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등극[왕상 1장]
[내용개요]
본장은 다윗의 활약상에 대한 기록인 사무엘서에 이어 이제 어떻게 해서 그 같은 다윗의 통치가 끝나고 솔로몬의 새로운 통치가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장이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 건설의 위업을 달성한 역전의 용사이자 성군인 다윗도 늙고 쇠약해져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1-4절). 그 와중에서 아도니야가 제멋대로 이스라엘의 왕을 자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5-10절). 이에 나단과 밧세바가 그 부당성을 다윗에게 고하자(11-27절), 다윗은 그 즉시로 자신의 후계자로 솔로몬을 앉혔고 이로써 아도니야의 모반 음모는 완전히 분쇄되고솔로몬의 통치가 막을 열게 된 것이다.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본장의 격동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비록 표면에 등장하지는 않으나 이 사건의 참된 주인공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강 해]
본장은 다윗 왕을 이은 솔로몬 왕의 즉위와 그 전후의 사건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솔로몬이 다윗 왕의 서거 이전에 왕으로 등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즉 아도니야의 모반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들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성취되어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1. 다윗의 말년
1) 노쇠한 다윗 왕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성장시켰던 다윗 왕은 70세를 전후로 건강이 심히 악화되어 자신의 몸의 열기조차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복들은 결혼하지 않은 건강한 처녀를 구하여 다윗 왕을 성심 성의껏 수종들도록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a. 노쇠한 다윗 왕(대상23:1)
b. 다윗의 통치 연대(대상29:27)
2) 다윗을 수종 드는 아비삭
그래서 다윗 왕의 신복들은 건강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처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잇사갈 지파 영토 내에 있는 다볼 산기슭 근처의 성읍 수넴에서 아비삭이라는 처녀를 찾았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아도니야가 반하여 아내로 삼고자 했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비삭과는 동침치 아니하였는데 이는 다윗 왕이 쇠약해졌기 때문입니다.
· 수렘 여인 아비삭의 운명(왕상2:17)
2. 아도니야의 음모
1) 아도니야의 모반
다윗 왕의 총애를 받던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 왕이 점차 노쇠해지자 스스로 왕위 찬탈을 노리고 주도 면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의 충복이었던 군대 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자기네 사람으로 이미 포섭하였고 소헬렛돌이라는 곳에서는 궁중의 모든 요인들을 초청하여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물론 솔로몬과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이 향연을 통해 왕위 찬탈에 동조할 주역들의 결속을 다지고자 하였습니다.
a. 학깃의 아들인 아도니야(삼하3:4)
b. 군대 장관 요압(삼하2:13)
2) 나단과 밧세바의 책략
나단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눈치채고 이를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다윗에게 찾아가 솔로몬에게 악속했던 과거의 일들을 상기시키면서 다윗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매듭 지어 달라고 간접적으로 요구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국이 솔로몬을 통하여 계승되어지리라는 언약을 받은 바 있었기에 위급한 상황 속에서 민첩하게 대처하였던 것입니다.
a. 다윗에게 주신 말씀(삼하7:12)
b. 솔로몬에 대한 언약(대상22:9)
3) 다윗의 맹세
다윗은 밧세바와 나단 선지자를 통해 현재의 위급한 상황을 전해 듣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였습니다. 그 맹세의 내용은 '나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는 확고 부동한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밧세바는 최고의 경의를 표하면서 의로운 판단을 내리신 왕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윈하였습니다.
