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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3기 – 마가복음>
제13과 부활하신 주님(The Risen Lord)
<9월 21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마리아는 동산에서 예수님이 가까이 계신 데도 울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눈물에 가려 예수님을 분별하지 못했다. 제자들의 마음은 비탄에 빠져 천사의 기별이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마리아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하신 구주의 말씀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해당되고 있는가! 그분은 저희 곁에 가까이 계시나 눈물로 흐려진 저들의 눈이 그분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나 저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 숙인 머리가 들려지고 눈이 열려 그분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귀가 열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 살아나셨다”라고 하라는 그분의 음성을 분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에게 큰 돌로 막고 로마의 인으로 인봉한 요셉의 새 무덤을 들여다보지 말도록 명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거기 계시지 않는다. 빈 무덤을 바라보지 말라. 희망도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살아 계신다. 그분이 살아 계시는 까닭에 우리도 역시 살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과 거룩한 불로 정결케 된 입술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는 노래를 즐거이 부르라. 그분은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 그러면 그것이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닻과 같이 영혼을 붙잡을 것이다. 믿으라, 그러면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소망, 794)
◎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구주께서 계신다. 그분은 요셉의 새 무덤 속에 계시지 않고 사망에서 일어나 모든 믿는 영혼을 위한 대리자와 보증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인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위해 지불된 몸값이 완전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아버지께서 받아주시는 보증이다. 이럴진대 우리가 의심하고 믿고, 믿고 의심하는 모호한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되게 하시는 보증이다. 우리는 은총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믿음, 107)
◎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대가 우리 앞에 있다. 땅은 부패하고 부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폭력과 범죄, 권리가 없는 돈에 대한 인간의 횡령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계신다. 우리는 변덕스러운 운명의 주체가 아니라 그분의 자녀이다. 그렇다.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격려의 말씀을 읽으면서 소망의 샘을 새롭게 할 거룩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 그대들은 살아 계신 구세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그분은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분의 약속은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This Day With God, 91)
<9월 22일/일, 부활을 기뻐함>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실 때 그분을 겸손하게 따랐던 여자들은 그분의 원수들이 그분의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그분이 무덤에 안치되고 큰 바위를 문 어귀에 놓을 때까지 떠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하늘의 천사들이 영광의 왕을 그분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일에 그들의 역할을 하라는 명령을 열렬하게 기다리면서, 말할 수 없는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안식처를 지키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은 그분이 살아나서 그들에게서 도망칠까 봐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빌라도에게 사흘째 되는 날까지 무덤을 지킬 보초를 세우도록 요청하였다. 그 요청이 수락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시체를 훔쳐 가 그분이 부활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그 입구의 돌을 봉인했다. (초기, 180-181)
◎ 태양 빛보다 더 찬란한 천사들의 광명이 두루 비칠 때 로마 군병들은 죽은 자들처럼 땅에 쓰러졌다. 두 천사 중 하나가 큰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다른 천사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풀었다. 그때 하늘에서 온 천사가 땅을 뒤흔드는 음성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당신의 아버지께서 부르시나이다 나오소서”라고 외쳤다. 죽음이 더 이상 그분을 주관하는 권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승리의 정복자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 엄숙한 경외심을 품고 천사의 무리는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오시자 빛나는 천사들은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으며, 승리와 개선의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였다.
