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일반부 장원]
나무에 기대어
김이교
달리고 내달리고 저만이 최고인 양
세상의 혼탁한 일 묘한 일 판을 칠 때
나무에 가만 기대어 물관 소리 듣는다
뿌리의 간절함이 수맥에 닿는 여정
비워낸 생각들도 동이 든 채 따라가면
잎맥은 천리안 되어 푸른 세상 안내한다
삶이란 백 년 남짓 살아보면 그도 찰나
내 비운 그 자리에 널 앉혀 채워보면
천년을 맑은 소리로 내 몫까지 다할까
[대학. 일반부 차상]
가마솥
장정희
온몸에 화근내가 쇳가루로 배어 있다
털어도 불 냄새는 재채기 동반하고
사계절 프로메테우스 반점 피는 아버지
목마른 거푸집은 쇳물만 들이켰다
이울고 토해낸 뒤 마음 따라 닮은 꼴들
차갑고 뜨거움이란 다른 뜻도 있었다
서말찌 가마솥에 하얀 김 뿜어내고
참깻단 타닥타닥 제 몸을 사른 저녁
열 식구 두레상 펴고 웃음꽃을 피웠다
[대학. 일반부 심사평]
멀리 경기도 파주로부터 경향 각지에서 총34명 일백여편의 응모작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에서부터 장년(옛날 같으면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남녀노소 응모한 셈이다. 작품의 수준보다 이것이 더 소중하다 할 것이다.
부산시조전국공모전 39회라는 연륜이 그저 그려진 나이테가 아님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응모자 대부분이 웬만큼 연찬을 쌓았기에 자웅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고
수 년차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사 후에 열어보니 부산 사람들이 차하까지 다 뽑혔기로 자세히 보아하니 정형시로서의 시조공부에 진력해온 동아리들이 여럿 있는 것이 그 바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응모자는 시조다움보다는 겉멋을 지나치게 중시한 것이 흠결이 되었다. 3장 구조의 탄탄함, 약강 가락의 음악성, 연행 배치의 시조다움 등에 응모자들의 더 많은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하겠다.
장원에 뽑힌 「나무에 기대어」는 깊이 있는 세상을 적절한 단어로 형식에 잘 맞춘 수작이다. 얼마나 시조창작에 천착해왔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차상의 「가마솥」 역시 생생한 언어로 가족사 속에 깃든 사랑을 엮은 탄탄한 작품이다. 차하로 선정된 「청하(淸夏」는 구어체로 신선한 느낌을 불러온다. 그렇다
어려움을 견디고 비상할 날은 머지않았다. 수상자께 축하드리며 시조단의 중추적 역할을 할 날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서관호(글), 전연희
[고등부 장원]
선인장처럼
금성고등학교 2학년 문지환
선인장은 물이 적어 힘들어도 살아간다
큰 덩치 허리춤은 얼마나 두꺼운지
그 위엔 뾰족뾰족한 가시바늘 투성이다
뾰족한 가시처럼 소신을 외쳐대고
꾸밈없이 수수하며 이해심 넘쳐나는
아무리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윽고 꽃 한 송이 피워 내 밝혀주는
힘든 상황 이겨내고 주변을 밝혀주는
꼿꼿한 선인장처럼 당당히 살고 싶다
[고등부 차상]
그림자가 건넨 말
금성고등학교 3학년 박종원
꽃들의 찬란함도 나무의 싱그럼도
햇살에 투과되지 못했던 너의 맘도
꼬리만 길게 늘여서 등 뒤로 숨었다
한 마디 뱉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리
순전히 네 뒤에서 멍하니 쳐다보리
덩이진 고뇌를 안고 빛내리라 너만을
[고등부 심사평]
전국시조 공모전답게 초등부, 중등부, 일반부는 전국 각지에서 응모작이 접수되었으나 고등부는 참여율이 저조하였다. 중간고사와 대학입학이라는 큰 벽이 고등부 학생들에게는 부담이었을 것 같다. 많은 작품을 기대했으나 20여 편의 작품만 들어와 아쉬웠다. 그러나 작품마다 시조의 형식과 율격, 기본 수준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서 시조의 앞날에 희망이 보였다.
문지환 학생의 「선인장처럼」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나는 선인장의 강인한 모습을 잘 나타내었다. 비록 겉모습은 뾰족하지만 한 송이 꽃으로 피어 주변을 밝혀주는 꼿꼿한 선인장처럼 살고 싶은 포부를 당차게 표현하고 있어서 장원으로 뽑는다.
