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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김학성) 조수석(나백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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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문 |
손고문 |
회장님 |
권현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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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인 |
물망초 |
강선대 |
정금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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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란 |
무지개 |
전명배 |
김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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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영 |
수문장 |
김연옥 |
사 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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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수 |
한양선비 |
유 승 |
유 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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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
북바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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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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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
이진구 |
이용수 |
박종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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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령 |
박춘수 |
설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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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
박성규 |
박성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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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국 |
박세진 |
산오르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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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례 |
최홍전 |
차윤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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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열 |
※산악회 사정(폭우 폭설 등등)에 따라 산행지를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전국의 많은 산악회들이 아담하고 한적한 산을 찾아 산악회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린다. 산악회의 연중행사중 가장 첫 행사인 시산제는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화합과 만남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산행이 산을 무대로 해 이루어지는 만큼 산에 대해 제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사상을 펴놓고 무작정 산에 절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집안 제사에도 순서가 있듯이 시산제에도 예의와 순서가 있으며 지켜야 할 도리가 적지 않다. 이런 절차와 예의 때문에 이제 갓 창립한 산악회로선 시산제를 지내고 싶어도 순서와 제문을 쓰는 요령 등을 몰라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원로 산악인들은 시산제가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으며 예전에는 시산제와 같은 행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산악인들이 시산제를 지내기 시작했을까? 우산 1966년 설악산 관광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설악산악회, 예총 속초지부, 속초시 공보실이 공동주관한 설악제를 들 수 있다.설악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된 이 설악제는 산제의 형식보다는 등반대회 등 축제의 성격이 짙었다.
한국산악회 최선웅 총무이사는 시산제의 시초는 동국대학교 산악회에서 찾는다. 동국대학교 산악회가 68년 신년 초에 북한산에 올라 돼지머리와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올린 게 시산제의 시초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최근의 시산제처럼 유교 적 순서에 따라 축문을 읽고 소지를 하는 등의 의식을 치르지 읺았지만 등반중 사망한 악우들과 산신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 즈음 산악회들은 오늘과 같은 시산제 행사를 갖지 않았다. 다만 등반장비가 귀했을 때이므로 자일이나 텐트 등의 귀중한 장비를 구입한 후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비 앞에 술을 따라놓고 간단히 제를 올리는 일은 있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시산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산악계에 시산제가 자리잡게 된 것은 27년 전인 1971년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이 '설제(雪祭)'를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게 통설이다. 서울시연맹은 1회 설제를 71년 2월 첫째주, 명성산에서 실시했으며 다음해인 72년에는 2월 첫째주 운길산에서 지냈다.
이원직회장(작고) 재임시 시작된 이 설제는 산악인을 대표하는 연맹으로서 산악인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연맹 산하 단체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설제'는 초창기에 1천여명의 회원들이 모였을 정도이며 지금도 30여대의 버스가 동원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서울시연맹이 '설제'란 이름으로 매년 산제를 올리면서 연맹산하의 산악회와 안내산행을 하는 산악회 등도 산신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산제를 수용하게 되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시산제는 하나의 유행처럼 산악계에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거의 모든 산악회가 연중 행사의 하나로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시산제의 기원은 우리의 전통적인 신앙인 산악 숭배사상이라 하겠다. 산에 제를 얼리고 소원을 기원하는 행위의 근원은 [삼국사기] 잡지 제사편에 전하는 신라의 5악 숭배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통일신라는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 지리산, 동으로 금강산, 서로 묘향산, 중으로 계룡산을 5악으로 숭배했으며,조선시대에는 묘향산에 상악단, 지리산에 하악단, 계룡산에 중악단을 설치하고 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산신에게 제를 지냈다.
이런 산악 숭배사상은 동제나 서낭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나라의 근심이나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산신에게 기원해안정을 찾고자 했던 것이라 풀이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시산제는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이 전통적인 산악 숭배사상과 맞물려 생겨난 것이라 하겠으며 최근에는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단합을 위한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고려할 점은 무엇인가. 우선 한적한 산행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산행 후 제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시산제 시간에 맞추어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또 많은 사람이 몰리는 혼잡한 산은 피해야 한다. 산행코스가 너무 길 경우에는 산행시간이 늦어져 이날 산행의 궁극적인 목적인 제를 올릴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며 소란스럽다보면 경건해야 할 산제의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또한 제를 올릴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있는 산이라야 한다.
