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은 계속되는 장마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강변 둔덕에는 달맞이꽃이 산들바람에 춤을 춘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열심히 걷고 뛰며 운동하고 있지만, 나는 오늘만큼은 운동을 포기하고 비장한 각오로 살충제를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지난 주말이었다. 원두막에서 수확한 나물을 다듬다가 말벌들이 날아다니며 천정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 뉴스에서 산에 간 사람이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텃밭에 가는 길에 조심하자는 얘기를 아내와 나누었는데, 말벌들이 바로 눈앞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두려움 속에서도 반 넘게 지은 집이 여간 예쁘지가 않았다. 중간 중간 갈색 띠를 일정한 넓이로 휘감아 두른 모습을 보며 미물인 곤충이 어떻게 저리 할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연은 이런 미물에게조차도 위대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부여하는가 싶었다.
서둘러 일어서면서 그릇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려고 손을 뻗치는 순간, 벌 한 마리가 순식간에 날아와 내 팔꿈치를 쏘았다. 뒤따라 서너 마리가 나를 향해 돌진했다. 쏜살같이 뛰어 내려가 차에 올라탔기에 더는 쏘이지 않았다. 나는 해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벌은 왜 나를 물었을까? 한번 쏘고 나면 벌의 생명은 다한다는데…….
쏘인 곳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따끔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침에 사망 소식도 들은지라 급히 응급실로 가자며 성화였다. 구역질이나 어지럼 등 쇼크 증상만 없으면 곧 나을 텐데 물린 부위를 빨고 아들에게 전화를 하며 소동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 걱정을 하셔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약을 타왔다.
저 벌들을 어찌할까? 이 텃밭은 봄부터 주말이면 우리 가족이 어머니를 모시고 와 함께 푸성귀도 가꾸며 즐겁게 지내는 쉼터이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말벌은 곤충세계에서는 무소불위다. 특히 장수말벌은 공격적이고 횡포가 심하여 대적할 곤충이 없으며, 그 독침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강하다.
예쁜 벌집에 서로가 도와가며 부지런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 어차피 공존이 불가하니 제거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에프킬러가 가장 좋은 무기라고 해서 준비했다. 머리와 얼굴을 보호할 비닐에 눈구멍을 뚫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애기 머리통만 한 벌집 앞으로 다가갔다. 아내에게는 차안에 있으라했지만, 기어이 돕겠다며 우산을 펴고는 방패막이라며 옆에 섰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했다. 뿌리는 순간 우리를 향해 돌진하지 않을까? 그 순간, 오는 길에 마을 입구에서 만난 동네 이장이 에프킬러를 흔들어 보이는 내게 조심하라고 두세 번이나 당부하던 말이 떠오르면서, 혹시 벌이 찢어진 비닐 구멍으로 들어오면 어쩌나 생각하니 겁이 났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시며 갑갑해하시는 어머니께서 주말에 못 오실 걸 생각하니 다시 용기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일격에 끝을 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다친다. 마침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등지고 서서 깊게 심호흡을 한 후 벌집을 향하여 꼭지를 힘껏 눌렸다. 바람을 타고 살충제는 화염 방사기처럼 벌집을 덮쳤다. 생화학 무기의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우리에게 달려드는 벌은 없었다. 모두들 비실비실 하며 원두막 밖으로 도망가거나 조금 날다가 마루로 떨어졌다. 떨어진 벌 위에 거듭 뿌리며 확인 사살을 했다. 산에서 돌아오는 벌들도 학살 현장에 겁을 먹었는지 잠시 당황한 날갯짓을 하더니 곧 밖으로 도망갔다. 벌집 끝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보였다. 출입구였다. 그곳에 대고 계속 뿌리니 기체가 액화되어 질식되어 죽은 벌들과 함께 뚝뚝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삽으로 벌집을 제거했다. 속에는 육각형의 벌집에서 아직도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말벌과 함께 죽은 애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참혹했다.
꼼지락거리는 말벌을 가만히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머리를 치켜들며 왜 죽였느냐고 묻는 것 같다. 이 집을 짓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했고 육각형 방을 한 칸씩 만들며 우리들의 사랑과 꿈을 엮어 왔는데, 인간들의 휴식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우리들 삶 전체를 이렇게 무참하게 파괴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알고 생존을 위해 치열한 몸부림으로 살아왔을 뿐이라고, 간혹 우리 집단에 위해가 된다는 본능적인 판단 아래 침으로써 내 한 몸을 아낌없이 희생한 것이 무슨 죄냐고 묻는 듯했다. 눈에는 뒤범벅이 된 에프킬러의 희뿌연 액체가 눈물, 콧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잔인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지 않은가. 조금 붓는 것과 통증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생명이 달린 문제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가. 그런데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이 엄연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규정하기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집에 와서 아내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말벌을 소탕했으니 이번 주말에는 어머나 모시고 텃빝에 가도 된다고. 죽어 널브러진 벌들과 애벌레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인간 주위에서 살지 않았더라면 이런 참혹한 일은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