차상 박종원의 「그림자가 건넨 말」 차하 김민규의 「머나먼 땅」 김진우의 「통일 염원」 도 기본기는 탄탄하였으나 압축과 절제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시간을 두고 갈고 닦으면 수작이 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도교사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독려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김정(글), 박홍재
[중등부 장원]
푸른 바다 그리워
대연중학교 2학년 백민경
애초에 바닷물은 가야금을 닮았다
투명한 물소리에 줄 고르던 물고기들
순식간 배 뒤집으며 바다 위로 떠 오른다
일본이 마구 버린 방사능 오염수에
청아한 파도 소리 쇳소리로 물들고
까맣게 얼룩진 물에 바스라진 해초들
[중등부 차상]
별똥별
대연중학교 2학년 이지원
은가루 뿌려 놓은 반짝이는 저녁이다
소원을 모두 모아 하늘 향해 손 모우고
별똥별 떨어지는 소리 들었으면 좋겠다
이번엔 중간고사 잘 보도록 빌어야지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도록
별똥별 소원 싣고서 내 마음에 떨어졌다
[중등부 심사평]
백일장 원고를 받아들고 분량을 헤아렸다.
투고해 온 편수를 보니 시조의 현주소를 알 것만 같았다. 다행히 몇 곳의 학교에서 보내왔다는 것에 위안 삼는다.
12명이 보내온 24편 가운데 중학생다운 글제로 잘 다듬어진 글을 찾는 것은 경쟁률 면에서는 그리 어렵진 않지만, 또한 그리 쉬운 것도 아니었다.
옥석을 가린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과 서로 소통해야만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심사 기준으로 중학생이라면 최소한 아래 네 가지 내용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첫째 시조 형식이 맞는가? 둘째 율격은? 셋째로 형상화 수준을 가늠해 보고 넷째로 압축과 절제가 잘 되었는가를 보았다.
김정 선생님과 서로 돌아가면서 살펴본 결과 해송중학교 장선균의‘기도 모임’, 이수진의‘가을’, 대연중학교 이지원의‘별똥별’, 대연중학교 백민경의‘푸른 바다 그리워’등 네 편이 눈에 들어왔다.
장선균의‘기도 모임’은 종교를 떠나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풀어내었지만, 나열하는 듯하였고, 이수진의‘가을’은 가을이란 계절을 또 다른 각도로 보는 듯해도 일상에 머무르고, 이지원의‘별똥별’은 별똥별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지만, 또한 하나의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백민경의‘푸른 바다 그리워’는 제목부터 한 사물에 꽂히지 않고 그려내었으며 ‘애초에 바닷물은 가야금을 닮았다’는 가구(佳句)와 함께 물론 현재 일본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염려를 잘 버무려 놓았다. 앞으로 시조를 잘 갈무리하리라는 기대와 솜씨가 있어 장원에 올렸다. 더욱 노력하여 시조를 짓는 동량으로 커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심사위원 : 김정, 박홍재(글)
[초등부 장원]
사춘기
연포초등학교 6학년 강다윤
찌르면 까칠까칠 예민한 고슴도치
나뭇잎 떨어지면 눈물이 주룩주룩
입에는 지퍼를 달고 엄마 속을 태운다
[초등부 차상]
저금통
금양초등학교 3학년 김세빈
돼지코 귀여워서 동전을 넣어줘도
꿀꿀꿀 욕심내어 자꾸만 달라더니
아빠도 못 들어 올리는 천하장사 됐지요
[초등부 심사평]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온라인 공모전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시행하였다. 작년보다 약간 저조한 141명이 282편의 작품을 보내왔다. 먼저 시조의 율격을 잘 지켰는지, 어린이다운 참신함을 보였는지, 주제가 선명하고 언어가 시적인지를 심사기준으로 삼았다. 시조의 형식에 맞지 않은 작품은 먼저 배제하였다. 어른들의 작품을 흉내 낸 것 같은 작품도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심사 중 작년에 차상과 차하를 한 작품을 그대로 응모한 사실을 발견하고 심사단은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도교사의 엄격한 지도가 요망된다.
그런데도 대부분 응모작은 학교나 가정, 친구들과의 관계, 자연의 관찰에 상상력을 덧붙여 시조의 뜻을 살리고 있었다.
장원을 한 강다윤의 「사춘기」는 사춘기를 “예민한 고슴도치”로 깜찍하게 은유하고 “입에는 지퍼를 달고 엄마 속을 태운다”라고 체험을 녹여 표현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차상을 한 김세빈의 「저금통」은 “꿀꿀꿀 욕심내어 자꾸만 달라”는 돼지의 속성을 저금통에다 절묘하게 교차시켰으며, 읽을수록 리듬이 살아나면서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 그 외 차하를 한 왕재원의 「고추잠자리」, 이지우의 「꿈」, 왕가현의 「추석날」, 정소연의 「별」도 어린이다운 참신한 발상을 하여 시조의 앞날이 밝음을 보여주었다.
심사위원 : 김덕남(글), 박은희, 정애경
첫댓글 우수한 시조를 읽었습니다. 수상하신분께 늦었지만 축하합니다. 심사하신 심사위원님들도 바쁘신 가운데 심사에 애쓰셨습니다.앞으로는 차하 시조까지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