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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와 칼럼 스크랩 이사야: 하나님의 비전 31 / 이사야 50:1-11 / 2016.01.24/ 박영선 목사
장승업 추천 0 조회 392 16.01.28 23: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사야: 하나님의 비전 31
 이사야 50:1-11 / 2016.01.24 / 개역개정판/ 남포교회 
http://lamp.kr/lamp-sermon/?p=10240

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11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우리는 이사야에서 1장부터 39장까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특별히 남왕조 유다의 멸망을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과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40장 이후는 그 역사적 배경 시간이 훌쩍 뒤로 넘어가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현실을 무대로 하여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들을 펼쳐보이는 내용들로 되어 있습니다.
남왕조 유다를 잡아간 바벨론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측면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성경 내내 주제로 가지고 있는 내용으로 이해하듯이 사망을 멸하시는 역사 안에서의 행위입니다!
그러니 권력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한 사망과 죄를 멸하시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죄와 사망밖에 결과시킬 수 없다는 현실이라는 경험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됩니다!

그러니 47장에서 이미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했고,
48장에 오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이 이스라엘을 구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49장에 오면 그 구원이 다만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인류에 걸친 열방의 만방에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50장입니다. 오늘 장의 이해가 쉽지 않아서 대략 좀 살펴봐야 됩니다.
1, 2, 3절의 얘기는, `지금 일어난 이 비극, 저들에게 닥친 이 재앙은 하나님이 그리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자초한 결과다! 
너희들이 나를 외면하고 나를 떠나면 물없는 고기가 되어 썩어버리는 것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바벨론이 더 우세해서 너희를 잡아가고
너희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떠나면 남는 것이 폭력 밖에 없고 거기는 더러움과 재앙 밖에 없다!!
`
이것이 1, 2, 3절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9절까지가 느닷없는 하나님의 종이 등장합니다.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용감한 주의 종,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증거하고 이룰,, 담대한 하나님의 종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약간 느닷없는 장면이죠. 
앞에 1~ 3절에서 본바와 같은 이스라엘의 실패가 자초한 재앙과 비극과 고통 속에 여호와의 종이 등장해서 군사적 정치적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저들의 재난과 고통을 설명하며, 거기서부터 그들을 꺼내기 위하여 담대히 하나닝의 종의 역할을 충성되이 행하리라, 약속합니다.
이 하나님의 종은 궁극적으로 예수에게서 성취됩니다.
예수 안에서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죄를 멸하시고, 구원을 성립시키시며, 우리가 자초한 사망을 뒤집어 부활을 만드시는가? 예수 안에서 이루십니다!

그러나 역사 내내 이 문제는 어느 한 시점에서 그 시대에 산 사람들을 대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인류, 전역사에 걸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시는! 창조가 인간의 거부와 외면으로 생긴 혼돈, 죄가 들어오고 부패와 더러움이 생긴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그 창조의 목적을 기어코 완성하시는가? 혼란시키고 그 첫번째 의도가 죄절된 것같은 인류의 역사를 인간의 존재를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하여 그 창조를 완성하시는가? 거기에 하나님은 어떻게 개입하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전인류에 걸친, 전역사에 걸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죠!!

