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자)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요한 디다코(후안 디에고) 쿠아우틀라토아친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되찾은 양의 비유’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위로의 책’이라고도 불리는 이사야서는 오늘 독서에서 희망을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보여 줍니다. 이 위로는 아주 강력해서 죗값을 치르느라 유배살이에 지치고 실의에 빠진 하느님 백성을 새롭게 일으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권능으로 새롭게 하시면서 직접 찾아오십니다. 주님의 은총은 타인을 통하여 배달되지 않고 당신께서 몸소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아니, 그분께서 모든 은총의 총합이십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이사 40,10). 하느님의 상급과 보상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주시는 희망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인간적 기대는 어긋날 수 있겠지만, 하느님 안에서 희망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의 삶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과연 인간은 희망으로 존재합니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도 희망을 존재의 필수라고 보았습니다. 비슷하게 사람은 음식 없이는 40일, 물 없이는 4일, 공기 없이는 4분,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단 4초도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특히 이 대림 시기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희망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새끼 양들을 안으시며,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그 다정한 사랑으로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나러 기쁨과 희망으로 걸어갑시다.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화답송).(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작고 겸손한 이들에게만 발현하시는 성모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1531년 성모님께서 멕시코 과달루페에 발현하셨는데, 그때 목격한 사람이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성 요한 디다코(스페인어: 후안 디에고)입니다. 성모님의 과달루페 발현은 남미 대륙 복음화에 엄청난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과달루페 성모 발현지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객들이 찾는 성모 성지로 유명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과달루페 성모님을 남미 대륙과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했습니다.
멕시코 과달루페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스페인과 원주민 사이 혼혈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성모님께서는 갈등을 계속하던 침입자 스페인 사람들과 원주민 사이의 화해를 바라시는 의미에서 혼혈의 모습으로 발현하신 것입니다.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을 계기로 불과 8년만에 당시 800만 인구 가중에 700만명이 영세, 입교했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비상한 방법으로 당신의 구원 은총을 베푸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 발현의 대상은? 몇 명의 목격자들을 제외하고 성모님께서는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어른들 역시 어린이처럼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 디다코 역시 그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왜 어린이들과 착하고 겸손한 사람들에게만 발현하셨을까요? 왜 주교님이나 사제들, 대 신학자들에게는 발현하지 않으실까요?
사실 당신의 메시지를 알리려고 하신다면 영향력있는 분들에게 나타나시면 더 용이하실 텐데, 성모님은 한사코 어린이들이나 작은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것도 병약한 시골 소녀나 못 배운 어린이들에게 말입니다.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이들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작은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 이런 메시지가 아닐까요?
성모님의 발현 역사를 살펴보면 어려움에 처한 교회와 자녀들을 향한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회가 큰 위기에 처할 때 성모님은 발현을 통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성모님은 발현을 통해 당신 양 떼를 따듯이 품어 안아 주셨습니다.
특별히 성모님께서는 당신 말씀의 전달자로 고관대작이나 명망가가 아니라 작고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그때그때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건네주심으로 인해 교회는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전해주신 메시지는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는 곧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였습니다. 성모님의 메시지는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건넨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성모님의 메시지는 복음의 요약이요 가톨릭 정통 교리였습니다.
교회가 승인한 성모님 발현 메시지는 절대로 교회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모님은 철저하게도 교회의 어머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슬러가면서 발현하시고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성모님께서 계속해서 지구 도처에 발현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의 발현은 하느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에 다시금 신앙의 불을 지피기 위한 따뜻한 모성애의 발로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롱한 보석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실로 꿰어서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로 만들지 않으면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전에 아는 분들의 추천으로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무심코 있었는데 보험이 만기가 되었습니다. 외국에 살고 있었고, 핸드폰도 바뀌었습니다. 보험사에서는 만기가 되었다는 연락을 우편으로도, 문자로도 보냈는데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휴가에서 은행 직원이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보험사에 일일이 전화해서 지급 방법을 문의하였습니다. 어떤 것은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였고, 어떤 것은 연장하였습니다. 필요한 서류는 팩스로 받아서 작성해 주었습니다. 3시간 가까이 업무를 처리해 준 은행 직원에게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휴가 중에 저를 도와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울산과 부산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숙소를 마련하고, 일정을 만들어 준 신부님이 있습니다. 주문진에서 낚시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형제님도 있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했습니다. 가진 것을 빼앗겼고, 맞아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레위는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며 지나갔습니다. 사제는 성전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을 여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여관 주인에게 비용이 더 들면 돌아와서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입니까?” 율법 학자가 말했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당신도 그렇게 자비를 베푸세요.”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은 누군가의 구슬을 꿰어서 보배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은 고통 중에 있는 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그날이 오면 유배가 끝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평등의 세상, 자유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제가 살았던 서울도, 뉴욕도,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깊다면 서울도, 뉴욕도,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언덕이 높다면 어느 곳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메워진다면, 언덕이 평평해진다면 군대에서도, 유배지에서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날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분명 골짜기가 있습니다. 학력, 지역, 이념, 직업, 계층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너무 깊어서 넘어가기도 힘들고, 넘어오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기도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듯이 우리의 삶도 짧은데 우리는 골짜기를 메우기보다는 더 깊게 만들곤 합니다. 이런 골짜기를 메우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산과 언덕이 있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라는 바벨탑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교만, 욕심, 허영, 위선, 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탑을 낮추어 평평하게 하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이야길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슬픔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유함과 가난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운과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잃어 방황하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보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리라.”
