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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41UsxiryTtI
사구회(師九會) - 함양(咸陽) 숲길에 가다
2023. 06. 21.(三水)
참가 회원(가나다 순):
구산(龜山) 김규호 교장,
성헌(省軒) 김기대 시인,
춘전(春田) 김기업,
우천(牛川) 노연수 사진작가,
관암(冠巖) 류덕환 교수,
성암(冠巖) 배재문 동기회장,
panama 백길현 논픽션 작가,
동재(董裁) 박수웅 교장
8명
김정미, 윤소자 사무총장, 이순란,
전정숙 교감, 서향(瑞香) 하국자 서예가
5명, 계 13명
반월당→성서 홈풀러스→휴게소(커피타임)→
함양군중식: 대성식딩
[함양 대성식당]
한식이 무엇일까?
답은 한양이 아닌 함양에 있다.
(옛날식 오리지널 소고기 국밥+소주)→
함양군 고운(孤雲 최치원)공원→상림(上林)공원→
*고운(孤雲) 숲길(가장 아름답고,
잘 짜여진 구도, 숲과 물 - 정자 등 -
*한번은 걸어봐야 후회없는 숲길 No. 1*
*인산家 - 죽염 본사 쇼핑몰
(각종 죽염 생활음식 브랜드) -
오너와 함께 구매 토크타임 -
엄청난 구매력!
*인근 남원인월로 이동→
흑돼지 식당 -고기와 술!
*귀구 길 - 노래방 모두들 2곡씩 열창
pm 7:20 성서Hp 도착 귀가!
"자주 만나자꼬 백년의 약속"
고운(孤雲) 숲길
인산家(죽염 쇼핑 후 오너와의 토킹)
남원인월로 이동→
흑돼지 식당에서(자주 찾는 곳)
End-
작성자
대사9회 在邱 동기
panama 백길현 논픽션 작가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입니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입니다.
868년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한 후
당나라의 관료로 생활하였습니다.
신라 말 삼최(三崔, 나말삼최,
일대삼최라고도 합니다.
신라 최치원,
후백제 최승우,
고려 최언위)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입니다.
최치원 역사공원 위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신라 말 최치원이
천령군(현 함양) 태수로 부임해
매년 홍수로 피해를 보는
백성들의 고통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상림(上林)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입니다.
공부의 신 최치원 역사공원
천년의 숲 상림 맞은편에는
최치원 선생의 애민사상과
지혜를 기리기 위해
설립한 최치원 역사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호를 딴 광장 안에는
몇 가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이 작품은
새 생명의 탄생과 약동의 순간을
함양산삼이 하늘을 향해 움트는
어린 싹의 모양으로 형상화한
'약동의 공간'이란 작품으로
바닥엔 원형 덱을 조성해
관람객들에게 쉼터와 놀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작품의 재료를 보니
파주 임진각에 있는
최평곤 작가의 '통일부르기'란
작품이 떠오릅니다.
같은 작가이신가?
함양 가볼만한곳 상림공원 근처
고운 광장의 메인 무대 뒤로
경사가 제법 되는 계단과
그 위에 누각이 보입니다.
12개의 석주가
든든하게 떠받들고 있는
2층 누각 고운루는
최치원 역사공원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날카롭게 갈린 모서리의 4각 기둥이
왠지 우리 정서에 잘 맞지 않은 듯
상당히 권위적으로 보입니다.
고운루에 올라 함양 가볼만한곳,
상림공원 인근
최치원 역사공원의 내부를 바라봅니다.
형식은 꼭 향교나 서원의 형식을
닮았다고 해야 하나...
제일 안쪽은 사당 같고,
오른쪽 왼쪽 각각 동재 서재가
있는 것 같은 형식입니다.
마당 안에는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의 인물이다 보니
역사 공부에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아
그 비중이 높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정읍 여행을 할 때 '무성서원'에서,
수원 광교산 산행할 때 '망해정'에서,
봉화군 '청량산',
양양 '향교',
마산 '무학산',
생을 마감한 합천 '해인사' 등에서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행 다니며 들은
최치원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지금으로 봐서도 상당히 전국구로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정읍: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태산 태수로 부임하여
8년 동안 선정을 베풀고
많은 치적을 남기고 이임하자
마을 사람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우고
태산사라고 했는데,
이후 1696년(숙종 22)에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
사액을 받았습니다.