그러니 `각 시대의 모든 장소마다 사는 모든 자들 앞에 하나님은 창조주로써 모든 존재의 주인으로써 언제나 임하여 계시다!` 라고 성경이 주장하는 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로 인하여 전인류를 구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들은 제사장 국가였습니다. 기억하시죠?
그러니 그 실패하고 거부한, 인류는 전부 무지했고 로마서 5장 8장같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처럼, 우리는 메시야의 필요성도 우리의 구원의 절심함도 알지 못하던 때에 하나님이 구원의 일을 행하신 것겉이, 약속의 언약이면 알고 선택의 기회가 있고 이방인은 선택의 기회 자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양쪽 다 모르기는 똑같은 정황 속에 하나님이 그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인류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렇게 늘 늘 임재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죠!
인류역사는 어느 시점에서나 `왜 역사는 이꼴이냐?` 라는 질문 앞에 섭니다.
그건 뭐 상고시대를 가던 어디를 가던 결국 공통된, 이제까지도 해결 못한 역사가 가지는 질문이죠! 
 `역사는 이어져 오는 게 기적이다! 언제나 자멸했어야 맞고 멸종했어야 맞는데, 살아있는게 유지된 게 기적이다!`
왜요? 인류는 한번도 함께 살 해결책을, 능력을,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뭐 단순히 이렇게 그 사실만을 제시해서 `그러니 예수 잘 믿어라!` 이렇게 막 갖다붙이지 말고,
그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예수에게로 갈 수 밖에 없는 중요한 도전이 있습니다!
 `그럼 어떡할래?` 그거죠.
 `그럼 어떡할래? 이 사실을 어떻게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면 뭐라고 답할래?`
역사! 그러니까 책임이 너무 커지고 모호해 졌죠?
절실하게 합시다! 여러분 인생이죠!
살면서 제일 많이하는 질문이 뭐죠? `사는 게 뭔가,,?`
왜요? 한번도 행복한 적 없으니까!
행복했던 시절은 다만 사고가 나지 않았던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모두가 이 기도를 하죠!
`하나님 많이 바라지 않습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게 무슨 날도둑같은 기도인지 아십니까?
거기서 `평범`은 멋있는 말로 `기만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평범은 `아무 책임도 지지말게 해 주십시요!`
모두 이 기도죠!
`아무 짐도 지우지 마십시요! 그냥 가만히 놔 둬서 그저 굼뱅이 같고, 그저 돌같고 생각없는 존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걸 말이라고 해요? 뇌는 어따 써먹을려고요? 호도까먹을 때 해딩할려고요?
늘 당하는 질문입니다! 역사 내내 당한 인류의 질문이고 우리가 우리 인생 속에서 늘 하는 질문입니다!

좀 견딜만 했다가 다시 어려워지죠. 그래서 결국 이 답에 가는 게 정당한 답입니다.
`빨리 죽는게 최선이다! 인간은 죽을 권리가 있다!` 그건 옳은 주장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안락사를 허락해야 됩니다. 수면제를 무제한 팔아야 됩니다. 왜 살려놓고 못살게 구는 겁니까?
정당한 질문에 서야죠! 기다려보는 거죠. 혹시,, 혹시,, 
그건 역사가 하는 얘깁니다. `혹시는 없단다!~` 역사가 얘기하는 겁니다!

그 도전 앞에 서는 겁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뭘 물어야 됩니까? `인간이라는 정체성은 뭡니까? 가치는 뭡니까? 왜 살아야 합니까?`
이 질문 앞에 서는 게 정당한 인간의 책임입니다!!
답을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답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도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전 앞에 세우심으로 우리로 몸부림치게 하시고,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절실한 자기확인이라는 전제를 만드시죠!! 그리고 하나님이 찾어오십니다!!