<결코 잃지 않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마태 18,12)
잃어버린 하나를
향한 눈길에
늘 그렇게 이미
그 하나 오롯이 있으니
결코 잃지 않네
잃어버린 하나를
향한 손길에
늘 그렇게 이미
그 하나 오롯이 있으니
결코 잃지 않네
잃어버린 하나를
향한 발길에
늘 그렇게 이미
그 하나 오롯이 있으니
결코 잃지 않네
오늘의 성인
성 후안 디에고(Juan Diego)
신분 : 농부
활동지역: 쿠아우티틀란(Cuautlitlan)
활동연도 : 1474-1548년
같은이름 : 디다꼬, 디다꾸스, 디다코, 디다쿠스,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콰우틀라토아친, 쿠아우틀라토아친, 한스
성 요한 디다쿠스(Joannes Didacus, 또는 요한 디다코, 후안 디에고)는 1474년 오늘날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일부인 쿠아우티틀란에서 태어나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쿠아우틀라토아친(Cuauhtlatoatzi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아나후악(Anahuac) 계곡에서 비교적 문화적으로 성숙한 치치메카족(Chichimeca)의 일원이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50세경에 초기 멕시코 선교를 나온 작은 형제회 베드로 다 간드(Petrus da Gand) 신부로부터 요한 디다쿠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날이 갈수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는 에스파냐가 마야, 아즈텍 문명이 융성하던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 12월 9일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른 새벽 가시덤불밖에 없던 산 정상에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갑자기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서 한 귀부인이 나타나 성 요한 디다쿠스를 불렀다.
그때 그 귀부인은 자신이 은총을 가득히 입은 하느님의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면서 그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들은 멕시코의 초대주교인 후안 데 수마라가(Juan de Zumarraga)는 그를 믿지 않았다.
성모님께서는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성 요한 디다쿠스에게 다시 발현하시어 내일 주교에게 다시 가서 성당을 반드시 세울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교는 성모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신다면 기꺼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말하였다. 성 요한 디다쿠스가 이 말을 다시 성모님께 전하자 성모님께서는 징표로써 테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서 장미를 주워 주교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때는 12월이라 추웠고 또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산 정상에 가니 과연 장미꽃들이 있었고 이를 틸마(Tilma, 외투 또는 보자기로 쓰이는 겉옷, 망토)에 담아 주교에게 내보였다. 그 순간 주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겨울이라 장미꽃이 필 계절도 아니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성 요한 디다쿠스의 틸마에 새겨진 그림 때문이었다.
바로 그 귀부인의 모습과 그 옷자락을 한 천사가 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귀부인은 스스로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그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졌다. '과달루페'는 '뱀을 부순 여인'이라는 뜻이다.
그 후 성 요한 디다쿠스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 성당 옆 작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과달루페의 성모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성화를 보여주면서 성모님의 발현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였다. 매일 수천 명씩 개종하더니 마침내 발현 후 8년 만에 우상 숭배와 매년 2만 명 이상의 여자와 어린이들을 피의 제물로 '뱀신'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에 빠져 있던 멕시코인 900만 명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선교사의 활동만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709년 4월 27일 테페약 언덕에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한 두 번째 큰 성당을 다시 설립하여 축성식을 갖고 과달루페 성모님을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하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 후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인들의 신앙 속에 깊이 자리하였고, 국가의 중요한 시기마다 당신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고 신자들은 깊이 믿고 있다.