수원 광교산:
17년간 유학 후
29세에 돌아왔으나
말단 6두품의 벼슬 밖엔
관직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자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돌던 중,
광교산 문암골에 머물며
이곳을 찾았고
이곳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신세를 한탄하고
다시 당나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곳이라
'망해정'이라 불렀습니다.
봉화 청량사:
금탑봉 중층에는
신라 말 대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에 관한 유적이 많습니다.
그중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기단 위에 우뚝 서 있는
공부의 신 최치원 선생의 표정은
온화해 보입니다.
손이 유독 크게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공부의 신 최치원
인백기천(人百己千):
남이 백 번을 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
토황소격문:
당나라 희종 6년
황소가 난을 일으키자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보내는 격문을 지어
그 이름을 중국에 알렸다.
시무 10조:
문란한 정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담은 10개 조항을
진성여왕에게 상소했다.
계원필경(桂苑筆耕):
29세에
중국 회남(淮南)에서 귀국하여
이듬해인 886년(정강왕 1)에
당나라에 있을 때의 작품을 간추려
정강왕에게 바친 문집 등이 전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최치원 선생의 표준 영정이
안내글에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솟을 삼문으로 된 내삼문을 통해
'고운기념관'으로 들어갑니다.
함양 가볼만한곳,
최치원 역사공원의 중심 건물
고운기념관은
정면 5칸, 측면 3칸,
2층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조선시대 편전의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큰,
정면으로는 한 화면으로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큰 건물입니다.
과연 안에 어떤 것들이 있길래...
옆으로 난 문을 여니
검은 박석이 깔려 있습니다.
단청만 없다 뿐이지
궁궐의 편전이거나,
사찰의 대웅전의 위용입니다.
문을 열자 찬 기운을 가득 담은
따스한 겨울 햇살이
나보다 먼저 슬며시 안으로 듭니다.
닫집 아래 모셔진 영정만
덩그러니 있을 뿐,
도대체 기념관은 뭘 하는 곳일까
궁금해집니다.
최치원의 초상
세 초상화를 비교해 봅니다.
윗쪽의 초상화는
고운기념관 중앙에 있는 것이고,
중간의 초상화는
정읍 무성서원에 있는
채용신 화백의 초상,
아랫쪽은
e 뮤지엄의 최치원 초상을
옮겨왔습니다.
보통의 조종의 대신들의 초상과는
많이 다르고,
세 초상이 조금씩 다르죠?
복식은 중국 당나라 형식으로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붉은색 단령을 입고 있으며,
다리는 신발을 벗고
가부좌를 하고
손에는 불자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e 뮤지엄의 초상을 보면
의자 다리가 바닥에 붙어 있지 않고
떠있는 모습이라
그림 속 오류가 있어 보입니다.
상) 함양 고운기념관의 초상
중) 무성서원에 있는 채용신 화백의
최치원 초상
하) e뮤지엄의 최치원 초상
처음에 이 초상화를 보고
참 특이하다 생각했었어요.
보통 초상화를 그릴 때
근엄하게 두 손을 모으고...
상체를 곳곳이 세우고...
이런 형식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하실 정도로
형식 파괴를 하시나 보다 했는데,
이는 승상(僧像) 형식으로
가부좌를 한 것으로 보네요.
당나라에서 도교에 심취한
절도사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 있으며,
우리나라 선도(仙道)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초상화 왼편으로
마당에 있는 동상의 작은 모양
동상이 함께 서 있습니다.
내부 왼쪽에는
제례를 올릴 때 쓰는
기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와는 모양들이 다르기 때문에
이름도 궁금했었는데,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궁금하던 것을 해결합니다.
대나무로 만든 제기 중
위쪽은 폐비,
아래쪽은 변이라고 합니다.
상) 폐비(幣篚): 폐백(幣帛)을 담아
궤(簋) 앞 중앙 열에 놓는다.
하) 변: 신위(神位) 왼편에 놓이며
마른 음식이나 과일 등을 담는 제기
청동으로 만든 그릇으로는
관세기, 궤, 보, 작, 용작 등
생소한 이름의 제기들이 있네요.
상) 보(盙)는 地方(땅은 모나다)의 뜻을 담아
네모난 모양이며
쌀을 담아 제상 가운데 올린다.
하) 궤(簋)는 天圓(하늘은 둥글다)의 뜻을 담아
둥글고 쌀을 담아 올린다.
