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은 가봤을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면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으로 이어
지는 부처님 나라가 펼쳐진다. 청운교와 백운교 옆 연화교와 칠보교에 오르면 대웅전과 담장 하나
를 사이에 두고 극락전이 자리 잡았다. 극락전 앞에는 탑이 아니라 금빛 돼지상이 있다.
그 아래 ‘극락전 복돼지상’이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천년 고찰에 복돼지상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만들어진 데는 사연이 있다.
돼지 조각이 숨어 있는 극락전 현판
지난 2007년 초 극락전 현판 뒤에서 자그마한 돼지 조각이 우연히 발견됐다. 불국사가 처음 문을
연 통일신라 시대부터 천수백 년,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극락전이 다시 지어진 1750년부터 따져도
250년 넘게 숨어 있던 돼지 조각이 발견된 일은 큰 화제를 모았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찾아와 복을 빌었고, 불국사에서는 ‘극락전 복돼지’라는 공식 이름을 지어주
고 기념 100일 법회를 성대하게 열었다. 현판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복돼지를 누구나 쉽게
보고 만질 수 있도록 극락전 앞에 자그마한 복돼지상까지 만들었다.
복돼지상은 외국인 관광객의 기념 촬영 명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불국사에는 극락전 복돼지를 보기 위한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외국인 단체 관광객은 반드시 들러 사진을 찍는 코스가 됐다. 극락전 앞에는 깃발을 든 가이드의 설명에 가볍게 탄성을 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복돼지상을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복돼지상을 만지며 복을 비는 내국인도 줄을 잇는다. 2017년에는 로또 당첨자가 “불국사 극락전 앞 복돼지를 쓰다듬고 현판 뒤에 있는 진짜 복돼지에게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다음 극락전으로 들어가 108배를 올리고 로또에 당첨됐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돼지 조각에 뾰족한 엄니가 드러나 멧돼지처럼 보인다.
복돼지상에서 기념 촬영을 한 사람은 극락전 현판 뒤에 숨은 돼지 조각을 찾아보기도 한다. 현판
뒤 기둥을 받치는 공포(栱包) 위에 있는 돼지 조각은 뾰족한 엄니가 드러나 멧돼지처럼 보이는데,
자그마해 사뭇 귀엽다. 보통 사찰의 공포 위에는 조각이 없거나, 있더라도 용이나 봉황 등을 새기기 때문에 돼지가 발견된 것은 희귀한 일이다.
극락전 회랑에 소원을 매단 연등이 가득하다.
복돼지가 발견된 극락전은 서방의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곳이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아미타불의 서원 중에는 ‘모든 것에 만족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있단다. 극락전 복돼지 안내문에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극락정토의 복돼지는 부와 귀의 상징인 동시에, 지혜로
그 부귀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만족한 삶은 풍요로운 의식주와 더불어 욕심의 끝을 알아 스스로 절제하라는 경계의 뜻도 있다.
극락전에 모셔진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러니 복돼지상을 만지고 현판 뒤의 돼지 조각까지 봤다면 극락전에 들어가 아미타불도 뵙고 가시길. 아미타불 앞에서 두 손 모으고 복을 빌며 스스로 모든 것에 만족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가르침을 새겨도 좋을 듯하다. 극락전에 모셔진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은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꼽힌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고 세련된 통일신라 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삼존불의 좀 더 남성스러운
모습과 비교해도 재미있다.
석가탑과 다보탑이 자리한 대웅전 앞마당
복돼지를 보러 많은 이들이 찾는다지만, 불국사에서 가장 붐비는 장소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들어선 대웅전 앞이다. 언제 봐도 화려한 다보탑과 비율이 아름다운 석가탑은 무르익은 통일신라 불교예술의 백미다. 이어지는 대웅전과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나한전 등 전각마다 모셔진 불보살도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시니 시간이 허락하면 한 분 한 분 뵙고 인사드려도 좋을 듯하다.
신라역사과학관 지하에 있는 석굴암 모형
불국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신라역사과학관은 이름처럼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에 숨은 과학적
원리를 보여준다. 특히 지하에 있는 석굴암 모형은 외관과 내부 구조, 지붕과 감실 등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석굴암의 과학적 원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석실을 만든 다음 돌을 쌓아 완성한 제작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천마총 내부를 관람하는 사람들
신라 고분 중 가장 큰 황남대총
불국사와 신라역사과학관을 보고 짧은 겨울 해가 지기 시작하면 경주 시내로 발걸음을 옮기자.
저녁이면 조명이 아름다운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시내에 있는 유적지는 보통 10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경주 시내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경주 대릉원 일원에는 크고 작은
고분 수백 기가 있다.
그중 유일하게 내부까지 볼 수 있는 천마총과 신라 고분 중 가장 큰 황남대총은 놓치기 아까운 유적이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조성된 쌍분으로 길이 120m, 높이 23m에 이른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5만 800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물에 비친 궁궐의 야경이 환상적인 동궁과 월지
조명을 받은 첨성대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물에 비친 궁궐의 야경이 환상적인 경주 동궁과 월지는 대릉원에서 걸어갈 수 있다. 신라의 별궁인 동궁은 왕자가 거처이자, 귀한 손님을 맞이한 장소다. 조선 시대 이후 폐허가 되어 안압지(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로 불리다가, 일부가 복원되면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경주시는 장기적으로 동궁을 전각 수십 채가 들어선 원래 규모로 복원할 계획이다.
〈당일 여행 코스〉
불국사 복돼지→불국사→신라역사과학관→경주 대릉원 일원→경주 첨성대→경주 동궁과 월지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불국사 복돼지→불국사→신라역사과학관→경주 대릉원 일원→경주 첨성대→경주 동궁과 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