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외쳤던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와서 '인권 감수성'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새삼 놀랐다. 나의 인권 감수성은 과연 얼마나 높을까? 오늘 수업 중에도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이 있었다. 교수는 매번 "~생각해 보세요." 라는 말을 많이 하였다. 생각해 보면 난 인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한 감수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동정심이 순간순간 생길 뿐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난 그것으로 부터 눈을 돌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수록 점점 감수성은 무뎌져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수업은 힘들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내가 사는 국가가 이리도 문제가 많을까? 이런 아비규환같은 사회 속에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난 내가 나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 길을 가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의문이다. 인권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연히 주어지는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오늘 그 누구의 말처럼 그게 내 일이 아니고 내 주변의 일이 아니면 '어느정도하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 반성해 볼 일이다. 그리고 이젠 안일함이나 편안함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위, 이념, 종교 등을 다 빼고 정말 중요한 거!. 약자가 좀더 살기 편한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수업 시간 내내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 말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한 관직자가 교황에게 중립적인 입장을 위해 노란리본을 떼어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할 때, 교황은 "아픔에 중립은 없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중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러면 왠지 무지 교양있고 편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가 보다. 하지만 한 편이 아픔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는 중립이라는 것에는 평등이라는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승희(201345-363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