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의식지도
이제부터 스트레스나 알코올 중독, 여러 가지 병, 우울, 두려움, 커다란 상실 같은 인간의 다양한 문제들을 의식차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겠다. 이 과정에서 의식지도를 되풀이해서 언급할 것이다. 특히 몸과 마음, 영혼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언급할텐데, 이는 자기치유와 관련해 의식지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문제와 상관없이 의식지도 자체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모든 문제에 의식지도를 적용했을 때 이것이 어떤 효용과 의미를 지니는지 먼저 설명한다.
의식지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진 수십 년간의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만든 (10을 기본으로 하는) 지수 모델이다. 다양한 에너지 장을 수치로 측정한 것은 의식지도가 처음이다.
의식을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이 이 에너지 장이다. 의식지도는 의식의 일반적인 장들이 표시되어 있는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처럼 의식의 장이 향하는 방향은 물론이고 그 힘까지 측정해서 보여준다. 200대인 용기 아래에 있는 장들은 아래로 향하고 용기 위의 장들은 위로 향한다.
에너지 장이 향하는 방향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부정적인 방향의 에너지 장은 삶을 지지해주지 않기 때문에 ‘삶에 반하는anti life’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진리의 긍정적인 방향을 향하는 장들은 삶을 지지하고 보살펴준다. 지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진리와의 합일에 가까워지며 수치가 높아질수록 에너지 장의 힘도 강해진다.
에너지 장의 수치는 0에서 시작되며, 소위 말하는 깨달음의 상태는 600에서 1000에 이른다. 깨달음은 이원성과 개인적인 나와의 동일시를 초월한 상태를 의미한다. 의식지도에서 개인적인 나의 단계들은 우리가 ‘나를’ 이나 ‘나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나를’ 이나 ‘나 자신’은 지도의 맨 위에 있는 큰나와는 다른 것으로 ‘작은 나’ 즉 에고를 의미한다.
에너지 장의 오른편에는 각 단계와 관련되어 있는 감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맨 끝은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지도의 왼편은 의식의 각 단계에서 개인이 신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타낸다. 15쪽
(200을 넘는) 보통사람이라면 근육테스트(부록 B에 자세히 설명해 두었다.)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 수치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여러분의 팔을 누르면서 “두려움이 50을 넘나요? 아니면 60? 70? 80? 90? 100을 넘나요?” 라고 묻는다. 그러면 팔의 힘이 100에서 약해진다. 수십년 동안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측정법의 타당성을 입증해보였다. 덕분에 근육테스트는 임상은 물론 연구에서도 실제적으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지도 맨 아래는 수치심(20)과 죄책감(30)의 에너지 장이다. 이 단계에 동반되는 감정은 자기혐오이며, 의식에서는 자기파괴의 과정이 진행된다.
이 에너지 장과 관련된 세계관은 죄와 고통이다. 그러므로 이런 세계의 신은 궁극의 잠재적 파괴자로서 인간에게까지 분노를 느끼고 인간이 지닌 불멸의 영혼을 지옥으로 영원히 던져 버린다.
