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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1장 강해]
I 천지창조
성경의 첫 장인 창조의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첫 부분으로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인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이 되었으며,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을 일삼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모든 만물이 오직 하나님의 소유이며, 인간도 역시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니요, 또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도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만물의 우두머리로서의 중대한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베레쉬트:בראשית)’라는 말에서 ‘베’는 특정한 사물을 지칭하는 전치사이며, 시초라는 뜻의 ‘레쉬트’가 합성되어 ‘바로 그 시초에’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중 먼 과거에’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의 출발점 자체 즉 역사가 시작된 바로 그 시초입니다. 즉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에서도 ‘태초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단어는 ‘엔 아르케(ἐν ἀρχη)’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 전이라는 뜻이며, 베레쉬트는 시간의 출발점 자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전 우주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하여 시작이 되고 종말도 역시 하나님에 의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으며, 어디에 계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창조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하나님은 시공와 역사를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는 하늘(솨마임:שׁמים)과 땅(에레츠:ארץ)입니다. 이는 하늘과 땅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합니다. ‘창조’(바라:ברא)는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 행위를 지칭하는 신적인 용어로 하나님께만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에서 땅은 ‘그런데 바로 그 땅’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 땅은 지구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를 운행해 나가실 것임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이 지구는 인간들의 삶의 거주지이며 향후 인류 구속사의 무대로서 중요성을 가집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이는 황폐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토후(תהו)’와 공허함을 뜻하는 ‘보후(בהו)’가 짝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위에 어떤 생명체나 특정한 형태를 지닌 것들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토후’는 황량한 사막에 아직 길이 나있지 않는 원시적인 상태, 또는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한 상태를 가리키며, 보후는 외적으로 볼 때 텅 비어 있는 상태로, 가치 있다고 판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흑암(호세크:חשׁך)은 단순히 밝음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근본적인 암흑 상태를 가리킵니다. 빛이 창조되고 나서 반대 개념으로 어둠이 생긴 것입니다. ‘깊음(테홈:תהום)’은 물결치다, 동요하다는 말입니다. 큰 파도가 동요하며 물결치는 깊은 바다를 의미합니다. 밑으로는 깊이를 잴 수 없는 깊은 지구의 표면에 거대한 파도가 물결치는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이는 혼돈, 공허, 흑암 등과 더불어 아직 빛, 질서, 생명체 등이 존재하지 않는 원시 지구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רוה אלהים)’에서 ‘신’에 해당하는 ‘루아흐’는 ‘바람’ 또는 '입김‘이란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는 말은 수면 위에 큰 바람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람은 단순한 큰 바람으로 태풍이 아니라, 모든 생명력의 근원이요 세상 질서를 주관하시는 제3위 하나님으로 성령을 뜻합니다. 행 2:1-4에서도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 모여서 기도하는 120문도를 변화시켰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태초 창조 사역에서도 짙은 흑암과 깊은 물이 혼재된 지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바람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사역은 주로 생명력을 공급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겔 37:1-10을 보면 마른 뼈가 힘찬 군대로, 절망과 죽음의 인생을 중생의 소망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사역(요 3:1-8)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운행하시니라(메라헤페트:מרחפת)‘ 이 단어의 뜻은 ’계속해서 알을 품고 있다.‘입니다. 