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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곳은 아침저녁으로 싸늘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날씨 인사가 어느덧 더위에서 쌀쌀함에 대한 말로 바뀌고 있습니다. 잔치가 있을 거면 소문이 먼저 나는 법이지요. 기온의 변화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걸 보니, 머지않아 화려한 색동저고리를 걸친 가을의 행차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전에 못 다 쓴 여행 기록을 적어볼까 합니다. 지난여름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말씀드렸는데, 그에 뒤질세라 앞을 다투는 곳들이 있습니다. 방문했던 많은 곳들이 나름 개성이 있는 곳들이어서 기억의 뒤편에 있기를 원치 않는 곳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몇 군데만을 추려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워싱톤(Washington)과 뉴욕(New York)이 생각납니다. 워싱턴과 뉴욕은 제가 사는 곳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4시간과 8시간 정도면 각각 도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계신 분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맘만 먹으면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이나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다녀오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단단히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그곳을 사진이나 뉴스에서만 보았으니, 촌티를 벗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있을 때 한 번은 꼭 다녀와야 할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풍문으로 들은 바와 인터넷에서 조사한 바로는 호텔비, 주차비, 각종 관광지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거기다 시내의 교통 체증이나 혼잡이 심하여, 차를 시내 안으로 가져가는 것은 여행 초보인 저에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보통 외곽에 호텔을 잡고-시내 호텔이 비싼 이유도 있고 해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을 많이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애들을 데리고 차 없이 한 여름 뙤약볕에 시내를 걸어 다닐 생각을 하니, 그게 더 쉽지 않을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좀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차를 직접 가지고 되도록 목적지 가까이 접근하기로 맘을 고쳐먹었습니다.
워싱턴은 세계 정치 무대의 상징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박물관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박물관이 많습니다. 워싱턴에 박물관이 없다면 아마 관광객이 1/3 혹은 1/2로 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여행객에게 좋은 것은 박물관들의 규모나 수준이 세계적이면서도 모두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뉴욕은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보고 돌아다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일정 잡으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곳입니다. 저희 가족은 워싱턴, 뉴욕 각각 사이좋게 각각 4박 5일씩을 할애하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워싱턴과 뉴욕에 대한 이런 계획을 가지고 첫 목적지인 워싱턴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워싱턴으로 가는 길의 절반 정도 다다랐을 때, 집사람이 멀미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거 첫날부터 이러니 여행이 될까 싶기도 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중간 휴게소(rest area)에서 1시간 30분 정도 쉬었더니, 다행이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다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이나 뉴욕의 경우 도시 진입 시간대를 잘못 잡으면 엄청 막힙니다. 그러나 그날은 집사람 멀미 때문에 예정 시간보다 늦어졌지만, 다행히 일요일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 교통 체증 없이 워싱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 시내에서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의외로 관광하기가 쉽습니다. 주요 관광지는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잔디 광장인 National Mall이라는 공원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공원의 서쪽 끝에는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 동쪽 끝에는 국회의사당(Capitol US)이 있습니다. 그래서 1-2일 정도만 돌아다니면 주요 관광지의 지리를 대충 익힐 정도입니다.