신을 이런 식으로 인식하면 사실상 악마가 필요없기 때문에 ‘신에 대한 관점’에서 악마를 넣지 않았다. 이런 인식자체가 신을 악마처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수동적인 자살의 문제로 다가온다. 무의식적인 죄의식과 자기혐오 때문이다.(이 문제는 나중에 중독증과 관련해 다시 설명하겠다) 자살은 자신을 돌보지 않거나 마주 달려오는 버스를 피하지 않거나 차를 타고 구르거나 돌발적인 약물을 과다 복용하거나 위험성이 큰 행동을 저지르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무감정(50 절망)도 부정적인 에너지 장이다. 무감정과 관련된 감정은 무기력과 절망, 포기, 우울이다. 이런 감정들은 에너지를 상실한 결과다. 무감정은 세계를 희망 없는 곳으로 보고, 신이 죽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수많은 회의론자들과 무신론자, 철학자들은 실재를 부정하는 특정한 입장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변호해서 합리화시키려고 한다.(<진실 대 거짓>을 보라)
신이 죽었다거나 삶의 조건과 인간이 절망적이라는 생각은 삶을 무가치하게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에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감정은 아들이 전사했다는 오보를 받고 절망적인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하면서 앞뒤로 움직이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노파와도 같다. 대륙은 물론 아대륙까지 세계의 많은 지역이 무감정 상태에 빠져있다. 이곳 사람들은 희망과 기회도 없기 때문에 허공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다. 세계의 약 삼분의 일이 두려움과 슬픔, 무감정의 하위단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노파의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의식지도에 "두뇌의 화학작용" 항목도 첨가할 수 있다. 무감정의 에너지 장이 신경전달물질을 이동시켜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장 끝에 있는 ‘두뇌의 기능과 생리학적 지표’를 보라)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노파가 울면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노파의 상태는 슬픔(75)이라는 에너지 장으로 상승한다. 이 에너지 장의 정서적인 특징은 후회와 상실감, 그리고 낙담이다. 이때 의식에서는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과정이 일어난다. 우리는 슬픔 때문에 삶의 의지와 영혼, 생기를 상실한다. 삶의 의지를 상실하면 우주가 주는 에너지를 받지 못해 결국 우울증에 빠진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세계를 슬픈 곳으로 보고, 신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두려움(100)도 부정적인 에너지 장이다. 그러나 점수가 100이기 때문에 이 상태는 에너지가 좀 더 크다. 두려움이 있을 때는 더욱 멀리 달릴 수 있다. 두려움은 전세계에서 넓은 범위를 지배하고, 모두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고업체들은 두려움을 이용해 제품을 팔아먹는다.
슬픔은 과거와 연관이 있지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두려움은 미래와 관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걱정이나 불안, 공포 등의 형태로 일상에서 두려움을 경험한다. 이때 의식에서는 기가 꺾이는 과정이 일어난다. 동물들이 겁먹을 때 움츠러드는 것도 한 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질문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도 덩달아 몸을 움츠리며 그 학생 뒤에 숨던 장면이 기억하는가?
두려움은 미래와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를 위축시키지만 에너지가 큰 감정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면 두려움이라는 에너지는 사실 유익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미리 주의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지도가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위쪽의 에너지 장을 직시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울의 저변에 깔린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나는 행복의 원천을 잃어버렸어.”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19쪽
용기 아래의 단계들은 모두 부정적인 에너지 장을 갖고 있다. 이런 에너지 장들은 전부 행복은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생존을 외부의 무언가에 의존하면 힘의 원천을 외부에 투사해 결국 나약함과 피해의식, 무력감에 빠진다.
우울의 저변에는 무언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슬픔은 상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려움을 직시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면 우울증을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 의식이 두려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나중에 다시 살펴볼 것이다. 또 두려움을 소진시켜 우울한 감정이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 두려움의 에너지 장에 대한 저항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방법도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두려움 위의 에너지 장은 '욕망(125)"이다. 욕망 역시 부정적인 에너지 장인데 일상에서는 ‘갈망’으로 경험한다. 열망과 갈망의 일반적인 느낌들은 중독이라는 에너지 장의 일부이기 때문에 강박적이고 충동적인 형태로 변할 수 있다. 의식에서는 노예화의 과정이 일어난다. 욕망의 지배를 받고 행복의 근원이 외부에 있다고 여긴다. 광고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다. 무의식적인 연결을 통해 욕망을 창조하는 것이다. 요컨대 광고는 욕망을 창조하는 무의식의 원형적인 무언가를 기호화한 것이다.
욕망은 전 생애를 지배할 수 있다. 성공이나 명성, 부나 유명세, 특별한 관계처럼 행복을 줄 듯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원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바람과 갈망은 충족에 불가능하다. 충족이 불가능한 에너지 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 장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더욱 많은 욕망을 창조해낸다. 하지만 이 에너지 장은 잠재력과 내적인 목적을 실현하려는 동기나 의도처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반면에 목적을 내면화하는데 실패하면 좌절과 분노가 일어난다. 21쪽
2017.5.6.(토) 20:03 오늘은 여기까지 타이핑
첫댓글 감사합니다 ...
잘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