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정치적이고 다 계획이 있는 행동으로 보여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본 장에 나오는 이미 딴 사람의 아내가 된 미갈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여러 아내를 두었고 사울과의 철천지 원수가 됨으로 사울은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버렸는데 기어이 자기의 첫 아내를 빼앗아 온 것이다.
(삼하 3:14)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삼하 3:15)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삼하 3:16)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미갈의 두 번째 남편은 그녀를 매우 사랑했던 것 같다. 그녀가 다윗에게로 돌아갈 때 울면서 따라 오는 것을 보면 힘없는 백성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는 심정이 느껴진다. 물론 미갈은 원래 다윗의 아내였고 합법적인 이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에게 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갈도 다윗을 사랑했고 다윗이 사울에게서 달아날 때 미갈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피신 시켰었다. 그러나 미갈이 다윗에게로 돌아 온 이후 그를 잘 대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다. 오히려 훗날 두 사람은 틀어졌고 다윗이 그녀를 찾았 않았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만일 그럴거면 왜 다윗은 미갈을 굳이 데려오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다윗이 사울과의 관계를 복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울의 핏줄이기 때문이었다. 사울의 후계로써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이 되는데 미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고도의 다윗의 정치적인 행위는 아브넬이 요압에게 피살 당한 이후에 보여준 그의 행동에서도 다 읽혀진다.
(삼하 3: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삼하 3:32)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동족의 전쟁없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하려면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러 왔다가 피살된 일이 다윗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벌어진 요압의 독단적인 처결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적국 장수이면서 패악한 인물인 아브넬의 죽음을 필요이상으로 슬퍼하면서 온 세상이 다 보도록 쇼를 한 것이다.
이런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 때문에 다윗은 합법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미 하나님이 그를 선택했고 선지자는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했지만 그가 왕좌로 나가는데는 긴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윗은 오랜 세월 도망자의 신세로 살았고, 죽지 않기위해 온갖 미친 흉내까지 내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우리도 종종 다윗처럼 정치적인 행동을 선택할 때가 있다. 마음에 진실함 없이 남들이 보라고 혹은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 하지만 빌라도가 손을 씻듯이 정치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책임을 피해 가려고 하지만 다윗의 생애를 보면 자신이 심었던 모든 씨앗에 대한 열매를 다 거두었다. 때론 그 부하 장수에게서 혹은 그 자식에게서 모진 시련의 시간들을 감당해야만 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 아버지! 너무 정치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마음의 순수함을 지켜가게 하소서. 너무 단순하여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도 되지 말게 하시고 너무 약삭바르게 눈치살피며 살지도 않게 하소서. 원칙과 진실에 입각하여 행동하게 하시되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