즉 어미 새가 새끼를 까기 위해 혹은 돌보기 위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따뜻하게 알을 품고 있는 상태나, 혹은 새끼 위에 너풀거리고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는 혼돈과 공허의 상태로 흑암만이 짙게 깔린 지구에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한 성령의 활동이 애정과 보호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모두 10회나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고 히브리서에서도 말씀으로 천지창조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초월적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피조물에게 보이시는 행위입니다. 또 그 말씀이 절대자의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능력을 동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빛’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빛은 문자적으로 구체적인 어떤 ‘발광체’를 가리킵니다. 이 빛은 추상적으로 신적 은사나 능력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빛은 제4일에 창조된 태양과는 구별이 되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심이 빛의 발산 원리에 따라 직접 빛을 주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에는 생명, 구원, 계명, 하나님의 현현(시 56:14; 잠 6:23; 사 9:1)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6일 창조 활동 가운데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은 천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 목적을 먼저 밝혀 주신 것입니다.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곧 그대로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표현은 1장에만 7번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대로 피조물이 만들어졌음에 대한 인정입니다. 동시에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과 기쁨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타락 이전의 우주는 하나님의 안목과 선하심에도 부합된 참으로 좋았던 것입니다. 현재에도 비교적 잘 보존된 자연의 아름다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락한 이후 오늘날 피조물들은 함께 탄식하며 고통 중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현대 세계가 목격하는 심각한 환경 파괴도 이 타락의 연장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사’ 이는 어둠만 가득한 자전하는, 지구 표면에 빛을 비추심으로써 자연스럽게 어둠과 빛의 영역을 각각 구분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빛이 분산되지 않고 한 곳에 모여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이 공정된 발광체의 기능을 태양이 대체하게 됩니다. 창조 사역에 있어 첫날부터 나타난 ‘분리’는 성경 전체의 핵심원리 가운데 하나인 선택과 구별의 원리와 일백 상통합니다.(레위 20:24; 민 8:14; 신4:41;10:8; 왕상 8:53) 이후에도 하나님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죄와 순결한 것(레위 10:10; 20:25; 고후 6:14)간의 분리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을 향한 삶의 원리 곧 ‘거룩(카도쉬:קדשׁ)’의 삶을 터득하도록 하였습니다. 죄로부터의 분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의지로서 우리에게도 요청되는 것입니다.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칭하다(카라:קרא)’는 ‘부르다, 공포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권위자의 공식적인 선포 행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 반드시 이름을 붙이시고 복을 주셨는데, 이는 각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주장과 인(印)치시는 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두움은 빛의 창조로 생겨난 것인데, 이를 ‘밤’이라고 칭하신 것은 곧 하나님은 밤의 주(主)도 되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두움의 권세자 사단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음을 알게 되며, 성도가 밤낮 구분 없이 주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근거도 찾게 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6일간의 창조 기사 중 하루를 마칠 때마다 후렴처럼 반복되는 구절입니다. 저녁이 오고 그리고 다시 아침이 와서 하루가 지났다는 것인데, 원시 어둠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조하신 것이 빛이므로 낮이 먼저 있은 셈입니다. 그 후 지구의 회전에 따라 저녁이 오고 다시 아침이 와서 하루의 순환이 끝나고 새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간략히 묘사한 것입니다.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이는 궁창의 역할을 보여주는 말로 궁창은 지구 표면의 물과 하늘의 물, 즉 대기권의 수증기나 구름을 지구 표면에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궁창(라키아:רקיע)은 ‘발로 밟다, 넓게 펴다’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로 ‘두들겨 넓게 펼친 판(firmament)'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 철판이 위에 무을 떠 바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부은 거울 같은 궁창(욥 37:18)‘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궁창은 8절에서 바로 하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궁창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금속판만을 가리키고 하늘이라는 또 다른 용어인 ’솨마임‘이라는 단어는 전체 하늘을 가리킵니다.
