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절
조미정
무슨 영문일까.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다. 희끄무레 동살이 잡히는데 희미하게 사그라지는 보름달은 아직도 서산에 걸려있어 애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쪽에는 뜨는 해, 서쪽에는 지는 달을 두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으려나. 평범한 삶의 진리가 가슴을 흔드는 사이에 달은 지고 연꽃봉오리 같은 해가 솟아오른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의 일출은 특별하다. 울퉁불퉁한 암석이 호석처럼 빙 둘러싼 문무대왕릉 위에서 봉긋한 해를 토해낸다. 산고가 컸던지 바다 위로 뚝뚝 떨어진 해 그림자는 붉은 물길을 만든다. 동해에서 경주로 들어서는 대종천 하구까지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 거침없다. 순간 “아!”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 것은 죽어서도 동해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유언이 허무맹랑한 전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은 유유히 바다를 헤엄쳐 뭍에 오르고 있다. 자취를 놓칠까 싶어 걸음을 서두른다. 이견대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길을 꺾자마자 저 멀리 버선발로 뛰어오는 감은사지 두 기의 석탑이 낯익다.
이른 아침의 감은사지는 비어있되 고요하지 않다. 풀벌레 소리와 금빛이 작열한다. 해질 무렵에 이 곳을 찾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지녔다. 적막하고 쓸쓸하던 느낌 대신 활기차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 스며있다. 어느 폐사지가 이렇게 활달할 수 있을까. 우람하게 선 석탑은 천년 세월을 지키는 비손이요, 대숲을 스치는 바람은 근심을 재우는 만파식적이다.
뜻밖의 풍경에 나그네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용은 금당으로 스며든 모양이다. 정면 다섯 칸과 측면 세 칸으로 이루어진 금당 터는 특이하게도 받침돌 위에 장대석을 걸쳐놓고 마루를 깔듯 또다시 장대석을 가로놓았다. 이층의 기단 위에 초석을 세우다보니 바닥에는 칸칸이 연결된 공간이 만들어졌다. 용을 위한 자리이다. 지금은 벼가 출렁이는 논이지만 예전에는 감은사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바닷물을 끌어 반영이 은은한 연못을 만들고 동쪽 벽에는 작은 수로도 만들었다. 해와 달이 시소처럼 교차하는 보름이면 바다에 잠들어 있던 용은 스르르 깨어나 금당에 들었으리라.
햇볕으로 덮인 감은사지는 어디 한군데 정겹지 않은 곳이 없다. 비바람에 시달린 석탑과 무너진 돌들만이 천년 세월을 꿋꿋이 지키고 있어 마음이 더 가는 지도 모르겠다. 꽃보다 잎의 넉넉함을 깨달아가는 나이여서일까. 화려한 것보다 낮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생의 의미를 깨닫곤 한다. 돌들도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스쳐지나갔을 터이지만 앙상한 뼈를 드러낼 때까지 견뎠을 삶의 무게에 지금은 측은지심이 인다.
금당으로 오르는 섬돌 양옆에 길게 드러누운 석재도 마찬가지다.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했건만 한번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기역자 모양으로 깎여진 장대석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두 개가 똑같은 모양으로 등을 맞대고 있다. 무슨 용도로 쓰였을까. 금당 앞의 축대를 장식한 돌임에 분명한데도 이제야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범상치 않은 문양 때문이다. 지팡이로 무성한 풀잎을 젖히자 비밀의 문처럼 천사백 년 전의 표식이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태극이었다. 양각과 음각한 두 개의 문양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어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양 옆으로는 뾰족한 삼각형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봉우리 위로 솟아오른 해가 연상되었다. 해를 품은 절이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간혹 고려나 조선시대의 사찰을 탐방하다가 대문이나 서까래 혹은 소맷돌에서 태극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신라의 절터에서는 처음이다. 보통의 절에는 꽃살문으로 금당 앞을 장식한다. 그런데 굳이 태극을 돋을새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렁이는 궁금증에 바람도 숨을 죽이는 듯하다.
감은사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깃든 사찰이다.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원래는 진국사라고 불렸다. 왜를 진압하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당의 세력을 몰아내면서 비로소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지만 바다 건너 호시탐탐 나라를 노리는 왜구는 새로운 골칫거리였다. 이에 왕은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겠다고 선포한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중왕릉이 신라에서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원이 이토록 강렬할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이 마침내 태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태극은 세상만사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발전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서로 배려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각을 세우기보다 협력하고 상생하는 어여쁜 행동이다. 처음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신라도 차츰 일본과 활발히 교류해 하쿠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적대관계에 있던 이웃나라에 탁월한 외교실력을 과시한 것만 봐도 신라가 얼마나 태극의 원리에 기반을 두었는지 알 것 같다. 때로는 직진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는 것이 더 요긴할 때가 있다. 독불장군 같은 삶이 어떻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힘으로 버티는 골리앗이 되기보다 지혜로운 다윗이 되니 태평성대는 찾아오고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진다.
나라와 나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태극의 이치는 존재한다. 시작은 장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시들해졌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끈기가 부족해서인지 마음이 약해서인지 조그만 난관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곤 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정든 사람들과의 사이가 벌어진 일, 좋은 사람들이 만나 좋은 뜻을 가지고 만든 모임이 흐지부지된 일들도 모두 음양의 조화가 일그러진 탓일 것이다.
관계가 삐거덕거릴 때마다 거북이처럼 목이 움츠러들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허리가 꼬부라진 후부터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은 더욱 곤두박질 쳤다. 이럴 때 태극 양옆에 각각 새겨진 일곱 개의 산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석가모니가 탄생할 당시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면서 한 손으로는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외친 말이다. ‘나’는 하늘 위아래 홀로 높고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말이 용기를 북돋아준다. “바람을 만나고 가는 연꽃도 진흙 속에서 핀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묵묵히 등을 토닥인다.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을까. 잘났든 못났든 존재 하나하나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역시 해를 품은 절터에서 얻는다.
감은사지는 밖에서 올려다볼 때보다 안에서 내려다 볼 때 그 진가를 드러낸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서서 여느 절보다 좁아보이던 절터가 막상 절 안에 서 있으면 드넓은 시야가 한눈에 들어와서이다. 왼쪽에는 해양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바다가 일렁이고 오른쪽에는 달을 품은 토함산과 함월산이 첩첩이 놓여있다. 황혼의 빛에 다 스러져가는 절인 줄 알았던 감은사지는 알고 보니 세상을 지키는 문지기고 역전의 용사였다. 산과 바다뿐 아니라 세상만사 양과 음의 세계를 관장하며 천년 세월을 버텨왔다. 나도 외면에 치중하기보다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고 마음의 심지를 다듬는다. 해처럼 강렬하면서도 푼푼한 성정을 닮고 싶다. 무너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의지를 배우고 싶다. 내 마음에도 깊게 새겨진 태극 하나 지니고 싶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토끼풀 무성한 폐사지에 오른다. 저들도 일출을 보러 왔다가 용의 자취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을까. 염화미소로 나그네를 맞는 감은사지 높다란 철주 위로 둥실 걸린 해가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