첫날 맨 처음 도착한 곳이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었습니다. 워싱턴의 건물은 이 기념탑의 높이보다 더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에 고도 제한이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착해 보니, 몇 년 전 지진으로 인해 수년 째 보수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공사라고 해봤자 둘레에 보수 공사용 비계를 설치한 수준이어서 관광에 크게 방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건물이 멋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도시에 대한 상징성이 있어서 다들 들리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 옆에 있는 세계 2차 대전 기념 공원(World WarⅡ Memorial)을 들른 후, Reflecting Pool이라고 불리는 긴 직사각형 연못을 지나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에 들렀습니다. 링컨 기념관과 링컨 초상화가 5달러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링컨 기념관 앞에는 5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기념관을 배경 삼아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링컨 기념관 안에 있는 링컨 상은 근엄함을 지나쳐 조금은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당시 혼란한 정치 상황에 맞서 그가 짊어져야 했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크기는 생각했던 것 보다 컸습니다. 아마도 기념관의 스케일에 맞추다 보니 커진 것 같았습니다. Reflecting Pool은 링컨 기념관 앞에 있기 때문에, 특히 이 연못을 Lincoln Memorial Reflecting Pool이라고 합니다-또 다른 Reflecting Pool이 국회의사당 앞에도 있음. 링컨 기념관과 이 연못 그리고 워싱턴 기념탑이 National Mall이라는 공원을 동서로 관통하는 중앙선을 기준으로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연못도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커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마 워싱턴 특파원들이 뉴스 전할 때 간혹 배경으로 삼는 곳이니, TV를 통해서 한두 번쯤은 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Reflecting Pool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연못은 우리나라의 연못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 연못의 경우 비록 인공 연못일지라도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살리고 가능하면 가운데에 조그마한 섬을 만들고 그 섬에 나무라도 심어 운치를 살려보려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연못은 직사각형으로서 깊지 않으며-아마 발목 정도의 깊이-, 흔한 분수도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잔잔하고 깊지가 않으니 물이 주는 위협감이 없는 것도 하나의 특징입니다. 특히, Reflecting Pool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다보면, 자성을 통한 개혁과 발전을 의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실제로 그 Pool의 방향을 달리해서 보면, 옆에 있는 건물이나 사물들의 그림자가 이 연못에 다 투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을 이 연못에 비추고서 들여다보자고 하면 과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던 이 연못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만들어 놓은 커다란 인공 거울인 셈입니다.
이 Reflecting Pool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즉, 흑인 인권 운동가인 Martin Luther King 목사가 1963년 8월 28일에 링컨 기념관에서 Reflecting Pool을 바라보며 군중을 상대로 행했던 연설입니다. 그 연설은 20세기 최고의 연설로 평가 받고 있는데, 당시 열악한 위치에 있던 미국 흑인들의 인권 향상과 차별 철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이 연설에서 “I have a dream”이라는 후렴구를 동반하는 구절이 유명합니다. 아마 잘 아실텐데요, “내게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자손들과 노예 주인의 자손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않을 날이 올 것이라는......,” 내용의 대목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많이 남는 대목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어투에 실린 연설의 내용을 육성으로 듣고 있노라면, 현장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강한 동요를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곳에 가기 전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애들에게도 육성 연설을 직접 들어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관련 얘기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애들은 애들인가 봅니다. 그 때도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더니, 이후에도 별로 느끼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이 연설이 직접적으로 흑인 차별과 그 개선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면, 현실의 난제를 대하고 있는 참여주의자들이 가져야 할 이상은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표도 얻을 수 있는 연설이라고도 여겨집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주류이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악행에 대해 해야 할 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이른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들의 이상과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갖게 하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은 또 하나의 도전을 줍니다. 