사탄의 천사들은 하늘 천사들의 찬란하고 꿰뚫는 빛 앞에서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왕에게, 그들의 희생자를 폭력으로 강탈당했다는 것과 그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신랄하게 불평하였다. … 예수께서 그분의 감옥으로부터 위엄있는 정복자로 걸어 나오실 때, 사탄은 얼마 후에 자기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그의 왕국이 원래 그 권리를 가지셨던 그분께로 넘겨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초기, 182)
◎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안에서 잠자는 모든 자의 최종적 부활의 견본이었다. 부활하신 구주의 몸과 그분의 모습과 말의 억양은 모두 다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낯익은 것들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그런 낯익은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것같이 우리도 우리 친구들을 알아볼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이 세상의 생애에서 병들고, 불구가 되고, 모습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을지라도 몸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그들의 개인적 신원은 완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광채가 나는 얼굴을 한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알아볼 것이다. …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그 순간,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고 천만 천사가 영원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모든 잠자는 성도는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각자의 이름을 아시는 그들을 마치 값진 보석처럼 보호하실 것이다. (그분을 알기 위하여, 362)
<9월 23일/월, 돌이 굴려져 있는데>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 원수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실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증거가 너무나 분명하여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저희가 예수님을 죽인 그 무서운 행위를 회개하기를 거절하였다. 사도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하고 활동하고 있음에 대한 풍부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관원들은 진리의 기별을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때로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갖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으므로, 그 확신을 짓눌러 버리고 마침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은혜를 베푸사 더 많은 증거를 주셨고, 이제 그분께 돌아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허락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을 보내사 그들이 생명의 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전하게 하셨고, 이 무서운 책망을 통하여 또 다른 회개의 초청을 주셨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로움에 만족한 유대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책망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지도를 따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절하였다. (행적, 61)
◎ 어떤 이들[고린도 신자들 중의]은 부활의 교리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바울은 그리스도 부활의 분명한 증거에 관한 명백한 증언으로 이 이단에 대처하였다. 바울은 선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 나에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하였다.
사도는 수긍시키는 능력으로 부활의 대진리를 진술하였다. 사도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행적, 319~320)
◎ 그대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세상은 그리스도를 내팽개쳤으나, 하늘이 그분을 영접했다. 유한한 인간이 생명의 왕을 거절하였으나, 절대 주권을 지니신 우리의 통치자 하나님께서 그분을 하늘로 영접해 들이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셨다. 인간은 그분께 가시 면류관을 씌워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왕의 위엄이 서린 면류관을 씌워 주셨다. 우리는 정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대는 이분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지배하시도록 하려는가, 혹은 바라바를 선택하려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분의 자비를 거절한 이들에게 자비가 전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가져온다. 이것이 어린양의 진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믿는 모든 이에게 소망과 영생이다. (목사, 139)
<9월 24일/화, 무덤을 찾은 여인들>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마리아는 [아직] 그 기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라는 슬픈 기별을 가지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갔다. 제자들은 급히 무덤으로 달려가 마리아의 말이 사실임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수의(壽衣)와 수건을 보았을 뿐 저희 주님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증거가 있었다. 수의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이 아니요 주의 깊게 개켜 있었고 각각 제자리에 있었다. 요한은 “보고 믿”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죽음에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아직 깨닫지 못하였으나 이제 그분의 부활을 예언하신 구주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었다. (소망, 789)
◎ 마리아는 큰 죄인처럼 주목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녀의 생애를 꼴 지워 온 환경들을 아셨다. 그분은 마리아의 영혼 속에 있는 모든 희망의 불꽃을 끄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절망과 파멸에서 마리아를 건져 주신 분은 그분이셨다. 마리아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사귀들을 일곱 번이나 책망하시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을 위하여 아버지께 탄원하시던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그분의 흠 없는 순결에 비하여 죄가 얼마나 더러운 것임을 알고 그분의 능력으로 승리하였다.
인간의 안목으로 그 여자의 경우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에게서 선의 가능성을 발견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녀의 품성의 더 좋은 면들을 보셨다. 구속의 경륜은 큰 가능성을 가지고 인간에게 주어졌다. 따라서 마리아에게서 이 가능성이 실현되어야 했다. 그분의 은혜로 그녀는 거룩한 품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타락하여 그 심령이 사귀의 거처가 되었던 자가 구주와 매우 가까이 교제하고 또한 봉사하는 자가 되었다. 그분의 발아래 앉아서 그분에게 배운 사람은 마리아였다. 그분의 머리에 귀중한 기름을 붓고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은 사람은 바로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섰으며 무덤까지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의 부활 후에 무덤에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은 마리아였다. 부활하신 구주를 처음으로 선포한 사람도 마리아였다. (소망, 568)
◎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한 거룩한 임무를 맡기셨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의 보화,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그분의 성령님과 그분의 품성을 대표할 대리자들만큼 구주께서 바라시는 것은 없다. 인간을 통하여 구주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만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없다. 온 하늘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교의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회는 특별한 사업을 하도록 그분께 능력을 받아 진리를 선포할 하나님의 기관이다. 교회가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순종한다면 교회 안에는 거룩한 은혜의 미덕이 있을 것이다. 만일 교회가 충성한다면,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교회에 맞설 만한 세력은 없다. (행적, 600)
<9월 25일/수, 마리아와 다른 이들에게 보이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무덤 주위에는 빛이 비치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시체는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저희가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빛나는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무덤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돌을 굴려낸 천사였다. 그는 이 예수님의 친구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 하늘 영광의 빛이 비취고 있었으므로 여인들은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도망하려 하였으나 천사의 말에 저희 발걸음을 멈추었다.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라고 하라. …
그분은 살아나셨다, 그분은 살아나셨다! 여인들은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젠 향료가 필요 없다. 구주께서는 죽어 계시지 않고 살아 계신다. 예수께서 그분의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들은 이제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날은 세상에서 얼마나 경이로운 날인가! 그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하였다. (소망, 788~789)
◎ 부활하신 후에 세상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최초 사업은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쇠하지 않는 사랑과 친절을 확신시켜 주는 일이었다. …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르기를 그들이 갈릴리에서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다. …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의심과 혼란을 물리칠 수 없었다. 여자들이 저희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을 때도 제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인들이 환상을 본 줄로 생각했다. …
때때로 그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님이 당하신 운명이 어느 땐가는 그들의 운명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서 문을 굳게 잠갔다.
