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설명을 하면 일본군이 지배한 동남아에서 일본은 포로관리등을 조선인 군속에게 맡겼고 그 결과 포로에 대한 구타 가혹행위로 그중 일부는 전후 A급 군사재판의 희생자가 됬죠.
인도네시아의 경우 일본의 인종정책을 옅볼수 있습니다. 똑 같은 일이 중국에서도 있었는데 종전당시 일본은 섬이고 자원부족으로 언젠가는 다시 대륙과 아시아에 진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여 일본군 퇴각시 많은 일본인 거류민을 뒤에 남겨두는 과오를 저잘렀죠. 그들이 현지에서 동화되면 장차 일본의 군사적 경제적 다리나 교두보가 될거란 거죠. 그 과정에서 같은 황국신민으로 조선인도 남게 되고 대다수는 현지인과 결혼해 현지에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장차 일본의 정책 편이를 위한 이 계획에 알게 모르게 협조를 한거고 당시 전투 노하우가 없던 인니 게릴라들에서 이들은 직업군인의 경험을 가르쳤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양칠성 이름찾기 운동"이란 기사를 봤는데 그때 인도네시아에 남은 현지 여자와 결혼한 한국군속이 나중에 수카르노부대에서 활약해서 장성계급까지 땃지만 결국 네덜란드군에 잡혀 총살된것을 기려 기념비를 세웠는데 경남 밀양이 고향인 이 사람이름이 유령비엔 일본식 창씨개명한 이름 하세가와 시치히로로 올라있어 이를 정정하는 운동이 잠깐 있었는데 그후 소식은 모르겠네요. 혹시 연결이 되시면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대동아 공영권이란 일본의 정치선전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각 동남아 국가마다 틀립니다.
네덜란드의 인니 지배는 가혹과 혹사 그 자체여서 인니인들은 화란어도 배우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만하다 키큰 백인들을 같은 동양인이 몰아낸데 광분 개전 초부터 친일적인 성향이 짙었고 그후 전후에도 대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수카르노에게 미인계를 써서(데비란 수카르노의 네번째 부인은 동경 긴자 술집에서 일하던 일급 호스테스입니다)상당히 일본에 유리하게 진행됬어요.
이런 연유로 전후 일본인 혼혈들도 일본인 피가 섞인걸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얘기를 친한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국에서 공부할때 들은 얘기입니다. 문서상 확인은 못해 봤지만요.
: 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우리 회사의 우수 판매원을 모시고 상으로 해외여행을 시켜드리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말이 돕는 거지 대리가 담당자고 저는 과장으로 한조 맞아 인원 체크 정도만 합니다. 솔직히 세미나 프리젠테이션 준비하고 캠코더 찍는 걸 빼면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투어는 현지 가이드가 하도 꼼꼼하게 잘해 별로 할일도 없어요. 그런대도 인솔자라고 버스 맨 앞에 앉고 이래라 저래라 시키고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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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이사님 직위가 이사인지라 아랫 것들 사고만 안 치면 간섭 안하는 까닭에 아주 자유롭습니다. 한대리가 담당자지만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잘 못합니다. 계급이 깡패라고....살다보니 이리 저한테 유리한 경우도 있네요. 직위 덕분에 남들 다 단체행동할 때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네...난 바깥 바람을 쐬고 싶네해 발리 시내, 근교를 혼자 다니며 현지인과 대화를 할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근 인도네시아 역사와 전쟁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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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시아에 관해선 수카르노 대통령등이 상당히 친일적이었는데 존경을 받고 암 문제가 없어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군들이 남아 네덜란드 식민군에 맞선 인도네시아 독립군을 조직화시키고 군사 고문을 하여 주어 독립군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백명이 전사를 했다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카르노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공로비를 세우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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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명의 현지인과 1명의 현지 한국인 (10여년 거주 현지 관광회사 사장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두명의 인도네시아인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한명은 현지 한국말할 줄 아는 관광 가이드였으며 한명은 택시기사였습니다. 현지 가이드의 경우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상당히 박식하였던 바 모른다는 사실이 의아했습니다. 사장님은 그 사실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이 왜 그랬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다라고 하여 일본이 전쟁에 져 인도네시아에세 가져 갈 것이 전혀 없든 상태에 그 사람들이 왜 목숨까지 버려가며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웠을까요? 라고 물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웠습니다. 일본이 부르짖는 대동아 공영권의 숭고한 (이론상으론) 이념을 당시 일본군들이 순수하게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고 물어 봤더니 술자리가 분위기가 썰렁해져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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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넘이 전 아직도 의문입니다. 일본사람이 다 똘아이도 아니고 왜 계속 역사 가지고 난리를 치는 지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 심중에는 일본인이 실제로 동양을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싸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엔 똑 같이 제국주의자가 되었지만...남았던 일본군들...그런 순진한 신념으로 싸웠기 땜에 일본의 전쟁이 끝나도 그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가담해 싸운 것은 아닐까요? 자국에 이익이 전혀 아니라도요. 도조 같은 악랄한 제국주의자에 속은 군인들이 불쌍합니다. 아님 도조 같은 군국주의자가 실제로 그런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가요. (후자는 아니죠? 넘 반증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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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 이야기를 다 들어 봐야 한다고들 하죠? 우리도 그런 경우인가요? 일본인들은 뭐라고 논리를 펼지? 일본 극우파 애들하고 한번 인터뷰를 하고 싶네요. 근데 주먹부터 나가면 우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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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주제는 인도네시아인이 자기네 나라의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만 삑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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