위로부터 산뢰, 용작, 작이라는
제기입니다.
술잔을 높여 부르는 작이란
제기에는 천지인의 원리에 따라
발이 셋이 있으며
위로 기둥이 솟아있고,
입을 대고 마시는 쪽은
둥글고,
반대쪽은 약간 뾰족합니다.
상) 산뢰: 음복례에 쓸
술을 담아 올리는 제기
중) 용작: 술을 떠서
작에 부을 때 쓰는 도구
하) 용작: 술잔을 높여 부르는 이름
고운기념관은
신라 복장을 입고
기념사진 찍는 곳인가 봐요.
기념관 왼쪽에는
향사를 지낼 때 쓰는
제관들의 복장이 전시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신라인 복장
체험용 의상이 있습니다.
저는 당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앞에 역사관, 상림관이란
두 건물을 두고도
최치원의 초상을 영정으로 모신,
경건해야 할 이곳에서
꼭 옷을 입고 벗고 하는
복식 체험을 해야 하는가?였습니다.
고은기념관은
신라 복장을 입고
기념사진 찍는 곳인가 봐요.
향교나 서원으로 보자면
영정을 모신 곳은
사당으로 상당히 예를 갖추게
하는 곳인데,
최치원 역사 공원의 고운기념관...
영... 아니네요.
역사관은 선생의 생애를
시기별로 나누어
선생의 일대기와 문학 사상 등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곳,
상림관은
선생의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상림의 조성부터 설화,
현재 자생하는 수목 동식물 등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상림의 식물들에 대한 내용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을
'하늘이 내린 효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상림숲에 뱀, 개미 같은
해충이 없어지고
다시는 이 숲에 들지 말라"라는
주문으로 인해
지금도 숲에는
뱀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운기념관을 나와
산책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입구에 있던
팔봉산 가족 숲길을 따라 올라오면
고운 기념관 뒤쪽 산책로와
만나는 것 같습니다.
당산나무,
심마니 기도터, 쉼터 등
산삼과 관련한 전시관과 연계된
전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마니들이 산으로 들기 전
산신제를 지내던 터에
재단을 모형으로 쌓았습니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기고
때가 되면 제사를 지내는 등의
풍습을 갖고 있죠.
심마니들이 안전과
산삼의 발견을 위해
기도하던 곳인데,
수령으로 봐서는
얼마 안 된 나무로 보이네요.
심마니들의 거처도
조성해놨습니다.
일상의 거주지가 아니라
산삼을 캐러 산에 올랐을 때
비와 호랑이를 피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해녀들이 등급이 있듯이,
심마니들도 등급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면에 있는 집은
대장 심마니인 '어인마니'의 거처이며,
여자 심마니들은 '개장마니',
가장 어린 심마니를 '소장마니'라 부르고
거처도 별도로 했었습니다.
천년의 숲을 찾아가려고
심마니마을을 나왔는데,
갑자기 어디서 호랑이 울음소리...
이곳에 호랑이가 있을 리 없지만 뭐지?
어디서 나는 소리야? 하고 찾아봤더니
이렇게 바위틈에 호랑이를 숨겨 놓았네요.
팔봉산으로 올라가보고도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
급히 내려가야 했습니다.
공원의 물품보관 창고 같은데
지붕은 초가같이 조성해 놓고
벽은 전부 그림이라는 거...
하여간 함양의 다양한 모습 보고
내려갑니다.
함양 가볼만한곳,
상림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최치원 역사공원을
휘리릭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
공원 우측의 대나무 숲의 초록과
겨울에 더 진가를 발휘하는
남천의 붉은 잎이
아주 평화롭게 바람에
살랑이고 있네요.
최치원 역사공원 상림관에서는
주말 체험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으니
주말 관람객들은
참여해볼만하겠습니다.
함양 상림공원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이며
신라 진성여왕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숲이라고 전합니다.
당시 홍수의 피해가 심하여
최치원 선생이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며
천연기념물 154호입니다.
입구에 있는 주차장이 몹시 좁습니다.
공원 안쪽으로 500m 정도 쭉들어오면
대형버스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터가 있으니
거기다 주차하면 됩니다.
공원이 어마어마하게 넓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는 동선이 4가지가 있는데
공원 밖 강변을 따라 산책하는 것,
숲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
공원 한 가운데를 관통해 산책하는 방법과
최치원사당쪽을 걸으며
산 데크길을 통해
전망대 쪽으로 걷는 길이 있습니다.