그러나 저희가 구주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모든 시간 동안 기뻐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데도 울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눈물에 가려 예수님을 분별하지 못했다. 제자들의 마음은 비탄에 빠져 천사의 기별이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없었다. (소망, 793~794)
◎ 모든 의심의 표현은 불신을 강화합니다. 희망, 용기, 빛, 사랑에 대한 모든 생각과 말은 믿음을 강화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도덕적 어둠을 견딜 수 있도록 영혼을 강화한다. 믿음을 말하는 사람은 믿음을 갖게 되고 낙담을 말하는 사람은 낙담을 갖게 될 것이다. 바라봄으로 우리는 변화된다. (서신 16, 1880년 3월 24일)
<9월 26일/목, 가라 온 세상을 향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님께서 여러 번 제자들에게 미래를 열어 보이려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까닭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후에 그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그들의 불신의 결과를 보았을 때, 그들은 슬픔으로 충만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분은 제삼 일에 부활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혼란하여 그분이 뜻하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이해력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분이 운명하셨을 때 완전한 절망에 빠졌다. 그들은 처절하게 낙심하였다. … 그들이 구주의 말씀을 믿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슬픔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인가!
실망과 슬픔과 낙담에 빠진 제자들은 다락방에 함께 모여 문을 굳게 닫았다. … 구주께서는 부활하신 후 바로 이곳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행적, 25~26)
◎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 그대들은 세상을 위한 나의 희생의 생애의 목격자들이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 나는 나의 제자인 그대들에게 이 은혜의 기별을 위탁한다. 이 기별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첫째는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모두 전해져야 한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한 교회에 모이게 될 것이다.
복음 전도 사명은 그리스도 왕국의 대선교 헌장이다. 제자들은 영혼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만민에게 은혜의 초청을 전해야 하였다. (행적, 27~28)
◎ 태양이 모든 생명체에게 빛이요 생명이요 축복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선행과 쾌활함과 용기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태양이 밤의 그늘을 몰아내고 골짜기와 언덕에 그 영광을 쏟아내듯이 그리스도인도 자신에게 비추는 의의 태양을 반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의 일관된 삶 앞에서 무지, 미신, 어둠은 태양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의 길이 진리의 빛으로 밝혀질 때까지 땅의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진리의 빛을 전파할 것이다. (This Day With God, 92).
◎ 이와 같은 … 영광스러운 소망 그리고 그분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신 이와 같은 구원을 우리 앞에 두고도 우리가 잠잠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제자들이 그랬던 것만큼도 하나님을 큰 소리로 찬양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의 전망이 그들의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지 않은가? 우리가 이런 소망, 불멸을 입을 큰 소망 그리고 영광으로 충만한 소망이 있는데 누가 감히 큰 소리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금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으며, 더 많은 것을 갈망한다. 나의 전 존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모든 충만으로 채워질 때까지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초기, 110)
<9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어둠 저편을 보라” (기별 3권, 326~327)
주님께서는 살아 계신다. 그분은 부활하셨다, 그분은 부활하셨다,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신다. 그대가 짐을 지고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멍에를 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와 협력하여 멍에를 메고 있는가? -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그대의 구주이시다. 사탄은 그의 지독한 어둠을 그대의 앞길에 던질 것이다. 그대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동일한 어둠을 그리스도의 앞길에도 가로질러 놓았다. 이제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둠 저편에 그리스도의 광명을 보는 것뿐이다. … 낙담하지 말고,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분이신지를 생각하라.
