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형의 풍수 논리
임병식
내가 사는 곳 북쪽 외곽에는 해산(蟹山)이라는 마을이 있다. 게 해(蟹) 자를 쓰는 이름이다. 풍수지리에서는 마을의 형세가 게를 닮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흔치 않은 이름이라 오래전부터 기억에 남아 있었다.
게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동물이 아니다. 앞으로 곧게 걷지 않고 옆으로 움직이며, 통발에 함께 갇혀서도 힘을 모아 빠져나오기보다 저마다 제 살길을 찾는다. 먼저 기어오르는 놈을 다른 게가 끌어내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름이나 호(號)에 '蟹' 자를 쓰는 사람도 드물다.
물론 예외는 있다. 문인의 호인 '횡보(橫步)'가 그것이다. 게걸음을 뜻한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자신의 모습을 빗대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얼마 전 해산 마을을 지나던 길에 오래전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도로를 넓히면서 마을 앞 산자락 일부가 잘려 나갔다. 그 뒤 논밭을 오가던 주민들이 도로를 건너다 잇달아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민들은 시청을 찾아가 도로 개설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단순한 민원만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한 주민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 마을은 풍수로 보면 게의 형국입니다. 그런데 도로를 내면서 게의 다리를 잘라 버렸습니다. 게의 다리를 끊어 놓았으니 변고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풍수의 논리였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한 미신으로 흘려듣기 어려운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가 이루어졌는지, 그 뒤로는 같은 문제로 주민들이 집회를 이어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 때면 잘려 나간 산자락보다 사람들을 움직였던 풍수의 논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것이 사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을 설득하는 힘은 객관적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때로 현실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해산 마을은 그 사실을 오래도록 내게 일깨워 주고 있다.
(2026)
첫댓글 비호감의 상징이기도 한 '게(蟹)'의 생태적 특성과 '횡보'라는 문인의 호를 엮어 흥미를 유발한 뒤,
이를 마을의 풍수지리 설화와 연결하는 전개 방식이 매우 자연스럽고 흡인력 있습니다.
산업화와 도로 개발이라는 현대적 맥락 속에서 발생한 비극(교통사고)을, '게의 다리가 잘렸다'는 직관적이고도 정서적인 풍수 논리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사실과 논리만을 따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은 결국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어조로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주변의 사소한 지명과 일화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삶의 통찰을 우아하고 담백하게 길어 올린 秀作입니다.
사유수필을 다양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생각나는대로 소재를 찾아 쓰게되면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를 잡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청소년 시절까지도 해산은 해지로 불렸고 오산마을은 올미라고 했지요 저는 아직도 해산이 풍수학적으로 게 모양이라는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지요 해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차후 제 견해를 적어볼 생각입니다 아무튼 주민들이 해산을 게모양이라 여겨 게 다리의 절단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난다고 믿어 민원까지 제기한 사실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삼여통합 이전의 이로서 당시 시장이 이씨성을 가진 시장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나와서 헨드마이크를 들고 설득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