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엘리야와 아합 왕은 만나서 누가 이스라엘에 재앙을 가져온 자인지를 다퉜습니다. 그리고 이를 밝히기 위해 대결을 하였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비를 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자해하며 무리가 노력을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입니다. 수많은 바알 선지자들에 비해 엘리야는 혼자였습니다. 엘리야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자해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을 떠와 불이 붙을 제단과 재물을 뿌려 물이 제단에 두루 흐리고 도랑에 물이 가득찼습니다. 엘리야가 조용히 기도를 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물에 젖은 제단과 제물을 태웠습니다. 우리는 바알 선지자와 엘리야의 대결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알 선지자와 엘리야의 대결의 의미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와 대결을 앞에 두고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무너진 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음을 보여줍니다. 즉 바알 선지자와 엘리야의 대결은 무너졌던 여호와의 제단이 회복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을 통하여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회복하였을까요? 이는 여호와의 제단들 무너트린 것이 바로 바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바알의 방법을 따라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큰 소리를 질러야 그리고 몸에 자해를 하며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려야 제사가 응답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제사 예식을 통하여 감정적으로 제사가 응답된다는 것을 체험하길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알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에는 어떠한 감정적인 체험도, 열정도 없었습니다. 바알의 제사는 나를 위해 드리는 제사이지만, 하나님의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제사, 즉 하나님을 선포하며 찬양하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오직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은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고 선포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제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혹 무너진 제단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따라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실용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실존주의로 한국 교회 예배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의 회복! 우리는 이 시대 엘리야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