즉 6,7절에 나오는 궁창은 ‘솨마임’이라는 것으로, 결국 지구와 우주 공간의 분화 특히 지구 표면과 공기와 수분을 포함한 대기권의 분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6,7절은 궁창(대기권)이 생겨서 땅 위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갈랐고 또 그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며, 8절은 대기권과 우주 공간 전체를 가리킵니다.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물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 물은 후에 바다와 뭍으로 나누어질 때 한 곳으로 보이게 됩니다.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속에 떠 있는 수분, 즉 구름이나 수증기 등을 가리킵니다. 창조 당시의 대기권은 수분이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보는 근거가 됩니다.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6절의 궁창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창조 기사가 궁창 또는 하늘이라고 말한 것들이 결국은 대기권을 포함한 우주 공간 전체를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을 뜻하는 ‘솨마임(שׁמים)’은 복수 형태로 ‘하늘들’이라는 뜻인데, 이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삼층천(三層天)’ 개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후일 사도 바울의 간증에서 ‘셋째 하늘’이라는 말로 나타납니다(고후 12:2). ‘둘째 날이니라.’ 이틀간의 창조를 통하여 인간의 삶을 위한 기본적 시공간이 완성 되었습니다.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한 곳’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물을 일정한 범위에 제한하여 물의 경계를 정하였다는 뜻입니다(렘 5:22).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바다나 강물이 자기 영역을 벗어나 범람하여 육지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하셨는데, 시편 기자는 물의 경계를 정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시 104:6-9). 욥기에서 역시 이런 사실을 바다에 ‘문과 빗장을 채우신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욥 38:8-11).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땅은 물이 모여 있는 바다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마른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은 지구 전체를 지칭하는 2절의 땅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다(야밈:ימים)’는 ‘얌(ים)’의 복수로 여러 바다 즉 대양들을 가리키는 것보다는 강조법적 복수로 바다 전체를 가리킵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땅과 바다의 분리 현상을 땅이 바다 위에 그 터를 세웠다고 묘사했습니다(시 24:2). 여기 ‘바다’란 말 속에는 바라로 흘러 들어가는 많은 강물들과 바다의 파편과도 같은 숱한 호수들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창조 셋째 날 지구의 두 구성 요소인 땅과 물들의 모임인 바다의 경계가 구분되고 정리되어 지구의 모습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풀, 채소, 과목 이 세 가지는 지구상의 모든 식물군을 총칭하는 단순한 점층법적 표현입니다. 오늘날의 식물 분류법에 의해 분류한다면, ‘풀(데쉐:דשׁא)’은 양치류(羊齒類), 균류(菌類), 조류(藻類) 등 수꽃술과 암꽃술의 구별 있는 꽃은 없고 포자로써 번식하는 민꽃식물, 곧 은화식물(隱花植物, Cryptogamous Plants)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채소(에셉:עשׂב)’와 ‘과목(에츠 페리:עץ פרי)’은 일정한 성장을 한 뒤에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리고 씨가 생기는 현화식물(顯花植物, Phanerogamous Plants)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현화식물은 크게 나자식물(裸子植物, 겉씨식물)과 피자식물(被子植物, 속씨식물)로 나누어집니다. 동물을 지으시기 전 동물의 식물이 될 초목부터 창조하신 것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입니다.
풀은 ‘어리고 부드러운 풀’인데 29-30절을 볼 때에 식물은 크게 씨 맺는 채소,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로 분류되기 때문에 식물의 총칭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30절에 ’푸른 풀‘이라는 단어는 에셉(עשׂב)으로 본 절의 ’채소‘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식물을 크게 2종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각기 종류대로(레미네후:למינהו)’ 이 말은 구체적인 생물의 종류를 소개할 때 사용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실 때부터 각기 독특하게 구별된 모습의 범위 안에서 창조하셨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구체적인 구분으로 볼 때 어느 종(種)에 속하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한 종과 다른 종과는 구별되고 단절된 근본적 범위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적은 수의 생물의 기본 종류를 정하시고 그 기본 종류 안에서 무한한 개체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각 생물은 종의 범위를 넘을 수는 없으나 그 안에서는 서로 다양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은, 모든 생물이 각기 생물학적 종의 변천 과정을 거쳐 저급한 종(하등생물)에서 고급한 종(고등생물)으로 발전되었다는 소위 ‘진화론(Evolution Theory)'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 셋째 날은 최초로 식물이라는 생명체가 창조되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日字)와 연한(年限)이 이루라.
