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산은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 정상을 둔 거창의 진산(鎭山)이다.
삼봉산은 덕유산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있는 덕유 원봉(元峰)이라 하는데
이는 곧 덕유의 맏형 되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무주읍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38km지점에 위치한 삼봉산은 해발 1,254m의
거봉으로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붙인 명산이다.
그 중심 봉우리는 흡사 동구 앞 돌무지 탑 같고 먼 데서 바라보면 흡사 피어나는
연꽃 모습 같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부를 만큼 산 경치가 빼어났으며, 가뭄이
들 때면 삼봉산 금봉암에 있는 용머리 바위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산기슭 좋은 터에 금봉암이라는 절이 있다. 절과 산 모두가 나한도량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다. 이 산은 불심, 산심, 무심의 삼심이 깃들고 금봉암을
둘러리한 바위 무리들은 병풍처럼 둘려쳐 봉황의 산세를 이룬다. 칼바위, 장군
바위, 석불바위, 부부봉, 문바위, 투구봉, 용바위, 노적봉, 칠성봉 들이 모두 셋씩
나란히 짝을 짓는다. 세 개의 영험스런 바위 샘물이 솟아나 목을 축일만한 데 모두
신령스럽고 영험스런 샘물이라고(석불바위 뒤 숨어 있는 샘은 피부병에 좋으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샘이고, 용바위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하며, 천지인을 우러른 삼신사상과 인연이 깊다.
덕유산으로 달리는 큰 줄기에서 동쪽으로 내린 가지에는 시루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 골짜기는 금이 난다. 정상의 줄기에는 밑둥이 큰 떡갈나무들이 주종을 이루며
특히 겨울의 눈꽃이 볼 만하다. 산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갓파르고 낙석의
위험이 있는 칼바위 쪽으로 올라 바위 굴샘을 거쳐 억새능선을 타고 오르는 코스
와, 삼성각 오름길에서 북쪽 용바위 용굴을 비켜 오르는 능선길 코스가 있는데
8㎞에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금봉암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남도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삼봉산에 자리한
고찰이다. 예로부터 관음기도도량 널리 알려졌으며, 1905년 금빛 봉황새의 점지로
중창되었다. 금봉암이 자리한 삼봉산은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산으로, 거창의 진산(鎭山)이다. 봉우리마다 숱한 전설이 전하며, 그
가운데 용바위 용굴샘은 효험 높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 금봉암 :
금봉암은 삼국시대에 창건된 절터에 1905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청송 심씨 부인이 세운 절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청송 심씨가 풍수가
잡아준 지금의 절 자리에서 원을 세우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가마솥 뚜껑 덮인
장수 샘물을 마셔가며 백일동안 단식기도를 드렸다 한다. 기도가 끝나던 날
이상하게도 어느 곳에서 날아 왔는지 알 수 없는 황금빛 새가 날아와 기도처를
세 번이나 돌고 난 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데, 청송 심씨는 영험을 느껴 그
뒤 이곳에 절을 짓고 금봉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그 뒤의 역사는 제대로
전하는 것이 없고, 근래에 청우 스님이 주석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하였
다.
이 절에는 이름난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다. 금강
을 이루는 뾰족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은 저마다 각기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금봉암 뒤에 보이는 석불바위는 스님이 장삼 입고 고깔 쓴 모습이며, 그 위에
장군바위와 높이 80m에 달하는 칼바위가 있다. 또 그 주위로는 투구봉․ 용바위․
노적봉․ 신선봉․ 부부봉 들이 병풍을 친 듯 둘려 있다.
요사 뒤에도 용바위가 있다. 용굴에서 내려와 얼굴을 쑥 내민 듯한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위에 있는 용머리가 옛날 거창 부사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봉암은 영험한 나한도량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세 개의 샘이
자랑거리로 이름나 있다. 석불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은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샘이고, 용바위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 금봉암은 지금부터 1,200여년전 지금의 요사채 대 중방 자리에 사찰이 있었으나,
큰 수해로 파손되어 수백년동안 지나 왔습니다.