너무나 기쁘죠. 너무나 감사하죠! 
왜요? 길이열렸으니까! 영생이 있으니까! 영원한 가치가 주어지니까! 새로운 정체성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고 싶습니다. 그게 진짜라는 걸 어떻게 아는가?
역사의 증언은 이겁니다.
`누가 진정한 권세를 갖고 있는가? 이 세상과 존재들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신가? 라는 질문 앞에 세우는 것!` 
그것이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우리가 하는 비난이 뭡니까?
 `못난 것들,,` 이라고 왜 그러는 겁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복된 것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정말요?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21세기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오랜 세월의 인류역사를, 또 정보시대에 살기 때문에 더많은 내용들을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얼마나 못난 짓을 하고 인간이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얼마나 악한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을 제거할 방법도 없고, 악을 제거하면 선이 생기는 것도 없다는! 거기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니 전부 다 체념하고 살죠!
 `인생은 그런거야! 사람은 그런거야! 그런거야!`
예수를 믿고도 `그런거야!` 라고 얘기하는 건 안됩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죠!
오늘 그 얘기입니다.
우리는 여기 등장하는 여호와의 종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세상과 인생의 무엇이 답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무슨 다른 어떤 조건과 어떤 이유로도 강요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항복과 만족과 넉넉함이 없으면 우리도 결국은 대강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의 문제는 우리가 망설이는 것들이 역사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인생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어떤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우리가 아직도 항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그 정체성의 위대함이 세상이 요구하는 힘, 헛된 명성, 헛된 자랑들과 아직도 대등한 힘으로 우리 앞에 시험자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험이 없어져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그 시험 속에서 세상의 위협과 유혹과 기만 속에서,
`그것 아니고 이거야!`라고 가지는 데에는 도대체 얼마나 걸릴까요?
개인차가 있지만 제가 알기로는 육십년은 걸립니다!
그러니 그 과정을 산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하루 아침에 시험문제 정답 맞추듯이 맞추는 문제가 아니고, 살면서 배워야되는 문제입니다! 
많이 우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눈물 속에는 여러분들이 정당하게 살지못한 후회도 있고, 세상에서 이긴 강자만큼의 힘이나 그 악함이 없는 것도 있고,,!
하나님이 우리의 그 진심을 받아주지 않아서 보상되지 않는 원망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기독교 신앙 내에서, 시간 속에서 다루어진, 역사 속에서 다루어진 인생 속에서 각각에게 주어지는 기회들 입니다!
그러니 알고 고민하시고, 알고 원망하시고, 알고 우십시요! 알고 기도하십시요!
그래서 한번 울때마다 한걸음씩 더 나아가고 한번 원망할때마다 한걸음씩 더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지! 
그저 밤낮 정답으로 돌아오는게 그만인, 살아낸 나이가 값을 못하는 그따위 신앙인은 되지 마십시요!

나이가 들면 멋있어져야 됩니다!
깊이가 가지는 멋! 말입니다! 깊이와 무게를 가져야 됩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의 정체성을 이렇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소개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7장에 가면 우리의 정체성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은 열매에 있습니다. 재미있죠.
나무를 무슨 기둥, 무슨 널판지, 이런 재목으로 쓸려고 들지 않고 그 정체성을 그 열매로 명명합니다.
포도가 달리면 포도나무고 복숭아가 달리면 복숭아나무고 보석나무는 보석이 달리겠죠. 이거 열매로 합니다.
이 열매가 이 나무의 정체성입니다!
여기에는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같은 권력이라는 개념, 능력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 정체성이 열매로 드러나는데, 그 열매가 그 나무의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이 된 본질은 하나님의 자녀라를 지위, 신분, 그 성품을 이어받는 자!!`로 입니다!
그것을 조금 더 이해하기 좋게 갈라디아서 5장에 가시면, 잘아시는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다 성품적인 것입니다! 뜻밖의 일이죠!
여러분들이 요구하는 권력은 없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는 기독교인에게는 사명도 아니고,
책임도 아니고, 본질도 아닙니다!!
평화와 정의를 만드는 것마저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에서 얘기한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그런 질문 속에 답이 없는 권한과 재앙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되십시요!

하나님의 구원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환경에 의하여 확보되거나 보장되는 평화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꿈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스스로 부패하고 썩을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하나님과 화목되어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지는
생명과 진리와 기쁨과 자랑과 영광과 가치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르죠!
여러분 하나가 여러분 삶 속에서, 현실 속에서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직장, 여러분의 이웃들 앞에, 아니 이 시대 속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겁니다!!
 `저 사람은 다르다! 저 사람은 살아있고 저 사람은 죽어있다!` 다 아는 겁니다!
뛰어다니고 도와줘야 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들어온 집같이 불꺼진 집같이, 살아서 움직이고 움직이지 못하고,, 이렇게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그 고난 속에 있습니다!

