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안식후 첫날 - 이는 일주일의 각 요일에 해당하는 명칭올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올 중심으로 요일올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안식 후 첫날'은, 하루의 해가지는 시간부터 다음날 해지는 시간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는 유대인의 방식에 따른다면 토요일 일몰 후부터 일요일 일몰 때까지의 어느 시점을가리킨다.
한편 본문의 '첫날'(,미아)은'하나'를 뜻하는 기수인데, 당시에 '첫째'를 뜻하는 서수로 표현했던 일반 용법과는 다른 표현이다. 혹자는 이것이 셈어 적 표현법의 영향이라고 보는데,확정적이지는 않지만 히브리어나셈어에 그런 표현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근거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어두을때 - 마태의 '미명'과 마가의 '해 돋을 때'라는 표현에 비해다소 이른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흑자는 복음서들의 표현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집을 떠날때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때였고 무덤에 도착한 때는 여명이 밝아올 때였다고 본다(Lenski).아무튼 본문은 막달라 마리아가 매우 이른 시간에 예수의 무멈올 찾아갔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이렇게 일찍 무덤을 방문한 것은 예수를 탄압한 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돌아가신 주님에 대한 식지않는 열정올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본절의 '이른 아침'그러니까 아직 어둡기는 하지만 이제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시각은 하나넘의 구원사에 있어 매우 증요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시점이다.
그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주일이 시작되는시점이며, 시작으로서의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이 완성으로서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대치되는 시점인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 - 이 여인은 한때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올 받다가 예수께 고침을 받은 이후 예수를 따르며 비사하였던 여제자격의 인물인데,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르며 수종들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끝까지 남아 이를 지켜보았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혹 독자들 중예는 이 여인을 마르다의 동생이자 나사로의 누이인 베다니의 마리아와 혼동할 수도 있으나 양자는 전혀별개의 인물이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은 가리키며 막달라라는 성읍은 디베랴 북쪽 4.8km 지점에 위치해 있다.한편 본문에서는 무덤을 최초로 방문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인 것처럼 되어 있으나, 공관복음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여러명의 제자들이 함께 동행하였다.
이런 차이는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인들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모른데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2절의 '우리'라는 표현은 복수의 인물들이 무덤올 방문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아마 요한은 첫 방문자듸 가운데 핵심 인물인 막달라 마리아에만 초점올 맞추어 서술하였을 것이다. 돌이...옮겨간 것을 보고 - 막달라 마리아 일행이 무덤을 방문한 것은 유대인의 관습에따라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라고 보는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향유를 바르는것은 곧 시신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유대인듸은 시신이 썩기 전까지는 고인의혼이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장사 지낸 후 사흘동안 시신을 돌보았던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무덤을 채아왔을 때 무덤입구를 막았던 돌문이 옮겨져 있었다는 것은 예수의 무덤에서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왜냐하면 무덤을 막았던 돌문은 장정 다섯 명이 힘올 합해야 겨우 옮길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으며 입구에 움푹 패인흠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인 몇몇이 옮기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마가는 여인들이 돌문올 여는 것에 대해 염려하며 길을 떠나는 장면올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요 20:2]"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달려가서 - 요한은 공관복음서에서와는 달리 천사에 대한 언급을 비교적 간략히 다룬다. 본서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안을 확인해 보았는지 아니면 무덤 문이 열려져 있는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시신의 도난을 생각했는지 분명치 않다. 여하튼 막달라 마리아는 시체가 없어졌다고 확신했고 그것올 급히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달려갔다.
요한은 베드로와 사랑하는 제자만이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빈무덤의 사실을 전해들은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복음서들과 콴련시켜 볼 때 모든 제자들이 그소식을 들었을 것이 확실하다. 아마요한은 직접 무덤을 확인한 두 중심적인 제자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해 나갔을 것이다.. 베드로는 세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시 제자들 중 대표격으로 언급된다. 18:27 이후로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나 이제로부터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바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는 요한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21:20과 24절을 연관시켜 블 때 이 인물은 본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요한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표현 속에 자신을 숨기는 것은 그의 겸손한 태도 때문이라고 블 수 있다. 사람이 주를...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 본문의 '우리'라는 표현은 무덤을 방문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혼자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두 제자에게 누군가 예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가져갔다'에 혜당하는 혤라어 '에란'은 비인칭 동사로서 예수의 시신을 흠쳐갔으리라고 의심되는 대상을 분명하게 가리키지는 않는 표현이다. 아마 무덤 도굴꾼이거나 예수의 적대자들이 마리아에게는 혐의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 내용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바 그녀가 무덤을 찾아간 것이, 예수께서 생전에 부활을 예고한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은 전혀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요 20:3]"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베드로와...무덤으로 같새 -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 즉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무멈율 향해 달려갔다. 아마 이들도 막달라 마리아의 생각대로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횹쳐갔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했을 것이다. 여기서 '갈새' 미완료형으로 두제자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자들이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예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 제자들에게는 전혀 금시 초문의 뚱밖의 사건이었음을 시사한다.
만약 제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가져가 놓고 예수께서 부활했다고 하려는 계획을 진행시켰다면 베드로나 요한이 그것올 몰랐을 리가 없고 그들이 이렇게 서둘러 무덤으로 달려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눅24:12에 의하면 무덤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제자는 베드로 한 사람이다.그런데 본문은 요한도 함께 갔다고 진술하고있다. 본서의 기록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븍음서 가운데 남자 제자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한 사람은 요한 혼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무덤을 알고 있던 요한이 베드로를 인도하여 무멈으로 함께 갔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4절에서 요한이 먼저 무덤에 당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