성 요한 디다쿠스는 성모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 인정받기보다는 내적인 정화를 통해 하느님을 위한 기도와 가치가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1548년 5월 30일 생을 마감하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1990년 4월 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그해 5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시복 승인 기념식이 열렸다. 이어서 그는 2002년 7월 31일 멕시코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성 베드로 푸리에
지역: 프랑스 로렌
프랑스 로렌(Lorraine)의 미르쿠르(Mirecourt)에서 태어난 성 베드로 푸리에(Petrus Fourier)는 15세 때에 퐁타무송(Pont-a-Mousson)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입회하여 공부하였고, 그 후 20세경에 쇼무지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였다. 1589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그곳의 수도원 본당 일을 맡았다. 1597년 그는 거의 폐허가 된 마탱쿠르(Mattaincourt) 본당의 주임신부로 파견되었는데, 교우들과 동고동락하며 30년을 살았다. 이때 그는 칼뱅파와 수없이 싸워야 했다. 그는 단순하고 엄격한 생활을 하여 존경을 받았고, 여러 개의 신심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어린이 교육을 지원하여, 그야말로 그 지역의 목자로서 추앙을 받았다.
그는 4명의 여성 봉사자와 함께 무료학교를 개설하였는데, 이것이 발단이 되어 1598년에는 하나의 수녀회가 설립되고, 1616년에는 '성모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녀회'라는 이름으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1622년 투르(Tours)의 주교가 그의 수도회를 개혁하고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므로, 다음 해에 그는 뤼네빌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아야만 하였다. 1629년 로렌의 수도회는 구세주회와 통합되었고, 베드로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그는 루이 13세에게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프랑슈콩테(Franche-Comte)의 그레이로 피신하여 만년을 지내야만 하였다. 그는 1730년 1월 20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97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녀 델피나 (Delphina)
활동년도 : 1285?-1360년
신분 : 3회원
지역 :
같은 이름 : 델삐나
사브랑(Sabran)의 성 엘제아리우스(Elzearius, 9월 27일)는 프로방스(Provence) 지방 앙주이(Ansouis)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로비앙(Robians)의 부친 성에서 태어났고, 모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의 원장인 사브랑의 빌리암(William)으로부터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수도원장은 그의 아저씨였는데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영적 지도자의 영향을 받아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고, 1299년에 소유권 및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해서 같은 프로방스의 귀족 가문의 딸인 델피나와 결혼하였다. 알프스맥 저지대에 위치한 퓌미셸(Puimichel) 성에서 태어난 델피나는 당시 15세였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앙주이에서 살다가, 곧 퓌미셸 성으로 옮겨 와 살았다. 그들은 서로에 대하여 지극한 신뢰와 사랑을 지녔으며, 델피나는 남편을 따라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다. 또한 신심이 두터웠던 그들은 서로 합의하에 동정을 지키기로 서약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 거룩한 부부는 관상과 기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선행과 애덕 실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며 삶으로써 주위의 귀감이 되었다. 성 엘제아리우스는 매일같이 성무일도를 바쳤다. 그의 나이 23세 때에 부친의 명예와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에 따르는 온갖 위험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열렬한 신심과 지혜로써 세속적인 재물을 다스렸다. 또한 그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의 일을 돌보기도 하였는데, 왕의 부탁으로 파리(Paris)에 대사로 갔다가 중병을 얻어 1323년 9월 27일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전에 그는 즉시 총고백을 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매일 묵상함으로써 온갖 고통을 이겨냈다. 노자성체를 영하면서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나의 희망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인 어느 작은 형제회 회원의 팔에 안겨 영광된 삶을 마쳤다.
1309년경에 그는 자신의 조카인 그리모아드의 빌리암의 대부를 섰는데, 빌리암은 나중에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 교황이 되었고, 1369년 4월 15일 자신의 대부인 엘제아리우스를 시성하였다. 한편 델피나는 남편과 사별한 뒤 37년을 더 살았는데, 그녀는 그 동안에 나폴리(Napoli)의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의 수녀가 된 나폴리 여왕 산치아(Sanchia)와 함께 죽을 때까지 수녀원에서 살았다. 그녀와 여왕은 절친한 사이였다. 델피나는 대부분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많은 자선을 베푸는 등 은수자처럼 생활하다가 1360년에 사망하였다. 델피나는 1363년부터 시성 절차가 진행되었으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1791년 델피나의 유해는 앱트(Apt)에 있는 작은 형제회 성당에 남편의 유해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