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SAID (그녀가 말했다) 송요훈님 페북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은 할리우드에서 신으로 불리던 거물 제작자였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힘이 센 제작자였고, 막강한 영향력으로 할리우드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며 함께 일하던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강간까지 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탐사보도 기자인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가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을 그린 미투 영화인 동시에 하나의 폭로(고발) 기사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미디어 교육용 영화이기도 하다.
폭로 기사에는 일반 기사보다 훨씬 많은 공력이 투입된다. 하나의 작은 단서 또는 제보에서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고 의혹이 사실임을 하나씩 확인하고 증빙 자료를 수집하고 때로는 회유와 협박도 받으면서 진실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
NYT에서는 법조계씨 또는 관계자씨로 시작하여 익명의 한 검사와 또 한 검사와 한 법조인으로 이어지는 기사는 통하지 않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으로 시작하여 '알려졌다', '전해졌다', '했다더라'로 뒤범벅이 된 '카더라' 기사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기자의 자작 소설이라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실명으로 출처를 밝히는 것이 보도의 원칙이고 익명은 취재원의 신변에 위협이나 심각한 불이익이 예상될 경우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취재 중에 들은 이야기를 기사에 인용하려면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증빙과 근거를 제시하며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써야 한다.
NYT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언론사가 된 건, 취재윤리와 보도준칙을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독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의 생명은 독자, 시청자들의 신뢰다.
독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언론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건 언론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공공의 적이고 적대와 혐오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암적 존재다
한국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라는 언론사가 가장 불신 받는 언론사이기도 하다. 주요 언론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사이좋게 꼴찌의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기자들이 꼽은 가장 불신하는 언론사 1위도 조선일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는 2016년 송희영 주필의 뇌물성 호화 외유가 알려지고 대망신을 당한 뒤로 세계적인 언론사들의 윤리강령을 참조하여 조선일보 윤리규범을 재정비했고, NYT 못지 않은 윤리규범을 장착하게 되었다고 자랑했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기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탐사보도가 아니더라도 기자들이 지켜야 하는 취재윤리와 보도준칙이 무엇인지 보여주니, 이보다 좋은 공부가 있겠는가. NYT 기자들은 어떻게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시라. 기자들을 지휘하는 데스크에도 귀감이 되는 영화다. 넷플릭스에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