그 당시 흑인 인권 운동에서 다른 견해, 일테면 분리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통합주의의 관점에서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 사상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제가 앞에서 언급한 연설의 일부인 한 테이블(실제 연설에 the table of brotherhood-형제애의 테이블-이라고 표현되었음)에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갖는 이들이 모여 앉는다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꿈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다른 얘기를 해보면, 부모가 애들 기르고 교사가 학생들 교육할 때도 유념해야할 내용이 있습니다. 애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나 고민될 때, 깊고 미세하게 들어가면 다양하고 복잡한 전략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관점을 크게 해서 애들에게 필수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큰 목표로서 가치 있는 꿈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꿈을 마음속에 그린 아이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열악함이나 부족한 재능도 큰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꿈은 자신의 부족을 채울 인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신념의 반석과 행동의 발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동의한다면, 애들에게 어떤 수준의 꿈을 갖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꿈을 어떻게 내면화시키게 할 것인가는 부모나 교사들에게 중요한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부터 바로 앞에 있는 현실에만 욕심을 부리니, 애들에게도 가치 있는 꿈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치관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냉전 시대가 종막을 고한 이후로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념이 작아지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권’이나 ‘평등’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인권이 좀 낫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 나라들의 경우, 이런 가치를 근거로 세계 여러 나라에 이런 저런 훈수를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 미국의 경우도 이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오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그런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수준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사를 뒤돌아보면, 1956년에서야 버스 안에서 백인과 흑인이 함께 앉을 수 있다는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물론,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으면 법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 연설이 행해질 때도 그 법이 제정된 후 몇 년 지났을 정도였으니, 당시 흑인 차별과 멸시는 어떠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가졌던 꿈은 그런 시대였기에 단순한 낭만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합니다. 차라리 치열한 고민이나 숭고한 철학에 근거한 신념의 결과로 여겨집니다. 그의 꿈은 흑인 차별의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뭇 사람들 즉, 억누르려는 자와 저항하는 자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문제 해결이 된 상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투적이 아니라 낭만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는데서 사회 통합을 위한 숭고한 의미가 두드러진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20만이 넘는 수많은 군중을 보면서 연설을 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공간 구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링컨기념관이 바로 뒤에 있기 때문에, 연설자는 꼭 100년 전인 1863년에 흑인 노예 해방 선언을 했던 링컨의 후광을 업고 있는 구도입니다. 앞으로는 Reflecting Pool과 미국 수도의 상징 워싱턴 기념탑, 더 나아가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미국의 인종 차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동시에 그들에게 미래의 환상으로서 꿈을 이야기 하고 있는 장면은 과히 명연설에 어울리는 명장면이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합니다.
<링컨 기념관 내에 있는 링컨 상>
<링컨 기념관을 뒤로 하고 바라 본 Reflecting Pool>
벌써 지면이 많이 채워졌네요. 진도를 좀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뉴욕으로 시선을 옮겨 보겠습니다. 뉴욕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 경험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들은 뮤지컬 관람, 타임스퀘어 광장 등이었습니다. 뮤지컬은 여행 떠나기 전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미리 예약하면 가격도 조금 할인을 받으며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성수기라 엄청 비싸더군요.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보다 더 비쌌습니다. 눈 질끈 감고 예약을 하였는데, 애들이 있어서 라이온 킹(Lion King)을 관람하기로 하였습니다.
관람 당일 날 들뜬 마음으로 도착하여 관람을 하였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는데 속된 말로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먼저, 등장인물들의 분장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마음의 빗장이 열리면서 새로운 세상에 초대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과장과 이에 대한 관용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통용되는 관객과 배우간의 숨은 약속입니다. 이 뮤지컬에서 배우들의 분장은 관객의 관용에 힘입어 동물들의 특징과 속성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큰 키로 성큼성큼 다니는 기린, 무리가 되어 다니는 가젤, 무대의 중심을 잡고 있는 코끼리,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각종 동물들, 그들의 과장된 분장에 동물들의 다양한 표현이 가득 차 있습니다.
