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사는 케빈과 케이트 아모스 부부의 집. 케이트가 두 아들 라이언(14개월)과 니컬러스(3세)의 아침을 준비 중이다. 커피잔을 다시 채우는 케이트가 어린 라이언의 새로운 몸놀림을 놓칠 리 없다. 케이트는 “라이언이 마치 새끼 물개 같은 동작으로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닌다”며 웃었다. 벽에는 라이언이 최초로 몸을 구른 때부터 니컬러스가 최초로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까지의 모든 발육 상황을 표시해놓은 차트가 붙어 있다. 케이트와 케빈은 ‘신체 발달상의 그 멋진 기념비적 사건들’을 정확히 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멋진 사진을 찍을 기회였을 뿐 아니라 부모들에게는 자녀가 정상임을 확신하는 순간들이다. 그런 만큼 대학 교육을 받았고 박식하며 약 50권의 아동 발달 관련 서적이 있는 케이트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걷던 아이가 오늘은 걷지 못한다니,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치고 “내 아이가 정상일까?”라고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웃의 12개월짜리 아이는 잘 걷는데, 13개월 된 내 아이는 여전히 사방을 기어 다닌다면 특히 그런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이쯤 되면 갓 부모가 된 사람은 물론 아모스 부부처럼 노련한 부모들조차 자녀 발육 차트를 쳐다보며 자녀의 신경회로가 제대로 돼 있는지 걱정하게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지난날 과학자들은 유아의 발달 단계를 엘리베이터에 비유했다. 아이들은 성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각 층에서 멈춰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 적당한 양의 보살핌과 좋은 영양이나 건강이 주어지면 아기는 다음 층으로 올라가며, 이때 상승 속도는 주로 유전자와 기질이 결정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들은 아기가 각 성장 단계에서 발견되는 환경을 통해 기술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모 등 돌봐주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신속하고 풍부하게 일어나면 아기는 훨씬 더 많은 기술을 배운 채 성장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며 다음 학습 단계로의 상승이 훨씬 원활해진다. 다시 말해 발달지표(developmental milestone)가 되는 기술들을 하나씩 숙달하는 과정에서 사랑·관심·보살핌이 성취도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울기만 하는 단계에서 아슬아슬한 걸음마까지의 신체 발달 상황을 주·월·연별로 측정해 보면 놀랄 정도다. 아기들은 위에서 아래로, 다시 말해 머리부터 발가락까지의 순서로 발달한다. 머리와 목을 통제하는 두뇌 부위가 먼저 발달한 뒤 팔다리를 통제하는 뇌 부위가 발달한다. 뇌는 성숙해지면서 신체 근육·신경을 통제하는 수조 개의 신경 연결(어른이 되면 절반은 제거된다)을 형성하며, 이 근육과 신경은 구르기와 과자 쥐기 같은 동작34들을 통제한다. 맛있는 과자를 움켜쥐는 행동처럼 단순해 보이는 동작을 할 때에도 시각·후각·청각은 물론 동기부여·계획·운동 등과 연관된 두뇌 부위들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상호작용이 민첩하게 일어난다. 대뇌피질에서 과자를 움켜쥐려는 정교한 작전 계획이 수립되면 두뇌는 팔·손·손가락을 통제하는 신경·근육에 정확한 명령을 하달한다. 그리고 엄마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아기는 벌써 과자를 와삭와삭 씹어먹는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유아의 인지 발달이 운동능력 숙달에 큰 작용을 한다고 믿었다. 클리블랜드 소재 레인보 아동병원의 소아신경과 의사 맥스 위즈니처는 “우리는 운동능력이 지능을 반영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럴듯하지만 틀린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아기를 걷게 만드는 근원적 힘은 지능이 아니라 진화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걷도록 돼 있다. 아기가 성숙하면서 뇌는 새로운 지도와 경로를 만들며 발달한다. 