그대의 기억은 성령에 의하여 새롭게 될 것이다. 그대는 예수님이 그대를 위하여 하신 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 그대의 관심은 그대 자신으로부터 떠나게 되었다. 그대의 가장 깊고, 가장 달콤한 생각은 그대의 귀한 주님, 그분의 돌보심, 그분의 확신, 그분의 사랑에 머물렀다. 그대는 얼마나 그분을 사모하였는지!
그대의 모든 희망은 그분에 달려 있었으며 그대의 모든 기대는 그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다. 그분은 아직도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어떤 상처도 치료할 수 있는 유향을 가지고 계시며 그대는 그분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
보혜사는 그대에게 그대의 모든 소원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 그리고 그 기별의 중요성, 그리고 그 일이 그대에게 지워질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그분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들을 드러내 주실 것을 안다. 오, 그대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을 모두가 알도록 하라.
나는 나의 마음이 어두운 면에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위한 빛과 위로와 희망과 기쁨을 가지셨다. 의의 태양의 광채가 내 마음에 비추고 다른 이들에게 반사되도록 나는 빛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빛을 비추는 것-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신 은혜의 빛을 널리 비추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나의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소유하실 것이므로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내가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며 그분을 찬양하라(롬 5:1; 요일 5:11이 인용됨). (3기별, 326~327)
◎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라” (소망, 818~828).
하늘 보좌에 올라가시기 직전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 … 을 가르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하늘의 빛이 밝고 힘 있게 비춰야만 하였다. 제자들은 세상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서 저희 구주와 동역자가 되어야만 하였다.
이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와 같이 계실 때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이제 그 말씀은 더 많은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었다. 갈릴리에서 열린 산상 집회에 불러 모을 수 있는 신자들이 다 모였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 집회에 대한 시간과 장소를 친히 지정하셨다. 무덤 곁에 있던 천사는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제자들에게 상기시켰다. 이 약속은 유월절 주일 동안 예루살렘에 모인 신자들에게 반복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그들을 통하여 저희 주님의 죽음을 슬퍼하는, 먼 곳에 외로이 흩어져 있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모든 사람이 큰 관심을 가지고 이 집회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질투심 많은 유대인의 의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우회로를 택하여 사방에서 집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그리스도께 대해 들은 소식들을 열심히 주고받으며 그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곳으로 왔다.
약속된 시간에 오백 명가량의 신도가 적은 무리를 이루어 산 중턱에 모였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듣고자 열망하였다. 제자들은 이 무리와 저 무리를 차례로 지나다니며 저희가 예수님에 관하여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성취하신 것들을 성경 말씀으로 밝혀 주었다. 도마는 자기의 불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고 어떻게 그의 의심이 일소되었는지를 말해 주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셨다. 아무도 그분이 어디서 오셨으며 어떻게 오셨는지를 말할 수 없었다. 참석한 많은 사람이 전에 그분을 본 적이 전혀 없었으나 그분의 손과 발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분의 얼굴은 하나님 얼굴과 같았으며 그들은 그분을 보자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의심했다. 그와 같은 일은 항상 있을 것이다. 믿음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발견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편에 둔다. 이런 사람들은 저희의 불신 때문에 많은 손실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많은 신자와 가지신 유일한 회견이었다. 예수께서 나아오셔서 그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그분께 경배하였는데, 죽음으로 닫혔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그분의 말씀은 특이한 힘으로 그들을 감동시켰다. 그분은 이제 부활하신 구주이셨다. 저희 중에 많은 이가 그분이 병자를 고치고 사탄의 작용을 제어하는 일에 그분의 능력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아 왔다. 그들은 그분이 예루살렘에 그분의 나라를 세울 권세를 가졌고 모든 반대를 진압하고 자연의 힘을 제어할 권세를 소유하셨다는 것을 믿었다. 그분은 사나운 물결을 잔잔케 하셨고 흰 거품이 이는 파도 위를 걸으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다. 이제 그분은 “모든 권세”가 그분에게 주어졌음을 선언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듣는 자들의 마음을 지상의 일시적인 사물에서 하늘의 영원한 사물로 이끌어 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에 대한 최고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산 중턱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인류를 위한 희생이 충분하며 완성되었다는 발표였다. 