· 왕께 대한 경의(느2:3)
3. 솔로몬 왕의 등극
1) 다윗 왕의 지시
다윗은 즉각적으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그리고 군인인 브나야를 불렀습니다. 다윗은 이들에게 솔로몬을 자신의 노새에 태워 기혼 샘으로 가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울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때 이 기혼 샘 맞은편 쪽에서는 아도니야가 베푼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 곳에는 선지자사 없었습니다. 이는 솔로몬에게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동참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a. 기름부음(삼상10:1)
b. 양각 나팔 소리(삼하15:10)
2) 기름부음 받은 솔로몬
다윗의 지시대로 사독과 나단, 그리고 브나야는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사독은 왕과 제사장들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용했던 기름 뿔을 가져 와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렇게 기름을 부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지도자에게 성령이 임하여 주의 능력을 소유케 되었음을 상징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양각을 분 것은 만방의 지도자로 기름부음 받았음을 알리는 행위였습니다. 이로써 드디어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솔로몬이 등극하였습니다.
a. 기름부음 받은 다윗(시89:20)
b. 기름부음 받은 솔로몬(대상29:22)
3) 아도니야의 두려움
솔로몬의 등극 소식은 요나단을 통해 아도니야 진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죽음을 두려워한 초청객들은 재빨리 도망하였고 아도니야도 겁에 질려 성막으로 도망가 성막 뜰에 있는 놋 제단의 뿔을 잡고 솔로몬의 자비를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제단 뿔을 잡는 것은 용서해 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솔로몬 왕은 충성된 신하가 되라는 조건하에 아도니야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a. 제단 뿔(출27:2)
b. 용서(삼상14:45)
결론
지혜의 왕인 솔로몬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언약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다윗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의 통치는 아도니야에 대한 용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작된 것입니다.
[단어해설]
2절. 봉양하고. 원어<tn<k,=s:소케네트,>는 '일하다, 친숙하다'라는 뜻의 동사 <@k's;:사칸>에서 유래된 말로 환자 곁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는 행위를 가린킨다.
5절. 스스로 높여서. 원어 <aCen"t]mi:미트나세>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교만한 행위 또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위를 말한다.
14절. 증거하리이다. 원어 <alem;:말라>는 '채우다, 가득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말한 것이 확실히 이루어짐을 보증하는 것을 말한다.
25절. 만세. 원어 <yjiy]:예히>는 '살게 하소서'란 뜻으로 고대 근동에서 왕의 즉위식 때 왕을 찬양하고 그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기원문으로 사용되었다.
33절. 나의 노새에 태우고. 다윗이 솔로몬을 공식적인 자기 후계자로 인정함을 의미한다.
34절. 양각을 불며. 왕이나 제사장의 즉위식 때 부는 나팔로 여기서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41절. 함께한 손들. 왕위를 빼앗기 위해 아도니야가 연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신학주제]
솔로몬의 즉위.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들의 즉위 장면에는 거의 공통된 요소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로 구성되는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 모든 백성이 각 왕의 즉위를 기뻐하였다. 둘째, 모두가 제사장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셋째, 하나님과 왕과 백성들 사이에 언약 관계가 이루어졌다. 넷째, 특히 이들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이 명시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러나 본장에 나오는 아도니야의 즉위 장면을 보면 명백히 위의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어디에도 그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으며 하나님과 그 사이에는 어떠한 형태의 언약 체결도 없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솔로몬은 서열상 다윗의 뒤를 이을 장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임명권에 비하면 장장 계승권 같은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오히려 결정적인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뽑으신 인물이냐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비록 솔로몬은 장자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택하심 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본문의 즉위 장면은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해 주는 단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솔로몬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다.
[영적교훈]
솔로몬의 즉위 소식이 아도니야 및 반역의 무리에게 전달되자, 아도니야는 흩어지는 무리를 결속하지 못한 채 결국은 스스로가 솔로몬의 명령을 듣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왕권이 아니라 스스로 높임에 기초한 왕권이기에 그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기에 좋은 소식이 도래하길 바라던 아도니야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데서 우리는 인간의 참된 희망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실 인간은 허왕하기 짝없는 욕심과 권력, 기타 재물 따위에 희망과 삶의 의미를 두고 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위기와 시련이 닥칠 때 그 같은 거짓된 삶의 근거들은 여지없이 그 허상을 드러내고 말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일한 실패를 맛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참된 삶의 근원인 하나님의 장중에 온전히 붙들린 바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