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제주라고 말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틈만 나면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
제주의 이국적 정서와 화산채, 검은 현무암 덩어리를 보기위해 떠난다.
요즘은 외국인들이 제주에서 판을 친다.
한 때 일본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이젠 중국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들끓는다.
제주의 자연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마력으로 작용했을까.
며칠 전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를 다녀왔다.
사실 이 지역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철망이 쳐져 있어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이었다가 해제된 지역이다.
그러다보니 해안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 거다.
이 지역에서도 오래전 화산작용이 있었던 거다.
푸른 바다와 인접한 해안에 검은색 용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자리 잡고 있다.
난 순간 제주를 잘못 찾아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흡사 제주와 똑같았다.
아마 외국인들에게 여기가 제주라고 해도 그들은 의심 없이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거다.
뭍을 벗어나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외로운 돌 하나,
그 위에 작은 소나무가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돌 틈새로 뿌리를 내리다 못해 돌에 붙어서
굵은 동아 밧줄처럼 사리를 내리고 있다.
해풍에 맞고 파도에 쓸려서 마디마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한참을 바라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평생 일만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손마디가 저 소나무와 같았던 기억이 돋아났다.
그려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흔적들이 훈장처럼 매달려 있는 거다.
이는 인내심 부족한 인간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게다.
오늘도 바위 면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잘났다고 우쭐되는 인간들 보라고 버티고 있는
가르침의 소나무로 살아 있는 거다.
난 이 외로운 돌을 보고 ‘외돌개 2’라고 명명해주었다.
어쩜 제주의 외돌개와 이토록 닮았을까.
이는 지역의 특성이 만들어낸 것일 게다.
이곳 읍천리도 오래전 수중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마그마 불기둥이 솟아올랐을 테고
그 과정에서 찬 공기와 바닷물이 만나면서 급속히 냉각 되는 순간
현무암과 다양한 절리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을 가보자.
제주에 가면 내노라하는 주상절리가 있지만
이곳 주상절리만의 독특한 모양새에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어쩜 자연의 재조는 이토록 예술가의 천성을 갖고 있는 걸가.
둥근 원목을 톱으로 잘라서 쌓아 놓은 듯이 질서정연하게 층을 이루고 있다.
나무를 발매하여 운반을 위해 일시적으로 쌓아 놓은 통나무 무지 같다.
크기와 굵기 마저 동일하다. 누가 줄자로 재서 만든 걸가.
난 이곳을 ‘원목형 주상절리’로 이름 지으련다.
원목형 주상절리를 지나 또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젠 여인네들이 모여서 오줌을 싸는 모양이다.
주름치마를 들어서 펼쳐놓고 벌건 엉덩이가 보일까 수줍은 채 순식간에 쏟아내는 오줌줄기는
한 여름 소낙비가 내리는 것 같다.
여름철 소낙비를 세차게 맞으면 실오라기 옷들은 살갗에 붙어 척척 감기며 요염한 나체가 되듯이 말이다.
갑자기 불어온 해풍은 여인들의 주름치마를 번쩍 들어 올려 감추려 했던 샅을 드러내고야 만다.
난 이곳을 ‘여인네 주름치마 주상절리’라고 부르고 싶다.
몽돌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옹기종기 모여서 화롯불에 젖은 옷을 말리려고 모여든 해녀들의 불덕 같다.
불뚝 불뚝 솟아오른 수직형 주상절리는 크지는 앉지만 난쟁이 같다.
난쟁이들이 몽돌로 공놀이하기 위해 아장아장 걸어와 묘기공연을 앞두고 회의를 하는 모양새다.
규모는 작지만 서로 모여 있는 것이 아름답다.
그 옆에는 공연에 지쳤는지 무작정 들어 누워 있는 형상이다.
곧 읍천 앞 바다는 난쟁이들의 공연장인 가보다.
갈매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난쟁이들의 배꼽 위에 올라앉아
이젠 자장가를 부르는지 조용해졌다. 난 예를 ‘난쟁이주상절리’로 부르리라.
마지막으로 간 곳에서 난 까무러졌다.
해녀들은 작은 물길로 들어온 바닷물을 사방으로 퍼서 흩어낸다.
물질을 하다가 그들은 지친 나머지 사방으로 흩어져 누워있다.
그리곤 굳어버린 채 일어날 줄을 모른다.
힘 쎈 파도가 밀려와 이곳에선 잠잠해진 채로 하얀 포말만 남기고 조용히 떠나간다.
깨어나라고 파란 바닷물이 다가와 속삭이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굳어버린 지 수 백 년이 지났다.
지금에 와서 보니 사각형의 기둥들이 제 크기에 맞추어 부채꼴로 반원을 그리며
서로 팔짱을 끼고 누워 있는 거다. 그 위로 맑고 파란 해수가 들락거리며 목욕을 시켜댄다.
굳어버린 해녀들은 반짝반짝 윤을 내며 내리는 햇살을 받아낸다.
작은 물길로 들어오는 파란 해수와 부서져가는 하이얀 포말,
파란 하늘에서 내리는 햇님의 은총이 한곳에 모여져 부채꼴 주상절리는 빛내고 있는 거다.
주상절리군을 만나면서 경주에도 제주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제주가 딸을 이곳으로 시집보내면서 살림을 낸 건가.
그 바람에 제주와 읍천리는 이웃사촌이 되어 진 거다.
그래서 이젠 읍천리 주상절리군도 천연기념물이 되고 말았다.
이젠 방문객들이 스스로 가꾸고 보호하여 후대에 고스란히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첫댓글 좋은 수필의 5가지 중 지적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요소가 깃든 작품이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