 것은 무고한 피를 흘린 죄를 씻는 일이기에 성막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즉 성막에서 피 흘리는 문제보다 죄를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요압은 결국 오랫동안 미루어져 오던 죄의 대가를 받습니다. 성도의 행실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오만함으로 죄를 짓지 않고, 겸손함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요압이 제단 뿔을 잡고 있음에도 솔로몬이 죽이라고
명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죄에 대한 두려운 대가를 기억하며 내가 금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화평이라는 이유로 불의를 눈감고 죄악을 가볍게 여겼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은밀한 순간, 사소한 일에도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제 삶을 세우게 하소서. 저와 공동체가 오직 하나님을 따라 거룩함으로 회복되는 은혜를 날마다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64 정결하게 하는 샘이)
하나님은 모든 약속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믿고, 앞으로 보고 나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노력들을 기울여 나가도록 하자
우리가 경험하고, 우리가 배운 것들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하나로 연결해 가시고, 그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그분만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매일매일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고, 주님의 자녀로, 주님의 일꾼으로서 맡겨 주신 일들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자
4/6일 새벽전도
요압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른 군인들은 반역자 압솔롬을 처단하기를 꺼려했지만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고 왕자를 죽였으며, 다윗의 계교를 알면서도 일부러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내보내 전사하게 합니다. 장관자리를 남에게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는 복수와 시기와 그리고 탐욕의 사람입니다.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자기 동생을 죽였다는 명목으로 살해했지만, 실은 통일왕국이 되면 그가 막강한 경쟁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후임으로 세워진 아마샤도 죽였는데 압살롬을 지지했던 사람을 차단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그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함입니다.
요압은 원래 다윗의 맹신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친 조카이기도 하고, 일평생 그를 도와 통일 이스라엘의 초석이 됩니다. 일등공신으로 그는 이스라엘의 요직을 무려 약 50여 년 동안 섭렵하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다윗을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늙어서도 그의 기준은 자기 이익과 권력 유지에 있었으니, 70 세 다윗을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왕세자 서열 1위인 아도니야를 선택한 것입니다. 말을 갈아탄 것입니다. 권력과 탐욕을 채우기 위함으로, 세상 부귀영화와 그리고 권력을 포기할 수 없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판 구덩이에 자기가 빠지고 말았으니, 출세와 자기 이익을 도모하다가 그것으로 인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출세 지향적이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데 빠른 사람들이 걸리는 덫에 걸리고 만 것이지요.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가 좋지요. 돈이 적은 것 보다는 돈이 많은 것이 좋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 보다는 인정받는 것이 한결 낫습니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탐욕의 끝은 멸망으로 세상 부귀영화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압의 결정적인 실수는 말을 갈아탄 것이 아니라, 말을 잘못 바꿔 탔다는 점입니다. 그는 다시 권력의 줄을 잡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줄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만한 나이라면 더 이상 세상 말을 탈 것이 아니라 곧 돌아갈 하늘나라로의 말을 타야 마땅하죠.
먹고 사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일생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출세, 행복, 건강, 쾌락, 취미, 학문, 예술이라는 말에 계속 타고 있으면 후배에게 말릴 뿐만 아니라 결국 도태됩니다. 사랑, 용서, 배려, 친절, 양보, 소망, 자기 부인, 자기희생이라는 말에 타고 있으면 선배도 존경합니다. 결국 승자가 됩니다. 용기 있는 자가 말을 갈아탑니다. 늦기 전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거룩한 탑을 쌓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그 일을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6,27절 한순간의 불충이 오랫동안 쌓아온 성실과 충성의 열매를 앗아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할 때 법궤 운반을 책임졌습니다(삼하 15:24-29). 또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받을 때(삼상 22:20-23)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다윗과 함께하며 그를 도왔습니다(삼하 15:24,35).
하지만 아비아달은 아도니야의 반란 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제사장직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유혹이나 시련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중단하지 맙시다.
