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물유주(各物有主)
임병식 rbs1144@daum.net
요즘 나는 돌 하나를 들여놓고 그 앞에 자주 선다. 수반 위에 놓인 수석이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손바닥에 전해지던 묵직한 감촉과 물에 젖을 때마다 살아나는 결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내가 가진 것은 단봉형 산형 수석이다. 낮게 솟은 봉우리와 한쪽으로 완만히 흘러내리는 능선, 그 아래를 감싸 안은 오목한 형세가 안정된 균형을 이룬다. 석질은 맑고 결은 단정하다. 눈에 띄는 흠 하나 없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예전에는 강변을 거닐며 돌을 찾는 일이 흔했다. 물길이 깎고 다듬은 형상 속에서 저마다의 산과 계곡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탐석이 쉽지 않다. 대신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발길을 늦춘다. 사람들의 눈길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에도 뜻밖의 풍경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은행 일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하치장 옆을 지나는데 돌 몇 개가 무심히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독 눈에 걸렸다. 얼핏 보아도 형세가 좋았다. 잠시 후 다시 와서 살펴보리라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 먼저 눈여겨본 모양이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는데, 다음 날 같은 길을 지나며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그 돌이 다시 원래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집으로 가져갔다가 다시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막상 곁에 두고 보니 처음의 눈길만큼 마음이 머물지 않았던 것일까.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돌을 들어 올렸다.
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각물유주(各物有主)’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주인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주인이란 먼저 차지한 사람이 아니라,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책도, 그림도, 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어떤 이는 무심히 지나치고, 어떤 이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는다. 차이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 있다.
그 돌은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에 특별하게 들어온 순간 비로소 의미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수반 위에 놓인 돌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제 주인을 찾아 떠도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먼저 손에 잡히는 사람보다, 먼저 알아보는 사람에게 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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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첫댓글 수석이 제대로 임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임선생님 현관에 오래 머물어 산수경개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각물유주(各物有主) 가 이 아침을 새롭게 합니다.^^
새 수석을 들여놓고 즐기고 있습니다.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본디 제것이 아닌 물건은 마땅히 주인을 찾아가도록 배려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각물유주를 대하니 청년에 보았던 '동춘'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사물도 사람도 모두 인연따라 맺어지는 걸 보면 세상에는 필연이라는 숙명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에게 물건은 제주인이 있는것 같아요.
우여곡절끝에 오게된 선물인만큼 잘 감상하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갔으면 합니다.
돌뿐만 아니라 책도, 그림도, 사람과의 인연도 결국 그것을 알아봐 주는 눈을 만날 때 특별해진다는 구절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제 곁에 있는 인연들을 나는 얼마나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드네요. 수반 위의 단봉형 산형 수석처럼, 제 삶의 소박한 인연들도 귀하게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글을 공감해주셔서 저로서는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