‘광명’은 3절의 ‘빛’과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마오르(מאר)’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빛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광명은 3절에서 이미 창조된 빛의 원리에 의한 것임이 원어상 증명이 됩니다. 3절의 ‘빛’이 에너지의 발산원리를 이용한 하나님의 1차적 창조라면, 여기 ‘광명’은 거기 담겨 있던 빛의 원리에 따라 2차적으로 창조된 발광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의 빛이 지구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전 우주적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본절의 광명은 보다 더 지구를 위한 고정적 빛 공급원으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절의 빛은 전 우주의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지만, 광명은 지구와 태양계에만 낮과 밤을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 이것들은 광명(해와 달)의 정기적인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자연현상들입니다. ‘징조(오토트:אתת)’는 ‘새기다, 표시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가지 현상들(signs)을 가리킵니다. ‘사시(모아딤:מועדים)’는 정하다는 말에서 나온 말로, 해와 달의 계속 적인 순환을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4계절(seasons)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철새들의 이동 시기(렘 8:7), 각종 절기나 기념일(시 104:19; 슥 8:19) 등에 적용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자와 연한(야밈 웨솨님:ימים ושׁני)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으로 계산되고, 시간 단위로서 곧 ’날‘(24시간)과 ’년‘(12개월, 365일)을 가리킵니다.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궁창에 고정되어 있는 두 광명의 일차적인 기능은 조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구 중심적인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과학이나 천문학에 배치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본 절은 단지 목적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지구가 전 우주에 비해서 엄청나게 작다는 외적 사실에 아무런 위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비록 우주의 한 톨 보다도 작은 지구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 그것도 인간을 중심으로 우주를 구성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큰 광명은 태양, 작은 광명은 달입니다. 태양은 달보다 크고, 달은 별보다 큰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천문학이 발달되어 해나 달보다 훨씬 더 큰 별이 많이 있지만, 성경의 이 표현은 지구를 중심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지구에서 볼 때 광명의 크기나 광도가 해-달-별의 순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기사는 과학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초월한 종교적 계시입니다. 과학에 일치되되 구애받지 않고 계시의 전달이라는 목적에 우성을 둔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는 성경이 객관적 사실이 철저하게 요구 될 때에는 그 어떤 과학의 분야보다 시대를 앞서서 더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쨌든 우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살게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관하게 하시고’ 여기에서는 해와 달이 각기 낮과 밤을 주관한다고 하는 것인데, 비인격체인 해와 달에게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 상 각각 낮과 밤을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17-19.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늘 궁창에 그 처소를 둔 해와 달과 별은 땅을 비추며 낮과 밤을 구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해와 달과 별의 역할은 지구 위의 생명체들을 보호하고 돌보며 그것들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본 절은 “물들은 살아 헤엄치는 것들로 우글거리게 하라.”는 뜻입니다. ‘번성케 하라’에 해당하는 원어는 “솨라츠:שׁרץ”는 수중의 숱한 생물들이 떼를 지어 헤엄쳐 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세월이 지나면서 번식하여 우굴거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각기 종류가 다른 물고기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한꺼번에 무수히 많아진 것입니다. ‘생물’(헤페쉬 하야:נפשׁ חיה)‘은 ’숨쉬는 생명체‘라는 뜻입니다. 생물은 살아 움직이면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날으라(예오페프:עו פף)’는 각종 새들이 궁창을 계속해서 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광활한 바다와 텅빈 창공에 무수한 물고기와 각종 새들로 가득 채우사 그것들로 약동하며 비행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입니다.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큰 물고기(탄니님:תנינים)’는 길게 뻗은 종류를 말합니다. 따라서 뱀(출 7:9), 악어(겔 29:3), 용(렘 51:34) 등으로 번역되고, 고대 가나안 신화 속에 나오는 어떤 괴물을 지칭하기도 합니다(욥 7:12; 시 74:13; 사 27:1; 51:9). 여기에서는 고래나 악어 같이 몸집이 크고 길쭉한 물짐승을 가리킵니다.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 피조물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복은 대개 자녀의 번성과 연관됩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 중 특별히 애정을 기울인 생명체에 그 생명의 보전과 아울러 증식을 통한 종족 보존의 복을 주심으로써, 당신이 사랑하는 생명체에 대한 계속적인 사랑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생육하고(파라:פרה) 번성하여(라바:רבה)’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지고, 풍성하게 증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단어를 사용하여 모든 생물들에게 생명의 보존력과 번식의 복을 주셨습니다. 한 번 생명을 창조하시고 방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생명이 보존되고 번식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신 것입니다.
