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쟤 진짜 이상한 애예요.”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말은 정신의학적 진단을 뜻하지 않는다. 나와 다르고,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어른이 되면 같은 낯섦을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어딘가 이상한 건 아닐까요?”라고 묻는다.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여기에 진단명을 덧붙일 수 있다. 낯선 행동을 이해하려는 순간, 배운 지식이 병리에 대한 언어로 먼저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이상을 판별하는 일은 같지 않다. 심리학을 배울수록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지뿐 아니라, 알고 있는 개념으로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서둘러 규정하는 태도다.
정상과 이상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통계적 희소성, 주관적 고통, 일상 기능의 손상, 자신이나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 등을 이상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다룬다. 이 기준들은 유용하지만, 어느 하나만으로 정신장애를 판정할 수는 없다. 실제 진단에서는 증상의 양상과 지속 기간, 발달 수준, 생활 맥락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APA, 2013).
현장에서는 기준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시험을 앞두고 잠을 설치고 복통을 호소하는 중학생이 있다. 괴로움은 크지만 시험이 끝나면 증상이 가라앉고 일상도 유지된다. 고통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장애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선 시험 상황에서 불안이 어떻게 발생하고, 아이가 이를 어떻게 감당하는지 살펴야 한다.
반대로 학교에 한 달 넘게 나가지 않고 낮밤이 바뀌었는데도 아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본인이 괴롭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기능 손상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유와 생활 변화의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성적은 최상위권이지만 시험 때마다 손 씻기를 반복하느라 지치는 아이도 있다. 학업 성취가 유지된다고 해서 다른 영역의 어려움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 행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지, 행동을 멈추기 어려운지, 일상에 어떤 부담이 생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세 사례는 서로 다른 질문을 요구한다. 고통이 크다고 반드시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며,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능이 유지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임상가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를 골라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아니다. 기준 사이의 불일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하는 능력이다.
진단은 사람을 이해하는 여러 관점 중 하나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범주적 접근은 특정 증상과 진단 기준이 충족되는지를 살핀다. DSM-5와 같은 진단 체계는 평가와 치료, 연구에서 공통된 언어를 제공한다. 다만 진단 기준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으로 한 사람의 경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차원적 접근은 불안, 우울, 충동성 등의 특성이 사람마다 어느 정도로 나타나는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핀다. 특정 장애의 진단 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같은 진단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증상의 강도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수 있다.
사회문화적 관점은 한 시대와 사회의 규범이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다. 동성애가 미국정신의학회 진단 체계에서 삭제된 1973년의 결정은 진단 분류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Bayer, 1981).
이 관점들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진단 기준은 필요하고, 개인차를 살피는 차원적 평가도 필요하며, 사회적 편견이 판단에 개입하지 않는지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어느 한 관점만으로 사람을 설명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진단 기준에 맞는다는 이유로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놓칠 수도 있고, 모든 어려움을 개인차로만 해석하다가 필요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사회의 규범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실제 기능 손상과 고통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전문성은 특정 관점을 고집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지금 만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어떤 관점이 필요하며, 그 관점으로는 무엇을 설명할 수 없는지 아는 데서 나온다.
발달과 맥락을 빼면 행동의 의미도 달라진다
아동·청소년을 평가할 때는 발달 수준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일곱 살의 떼쓰기와 열일곱 살의 떼쓰기는 겉모습이 비슷해도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초등학생의 산만함과 고등학생의 산만함 역시 같은 기준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행동이 나타나는 상황도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산만하지만 좋아하는 활동에는 오랫동안 집중하는 아이가 있다면,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과제에서 어려움이 나타나는지, 지시를 이해했는지, 정서적 부담이나 수면 부족이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발달과 맥락을 고려한다는 것은 모든 행동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니다. 행동의 원인을 충분히 살피기 전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신건강 문제의 유병률을 보여주는 연구도 이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13~18세의 49.5%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추정됐다(Merikangas et al., 2010). 뉴질랜드에서 38세까지 추적한 연구에서는 참여자의 83%가 관찰 기간 중 한 번 이상 정신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나타났다(Schaefer et al., 2017).
이 수치가 모든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소수의 예외적인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진단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나누기보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진단명은 설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진단에는 임상가의 판단이 개입한다. DSM-5 현장 시험에서 주요우울장애의 평가자 간 일치도는 kappa 0.28로 보고됐다(Regier et al., 2013). 이는 해당 진단을 평가한 임상가들의 판단이 충분히 일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결과를 모든 진단의 정확도가 낮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진단의 신뢰도는 장애의 종류와 평가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진단이 객관적인 측정값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임상가는 면담과 관찰, 검사 결과를 토대로 판단하며, 그 과정에서 정보의 한계와 해석의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진단명이 당사자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도 살펴야 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어려움에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양육을 잘못해서 생긴 문제라는 자책에서 벗어나고, 필요한 지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부모는 진단을 아이의 미래 전체를 규정하는 판정처럼 받아들인다.
낙인은 외부의 편견에 그치지 않는다. 당사자와 가족이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내면화하면 자기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도움을 구하는 데도 장벽이 될 수 있다(Corrigan & Watson, 2002).
따라서 진단을 전달할 때는 이름만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증상과 평가 결과를 근거로 판단했는지, 그 어려움이 현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엇을 지원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진단이 의미하는 범위와 의미하지 않는 범위도 구분해야 한다.
진단명은 사람 전체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 현재 관찰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필요한 개입을 찾기 위한 임상적 도구다.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무엇을 먼저 물을 것인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는 이상과 정상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급한 구분을 경계하면서도 실제 고통과 기능 손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낯선 행동을 마주했다면 다음 질문부터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