Lion King의 경우 이보다 더한 것이 아마도 음악일 것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상영된 만화 영화에서도 같거나 비슷한 음악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저는 영화를 안 봐서 비교는 못하겠네요. 그래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음악에 대한 느낌이 뮤지컬 경험의 유무에 상관없이 대동소이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음악은 들려오는 저 가사가 영어인지, 아프리카 원주민어인지, 아니면 그냥 의성어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몇몇의 노래들은 비교적 단순하면서 반복되는 부분들이 많아 듣는 이가 금방 친숙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밀림에 사는 동물들이 최소의 음소로 의사 표현하려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소리의 원시성을 살려주니, 듣다보면 듣는 어느덧 나는 아프리카 깊숙한 야생의 세계에서 배우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분장과 음악,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면, 이 뮤지컬은 처음부터 약 10분 정도까지의 시간과 장면이 최고의 압권으로 여겨집니다. 처음 이 시간대에 온갖 등장인물들이 줄거리와 상관없이 일종의 무대 서비스 하듯 퍼레이드를 합니다. 앞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주제가가 연주되고 한 층 위 사이드에서는 북 등의 타악기가 분위기를 치켜세웁니다. 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나중에 집사람은 그 대목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아, 그런데 저에게는 이런 감동도 잠시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극의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저에게는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운전하고 스케줄 맞추고 애들 건사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엄청 피곤했던가 봅니다. 제가 바쁜 일정때문에 스토리를 모르고 들어간 것도 실수였고요. 여하튼 스토리를 모르니 분장과 음악만 가지고는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졸음이 쏟아지는데, 아시죠? 가마솥 뚜껑보다 더 무거운 그 눈꺼풀......, 사투를 벌였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비몽사몽으로 헤맸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간혹,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에서 이곳 브로드웨이에 뮤지컬 보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오면, 정작 뮤지컬 관람 시간에는 시차 적응이 안 되어 거의 졸다 시간 다 보낸다고들 합니다. 특히 여행 첫날은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네요. 저는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여행 중에 짐꾼에 운전사에 워낙 온 몸으로 하루를 때우다 보니, 공연 전반전은 피곤한 몸이 졸음과 한 씨름하다 시간 다 보냈습니다. 혹, 이곳에 뮤지컬 보러 오는 사람 있으면, 참고할 만합니다. 극장에서 졸음 이겼다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애들에게는 그 경험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좀 걱정했는데, 비싼 표 사가지고 들어가서 지루해 하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요. 하지만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다 기억을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도 둘째 애는 시간만 되면 Lion King 노래 CD에 수록된 노래들을 듣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또 다른 기억 거리로는 타임 스퀘어(Time Square)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광장의 중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낮이나 밤이나 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녁 11시가 다 되어도 사람들이 줄지를 않더군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야경과 쇼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광고판이 기억에 남는데, 제일 비싼 광고판들이 광장 중앙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한쪽은 일본 회사의 광고판이 다른 한쪽은 한국 회사의 광고판들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회사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인데, 현대자동차 광고판은 앞에 가면 자신이 광고판에 등장하여 주인공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체험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비싸 보이는 곳은 아니지만, 좀 떨어진 곳에 말로만 듣던 독도 광고판도 있었습니다. 가수 김장훈씨가 주축이 되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이 대단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임 스퀘어 한 복판에 있는 광고판>
<월가의 상징인 황소 상>
자유의 여신상 보러 가다 들른 곳임. 보통 뿔을 만지는데, 닳고 닳은 황소의 그곳을 보니 아들에게 기를 넣어주고 싶어져서.....,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곳을 한 군데 더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캐나다의 퀘백(Quebec)이라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같은 이름의 퀘벡주에 속해 있습니다. 이 도시의 문화는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프랑스풍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 얘기로는 현재의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답다고도 합니다. 그곳의 간판이나 심지어는 거리의 이정표 또한 모두 불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걱정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 영어를 전혀 안 쓰고 불어만 쓰면 어쩌나 하고요. 하지만 식당, 상점, 호텔의 종업원들은 영어를 대체로 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나라 공용어인 영어마저도 쓰기를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방자치가 잘 되나 싶기도 하여, 한편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던 적이 있는데, 역시나 주민들은 영어를 모르더군요. 캐나다에서 영어를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있다니, 그곳은 좀 희한한 세상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다 퀘벡이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옛날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신대륙에 진출하여 식민지를 많이 건설했습니다. 서로 충돌이 없으면 괜찮지만 혹, 욕심 때문에 충돌이 생기면 땅따먹기이니 국가의 명예를 걸고 싸움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영국과 프랑스가 퀘벡을 놓고 싸웠는데, 결국 영국이 이겨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삶의 근거지를 두었던 사람들은 남아서 그대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후손이 지금의 퀘벡의 주민이 된 것입니다. 알고 보면, 불쌍한 전쟁 포로의 후손들인 셈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들은 바가 있으니, 영국이나 다른 주에 내심 앙금이 지금까지도 있겠지요. 상대적으로 그들은 할아버지의 나라인 프랑스에 대한 그리움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런 보수적인 성향 덕분에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현재는 이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주에서는 꼴사납게 보이겠지요. 그래서 이 주를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고도 하네요.