신생아는 첫 한 달 동안 거의 머리를 들지 못하고 주먹을 움켜쥔 채 지낸다. 두 달 정도 됐을 때 눕혀 놓으면 벌써 다리를 흔들고 찬다. 고개 가누는 법을 배운 뒤에는 상체를 들어올리려 한다. 처음에는 바닥에 팔꿈치를 대고 기를 쓰다가, 나중에는 두 팔을 쭉 뻗어 상체를 든다. <평생 발달하는 운동신경(Lifelong Motor Development)>의 저자 칼 개버드는 “아기들은 생후 6개월간 몸의 자세를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팔 뻗기와 붙잡기 등 대다수 동작의 기본이 된다”고 말했다. 아기는 체중을 좌우로 옮기면서 팔심을 키우고 어깨 근육들을 조정한다. 그러다 보면 팔을 머리 위로, 혹은 비스듬하게 뻗는 동작이 가능해지다가 두 팔을 공중으로 들어올리게 된다. 상체가 안정되면 몸을 지탱하느라 두 손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러면 손놀림이 자유로워진다. 또 바닥에서 머리를 들어올려 좌우로 돌리면서 머리 움직임이 정교해진다. 7개월쯤 되면 혼자 힘으로 앉는다. 한쪽 팔을 잡아주면 두 다리에 어느 정도 체중을 싣기도 한다. 10개월쯤 되면 기어 다니고(이 단계를 건너뛰는 아기도 있다), 12개월이 되면 두 다리를 벌린 채 어정쩡하게 걷기도 한다. 15개월께는 혼자 힘으로 서서 걷는다. 그러다가는 어느 샌가 거실을 가로질러 달음박질친다. 아기의 동작들은 각 발달 단계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지만 때로는 걱정을 낳기도 한다. 발달지표는 특정 운동능력을 보이는 평균 연령으로 결정된다. 아기의 운동능력이 정상 범위보다 30% 늦거나 빠르게 발달할 경우 소아과 의사와 상의해볼 만하다. 너무 늦은 발달은 뇌 손상, 척추 부상, 신경 장애, 자폐증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운동능력이 너무 빨리 발달해도 문제인 경우가 있다. 드물지만 허다한 문제를 야기하는 근육 경련(muscle spasticity) 증세 때문에 아이가 앉기를 배우기도 전에 서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요인 때문에 구르기·기기·걷기가 일정 기간 늦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조산은 여러 분야에서 발달 지체의 원인이 된다. 두 달 일찍 태어난 생후 9개월짜리 아기는 ‘잉태 월령’(gestational age)이 7개월에 불과하므로 평균적인 발달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신시내티대 발달소아과 의사 낸시 랜피어는 말했다. 조산아들이 또래들을 따라잡으려면 보통 1~2년이 더 걸린다. 게다가 앉기·당기기·걷기를 배우는 데는 힘을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아기들은 힘의 세기가 모두 다르다. 전문가들은 신체의 조기 발달과 미래의 능력은 서로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기가 9개월 만에 걷는다고 해서 미래의 엘리트 운동선수로 키워내겠다며 직장을 그만두지는 말라. 또 16개월이 돼서야 걷기 시작한다고 가장자리로 밀려날 운명에 처한 아이도 아니다. 랜피어는 조바심을 내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아기의 발달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걷기 능력은 발달이 늦지만 다른 모든 능력이 제대로 발달한다면 걱정하지 말라. 아이들의 발달은 원래 서로 다른 법이다.” 만 1세 때의 발달지표 중 부모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항은 걷기 능력일 듯하다. 첫돌 무렵에 걷는 아기들이 많지만, 대체로 9~16개월에 걸으면 정상이다. 아기가 주요 발달지표에 도전할 때에는 기질도 어떤 역할을 한다는 인상이다. 느긋한 성격의 아기는 걷기 과제에 비교적 신중하게 접근한다. 하지만 걸음마가 좀 늦었더라도 일단 걷기 시작하면 잘 걷는다. 반면 일찍 걷는 아기는 성격이 충동적인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가 카메라를 준비하기도 전에 걸음마 단계를 훌쩍 지나치기도 한다. 일찍 혹은 늦게 걷는 데는 물리적 요인도 작용한다. 키와 체중에 비해 머리가 큰 아기와 통통한 아기들은 걸음마 시기가 늦고, 마른 아기들은 빠른 듯하다. 물리적 요인이 어느 정도 허용되고 권장되느냐 하는 문제는 아기가 혼자서 돌아다니는 시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아 돌연사 증후군을 예방한다며 아기를 뉘어 재우라고 충고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 덕분에 많은 영아들이 죽음을 면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안타까운 부작용도 있다. 