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도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5절 참고
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이 말은 땅이 생산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속한 원료들을 이용해서 생명체를 만들고, 또 땅을 근거로 살아가야 할 생물들을 그 땅 위에 두셨다는 뜻입니다. 땅 위에는 이미 이들 생물들의 먹이로 쓰일 식물들이 창조되었기 때문(1:12)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에서 ‘육축(베헤마:בהמח)’은 일반적으로 집에서 기르는 가축을 가리킵니다. ‘기는 것(레메쉬:רמשׁ)’은 발이 없거나 또는 많은 발을 가지고 마치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동물들로 파충류나 곤충 또는 벌레들입니다. ‘땅의 짐승(하예토 에레츠:חיתו־ארץ)’은 당 위에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땅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야생 동물, 들짐승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짐승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30절에서 생존권만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번성하면 인간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벽한 합력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2절에 나타난 성령의 활동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음을 분명히 밝히 요 1:2,3과 골 1:16에 의해서도 입증이 됩니다. ‘형상(첼렘:צלם)’은 구체적인 닮음으로서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모양(데무트:דמות)’은 추상적인 유사성으로 영적이고 도덕적인 본성으로 보았습니다. 성경의 일반적 용례상 형상(image)과 모양(similitude)은 상호 융통성 있게 사용되는 단어로 엄밀히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전인격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의 영향 아래 지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피조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와 사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영혼의 지, 정, 의가 하나님의 인격 구조를 모델로 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인간의 눈에 드러나는 외형적 형체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서의 권위와 장엄함이 드러나도록 꾸며졌습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사람(아담:אדם)은 흙(아다마:אדמה)과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로, 이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명칭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 근본이 흙이라고 하는 보잘 것 없는 것에서 태어난 사실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받들어 섬겨야 할 것입니다. 아담은 보통 명사로서 인류 전체를 가리키며, 고유 명사로서는 첫 사람 아담을 가리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를 가리키지 않고 보편적 남성과 여성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은 창조의 순서상 질서의 관점에서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그 뒤에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며 동등하지만 질서의 창원에서만 여자의 머리는 남자인 것입니다(고전 11:30).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복을 주신 것과 동일하게 인간에게도 복을 주셨지만 그것은 질적으로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 동물들에게는 일방적인 명령 형식으로 주신 반면에 사람에게는 대화라는 형식으로 주셨습니다. 22절을 보면 ‘이르시되’라는 표현 즉 동등한 입장에서 말씀하셨다는 전제적 표현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만 인격적인 교제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에게는 그 자신이 복을 받은 것에서 나아가 다른 존재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지워진 책임으로 천지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림에 있어 하나님의 뜻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사람은 최초 에덴동산에 거주할 때에 각 종류의 채소와 과일만이 식물(食物)로 주어졌습니다. 결코 ‘피흘림’을 수반하는 육식 행위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육식이 허용되는 시기는 노아 홍수 사건 직후의 일입니다(창 9:3). 물론 타락 이후 인간의 죄악으로 그 어간에 육신이 행해지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홍수 이후에 육식 규정은 육신을 허락하는 의미보다 육신은 허락하나 피를 먹지 말라는 금지 규정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들에게도 채식만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의 대표인 인간의 타락 이후 영향이 동물들에게도 미쳐 육식을 하는 동물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후일 이사야 선지자는 대망의 신천 신지를 소망하면서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사 11:7; 65:25)란 말로 피 흘림이 없는 낙원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평화는 인류의 영원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최종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이룩되는 것입니다.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이 말은 “보라! 얼마나 좋으냐!”라는 뜻입니다. 6일간의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이 한 점의 흠도 없이 완벽하게 창조되었고, 모든 피조물들은 너무나 보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 크게 감탄하시며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완벽하게 창조 된 태초의 세계는 이후 인간의 타락과 함께 썩어짐의 종노릇하며 탄식하게 됩니다(롬 8:19-21). 하지만 둘재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재창조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단장된 아름다운 새 세계의 도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계 21:1).
출처: 행함과 믿음
첫댓글 5월입니다 지난달 4월 월세(임대료)를 내야하고
공과금을 내야 하는데 못내고 있습니다
급한사정...후원이 없습니다
공과금을 하나도 못냈습니다
후원이 없으니 카페도 운영하기가
어려워 근심만 하고 있습니다
카페지기에게 용기를 주시길 바랍니다
먹을것 반찬도 없습니다 후원이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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