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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욥 22:21-3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가오는 6월 1일은 지방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이미 사전투표를 하셨습니까?
투표용지 7장을 받아, 투표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누가 올바른 일군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투표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투표는 반드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자녀와 재산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세 친구가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이 큰 재앙을 만나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위문하고, 위로하려고, 욥을 찾아왔습니다.
멀리서 욥을 보았을 때에는 욥의 모습이 너무나 처참했기에, 그가 욥인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한참 뒤에야, 그가 바로 욥인 줄을 알고, 슬픔을 못 이겨, 소리 내어 울면서, 겉옷을 찢고, 또 공중에 티끌을 날려서, 머리에 뒤집어썼습니다.
그들은 밤낮 칠일 동안을 욥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서도, 욥이 겪는 고통이 너무도 처참하여, 입을 열어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욥을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중에 제일 연장자였던 엘리바스가 욥이 고난당하는 것은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일이 있더냐? 정직한 사람이 멸망한 일이 있더냐? 내가 본 대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욥 4:7-8. 새번역)
그때, 욥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사람을 살피시는 주님,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하여 주님께서 무슨 해라도 입으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주님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주님의 짐으로 생각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내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내 죄악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욥 7:20-21. 새번역)
욥기서를 읽어보면, 욥을 찾아온 세 친구와 욥의 끝없는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논쟁의 요점은 욥이 당한 고난이 욥이 범한 죄로 인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길을 가다가 태어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고,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라고 예수님께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생각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의 생각처럼, 우리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 욥의 친구들은 욥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욥을 몰아부쳤습니다.
그들의 논쟁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들이 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기에는 아까운 말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목하고,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화목이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4:27,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70인 전도대를 파송하실 때, 어느 집에 들어가거든,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마 10: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평안하냐”(마 28:29)
제자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고, 평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눌 6:2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7-19)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를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복수혈전이 판을 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서두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엡 1:2)라고 썼습니다.
어제 효성병원 옆을 지나가다가, 주차장 안쪽으로 장미가 가뜩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천만 송이 장미가 피어있는 그런 풍경 사진들을 보면, 잠시일지라도,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그런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 수 없는 것일까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과 재물을 잃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가공할만한 살상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학생 포함 21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이 없고, 살인,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안을 얻으려면,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정원과 같은 외적인 평안이 있습니다.
무심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벚꽃이나 갈대일 것입니다. 벚꽃이 피면, 아름답습니다. 사람들도 무심천을 많이 찾습니다. 벚꽃 아래를 걷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때입니다.
외적인 평안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평안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해서는 안됩니다.
잠언 28:1절을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부산에서 낚시꾼이 낚시를 하다, 낚시 바늘에 검은 봉지가 걸려 올라왔습니다. 그 안에는 마약 주사기가 가득했습니다. 주사기에는 혈은이 남아 있어서, 마약을 한 사람들을 체포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마약 주사기를 검은 봉지에 싸서, 무거운 돌에 묶어, 바다에 던져,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낚시 바늘에 걸려, 올라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을 멀리 하고, 죄를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면, 죄를 멀리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죄를 멀리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은 올바른 것인가?
선거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정치인들의 말들이 더욱 거칠어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가짜 뉴스, 막말 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러한 것에 끌려다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둘째, 하나님을 보화로 삼아야 합니다.
24-26절 말씀입니다.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우리의 보화는 무엇입니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려사”의 “최영 열전”을 보면, 최영이 16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최영을 불러, “너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최영은 고려를 위하여, 엄청난 공을 세워, 왕으로부터 많은 재물을 하사받았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최영은 그의 아버지의 유언처럼, 황금 보기를 돌같이 했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의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황금을 황금으로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금을 금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다이아몬드를 진짜 다이아몬드인지, 가짜 다이아몬드인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다이아몬드를 직접 눈 앞에서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진짜 다이아몬드를 보게 된다 해도, 모조품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금을 금이라고,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라고 볼 수 있는 안목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구별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4-26절의 말씀을 새 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황금도 티끌 위에다가 내버리고, 오빌의 정금도 계곡의 돌바닥 위에 내던져라. 그러면 전능하신 분이 네 보물이 되시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은이 되실 것이다.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너는, 전능하신 분을 진정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분만이 네 기쁨의 근원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모조품을 버리고, 진짜 보물을 가져야 합니다.
모조품을 수집할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진짜를 소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래 위에 집을 세울 것이 아니라, 튼튼한 바위 위에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진짜 기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보다 더 귀히 여기며,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 마음으로부터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94장 1절 가사를 보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라고 했습니다.
이 찬송가 가사가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 부귀를 위해서, 이 세상 명예를 위해서, 예수님을 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이 세상 부귀, 이 세상 명예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요, 보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셋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27-28절 말씀입니다.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쉬운 일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는 일입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많이 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하나님과 멀리 있었다고 해도,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과 가까이에 있게 됩니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공식은 기도하면, 응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책임져 달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큰 풍랑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큰 풍랑이 금방 멈추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하면, 풍랑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넷째, 겸손해야 합니다.
29-30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 있음도,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나의 보화로 삼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십시오. 하나님의 보화로 삼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겸손하십시오.
그리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오니, 말씀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나의 보화로 삼고자 하오니, 나의 마음 가운데 들어와 주옵소서.
주님께 기도하오니, 평안을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삶을 살고자 하오니,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