그러다가 합천 해인사 여신도이신 청송심씨 부인이 약 170여년전 지관(풍수)을
대동하여 암자 자리를 잡기 위해 삼봉산 전경을 두루 탐험한지 십여일만에 지금의
현 위치인 금봉암 자리에 터를 잡아 절을 창건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초목은
우거지고 보이는 것은 하늘의 별뿐이요, 험한 이 곳에 산신께 백일 기도를
하던중 쌀 3되를 가지고 와서 일주일에 한번씩 산신께 미지공양을 올리면서
거의 단식을 하다시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혼미하여 기진맥진 하던중 산신령이 동자를
시켜서 삼봉산 정상 용굴 아래 쇠 소두방뚜껑을 열고 약수를 떠다 먹이니 이상
하게도 힘이 솟고 정신이 맑아져서 백일기도를 무사히 마치고 마을로 내려 가려고
하는데, 찬란한 아침 태양이 삼봉산 봉우리 위에 비쳐지는 그 순간을 이름 모르는
금새 한마리가 날아와 기도소에 앉았다가 다시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내려
오기를 3번이나 반복하였다.
하도 기이하여 청송심씨 부인은 회 향을 마치고 내려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던 중 산신령이 나타나서 "여봐라 청심여야 !
무엇을 망설 이는가 ? 그 옛날 이 곳에 절이 있었느니라 현재 기도자리는 수해로
산이 무너져 내린 자리니라, 이 자리에다가 절을 창건하게 되면 제2의 창건주요,
후대에 가면 중생들이 하늘의 구름처럼 이 곳을 찾을것이며, 이 도량은 나한도량
이라 중생들의 소원을 성취하리라".며 말하고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해서 여자의 몸으로 도저히 계획이 서지않아 관내 면장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원
한바 고제면 각 마을 주민이 절 창건에 몸 시주를 하여서 조그마한 토굴암자를
창건하였다 합니다.
절이 창건된 연도가 1,800년 4월에 금빛새가 세번 상봉에 왕복을하였다 하여
석삼자(三), 봉우리 봉자(峰), 삼봉산이요. 금빛새라하여 쇠금자(金), 새봉자
(鳳), 금봉암이라 이름하였다 합니다.
수십여년 종단 가입없이 있다가 1967년 김덕봉스님이 조계종 해인사에 등록을하여
종단의 말사로 행사 하였다 합니다. 교통도 불편하고 너무 깊숙이 선사가 자리잡
고있어 여러스님께서 이곳 금봉암 주지로 오시었지만 사찰이 빛은 못보고 한때
여러번 절이 비어 있었다 합니다.
그러던 중 현 지주인 청우스님이 1979년 5월에 금봉암에 입사하여 15년간 길을
닦고 대웅전을 중창하여 신도대중이 혼합일체가 되어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감내
하면서 불사를 하던중 본면 출신인 재일교포이신 신해성 사장님께서 많은 보시를
하여 불사에 큰힘이 되었다 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력과 원력없이 어찌 금봉암 불사가 이루워졌겠습니까?
특히 현 주지인 청우스님께서 불사를 하던중 우여곡절과 파란도 많아 고통과
시련에 빠져있는 때에는 어김없이 꿈에 나한님들이 나타나서 모든 불사에 힘과
원력을 주었습니다.
또한 모든 불사를 지시하여 어려움이 풀리곤하여 나한님의 고마움에 오백
나한불사를 하였다 합니다.
금봉암은 누구든지 극한 정성으로 발원하면 소원은 성취한다 합니다.
금봉암을 찾는 대중이시여 ! 고달프다 안된다 하지말고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여 보소서. 다같이 소원성취 성불의 대비 범비에 젖을
것입니다.(주지스님 글)
6. 산행 사진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