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되면 우리집은 부산하다. 옆동에 있는 손자놈을 데려와야하기 때문이다. 아들과 며느리 둘다 직장에 나가는터라 아침에는 내가 손자놈을 7시경 우리집에 데려온다. 할머니가 아침을 먹이고 세수와 치카치카를 시키고 옷을 입혀서 9시반쯤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우리집에서는 결국 할머니가 애기 엄마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나이 70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가 아이구 허리야 다리야 하고 매일 죽는 시늉을 하는데도 대책이 없다. 아들이 돈을 잘 벌어온다든지 소위말해서 ‘사’자 달린 직업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보통의 직장인이니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나 손자놈을 키워보니 아들 딸을 키울때는 직장생활에 얽매여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기억도 없다는게 솔직한 이야긴데 힘은 들지만 손자놈에 대한 사랑이 소록소록 피어나고 이게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재롱피우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을수가 없으며 소박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것도 사실이다. 새끼 키우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데려다주고 오후4시경 다시 데려올때까지는 아내와 나에게는 자유시간이다.
오늘은 손자를 데려다주고 와서 아내가 ‘여보 오늘 산에 가실래요 ?’ 한다. 나는 뒷산에 잠깐 갔다오자는 줄로 알고 갈 준비를 하다가 가만히 보니 삶은 계란을 싸고 사과를 깎아놓고 물과 커피를 준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 ‘어디 갈려고 ?’ 하니 ‘관악산에요’ 한다. 나는 ‘알았어요’ 하면서 아내가 싸놓은걸 모두 배낭에 넣고 ‘내가 먼저 나가서 상가에서 김밥 하나 살테니 버스정류장으로 와요’ 하고 나갔다.
우리집옆에서 서울대를 지나가는 5515초록색 버스를 타고 서울대앞에서 내렸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고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아주 안성맞춤이다. 개천가 다리위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쭉 서서 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길래 뭔가싶어 쳐다보니 물가에서 어미오리 한 마리가 새끼6마리를 인솔하고 수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깜찍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아마도 어미가 새끼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는것 같았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애기들은 다 아름다운것같다. 아무리 흉측한 동물이라도 새끼는 다 아름답지 않은가 ? 나는 빨리 카메라를 배낭에서 끄집어내어 사진을 찍어보는데 이미 저 멀리 가고있어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어미오리와 새끼들을 보면서 요즘 우리사회에서 부모들이 자기자식들을 버리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건들을 보면 인간이 동물들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고 소름이 끼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뉴스가 나오면 마음이 약해서 차마 듣지를 못하고 티브이스위치를 다른데로 돌려버린다. 이 오리들을 보면 십수년전에 중국 계림인가 어디에 갔을 때 강가에서 오리들이 수십미터나 되는 줄을 조금도 흐트림없이 한 마리의 리더에 따라 이탈자없이 일열로 쭈욱 가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오리의 리더가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하는구나싶어 그 리더쉽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과연 리더다운 리더가 있는지 의문이 들때가 많다.
산과 들에서 서서히 봄향기가 풍겨오기 시작한다. 몸이 가뿐하니 기분이 날아갈것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길가의 목련이 오리모양같은 꽃봉오리를 봉긋이 벌리며 곧 터져나올것같다. 꽃봉오리에 살며시 입을 맞추고 뺨도 비벼본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다. 천천히 걸으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애기들의 합창처럼 귀를 즐겁게 한다. 산 나무 바람 시냇물 새싹들이 나의 친구이자 연인이 된다. 깊은 쉼호흡을 해 본다.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오르막 길 왼편에 보이는 작년 가을 아내와 함께 와서 김밥 먹고 막걸리 한잔 하던 그 정자는 이른 봄이라 아직은 좀 쓸쓸한 분위기다.
걷다가 아내의 주름진 얼굴을 보고 참 세월이 빠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슬그머니 풀밭에 앉는다. 나는 무슨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쑥을 뜯는다고 한다. 쑥 뜯은 손을 들고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맡아보니 싸한 쑥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나도 쭈그려 쑥을 뜯어본다. 오늘 저녁에는 직접 뜯은 쑥으로 쑥국을 끓이겠다고 한다.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황사로 인하여 흐릿하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온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봄맞이를 하는것같다. 시간을 보니 정오가 다 되었다. 개울가에 돗자리를 펴고 둘이서 느긋하게 앉아서 김밥과 계란과 사과를 꺼내어서 먹는다. 산에서 먹는 간식들은 항상 맛이 있는것같다. 음식이 맛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인생이 그런대로 살만하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마지막으로 커피를 따라 마시고 ‘내려 가 볼까요 ?’ 하고 천천히 일어선다.
지척에 산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관악산의 봄이 짙어간다. 얼마 안 있어 관악산이 신록의 화원으로 변해 연두빛 물결이 출렁거리겠지. 일년 사철중 신록의 새잎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 ?
첫댓글 아하~~!!
울님의 글로
올봄에 발을 담그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