왜 그러죠?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국한적으로 차별하고 배타적으로 택하여 그들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는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창조세계의 회복입니다!!
그 사명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신약시대에 오면, 그 이스라엘에 주었던 약속이 확장되어 예수 안에서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이렇게 호칭이 됩니다!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니라`
그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체성이자 사명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의 다름, 모든 고난 속에서 세상이 위협하고 기만하고 우리를 유혹하는 그런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한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 감사, 평안, 정의가 전 인류에게! 그 시대에게! 넘치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역사와 인생을 보면, 도전과 공포밖에 만날 게 없지만, 그 도전과 공포는 곧 우리를 하나님만이 답이라는 데로 끌고가기 위한 기본적인 질문과 도전과 각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기도를 고치셔야죠!!
여러분들의 존재와 삶이라는 것이 갖는, 내가 얼마나 살아야되고, 어떻게 살아야되고, 어느 조건을 가져야되느냐애서 나머지 조건들은 모두다 그건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조건에 들어가든 어느 상황에 가든 거기서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형통해지는 게 답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5장입니다.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입니다!
뭐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세움을 받아야 됩니다!
스스로 나서서 영웅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세운 자요, 그리고 그는 고난을 받아 그를 세운 하나님이 목적하는 모두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고 아뢰고 순종하고를 못하고 자기죄에 빠져 허덕이는 모든 자를 위하여 대신 기도할 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 스스로가 그 제사장의 그 지위를 갖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자기가 빌어야할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과 수준에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연약과 어려움의 그 일들을 체휼한 자여야했고,
 그래서 예수님마저도 어떻게 했다고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여기서 경건하심은 뭐예요? 기도하면 다 될 줄 알았다고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공포로 다가오는 자리에서!`
멋있는 말로 하는 기도말고! 예수께서도 이것이 공포인 자리에서 한 기도!  
그러니 우리가 이스라엘의 출애굽, 바벨론 포로회복이라는 구약역사의 가장 큰 강조점의 교훈이 뭐예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놓아두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승리케 할 거이다!
그러나 배우게 한다! 자신들의 살이되고 뼈가 되게 한다! 결과만 만드는 그런 구원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니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이 일하심이 예수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더 분명하고 더 위대하고 놀랍게 나타나죠!!
성자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와 같은 고난을 받으시고, 우시고, 배반당하시고, 죽으십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전인류 역사를 뒤집어놓듯이!
동일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선상 속에서 그 시대마다 어느 공동체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 그 세움을 받은 자신은 물론이요,
그로 인하여 그가 속한 모든 당시대와 이웃을 하나님이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라는 성경의 가르침 앞에 서죠!!
그러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난은 잘못한 사람만 받는 자리가 아니라, 잘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리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고난은 자유와 똑같이, 자유가 우리에게 준 하나님의 놀라운 특권이었던 것같이,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똑같은 명예인 것입니다!

 "나와 함께 일하쟈! 내가 일하는데 같이 가쟈!"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신앙인생이 좋은 신앙을 가짐으로써 형통해지고 아무 걱정없는 일같은 것 생기면 죄입니다!!!
그러니 잘 사십시요!
예수 믿는 게 전장의 제 일선에 서서, 팔짱끼고 총포가 오가는 가운데 서있는 늠름한 자리라는 것 기억하십시요!
징징대지 마시고, 변명하지 마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내는 기쁨과 자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의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기쁘고 영광된 일이 어디있습니까!!
그저 잠시 자신의 안락을 위해 도망다니고 변명하고 핑계대고 거짓말하는 자리에서 이제 돌아설 때가 되었습니다!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며, 세상의 죄가 판치는 속에 하나님이 빛으로 서며, 생명으로 서며, 구원으로 서는 위대한 존재되게 하셨는데,
자기자리 지키는 최고의 책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인 줄 이해하여 충성하는 우리되게 하사,
우리의 얼굴에 하나님을 아는 자랑과 영광으로 채우시고, 우리의 결정과 존재의 모든 내용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귀한 생애되게 하셔서, 우리로 인하여 우리가 아는 모든이들, 우리의 이웃이,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우리 자식들이 복을 받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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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주일예배설교 녹취록 이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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