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사 아저씨는 학교 교사가 아니라 관리인 직분이었지만 학생들을 잘 보살펴주시고 어느 교육자 못지않게 학생들을 사랑하신 한국의 페스탈로치셨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입학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전보를 보내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 전교학생들이 우루루 현관으로 몰려 내려왔는데 많은 학생들 가운데 딱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대대장, 용감해!" 바로 우리의 천사, 남주사 아저씨였다.
어느날 학교 방과후 내가 남주사 아저씨의 짐싣는 헌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끌고 나와 운동장 구령대에 기대어 놓고 나는 구령대위로 올라가서 자전거 안장을 내려다 보며 겨우 올라앉아
패달을 난생처음 밟아본다. 처음 몇번은 가다서다를 하다가 빠른 속도로 밟으면 균형이 잡히면서 안넘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번의 시행착오끝에 진짜로 자전거를 몰고 타며 운동장을 돌고 있을 때
남주사 아저씨가 다가와서 하시는 말씀, "대대장, 용감해!" 였다. 학교 기물을 학생이 사용하면 교감선생님이나 지도부 선생님께 야단 맞는 법이지만 우리의 천사, 남주사 아저씨만은 학생을 야단치는 법이 없었다. 남주사 아저씨는 자신의 전용 자가용격인 헌 짐차를 학생이 끌고 나와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고 결국 성공해내는 과정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
어느 여름 방학 때 빈교실에서 내가 입시 공부를 하면서 지고이넬 바이젤을 처음 듣고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아서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을 때 빨간 칸나 꽃닢 하나가 내 눈 앞에 가만히 다가왔다. 뒤 돌아보니 남주사 아저씨였다. 아마 아저씨가 순찰을 돌다가 학생이 울고 있으니까 슬퍼서 우는 줄 알고 화단에서 칸나 꽃 닢 하나를 따다 주신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남주사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 그 댁에 방문 하였을 때 중풍과 치매로 사람을
잘 못 알아 보시는데 그래도 대대장 이경자는 알아보신다고 그의 가족들이 말했다
내가 남주사님 앞에 큰 절을 하고 금 일 봉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에 쥐어 드리고 온 후 1년이 지난 해에 방문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뒤 였다. 그 동네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엉엉엉 통곡을 하였다.
그리운 남주사 아저씨 편히 잠드소서. 그리고 그날밤 순찰 돌던 때 2등으로 도망치신 서무주임 할아버지 그리고 1등으로 도망치신 이주사 아저씨 모두모두 편히 잠드 소서.
끝.
천하장군 2020.04.30메뉴 첫댓글쬐콩이님의 어린시절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 아름다운 수필같은 글이었습니다. 어쩜 그리 편하고 재미있게 쓰시는지?
답댓글 쬐콩이작성자 2020.05.08메뉴 역시 우리 천하장군 카페에 와야 기를 펴고 살 맛이 납니다. 다음 주에 또 오겠습니다!
애나 2020.04.30메뉴 다시 들어도 눈물나게 아름답고 잼난 추억여행입니다. 쬐콩이님만의 독특한 문장에 빠져듭니다. 문경여고의 전설!!! 대대장 이경자 만세~~~
답댓글 쬐콩이작성자 2020.05.08메뉴 흐흑 애나님 왜 그래요 눈물나게... 다음 주에 또 올께요 이만 바빠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