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탕(湯)의 노래 -
文霞 鄭永仁
사우나에 갔다.
목욕탕에 가면 다 자기 나름대로 목욕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친구는 주로 온탕에서만,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쭉 빼야 한다고 하고, 주로 안마탕에서 거시기 물마사지만 주로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각종 탕(湯)을 순례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스타일이다. 물론 노래는 대부분 흥얼거린다. 가끔 혼자 있으면 내 귀에 들릴 정도로 불러 제킨다. 그렇다고 내가 노래를 잘 불러서, 혹은 노래를 배우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다. 뜨거움을 참기 위해서 나는 괴발개발 노래를 부른다. 사실, 나는 박치다. 꼭 반 박자 정도 늦기 때문에 집사람과 노래방이라도 가면 지청구 받기가 다반사다. 박자가 틀린다고……. 거기다가 소리만 고래지 지른다고 야단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참을성이 무척 적은 편이다. 더구나 잔나비 띠라서 그런지 더욱 그런가 보다. 돌아가신 선친(先親)께서는 가끔 나에게 “넷째는 머리는 좋은데, 근(根 )이 없어서 탈이다.” 말씀하시곤 하셨다. 선친께서는 일찍이 넷째 아들이 끈기 없음을 은근히 충고하셨나 보다. 그나저나 아버지의 유지(遺旨)를 아직까지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늘그막에도 참을성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사우나는 온탕1, 온탕2, 열탕1, 냉탕1, 냉탕2, 안마탕1, 사우나2개이다. 사우나는 건식사우나와 습식사우나이다.
제일 먼저 온탕1(40°C)이다. 느긋하게 몸을 덥히면서 요즘 배운 진성이 부른 「안동역에서」를 흥얼거린다. 한두번쯤 반복하면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다음에는 온탕2(43°C)로 옮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즐겨 부르는 고(故)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부부의 이야기」를 구성지게 부른다. 이 노래는 여가수 아이유도 좋아하는 노래다. 그 노래 가사 중에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작금의 내 나이 때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욱 살가운 노래로 다가온다. 두 번만 부르면 한 7~8분은 족히 지나는가 보다.
다음에는 정말 용기를 내야하는 열탕1(47°C)이다. 온탕2와 3~4도 차이인데 엄청 겁나게 뜨겁다. 마음이 겁을 집어 먹어서 그런가 보다. 이곳에서는 가장 짧은 노래, 가왕(歌王) 조용필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을 흥얼거린다. 노래가 나도 모르게 빨라진다. 두 번쯤 끝나면 후다닥 뛰쳐나온다. 옆에서 한 친구는 그런 나를 가소롭게 쳐다보는 것 같다. 이 친구는 작달막하고 다부지게 생겼는데, 열탕1(47°C)와 냉탕2(8°C)만 마치 쥐가 풀방구리 드나들 듯 두 곳만 왔다갔다 한다. 누구 놀리듯이……. 몸피가 시뻘개지도록 분탕질을 한다. 그 친구는 그러고서 나간다. 그 뜨거운 열탕에서 느긋하게 오래도록 앉아 있는 위인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까지 들 정도이다.
그 다음에는 안마탕에 가서 느긋하게 자리 잡는다. 여기서는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이나 최성수가 부른 「동행」이 주제가가 된다. 시월이면 ‘잊혀진 계절’이 제격이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옆에는 황혼 길에 깊숙이 접어든 노인네가 엎드려 거시기에 안마를 줄곧하고 있다. 별로 써 먹을 힘도 없어 보이건만, 하기야 아무리 노인네라도 문턱 넘어갈 힘만 있어도 거시기를 써 먹으려도 한다니……. 그 모습을 보면 나까지 괜스레 처연해 진다.
