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衣)의 푸념
정은숙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청명한 가을이다. 영원히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슬금슬금 도망을 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올 여름에도 바깥세상 구경 한 번 못했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도,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우리 주인집 안방에 갇힌 채 올해로 벌써 여름을 두 번이나 훌쩍 보냈다. 주인은 아침 출근길에 간혹 나를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이 옷은 너무 나이 들어 보여 못 입겠어.’ 혼잣말로 몇 번이나 투덜거리기만 하더니 결국 또 이번 여름도 휙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나는 처음, 어느 백화점의 딱딱한 마네킹에 한동안 걸려 있었다. 나를 선택해 줄 주인을 만나고자 몇 날 며칠 밤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간신히 우리 주인의 눈에 띄어 주인집 안방으로 온 뒤 능소화가 두 번이나 피고 졌다.
나는 고풍스럽고 값나가는 재질과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에 제법 그럴 듯한 자태에 누구나 한 번쯤 입고 싶어 할 만큼 괜찮다. 흠이라면 값이 좀 비싸서 손쉽게 구입할 수 없다는 점 말고는 이렇다 할 단점을 가지지 않았다.
목선도 고즈넉하고 알맞게 패여서 시원하고, 입으면 실크의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을 좋게 한다. 아래쪽 가장자리에는 흰색 넝쿨장미들이 화사하게 수가 놓여있어 내가 봐도 제법 멋진 검정색 원피스다. 어느 장인이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수를 놓았나 싶을 만큼 예쁜 수가 가장자리로 빙 둘러 놓여 있어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백화점에서 주인이 나를 처음 입어보던 날, 무척 우아해 보였고 그동안 입어봤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잘 어울려 꼭 주인에게 따라가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나의 간절한 소망대로 주인은 조금 비싸다 싶은 나를 3개월 무이자 할부로 선택해 준 것이다.
앞으로 우리 주인이 가는 곳마다 함께 나들이할 생각을 하니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에도, 주일이면 교회에도, 주인의 행복한 모임이외에도 나는 여기저기 함께 가게 될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나를 보면 이구동성 예쁘다고 칭찬할 것이고, 우리 주인의 어깨가 조금 으쓱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행복한 꿈을 안고 주인집으로 왔건만 벌써 여름이 두 번이나 지나도록 나는 꼼짝도 못한 채 제 자리에만 서 있는 안타까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백화점 종이가방에 담겨져 집으로 오던 날, 옷 사기를 좋아한다고 나무라는 주인 남편의 눈에 띄지 않도록 깜깜한 옷장 속으로 밀어 넣어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주인 남편이 보너스를 타던 기분 좋은 날 저녁, 다행히도 안방 옷걸이 맨 앞줄로 나오는 행운을 만났다. 그것도 나를 첫 번째 줄에 세우고 마주 놓인 침대에서 늘 빤히 바라보며 주인의 총애를 받았다. ‘내일은 이 원피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한번 가볼까?’ 주인은 혼잣말을 하면서 이리저리 어루만졌다. ‘아! 드디어 내일은 나도 바깥세상 구경을 하게 되나보다.’ 아는 분의 딸아이 결혼식이 있는 아침, 곱게 화장을 한다. 어젯밤 약속은 다 잊어버렸는지, 옷장에 걸린 옷들을 또 이 옷 저 옷 뒤적거린다.
나는 주인의 눈에 띄고자 잔뜩 긴장한 채 서 있었다. 순간 나에게 눈길이 머물더니 옷걸이에서 내린다. 그리고 나를 입고선 앞, 뒤로 거울을 보고 또 본다.
결혼식시간이 다급한지 바쁘게 문을 열고 집을 나서려다 말고 현관 앞에 있는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다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무래도 이 원피스는 잘못 샀나봐. 도대체 이 옷은 사둔어른 만나러 가는 날이나 입어야지. 안되겠다.’ 나를 팽개치듯 침대에 벗어 둔 채, 다른 옷으로 후다닥 갈아입고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래서 그 날도 결국은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다.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인데 내 처지가 반팔 신세이고 보니 아마 올 해도 바깥 구경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주인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지, 3개월 무이자까지 하면서 처음 나를 택할 땐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래도 한 해에 한두 번은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줘야지 너무 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우리 주인은 그리 젊은 것 같지도 않고, 그다지 날씬한 몸매를 가진 것 같지도 않다. 이만하면 뱃살을 감춰주기에도 충분하고 품위유지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한 번도 데리고 나가지 않는 주인이 야속하기만 하다.
우리 주인은 다른 사람에 비해 옷을 좋아하고 좀 많은 편이다. 유독 시를 잘 쓰는 어떤 유명한 수녀님은 사계절을 남루한 수녀복 한 벌로 산다는데, 주인은 이 옷들을 언제 다 입을까? 옷장 속에도 즐비하고 안방에 있는 옷걸이는 무게를 못 이겨 늘 축 처져 있다. 주인은 아마도 월급의 일부는 의복비로 지출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옷 말고도 시부모 옷이나 친정 언니들 옷도 자주 사주는 편이고, 입었던 옷도 친구가 원하면 잘도 선물한다.
나 말고도 한 계절에 한두 번 정도 밖에 바깥나들이를 못한 친구들도 많다. 어떤 친구는 나처럼 한 번도 바깥구경을 하지 못한 채 주인의 눈에 거슬려 교회바자회나 이웃들에게 훌쩍 보내지기도 한다. 그런 신세보다야 나는 아직 안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백번 다행이다.
사람들에게 옷은 어떤 의미일까?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명하셨지만 그 열매를 따 먹은 뒤 선악을 알게 되어 입게 된 무화과 나뭇잎이 최초의 옷이었을까? 옷 한 벌에 웬만하면 몇 십만 원을 넘는 옷들도 많지만 시장에도 천도 좋고 모양도 괜찮은 옷들도 많다. 언제부터인가 주름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옷을 만들고 특징이나 모양들이 다양해진 옷들이 많다. 옷이 비싸거나 싼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매하지 않고, 서로 용서하고 겸손을 베푸는 사람이면 옷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사람에게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주인의 빈 가슴속으로 보름달이 뜬금없이 불쑥 찾아오는 날, 강 안개 밀려 때때옷으로 갈아입고 싶은 그런 날이 오면 나도 주인을 따라 행복하고 멋진 세상구경을 하게 될 것이다. 결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않아도, 50대 후반의 상자 속으로 일부러 자신을 꾹 꾹 집어넣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가까이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는 한 발 물러섰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우리 주인도 이런 저런 옷가지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치우침 없는 중용으로, 그리고 성숙함으로 올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면 비록 세상구경 한 번 못한다 해도 그리 슬퍼하지 않으리라. 이제 또 내년이면 여름이 다시 우리 곁을 찾아 올 테니까.
(2015.9.11.)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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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는 풀잎으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