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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무허가 판자촌서 시작
커다란 솥에 지은 밥의 뜸들이기가 막 끝났다. 시계는 정확히 10시30분을 가리켰다. 부산 사하사암무료급식소의 점심공양 배식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다. 식기를 펼치고, 반찬의 간을 최종 확인하는 등 급식소 곳곳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보살들이 이마의 흥건한 땀을 닦아냈다.
다시 손을 씻고 정갈한 모습으로 조리대 앞에 모였다. 그리고는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손길로 순식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과 시원한 오이냉국, 오색 반찬들을 식판 가득 담아 어르신들이 앉은 식탁으로 옮겼다. 어르신 150명의 공양이 시작되자 달그락 소리가 마치 윷가락처럼 이어진다. 조리대 앞에 선 보살들은 연신 땀을 흘렸다.
지하공간에 위치한 급식소여서 통풍이 어려운 단점도 있지만 혹여나 조리대 바로 옆에 앉은 어르신들이 더울까봐 노심초사 마음 졸이며 불을 막고 선 탓도 있었다. 다행히 테이블 끝 벽면마다 설치된 선풍기가 공양 장단에 맞춰 신명나게 바람을 일으킨 덕에 어르신들이 앉은 자리는 제법 시원했다. 어느새 한 그릇 뚝딱 비운 어르신들은 “한 그릇 더”를 요청했다. 물론 넉넉하게 지은 밥은 모두가 한 그릇씩 더 먹어도 풍족할 분량이었다.
무료급식 소문을 듣고 방문한 노숙자들, 1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온 타 지역 어르신들까지 포함하면 적게는 120명에서 많게는 150명, 매일 평균 13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여러 사찰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공동으로 무료급식을 이어오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힘겹게 만들어놓아도 흐지부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게 전국 각지에서 흔히 보아 온 지역구 연합 모임의 일반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하불교사암연합회는 그 반대다. 몇몇 봉사자들로 시작한 모임이 자체 무료급식소를 만드는 동력이 됐고 각 절에서 릴레이 급식 봉사를 맡으면서 연합회 조직이 오히려 탄탄해졌다. 지난 5월에는 법인에 준하는 비영리 단체 인증까지 받았다.
이즈음 되면 “옆에서 하니까 우리도 했다”는 식의 수동적인 참여가 아니라 “아예 발을 뺄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스님과 불자들은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제대로 할 수 있겠다”며 두 소매를 단단히 접어 올릴 태세다.
이에 사하불교사암연합회 소속 스님들이 무료 급식에 동참할 희망 도량을 모집하고 자발적으로 봉사 팀을 꾸려 참여하기를 8년, 2003년 10월에는 이곳에 사무실을 개원하면서 사무실 옆에 자체 급식소를 마련하고 어르신들에게 정성이 깃든 공양을 직접 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도심 속 열린 공양간을 만든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한결 같은 무료급식의 비결에는 철저한 위생 관리가 한 몫을 담당한다. 사하사암무급식소에서 위생은 공양 메뉴보다 더 중요하다. 지하공간이다 보니 더 자주 구석구석의 결로 현상을 점검하고 보수했다. 또 냉장고를 두지 않되 모든 음식물은 식재료부터 밥알 한 톨 까지 당일 가져와서 준비하고 남은 음식은 모두 가져가는 것이 필수였다.
여기에 해당 요일의 봉사자들이 식판과 그릇, 조리도구를 모두 삶아서 말리는 것도 기본이었다. 급식소 총무를 맡고 있는 송우 스님은 “여러 사찰이 봉사에 동참하다보니 서로 공양메뉴를 뭘 했는가보다 얼마나 깨끗하게 정리하고 갔는지를 더 눈여겨보게 됐다. 자연스레 정리정돈이 무언의 약속처럼 지켜지고 더 깨끗하게 관리하는 노하우가 공유되면서 지하 공간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메뉴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봉사자들이 ‘요리’하면 최고를 자부하는 주부들 아닌가. 두, 세 사람 아이디어만 모여도 재철 재료를 이용해 그 날의 최고 성찬이 준비될 수 있었다.
차부자(69) 보살도 “힘들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절감한다. 한 끼라도 더 든든하게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찰이 한 결 같을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그래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겹겹이다. 봉사자들이 공양을 준비하는 내내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고 장마철에는 높은 습도를 낮추기 위해 하루에도 두, 세 번 청소를 해야 했다. 게다가 한겨울 추위는 뼈 속까지 얼어붙는 느낌이 들 만 큼 살을 파고들었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 결 같은 공양을 준비하는 마음들이 이어진 덕분에 지난 5월에는 사하구청으로부터 비영리 법인에 준하는 무료급식 단체로 지정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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