속죄의 조건들은 성취되었고 그분이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사업은 완성되었다. 그분은 모든 천사와 정사와 권세에게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시는 길이었다. 그분은 중보 사역에 들어가셨다. 무한한 권능으로 옷 입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명을 맡기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유대 백성은 거룩한 진리를 위탁받은 백성이었으나 바리새주의는 그들을 온 인류 가운데 가장 배타적이요 가장 편벽(偏僻)된 자들로 만들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에 관한 모든 것 곧 의복과 관습과 의식과 유전들이 그들을 세상의 빛이 되기에 부적당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 곧 유대 나라를 온 세계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계급이나 지역을 초월한 믿음과 예배, 즉 모든 백성과 모든 민족과 모든 계층의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선포할 사명을 주셨다.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나라의 성질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전에 이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저희 마음에 상기시키셨다. 이 세상에서 현세적 나라를 세우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 아니요 영적 나라를 세우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다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이 세상의 왕으로 다윗의 보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성경을 펴서 그분이 통과하신 모든 것은 하늘 회의에서 아버지와 그분 사이에 정해진 것이었음을 설명하셨다. 모든 것이 성령의 감동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예언되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메시아로서 거절당한 일에 대하여 너희에게 나타내 보여 준 것이 모두 다 성취된 것을 보았다. 내가 견뎌야 할 모욕과 죽음에 대하여 내가 전에 말했던 대로 모든 것이 입증되었다. 나는 삼 일 만에 다시 일어났다. 성경을 더욱더 부지런히 연구하라. 그러면 너희는 모든 면에서 나에 관한 예언의 세목들이 다 성취된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 손에 맡겨 주신 사업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인류를 위하여 놀라운 겸비를 나타내신 곳이다. 그곳에서 그분은 고통을 받고 거절과 정죄를 당하셨다. 유대 땅은 그분의 출생지였다. 그곳에서 그분은 인성의 의복을 입으시고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 계실 때에 하늘이 얼마나 땅에 가까이 이르렀는지를 깨닫는 자는 거의 없었다. 제자들의 사업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야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고통을 당하신 것과 그분의 하신 수고가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함을 보고 제자들은 더 유망한 일터를 주시도록 간청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진리의 씨를 뿌리셨던 바로 그 땅을 제자들은 갈아야만 했다. 그렇게 함으로 씨가 움터서 많은 수확을 낼 것이었다. 제자들이 일하는 동안에 유대인들의 질투와 증오에서 오는 박해를 만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저희 주님께서 참으셨던 것이므로 그들도 그 박해를 피하지 말아야 하였다. 구주를 살해한 자들에게 맨 먼저 자비의 초청이 주어져야 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비밀리에 예수님을 믿는 자가 많았으며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속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 이 사람들에게도 역시 복음은 전파되어야 하였다. 그들은 회개하라는 초청을 받아야 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가 명백하게 전해져야 하였다. 온 예루살렘은 지난 몇 주 동안에 일어난 소름 끼치는 사건들 때문에 흥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가장 깊은 인상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이곳에서 멈추어서는 안 되었다. 이 사업은 가장 먼 변경(邊境)까지 확장되어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을 위한 나의 자아 희생적 생애를 목격하였다. 너희는 이스라엘을 위한 나의 수고를 목도하였다. 비록 저희가 생명을 얻으려고 나에게 오지 않았을지라도, 비록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저희가 하고자 한 대로 나에게 행하였을지라도, 비록 저희가 성경에 예언한 바와 같이 나를 거절하였을지라도 그들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나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내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너희는 보았다. 내게 오는 자를 나는 결코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것이며 영생을 얻을 것이다. 나의 제자들아, 너희에게 나는 이 은혜의 기별을 위탁한다. 이것은 제일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어져야 하고 그다음에는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믿는 모든 자는 한 교회로 모여야 한다.”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제자들은 놀라운 능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증언은 표적과 기사들로 뒷받침될 것이다. 이적들은 사도들뿐 아니라 저희 기별을 받은 자들을 통해서도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잡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라고 말씀하셨다.