28-34절 무고한 사람에게 폭력을 저지르면 혹독한 대가를 치릅니다. 요압은 다윗이 평화 협정을 맺은 아브넬과 다윗이 등용한 아마사를 비열한 방법으로 살해했습니다(삼하 3:27-30; 20:7-13). 그것이 다윗의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사적인 복수심에, 혹은 권력욕 때문에 스스럼없이 살해했습니다. 그렇게 다윗의 통치에 커다란 얼룩을 남겼고,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습니다(민 35:33).
다른 면에서 요압이 다윗을 위해 세운 공도 많았지만, 평화 시기에 까닭 없이 사람을 죽인 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제단 뿔을 잡더라도 끌어내어 죽여야 하는 죄였기에(출 21:14), 요압은 죽음으로 죗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는 요압처럼 무고한 목숨을 빼앗진 않겠지만, 간접적인 살인, 사회적 살인, 인격을 짓밟는 행동 등에 둔감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태도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1,22; 참조. 요일 3:15).
31-33절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율법에 따라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죗값을 요압에게 물음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세웠습니다(참조. 창 9:6; 출 21:14; 민 35:33). 통치자와 지도자는 폭력에 희생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다시는 그런 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와 사회에 정의로운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기도
공동체-불의한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을 신원해주시고,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왕상 2:26~35절)
❝영적인 제사장의 사명을 잃지 않는 삶❞
❚ 영적인 제사장으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충성하며,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 사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26~27절).
솔로몬 왕은 아비아달을 제사장 직에서 파면하고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가라고 명합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사울이 제사장 팔십 오명을 죽였을 때(삼상 22:18절) 유일하게 살아남아 다윗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이 통치하는 동안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맡았고, 다윗의 모든 어려운 시기에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반역을 통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던 아도니야를 따르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비아달은 엘리 가문에 대해 주어진 말씀(삼상 2:30~33)대로 제사장직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아비아달은 언약궤를 맡아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반역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내 자신 역시도 영적인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과 환난을 예수님과 함께 통과하면서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고 마지막은 아비아달과 달라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끝까지 조심 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하지 않으면 내 자신 역시도 영적인 제사장으로 쓰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비극을 맞이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영적인 제사장의 사명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붙잡아야 합니다(28~33절).
솔로몬 왕이 다윗의 유언대로 지혜와 단호함을 가지고 아도니야를 죽이고, 아비아달의 제사장직을 박탈하고 추방을 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요압은 아도니야의 반역에 동참을 했기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해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28절). 솔로몬 왕은 요압에 대한 보고를 듣고 브나야를 보내어 그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30절) 성막 안에서 죽겠다는 의도입니다.
성막 안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성막을 더럽히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 왕은 성막 안에서 제단 뿔을 잡고 있는 요압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은 불의한 자에게는 성막이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29~31절)입니다. 요압의 죄목은 ‘...까닭 없이 흘린 피’(31절)인데,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아브넬과 아마사’를 칼로 죽인 것(32절)입니다.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는 여호와의 평강이 영원히 있을 것(33절)이라고 말합니다.
요압은 누구보다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 역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역사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윗 언약을 따라 세워질 다음 왕에 대하여 기다려 그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아도니야의 반역에 동참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랬을지라도 자신의 잘못된 과거의 선택에 대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붙잡고 회개했어야 함에도 그는 율법을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내 개인의 욕망과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여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철저히 내 자신을 죽이고, 겸손히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붙잡을 때, 영적인 제사장의 사명을 잃고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붙잡고, 영적인 제사장의 사명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34~35절).