이 도시는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강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고, 장기간의 영국군과의 싸움 때문에 전체가 요새로 되어 있습니다. 요새에는 옛날에 영국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대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예전에는 살벌한 분위기였겠지만, 지금은 그들의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도시 전체가 유럽풍의 건물이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텔 로비나 식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불어로 ‘bonjour’라고 인사를 합니다. 여하튼, 그 도시는 도시 전체가 매우 아름답고 아기자기하였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여행한 도시는 이 정도로 갈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를 적어볼까 합니다. 당시에는 원치 않는 것들이었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여행 이야기 하다보면 재미를 더하고 여행을 더 실감 있게 하기도 하지요.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워싱턴에서 주차하다 남의 차를 긁었던 사건입니다. 그날은 오전에 국회도서관(The Library of Congress)과 국회의사당(Capitol US)을 들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근처 주택가에 차를 주차하다가 그만 실수로 남의 차의 범퍼를 긁어버렸습니다. 참 난감하데요. 신경을 많이 쓴다고 썼는데, 순간 방심이 일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행 중이었으니, 되도록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려도 차 주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차관련 안내 표지판을 자세히 보니, 그곳이 주민들만 주차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미안하다는 스토리 메모와 제 연락처를 남기고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차를 다른 주차장에 옮긴 후, 이후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아무리 기다려도 차 주인으로 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범인이 현장을 다시 찾는다고, 궁금해서 오후 늦게 그곳에 다시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스크래치를 냈던 차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메모는 크게 해서 운전석 앞 윈도우 브러쉬에 꽂아 두었으니 운전자가 못 볼 리는 없었을테고......, 그래서 아마도 바빠 저녁에나 연락을 하려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이 가도 하루 이틀이 가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연락이 오면 현금으로라도 빨리 해결을 하고 여행을 가볍게 다시 떠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으니 좀 조바심도 났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범퍼의 흠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하였습니다. 여하튼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으니, 이 문제는 잠시 마음고생만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차 주인에게 미안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갖고 있습니다.
여행 중 나를 애타게 했던 일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워싱턴에서 카드가 갑자기 막혀버렸던 일입니다. 첫날 워싱턴에 도착하여서 카드 결제를 하였었는데, 두 번째 날부터는 결제가 막혀버렸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현금을 준비하여 당분간은 사용하였지만, 여행 끝날 때까지 사용하기에는 금액이 많이 부족하여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카드 도난이 많아 주로 사용하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갑자기 카드가 사용되면 도난 카드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자동으로 정지를 시켜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다른 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은행에 신고를 하고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카드를 사용하다 덜컥 카드가 막혀버렸던 것입니다.
뉴욕에서 Bank of America(제가 거래하는 은행)에 들러 해결해보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여행지인 보스톤(Boston)에 갔을 때 은행을 발견했는데, 은행의 위치가 다행히 우리의 목적지였던 하버드대학 앞이었습니다. 집사람과 애들은 여행을 일정대로 진행하고, 저는 그 은행에 갔더니 창구 직원들은 자기들이 권한이 없다고 다시 윗사람을 불러 주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도 못하고 다른 곳에 전화를 직접 걸어 해결하게 하였습니다. 전화 통화라 당체 알아듣기 힘들어 되묻는 것을 반복하다, 옆에 있던 은행 직원에게 어려움을 말했더니 그냥 듣고만 있으라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상대방 전화 상담원 쪽에서 알아서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인적 사항 확인 후에 그 상담원이 했던 말은 그들이 의무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주의 사항들을 포함하는 내용이었나 싶습니다. 결국, 다음날 캐나다로 넘어가야 했었는데, 거의 마지막 기회에 카드를 다시 개통할 수 있었습니다. 보스톤에서는 하버드대(Harvard University)와 MIT대(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를 들릴 여정이었습니다. 하버드대의 경우, 저는 카드 건 때문에 구경은 못하고 집사람과 애들만 그곳의 재학생들이 가이드해 주는 투어 프로그램(Tour Program)을 이용하여 대학 캠퍼스를 구경하였습니다.