이때에는 독살(毒殺)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무법한 사람들은 그들의 야망을 가로막는 자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제거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명이 이런 위험을 당하리라는 것을 아셨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그분의 증인들을 죽음에 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위험에서 보호하시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던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육체의 질병을 고침으로 그들의 영혼의 병을 낫게 하실 그분의 능력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마 4:23; 9:6). 그리고 이제 한 새로운 선물이 약속되었다. 제자들은 다른 족속들 가운데서 전도하게 될 것이므로 다른 방언들을 말할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 사도들과 그의 동료들은 무지한 사람들이었으나 오순절 날 성령의 부으심을 받음으로 그들의 언어는 자국어나 혹은 외국어를 막론하고 낱말과 억양이 순수하고 단순하고 정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임무를 맡겨 주셨다. 그분은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준비를 하셨으며 또 사업의 성공에 대한 책임을 몸소 지셨다. 저희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일하는 한 그들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그분은 명하셨다. “사람이 거하는 땅끝까지 가라. 또한 나의 임재가 그곳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라. 내가 너희를 버릴 때란 결코 없으리니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일하라.”
제자들에게 맡기신 구주의 명령에는 모든 신자가 다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세상 끝 날까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를 포함한다. 영혼 구원 사업이 안수받은 목사에게만 의존된다는 생각은 치명적인 잘못이다. 하늘의 영감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 사업이 위탁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저희 동료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도록 임명되었다. 이 사업을 위하여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이 신성한 맹세를 짊어진 자들은 모두 그때부터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겠다고 서약하는 것이 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계 22:17). 듣는 모든 사람은 이 초청을 반복할 것이다. 생애의 소명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의 첫 번째 관심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가 회중 앞에서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나 개인들을 위해서는 일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주님께 받은 교훈을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목회는 설교하는 일만이 아니다.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구제하고 곤궁한 자를 도우며 낙담한 자들과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는 자들은 목회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죄책감에 억눌린 영혼들이 많다. 인류를 타락시키는 것은 곤고나 노역이나 빈곤이 아니라 죄와 악행이다. 그것이 불안과 불만을 가져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종들이 죄로 병든 영혼들을 섬기기를 바라신다.
제자들은 저희가 있는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가장 어렵고 가장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일터라도 지나쳐 버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각각 저희가 있는 곳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가족 중에도 동정에 주리고 생명의 떡에 굶주린 영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교육시켜야 할 자녀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의 문전에 불신자들이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일을 충성스럽게 하자. 그다음에 하나님의 손이 길을 인도하시는 데까지 우리의 노력을 확대시키자. 많은 사람의 사업이 환경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 것처럼 보이나 어느 곳에서든지 신앙과 근면으로 그 일을 행한다면 세상의 가장 먼 곳에서까지도 그 감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그분의 사업이 좁은 지역에 국한된 것처럼 보였으나 각 나라에서 많은 무리가 그분의 기별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가장 큰 결과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가장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분의 사업의 모든 부분이 마치 모든 것이 사이좋게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모든 다른 부분에 의존하도록 그분은 계획하셨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가장 겸손한 일꾼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심금(心琴)을 울릴 때 그 진동은 땅끝까지 울릴 것이며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라는 명령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눈을 들어 “저 너머에 있는 지역들을” 바라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민족을 갈라놓는 편견과 분리의 장벽을 헐어 버리시고 모든 인간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그들의 이기심이 정해 놓은 편협한 사회로부터 끌어 올리시고 모든 지역적 경계선을 철폐하시며 사회의 인위적인 차별을 폐지하신다. 그분은 이웃과 낯선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시며 친구와 원수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도움이 요구되는 모든 영혼을 형제로 보고 이 세상을 우리의 일터로 보도록 가르치신다.