일부 부모들은 아기가 깨어 있는 시간에도 엎드려 있게 하기를 꺼린다”고 뉴욕대 발달심리학자 케어런 아돌프는 지적한다. 아기들은 엎드려 있을 때 자연스럽게 두 팔로 바닥을 밀며 상체를 들어올리려 한다. 이는 상체 근육을 강화하고 기어 다닐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자, 이제 아기가 온 집 안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동작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 두 발을 어깨 너비만큼 넓게 벌린 채 뻣뻣하게 걷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보자’다. 두어 걸음마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서투른 동작은 구조적인 특성에서 비롯된다. 대다수 아기의 다리는 약간 휘어졌고, 발바닥은 평발이며, 두 발끝은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거나 (더 흔하게는) 안쪽으로 팔자(八字)처럼 모아져 있다. 이 모든 특성은 누구에게나 일시적으로 나타난다. 발끝은 18개월쯤 곧게 뻗으며, 휜 다리도 만 세 살쯤이면 펴진다. 그리고 평발처럼 보이는 부분은, 말하자면 발바닥 살이 약간 통통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젖살이 빠지기 시작하면 발바닥도 아치형으로 변한다. 한편 몇 차례 부닥치고 넘어져 타박상을 입는 일은 성장 과정의 일부임을 명심하라. “걸음마는 마치 새로운 도시에 와서 길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 정확한 지리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두어 번 길을 잃게 마련”이라고 아돌프는 말했다. 아기의 운동능력(아기가 배우는 온갖 다른 능력도 마찬가지다)이 발달하는 시기와 스타일은 아기의 성격만큼이나 독특하다. 따라서 유아 발달 각 단계의 첫 신호들을 기억해두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기가 특정 행위를 언제 하느냐보다는 일련의 지표들을 꾸준히 보이면서 발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 아기가 이런 발달지표들을 이웃집 아기와는 다른 시기에 보일지 모르지만, 두 아기 모두 비슷한 진행 과정을 따르게 마련이다. 내 아기를 이웃집 아기와 비교하거나, 아기의 지속적인 발육에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차지하는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미시간대의 발달소아과 의사 줄리 렌젤레스는 “부모가 누리는 특권 중 하나는 자연의 섭리에 일임하면 된다는 점이다. 자연은 대부분의 경우 아기에게 가장 올바른 시기에, 가장 올바른 경로를 취해준다”고 말했다. 일단 아기가 주요한 발달 단계들을 성공적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부모(그리고 아기)의 세계는 확실히 달라진다는 점을 명심하라. - <NEWSWEEK 한국판> ‘귀여운 우리 아기’ 중에서 -
생후 0~1개월 갑자기 놀란 듯 팔을 뻗는 등 원시반사를 보인다. / 눈과 입 부근으로 두 손을 가져간다. 엎드린 자세로 머리를 좌우로 움직인다. / 받쳐주지 않으면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두 주먹을 꽉 쥔다./ 강한 반사운동. 2~3개월 엎드렸을 때 머리와 가슴을 들어올린다. / 엎드린 상태에서 두 팔로 상체를 지탱한다. 엎드리거나 누웠을 때 발을 뻗어 찬다. / 두 손을 쥐락펴락한다. 손을 입에 가져간다. / 매달린 물체를 겨냥해 손을 휘두른다. 4~7개월 누운 상태에서 몸을 앞뒤로 뒤집는다. / 양손으로 지탱하고(나중엔 그냥) 앉는다. 두 다리로 온몸의 체중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 한쪽 손을 뻗어 물건을 잡으려 한다. 8~12개월 도움 없이 앉는 자세를 취한다. / 배를 깔고 앞으로 긴다. 손과 무릎으로 기어 다닌다. / 앉은 자세에서 기는 자세로, 혹은 앞으로 구부린 자세로 전환한다. 몸을 일으켜 세우거나 발걸음을 떼기도 한다. / 붙들지 않아도 혼자서 잠시 서 있기도 한다. 13~24개월 혼자 걷는다. / 걸으면서 장난감을 끌고 다닌다. 큰 장난감이나 여러 개의 장난감을 들고 걸어 다닌다. / 달리기 시작한다. 발돋움을 하기 시작한다. / 공을 차기 시작한다. / 난간 등을 붙잡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25~36개월 높은 곳에도 능숙하게 올라간다. / 두 발을 바꿔가며 계단을 오르내린다. 공을 찬다. / 잘 달린다. / 세발자전거를 탄다. / 고꾸라지지 않고도 몸을 앞으로 구부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