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에릭 리퍼트는 세 번이나 한국을 찾아 사찰음식의 진수를 배워갔다. 사진은 양산 통도사 공양간에서 사찰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는 리퍼트.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다. TV만 틀면 셰프들이 등장한다. 정통 음식 프로그램부터 예능, 광고까지 섭렵하고 있으니 과히 전성시대라고 불릴 만하다. 이에 따라 셰프들이 소개하는 음식의 재료들은 불티나게 팔리는 등 그들의 말 한 마디에 대한 영향력은 광범위하다. 이런 와중에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셰프가 사찰음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어 주목된다. 에릭 리퍼트(Eric Ripert)가 주인공이다.
세계 최고 셰프로 손꼽히고 있는 에릭 리퍼트는 미국 뉴욕에서 ‘르 베르나르댕’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레스토랑은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 잡지인 ‘미슐랭 가이드’에서 10년 연속으로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았다. 또 미국에서 요리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제임스 비어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한국을 찾았다. 그의 방한 이유는 오롯이 사찰음식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성 백양사 천진암, 서울 진관사, 양산 통도사 등이 이번에 그가 거쳐간 사찰이다.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는 셰프가 사찰음식을 배우러 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사찰음식은 건강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은 음식이며 조화롭고 지속가능성이 있는 음식, 도살과 도축 과정이 없어 고통이 없는 채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교’ 인연 때문이기도 하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물고기를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그는 1990년대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졌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그가 불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간 것은 2003년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받은 후부터다.
에릭 리퍼트 쉐프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3번째다. 3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 사찰음식을 접했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 그가 진행하는 TV쇼 촬영차 다시 한국을 찾아 사찰음식을 찍어갔다. 미국 현지에서 백양사 천진암 정관스님을 초청해 사찰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아벡 에릭(Avec Eric)’ 시즌 3에서 촬영분이 방영됐다. “촬영 일정으로 다양한 한국 사찰음식을 체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올해는 사찰음식을 즐기고 배우러 왔다.”
세계 최고 셰프가 사찰음식에 사로잡힌 이유가 궁금했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집착이나 중독을 만들지 않는 음식은 사찰음식이 유일한 것 같다. 마늘과 파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아이템으로 정말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사찰음식의 매력이다.”
그의 사찰음식에 대한 찬사는 끝날 줄 몰랐다. 그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사찰음식은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현재 우리의 음식은 탐욕에 근거하고 있다. 동물을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식으로 사육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먹게 됐고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이 뒤따르고 있다. 이같은 식단은 비만과 당뇨, 암 등의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인류가 살아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찰음식은 5가지의 이유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약속할 수 있다. 그는 땅과 조화를 이루고, 유기농이며, 동물과의 부정적인 업을 쌓지 않는 채식이자 맛있고 몸에 좋다. 또 맑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서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서울 진관사에서 처음으로 사찰음식을 경험하고 3년을 내리 한국을 찾아올 정도로 사찰음식의 매력에 빠진 까닭을 맛에서만 찾지 않았다. 사찰음식이 품고 있는 정신적인 가치에 더욱 주목했다. “음식을 곧 약으로 여기는 정신적 가치를 찾고자 한국에 온 것이다. 이러한 사고에는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이같은 철학이야말로 한국 사찰음식의 가장 주요한 특성이라고 여겨진다. 전 세계 사람들과 이런 가치를 나누고 싶다. 이러한 희망적인 깨달음의 실천은 지구에 올바른 섭식 행위를 하면서 장수하는 삶을 살게 해준다. 그래서 한국에는 앞으로도 계속 올 것이다.”
[불교신문3131호/2015년8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