요압은 왕의 명령을 받고 온 브나야에게 죽임을 당하여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압을 대신하여 브나야를 군대 장관으로 세워 나를 안전하게 하셨으며, 엘리 가문을 대신하여 사독 가문을 예비하심으로써 대제사장직의 공백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가운데 주신 약속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신뢰와 확신이 있을 때,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또한 삶에 찾아오는 위험 요소들을 과감히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어떠한 위기 가운데서도 반드시 신실하게 언약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솔로몬 왕에게 그러한 확신에 찬 믿음과 지혜가 없었다면 아도니야와 아비아달 그리고 요압과 같이 영향력이 큰 사람을 제거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여전한 모습으로 함께 하셔서 내 인생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확신하여 영적인 제사장의 사명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날마다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지 말씀을 삶의 거울로 삼아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불의와 욕망이 드러나지 않도록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은혜를 붙잡으며 참 목자이신 주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2:26~35절)...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6,27절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반란에 앞장선 아비아달을 파면하여 고향으로 추방합니다. 다윗 시대에 언약궤를 맡았고 다윗과 함께 고초당한 것을 감안한 처사였지만, 제사장직 파면은 제사장에게는 죽음만큼 중한 형벌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에서 끊어지는 것보다 더한 징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야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본분을 망각하여 반란에 가담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과오였습니다. 지금도 말씀보다 욕망의 소리를 좇을 때, 주님은 누구 혹은 무엇을 통해서든 징계의 매를 드실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직을 세상의 성공이나 명예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까?
28,29절 아비아달의 추방 소식을 듣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요압이 장막으로 도망가 제단 뿔을 잡고 버팁니다. 이스라엘의 통일을 이루고 주변 나라를 섬멸하던 장수요,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던 야심가의 위용은 간데없고, 죽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초라한 죄인의 모습만 남았습니다. 한때의 충성을 스스로 배신한 결과입니다. 충성 대신 실리에 편승하여 편을 바꾸고, 하나님 대신 사람의 힘을 의지한 만큼 추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누려 온 영화만큼 수모를 당합니다.
30~35절 도피성 중 하나인 헤브론에서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그가 도피성이라 믿은 여호와의 장막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의 뜻을 거스른 채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이고 차지한 군사령관의 자리는 브나야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죄를 눈감는다고 하나님도 내 죄를 눈감아 주시는 것은 아님을 기억합시다.
33절 ‘지혜와 평화’의 왕인 솔로몬은 요압의 죄를 단호히 응징합니다. 유능한 장수였지만, 무죄한 피를 흘리고 왕위와 나라의 안녕을 위협한 책임을 그에게 물어 하나님의 장막에서라도 단호히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죄를 온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정의와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합니다. 거룩함 없는 거짓 화평에 안주하고, 무책임한 묵인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방조하거나 조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공동체-불의한 권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아픔을 신원하여 주소서.
아도니야이 처형과 제사장 아비아달의 유배는 솔로몬의 대적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인 요압을 향한 칼이 됩니다. 그는 아도니야가 처음에 행했던 것처럼 여호와의 장막으로 가서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 죄사함을 얻으려고 합니다.
요압은 솔로몬이 보낸 브나야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거룩한 장막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결국 그동안 요압이 무죄한 자들을 죽인 죄목에 대해 용서 없는 처형을 결정하고 그를 대신하여 브나야를 군대장관으로 세웠고 아비아달을 대신하여 사독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다윗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했던 요압이 죽인 자 가운데에서는 아브넬과 아마사가 있었지만 다윗의 명령에 따라 죽인 우리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입으로 ”죄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씻어 내어라(31절)“ 라고 표현한 것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았음을 고백하고 또 구원의 확신에 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 없이, 또 그 죄를 인정함이 없이는 반복되는 그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미 나라가 망하고 포로기에 놓여였던 시대의 열왕기의 저자의 시점에서 보면 솔로몬 역시 자신의 입으로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고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늘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일어날 하나님의 징계는 피할 수 없음을 함께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무죄한 자가 될 수 없고, 그 구원의 손길을 거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 포악함과 교만함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을 붙드는 충성되고 착한 종으로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 교만하여 재판장의 위치에 올라가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의 심령 깊은 곳을 돌아보게 하시고 회개의 영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추악하고 음란한 모든 생각들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거룩하고 정결한 주님의 군사로
세상 가운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광선을 비춰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