다음 관문은 제일 난코스다. 92°C 건식사우나이다. 옆의 습식사우나는 디지털 온도계가 55°C를 가리키지만 천식기가 있는 나는 여간해서는 그곳에 안 들어간다. 냉수로 수건을 적셔서 머리에 뒤집어쓰고 백전노장(百戰老將)은 그 뜨거움 속으로 돌진한다. 이곳은 수증기의 대류 원리에 의해 바닥으로 갈수록 덜 뜨겁고 위로 갈수록 더 뜨겁다. 이곳이 진짜 참을성의 싸움이다. 여기서 부르는 ‘탕(湯)의 노래’는 가장 길어야 한다. 부르는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다.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부른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다. 내가 유일하게 5절까지 완창(完唱)할 수 있는 가장 긴 노래다. 이 노래를 5절까지 한 바퀴 돌리면 5분정도 소요된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 ~ ~, 차마 꿈엔들 잊힐리아”
이 건식사우나는 새벽에 가면 손님이 없어 비어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때만은 건식사우나실은 내 전용 노래방으로 둔갑된다. 방음이 아주 잘된……. 혼자서 미친 놈처럼 커다랗게 신나게 불러 제킨다. 더구나 하울링이 잘 되어서 내 노래에 내가 취하고 만다. 일종의 나르시즘이다. 이때부터 탕의 노래는 그리움을 가득 담아 부른다. 어린 시절, 시골 고향집, 어머니를 임종(臨終), 붉은 저녁 노을빛 안방을 길게 드리울 때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나와 한 분이던 누나 앞에서. 알토란같던 육남매 눈에 밟히셔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엄마 같던 누이도 작년에 엄마 따라 가셨다.
두 번쯤 구성지게 부르면 한 10분쯤 훌쩍 지나간다. 또 참고 견디다보면 배둘레햄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건식사우나에서 나와 직행하는 곳은 냉탕1(19°C)이다. 이곳도 여느 사람들처럼 풍덩 뛰어들지 못한다. 냉수를 온몸에 끼얹어 몸에 알린 다음에 서서히 냉탕1에 입수한다. 여기서는 서서히 걸어 다니면서 동요 「겨울나무」를 비장하게 부른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어렸을 적 웅덩이에서 배운 수영실력개헤엄 물장구를 친다. 내가 아는 유일한 영법(泳法)이다. 일종 견영(犬泳)이라고 내가 명명했다. 외손녀는 온갖 영법(泳法)을 다 배웠다고 야단인데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꼭 가르쳐야할 것이 있다. 생명에 관한 것이면 꼭 가르쳐야 한다. 특히 수영은…….
냉탕2(8°C)는 아직껏 한 번도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다만 발만 슬쩍 담가 보았을 뿐…….
다시 마무리는 안마탕에서 한다. 이때 부르는 ‘탕의 노래’는 설운도가 부른 「누이」다. 작년 10월에 단 한 분뿐인 누이가 돌아가셨다. 육남매 중 맨 위, 육남매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와 막내에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이 노래만 부르면 나는 눈물이 글썽거려진다.
이젠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오지 못할 그 먼길을 떠났다. 누구나 가야 할 그곳으로…….
개천에서 용 난 셈이다.
어렸을 적, 목욕이라고 하면 여름 한철 웅덩이나 냇가에 가서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아버지가 구해온 커다란 일본식 전용 목욕솥 덕분에 구정이나 추석에 목욕 대목을 보기도 했다. 그 목욕솥은 어른이 들어가 앉아도 목까지 물이 잠길 정도로 깊었다. 그 목욕솥에다 물을 데워서 어른들 순서대로 목욕을 하였다. 솥 밑에서는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때를 건져내고 나이 차례대로, 제일 꽁찌인 나와 동생이 할 때면 목욕물은 시커먼 땟국물이 되었다. 나중에 엄마가 바가지로 뜨신 물을 머리부터 부어줄 때가 제일 따듯하고 개운하고 행복했었다.
그런 촌놈이 주말마다, ‘탕(湯)의 노래’를 부르면서 목욕을 하다니…….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