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을 거쳐, 연초록, 진초록으로 물든 5월이다.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소만(小滿)이 지난주 지나면서 햇볕이 더욱 풍부해졌다. 경남 의령군 13개 읍면 들녘에서는 벌써 보리 이삭이 익어서 누런색을 띠고 있다. 여름의 문턱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필자는 여러 해 포기하고 버리다시피 한 텃밭을 다시 기경(起耕)을 시작하였다. 50평가량 텃밭 옆, 수로가 폭우로 범람하여 텃밭 한 가운데 큰 싱크홀이 생겨 영 경작할 사기가 꺾였다. 몇 해 동안 폭우의 넘침을 막아 보려고 하였으나 모두 허사였다.
작년 여름 우연히 다시 찾아간 텃밭이 온통 풀밭이 되어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농촌에 살면서 텃밭도 제대로 일구지 못한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부끄러워, 만리장성을 쌓은 심정으로 수로를 따라 벽돌 단을 쌓아 올렸다. 벽돌 일곱 장 높이로 수로를 따라 담을 쌓았더니 이젠 웬만한 폭우가 내려도 텃밭으로 물이 침범하지 못했다. 새로 안정된 밭에 상추, 오이, 고추, 토마토를 입하(立夏)에 심었다. 필자의 텃밭에선 지금 자라는 속도가 가장 빠른 상추가 한창이다. 상추를 신새벽에 수확하여 창원시와 거제도에 살고 있는 형님들에게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 담아 택배로 보냈다. 신선한 연초록, 진초록 물감이 잘 들어 무럭무럭 잘 자란 상추가 형들의 입맛을 살릴 것이라 기대해 본다. 필자와 같이 전국에서 텃밭을 일구는 손길에서, 혹은 부지런히 본연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모든 국민들에게 초여름 풍성한 수확과 성과가 있길 바라며, 2026년 열 꼭지째 칼럼으로 농사(農事: 논밭을 갈아 곡류·채소·과일 등을 심어 가꾸고 거두는 일)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농사 농(農)은 정수리 신(曲=囟의 변형)에 새벽 신(辰=晨)이 더해진 글자다. 농부가 새벽부터 정수리에 수건을 쓰고 밭에 나가 곡식을 가꾼다 하여 ‘농사’의 뜻이 되었다. 신(囟)은 한자에서 '정수리'를 뜻하는 상형문자로, 주로 갓난아이의 머리 윗부분, 특히 뼈가 굳지 않아 열려 있는 숫구멍(갓난아이의 정수리가 굳지 않아서 숨 쉴 때마다 발딱발딱 뛰는 곳)이 있는 자리를 본떠 만들어졌다. 신문(囟門, 숫구멍), 신전(囟塡, 어린아이의 정수리가 붓는 병), 신종(囟腫, 숫구멍이 부어오르는 병증)이 좋은 용례이다.
새벽 신(辰)은 별, 새벽, 아침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辰자는 농기구 일종을 그린 것이다. 예부터 농사를 짓는 일에는 반드시 쟁기, 호미, 삽 등 농기구가 필요했다. 농사를 뜻하는 농사 농(農)에 辰자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즉, 농부가 새벽부터 농기구를 손에 들고 밭으로 나가 정수리가 땀으로 흠뻑 젖어질 때까지 곡식을 가꾼다 하여‘농사’의 뜻이 되었다.
일 사(事)자는 일, 직업, 재능, 사업, 벼슬, 사고(事故), 국가 대사(國家 大事) 등 다양한 뜻을 가진 글로 뜻 지(𠮛)에 붓 사(肀)가 결합 된 한자이다. 갑골문이 나타날 때, 부릴 사(使), 역사 사(史), 관리 리(吏), 일 사(事)자는 모두 같은 글자였다. 事자는 그 중에서도 정부 관료인‘사관’을 뜻했다. 갑골문에서 사관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事자는 제사를 지내고 점을 치는 주술 도구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 후 글자가 분화되면서 事자는 일이나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史자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자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사무(事務: 맡아보는 일), 검사(檢事: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재판을 집행하는 관리), 사변(事變: 천재나 그 밖의 큰 변고)이 좋은 용례이다.
5월 마지막 주를 보내며, 오월이 왔음을 힘차게 노래한 경남 어느 시인의 시(詩)를 지면에 소개해 본다. 최근까지 전쟁으로 기름값이 올라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맛이 산뜻하고 시원하여 복용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청량제(淸凉劑)와 같은 효험이 있어 다시금 힘을 얻길 소망해 본다.
오월이 왔다
이서린 시인
오월이 왔다
북소리도 나팔도 없이 초록이 왔다
영광의 깃발 휘날리며 초록이 왔다
온 마을 점령한 무적의 군대처럼
이 산 넘어 저 산으로 멈추지 않고
밤낮없이 전방위적 행진을 하는구나
지나는 곳마다 찔레꽃 아카시 향기
갇혀 있는 마음들이 들썩거린다
빛바랜 이름들이 먼 길을 나선다
푸른 피야 넘쳐라 실핏줄도 뻗어라
붉은 왕관 가시 돋은 태양의 거리
오월은 왔다
심장을 던져라 심장을 던져라
오월은 왔다
| 農 | = | 曲=囟 | + | 辰=晨 |
| 농사 농 |
| 정수리(숫구멍) 신 |
| 새벽(별) 신 |
| 事 | = | 𠮛 | + | 肀 |
| 일 사 |
| 뜻 지 |
| 붓 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