집안의 제사도 가장 넓은 안방을 이용하듯 제사상을 펼치고 여럿이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시산제는 보통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지내므로, 교통이 혼잡하지 않고 거리상으로 가까운 장소를 선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시산제를 지낼 장소를 정했다면 제수를 준비해야 한다. 시산제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떡과 돼지머리와 술, 북어, 감, 대추, 밤, 배, 사과 등이다. 제상에 올리는 음식은 크게 제한이 없지만 이 중 술은 반드시 막걸리를 준비해야 하며 돼지머리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다음은 산신령께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고 소망을 비는 제문을 만들어야 한다. 제문은 한글로 쓰거나 한글과 한문을 혼용해 쓰는 경우, 한문으로만 쓰는 경우가 있다. 한글과 한문을 혼용해 쓰는 것이 보통이며 근래에는 한지에 붓으로 쓰지 않고 컴퓨터 프린터를 이용해 제문을 만들기도 한다.
대개의 제문은 우선 시산제의 시기와장소, 산제를 올리는 이유를 밝히고 산의 고마움에 대한 감사, 산악회내의 기원 등으로 이루어 진다.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진 서울시연맹의 제문을 보면 '維歲次 戊寅 二月 癸巳 朔 十五日 서울特別市山岳聯盟 會長 金仁植은山岳聯盟 加盟團體 會員 및 同好人 一同과 함께 山紫水麗한 이곳 철마산에서'로 강림을 기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중간부분은 '예로부터 山紫水明한 우리강산은 錦繡江山으로 자랑되어 왔으며 더욱이 이 水麗한 철마산은 (중략) 우리山岳人 一同은 이러한 大自然의 奧妙한 精髓와 아름다움의 極致 속에서 自然을 欽慕하고 自然과 同化되며 꾸준한 山行을通하여 忍耐와 協同 (후략)' 으로 이어져 산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이어진다.
제문의 마지막은 산악회의 소원을 비는 문구로 '전 山岳人의 安全과 建全한 登行이 維持되도록 끊임없는 가호가 (중략) 嚴肅하고도 敬虔한 마음으로 이 盞을 올리오니 山神靈님이시여 이 精誠을 大札로 懇切히 바라옵나이다'로 끝맺고 있다.
제문의 마지막은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했사오니 거두어 주십시오' 나 '제를 올리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등 여러가지 형태로 바꾸어도 좋다.
제문을 마련했다면 산행에 나서 음식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제사상은 보통 산 정상을 뒤로하고 일반 제사상과 비슷하게차린다. 과일은 '홍동백서'란 유교식 제사 상차림처럼 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에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돼지머리는서쪽, 떡은 동쪽에 놓는다.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상 앞에 분향을 위한 향로를 마련했으면 시산제를 시작해야 한다.
시산제의 순서는 어떻게 될까? 유교를 숭배했던 우리 민족이니 만큼 시산제 역시 유교적 순서를 따르고 있다. 먼저 회장이나 원로회원이 강신의 절차를 밟게 되는데 제사상 아래 마련한 돗자리에 올라 향을 피우고 산신께 술을 바친 후 좌, 우, 중앙에 세번씩 술을 붓고 재배를 하게 된다. 참가자들은 강신시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기본이다.
강신 이후에는 초헌에 들어간다. 산신에게 첫 잔을 올리게 되는 초헌은 보통 제주인 산악회 회장이 맡게 된다. 산신께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초헌 후에는 제주가 제문을 읽는 독축에 들어간다.두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은 부회장이나 원로회원, 초청인사들이 맡게 되는데 역시 술잔을 올리고 산신께 재배를 하면 된다. 세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은 집안 제사의 경우 종손이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산제에서는 가장 열성적인 활동을 벌인 회원이나 임원 중 고령자나 최연소자가 맡기도 한다.
종헌을 마치고 나면 누구나 분향할 수 있는 헌작이 이어지는데 회원이나 임원, 외부인사 등 누구나 잔을 올리고 재배할 수 있다. 헌작이 끝나면 제사상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철상이 이어진다. 최근 철상시 한꺼번에 제사상에 몰려 몸싸움까지 벌이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제사상의 음식은 참석자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게 기본이다. 제사상에 음식을 먹으면 연중 탈이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철상 의식은 협동을 미덕으로 하는 우리민족의 제사의식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의식이다.
이런 점에서 산제를 지낼 때에도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미덕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철상이 끝나고 나면 제문을 태워 날리는 소지를 하게 되는데 제사의 마지막 절차다.
소지는 제문에 쓰여진 기원이 산신령님께 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장 경건하게 치러야 한다. 소지를 끝으로 모든 제는 끝나게 된다.
시산제는 제상에 술과 음식을 많이 차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원들 모두가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제사를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제를 올리는 동안 웃고 떠들거나 제를 올리기도 전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행위 등은 시산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 하겠다.또 시산제 후에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행위 등도 산악인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예약해 주시고 입금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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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에서는 민사,형사 등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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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사항.
◈ 본 산악회는 비영리 순수 동호회로써 산행대장 포함 운영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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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어떤한 법률적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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