구주께서는 “가서 모든 족속을 … 가르치”라고 하시면서 또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그 사명과 마찬가지로 멀리까지 미친다. 그 모든 선물이 모든 신자에게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고전 12:11) 나누어 주신다. 성령의 선물은 주님의 사업을 위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신자에게 약속되어 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강력하고 믿음직한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자녀들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의 보증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다 붙들어야 한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 세상은 거대한 나환자 수용소 같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고 사탄의 포로들에게 구원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건강하고 힘이 있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귀신 들린 자들에게 그분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그분은 그분의 치유 능력을 받기 위해 찾아온 자들을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분께 도움을 간청하는 자들이 그러한 질병을 스스로 끌어들인 것을 아셨으나 그들의 병을 고쳐 주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온 치유의 능력이 이러한 불쌍한 영혼들에게 들어갔을 때 그들은 죄를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이 저희 육체적 질병과 함께 영적인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 복음은 여전히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는 오늘날 그와 똑같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의 비애를 느끼신다. 악한 영들이 인간의 몸을 해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저주를 느끼신다. 열병이 금생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을 때 그분은 괴로움을 느끼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이 이 땅에 계시던 때와 똑같이 지금도 즐겨 병자를 고치신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분을 대표하는 자들이며 그분이 일하시는 통로이다. 그분은 그들을 통하여 병 고치는 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신다.
병을 고치시는 구주의 방법에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교훈이 들어 있었다. 한번은 그리스도께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치유는 크신 의원의 능력에 의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한 자연의 매체를 사용하셨다. 그분은 약품 사용을 권장하지 않은 대신 단순한 자연 요법의 사용을 찬성하셨다.
고침을 받은 많은 환자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5:14)라고 당부하셨다. 이와 같이 질병은 하나님의 자연적·영적 법칙을 범한 결과라고 가르치셨다. 창조주의 계획에 일치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큰 불행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안내자요 교사이셨던 그리스도께서는 건강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데 대한 대가임을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팔레스타인에서 병자를 고치시던 크신 의원께서는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분의 백성에게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활 습관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주시고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시(신 7:15)리라고 보증하셨다. 저희가 그 조건들을 이행했을 때 주어진 약속은 그들에게 확실하게 이루어졌고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시 105:37)다.
이 교훈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조건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주께서는 자연적이거나 영적이거나 간에 그분의 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심령의 건강은 물론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병자들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연 가운데 마련해 두신 치유법을 사용해야 하고 또 그들에게 저들의 병을 회복시킬 수 있는 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을 믿음의 팔로 안아 그들을 그리스도께 소개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크신 의원을 믿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붙잡아야 하며 그분이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바로 복음의 진수(眞髓)는 회복이다. 그러므로 구주께서는 우리가 병자와 소망 없는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도록 권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치료에는 사랑의 능력이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 사랑에 참여함으로 그분의 사업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 거룩한 관계를 맺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생명을 주는 능력의 물줄기가 우리에게서부터 백성에게로 큰 시냇물을 이루어 흘러갈 수 없다.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구주께서 많은 능력을 행하실 수 없었던 곳들이 있었다. 그처럼 지금도 불신은 교회를 도우시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교회를 분리시키고 있다. 영원한 실체를 붙잡는 일이 적을수록 교회의 힘은 약해진다. 교회가 믿음이 부족하므로 하나님께서 실망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빼앗기신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교회가 그분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그분의 능력을 받는 첫째 조건 중의 하나이다. 교회의 생명은 주께서 명하신 일을 성취하는데 바치는 충성에 달려 있다. 이 사업을 게을리하는 것은 확실히 영적 나약과 부패를 초래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은 식고 믿음은 희미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사업에 있어서 목사들이 교회의 교육자가 되도록 의도하셨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방법을 백성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이 일인가? 슬프다! 얼마나 많은 목사가 교회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리려고 애써서 부채질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교회가 마땅히 잃어버린 양 떼를 찾아야 할 사람들에 의해 병든 양들처럼 돌봄을 받고 있는가? 줄곧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그리스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인간을 위한 측량할 수 없이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격발되어 왔으나 사람들이 그같이 큰 사랑을 단지 피상적인 감사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천사들은 매우 놀란다. 천사들은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낮게 평가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란다. 하늘은 사람들이 영혼들에 대해 나타내는 태만을 보고 의분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간주 하시는지 알고 있는가?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저희 자녀를 구해 낼 수 있었던 자들이 그들을 죽도록 버려두고 그냥 지나갔다는 것을 그 부모가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들은 몹시 슬퍼하며 극도로 분개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들의 눈물만큼이나 뜨겁고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격렬한 분노로 그 살인자들을 고발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 자녀들의 고통이며 죽어가는 저희 동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분을 격발시킨다. 