그리고 사건 사고 중에는 캐나다에서의 해외 전화 요금 관련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여행을 다 마치고 집에 온 후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았는데, 해외 전화 요금이 엄청 나와 있었습니다. 고지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캐나다에서 여행 기간 중 이용한 통신료만 60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정상적으로 통화를 한 건은 몇 건 안 되어 이상하다 생각되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인데, 전화를 켜놓은 상태에서 계속 어플 프로그램이 업데이트 되었고, 이 시간이 모두 통신이 이루어진 시간으로 체크되어 생긴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뭐, 이미 지난 일이고 누구 탓할 것도 못되어, 지난달에 눈물을 머금고 결제를 했습니다. 해외 여행할 때는 통신사에 이것도 문의하여 사전에 잘 조처를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족을 황당하게 했던 숙소 관련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유사한데, 한 번은 보스톤에서 1박 할 때, 다른 한 번은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Ottawa)에서 일이 생겼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종착지에 도착해보니 당연히 있어여 할 숙소가 없었던 경우입니다. 보스톤의 경우, 네비게이션 지도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였습니다. 다행히 호텔에 전화 연락이 되어 안내를 받을 수 있었고, 약 한 시간정도 헤매다 겨우 밤늦게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타와의 경우도 목적지에 도착하였는데 호텔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처를 헤매고 다녀보았는데 그럴싸한 호텔은커녕 숙소 비슷한 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전화 통화도 되지 않고, 이미 저녁 시간은 깊어져 가고, 참 난감하였습니다. 주위를 보니 큰 길 가에 조그마한 대학(Community College)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곳 대학의 학생들에게 호텔 이름을 물어보면 혹, 아는 학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학생들을 찾아 학교 내 건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이라서 그런지 건물 내에서는 한 명의 학생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곳에서 한 10여분 떨어진 다른 곳에서 겨우 한 학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숙소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확하지는 않는데 비슷한 이름을 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설명하기는 거리가 멀어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안내를 받은 곳은 대학내의 한 건물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방학 때는 학생들이 쓰던 방 중 Suite Room을 호텔 부킹 사이트에 올려 투숙객을 받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대학의 수익 사업으로써 임시로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호텔이라는 명칭을 쓰고서 버젓이 올려놓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또한 주소가 학교 대표 주소로 되어 있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대학 앞에서 네비게이션이 멈추어 서게 하고, 이런 상황을 맞는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래도 그날 친절한 학생(중국인 유학생) 덕분에 숙소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날 그 학생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날 이후로 중국 사람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23일의 여행 일정 중 일부분만 썼고, 그것도 줄인다고 했는데도 양이 생각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양과 수준으로라도 지난 여행을 정리하니, 제 생활이 좀 정리되는 느낌도 있네요.
이번 학기에는 초청교수와 공동연구가 시작되어 조금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교수와 만나 회의하고 일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음 기회가 되면, 다른 내용의 글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윈드서핑으로 몸의 건강과 생활의 즐거움 챙기시고, 모두 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교수님 건강하게 생활하신다니 반갑습니다. 나중에 모아서 여행집 한 권 발간해야겠습니다. 서늘해져가는 날씨에 가족모두 건강하게 타국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참, 전에 얘기했던 장인어르신이 제주도에서 과수원 경작하고 싶어하셨던 것 아직도 유효한가요?
회장님, 여전하시지요? 처음 올 때는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는데, 몇 개월 생활하다 보니 아는 한국분들 미국사람들도 생겨서 요즘은 이리저리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장인어르신께서는 제주에 와 계시지만, 아무래도 과수원 경작은 장모님 반대가 심하셔서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기억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시고요, 언제나 안전 서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