마침 방문했던 기간이
축제 기간이었던 관계로
하늘엔 공모양의 풍선이
떠있었습니다.
하얀색 건물은
함양항노화산삼엑스포때
활용했던 건물이라고 하며,
일부는 산삼 판매장으로
사용중이었습니다.
한쪽에선 댄스, 한쪽에선 트롯트가
나오는 가운데,
연꽃단지를 산책하였습니다.
문창 최치원 선생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신라 진성여왕때
천령군(현 함양군)의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6두품의 신분으로
진급에 한계가 있었고
당나라에서 유학한 사실은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상림 중앙 산책로를 걷다가
역사인물공원이라는 표시가 있어
샛길로 빠져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공적비 및 공덕비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작은 지붕 아래
함양 열녀 밀양 박씨 정려비가
보호받고 있었는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도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 썼다는
열녀 함양 박씨전에 나오는
인물의 비라고 합니다.
함양 지역과 관련된 인물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안의현감을 지낸 이력이 있는 인물로,
충청도 면천(현재 충남 당진)에서도
현감을 지낸 이력이 있어 눈길이 갔습니다.
한 켠에는 의병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도 있었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물레방아를
멍하니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걸어왔던 길이 알고보니
맨발 산책로였었기에
몇 백미터 정도
맨발로 걸어보았습니다.
왔던 길을 다시 걷는 것임에도
미처 살피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둘러보는 길이라 좋았습니다.
숲은 처음 만들어질 때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특별히 관리 되는 숲이라는 의미로
대관림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직접 만든
인공 숲 중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숲이
함양 상림이라고 합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이라도
잘 가꾸고 키우면
몇 백년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 아래
이렇게 멋진 숲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림에는 약수터도 있는데,
경상국립대에서 주기적으로
수질검사를 하고 있어
안심하고 마셔도 좋습니다.
함양군민가 비석이 있는데,
이 노래를 알고 있는 군민은
몇 명이나 될까요?
읍내 옆을 유유히 흐르는
이 하천의 이름은 위천입니다.
산책로 중간에
두 손이 떨어져 나간 석불이 있는데,
함양이은리석불입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50년대에
이은리 냇가에서 출토되어
현재의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홍수 때 상류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래전 있었던 망가사라는 절의 것으로
짐작한다고 합니다.
걷다보니 함화루까지 왔습니다.
이 누각 역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본래 함양읍성의 남문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헐릴 뻔한 것을
현 위치로 이건했다고 합니다.
함화루 옆으로는 손씻는 곳도 있고,
넓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위천 쪽으로는 척화비도 남아있어
역사 테마 공원이 확실한 곳이었습니다.
위천을 건너가보았습니다.
군민의종과 함께
아름드리나무가 위천을 바라보며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하트포토존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師9회 후배들 부럽습니다.우리는(2회) 후배들 처럼 모임을 만들어 여행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덕분에 함양 구경 잘 했습니다.
청산 후배님 더택에 9회 후배님 소식도 듣고 ,아름답게 조성해 놓은 함양 숲길,최치원 유학자 사적,역사인물 공원,
함양 상림,피봉산의 가족 숲길,연암 박지원 역사 인물공원등을 하루 종일 돌아 보고 구경 잘 했습니다.
차를 타고 하루 종일 걸어서 구경해야 할 곳을 앉아서 편안히 나들이 잘 했습니다.
우리 동기들도 걸어서 다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행을 간 동기들은 물론이고 여행에 동참하지 못 한 동기들도
시원한 방에서 모바일로 봐도 좋고 PC로 26인치 모니터로 보면
더 좋을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의 일대기는 검색을 해야 되겠지요.
청산님으로 인해 사구회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 너무 반갑고 고맙습니다.
8회도 매년 가을이면 가을나드리겸 총회를 전국구로 행하였습니다.
80이 되어 만나기 힘겨워서 대구에서 쫑파티를 거대하게 했었답니다.
또한
재경 동문회도 매년 가을에 거행하고 있음을 아시고 계실터.^^
만남이란 이렇게 생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겠지요.
우리 대사인들이 노년이 되어 만나기 힘겨울 때
이렇게 카페에서라도 수다 떨며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구회 만남에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후배님들 강건하십시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