이것이 어린양의 의분이다. 그리스도와 밀접한 교제를 나눈다고 주장하면서 저희 동료 인간의 곤경에 무관심한 자들에게 그 큰 심판 날에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눅 13:27)라고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그들이 해야 할 사업의 윤곽을 말씀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전해야 할 기별도 주셨다. 그분은 백성을 가르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 지키게 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가르쳐야만 했다. 여기에는 그분이 개인적으로 말씀하신 것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와 교사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가르침은 여기서 제외된다. 유전이나 사람의 학설이나 추론이나 교회의 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러한 위탁에는 교회의 권위로 법을 제정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것들 중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의 행하신 일에 관한 기록과 “율법과 선지자”만이 이 세상에 나누어 주도록 제자들에게 맡겨진 보물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저들의 군호(軍號)와 저들을 구별 짓는 표가 되며 그들의 연합의 띠와 저희의 행동 노선을 결정하는 권위가 되는 동시에 성공의 원천이 된다. 그분의 이름을 지니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그분의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복음은 생명 없는 이론으로 제시할 것이 아니라 생애를 변화시키는 생동감 넘치는 능력으로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를 받는 자들이 그 은혜의 능력에 대한 증인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 대해 가장 모독적인 방향으로 나갔던 자들까지도 그분은 즐겨 받아들이신다. 그들이 회개할 때 그분의 거룩한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신임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두신다. 그러고는 그들을 불충실한 자들의 거처로 보내사 그분의 무한하신 은혜를 선포하게 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은혜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질 수 있으며 그분의 크신 사랑에 대한 보증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분의 종들이 증거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거룩한 특권을 회복하기까지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심을 우리가 증거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 안에는 목자의 부드러움과 부모의 애정과 동정심이 많은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은혜가 있다. 그분은 그분의 축복을 가장 매혹적인 말로 나타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축복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장 매력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어 사람들로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신다. 이와 같이 그분의 종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의 부요한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 마음을 녹여서 굴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교리들을 무미건조하게 되풀이한다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 9~11). “만 사람에 뛰어나”고, “권세가 사랑스러”운 그분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말하라(아 5:10, 16). 말만으로는 그것들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그것이 품성에서 반사되고 생애에 나타나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형상을 닮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제자의 마음 속에 내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제자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롬 8:29) 되도록 예정해 놓으셨다.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그분의 거룩하심과 온유와 자비와 진리가 모든 제자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최초의 제자들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저희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다. 주께서 저희와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이 제자들은 저희 사업을 위하여 자기 자신들을 준비했다. 오순절 전에 그들은 함께 모여서 모든 불화를 일소했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들은 자기들만을 위한 축복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꼈다.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내려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그렇게 했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셨고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였다.
지금도 그렇다. 인간의 공론(空論)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사사로운 의견 충돌을 버리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그들이 믿음으로 그분의 축복을 구하게 하라. 그리하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도 시대에 부어 주신 성령님은 “이른 비”였는데 그 결과는 영광스러웠다. 그러나 “늦은 비”는 더욱 풍성할 것이다(욜 2:23).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자들은 누구나 다 새로운 육체적 능력과 영적 능력을 끊임없이 공급받게 될 것이다. 다함이 없는 하늘의 비축물이 저희 손안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생명 기식과 생명력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성령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 속에 역사하여 그분의 최고의 힘을 발휘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의 능력을 확대하고 증가시키며, 신의 성품의 모든 완전은 저들의 영혼 구원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협력함으로 그분 안에서 완전하게 되어 저희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지고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구주께서는 온 세계에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고 그분의 품성을 밝히 나타내기를 열망하신다. 이 세상은 그분이 사신 소유물이다. 그분은 사람들을 자유롭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만들기를 바라신다. 비록 사탄이 이 목적을 방해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지만 이 세상을 위하여 흘리신 그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승리하기까지는 만족하지 않으실 것이며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사 53:11)다. 땅의 모든 민족이 그분 은혜의 복음을 들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로 주를 전할 것이”(시 22:30)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단 7:27; 사 11:9; 59:19).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7~10). (소망, 81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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