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디서부터 어긋나버린걸까.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된걸까.
- A.Jin -
[ 003 : 죽어도 사랑하니깐 ]
감겨있는 눈을 가까스레 뜨니 내 눈동자를 찌르는 새하얀 빛줄기
들과 함께 너의 탐하고 싶은 얼굴이 내 시야를 차지한다. 온 몸을
파고드는 나른함이 하암- 입을 크게 벌리면서 하품을 자아낸다.
교태로운 고양이마냥 허리를 비틀며 부시시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 일어났냐? "
감미로운 로우톤의 맑은 목소리가 잠을 깨운다.
이 목소리가 환상은 아니지 싶어 귀를 후비적 거린다.
" 귀는 갑자기 왜 파고 그래? 아침부터 더럽게.
꼭 목욕 안 한 거 티내고 다녀요. "
" 웃기지마. 매일 목욕하거든! "
" 하- 변명은. 어제 업고 오는데 몸에서 냄새가 팍팍 나더라.
우윽. 썩은내 풍기지 말고 일어났으면 샤워나 해. "
아카니시 진. 말을 해도 꼭 얄밉게만 한다. 남 듣기 좋은 말이라고는
여자 앞에서만 하는 게 니 특기였지. 내가 깜박 잊고 있었다. 미친-
그리고 2,3일에 샤워 한 번 하는 녀석이 맨날 샤워하는 나한테 냄새
난다고 난리다. 이 놈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구라를 때릴려면 상대
를 알고 덤벼라.
그러면서도 혹시나, 싶어 코를 날렵하게 세우곤 킁킁- 거려본다.
" 큭. 하여튼 웃긴 짓은 니가 다 한다. 다 해.
찔렸냐? 냄새난다니깐. 바보-
뽀송뽀송~ 아기냄새만 나더라. 베이비 로션 바르냐? 큭큭.
나처럼 남자향수를 쓰라고. 여차하면 이리 와서 맡아봐라.
남성미가 촬촬 흐르지. "
나의 행동이 웃겼는지 진은 입꼬리를 예쁘게 올리며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베이비로션 쓰냐는 말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심술쟁이. 장난이지
만 나에겐 모든 게 진담으로 들린다. 아침 햇살을 등지고 웃는 진의 모습이
너무 상큼하고 매력적이어서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본다.
매일, 오늘처럼 너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고
매일, 오늘처럼 너의 웃음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어.
아카니시 진. 너와 단 한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쓰러진 너를 데리고 온 사람이 너라서 기쁘다. 너와 나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내 애꿎은 욕심이라지만 그렇게 믿을래. 내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웃어.
내가 너를 떠날 때,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너의 환한 웃음만 간직할 수 있도록 그렇게만 웃어줘.
" 야!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 우- 이 형님의 섹씨함에 반했냐? "
장난스런 말투. 하-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하는게 아니야.
아카니시 진. 난 너의 모든 것에 반했어.
난 너의 눈,코,입 모두 사랑해.
난 너의 넓은 어깨와 따뜻한 등을 사랑해.
난 너의 날 단단하게 받쳐주는 너의 강한 팔을 사랑해.
난 니가 웃는 모습이 좋아. 난 니가 우는 모습도 좋아.
난 니가 화내는 모습도 좋아. 난 니가 찡그린 모습도 좋아.
난 니가 밥먹는 모습도 좋고, 니가 노래부르는 모습도 좋고,
난 니가 춤추는 모습도 좋고, 니가 자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어쩜 좋니. 나는 너의 모든 게 좋고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은데...
니 곁에 평생 남아있고 싶은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왜...왜... 나를 선택하신 건가.
세상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느님, 당신 참으로 무심하시지.
" 우어억- 미쳤냐? 내가 왜 너한테 반해?
섹씨함 좋아하시네. 니가 섹씨면 완전 엽기다. 임마. "
" 야, 너 얼마 전에 조사한 앙케이트 못 봤냐?
제일 섹씨한 연예인으로 뽑혔잖아!! "
" 시끄러. 너 사람들한테 뒤에서 공갈협박했지.
너 뽑으라고...쯧쯧... 그렇게 살지마라. "
언제나 우리의 대화는 농담 반, 진담 반. 어제의 그 긴장감은 잊어버린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나는 피식-웃
으며 타월을 집어들고 샤워를 하려 한다.
그런 나를 보며 진이 말한다. 장난스런 말투지만 그 말투에 담긴 의미는 진
지하기에 고맙다.
" 야. 카메. 술 많이 먹지마라. 어제처럼 길거리에서 나자빠져바라.
아고- 내가 그 때 발견 안 했으면 넌 이미 맛 갔어.
요즘 여자들이 더 무서운 거 모르냐?
캇툰 카메나시 카즈야. 길에서 자빠지다.
스포츠 신문 일면 장식해 놓으면 딱이네. 딱. "
진의 말에 괜스레 감동받아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 한다. 바보. 술 먹어서 자
빠졌냐. 나 아프다고....씨발아...나 아파서 좀 있음 죽는다. 그러니깐 속이나
썩이지마.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내릴것 같아서 진의 얼굴을 등진 체 욕실
로 황급히 들어간다.
욕실 물을 세차게 틀고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운다. 기뻐서 운다. 진의 그 별 거 아닌 걱정이 이
카메나시 카즈야를 울게끔 만든다. 기뻐서 운다. 정말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운
다. 너의 걱정스런 말 들을 날이 이제 세워봤자 몇 날이겠는가. 슬퍼서 운다.
나 좀 데리고 가지 말라고...나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때문에 잠 못 자고 설친 날이 하루이
틀이 아니고,. 그 사람 생각에 밥 거른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고,, 그 사람 목소
리에 떨린 심장 진정시킨 날이 하루이틀이 아닌데...
나 어떻게 죽냐고....나 어떻게 죽냔 말이다......
얼굴을 적시는 눈물과 함께 기침이 쿨럭- 나온다.
쿨럭쿨럭-
새빨간 피들이 내 손을 뭉개버린다.
어제 술 먹은데다 약 시간을 놓쳤더니 금새 증상이 나타나버린다.
벌써 이렇게 엉망이라니...정말 이렇게 엉망인 카메나시 카즈야라니.
길면 6개월이라지만 언제 죽을지는 나도 모른다. 사실 지금 병원에 있어야 했
지만 내가 극구 반대했다. 마무리는 깨끗히 하고 간다. 아직 3개월 남았어.
KAT-TUN의 멤버로써 책임감있게 마무리 짓는다. 견디자...견디는 거야.
나오는 피를 다 걸러내고 깨끗이 샤워를 한다.
새빨간 핏물들이 내 발 밑을 흘러 지나갈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내 피를
내 눈으로 집적 본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던가. 점점 실감하게 되는 죽
음의 문턱. 엄습해오는 공포와 두려움이 나를 떨게 만든다.
사람이 말이지.
살 때는 모르지. 정말 지루해 보이는 일상이고, 아무 의미없이 흘러가는 시간
들도 죽음 앞에 서면 극박하기 그지 없고, 아까운 시간이라는 거 말야.
나는 지금...정말 몸서 느낀다...
아카니시 진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몸서 느낀다...
툭-
갈색머리카락에 젖어있는 투명한 물방울들을 새하얀 수건으로 털어내며 욕실문
을 열었다. 문 앞에 새 옷이 있다. 진의 옷이다. 그의 옷을 집어들고 진의 향기를
느낀다. 너의 향기가 나를 중독시킨다. 진의 옷은 조금 컸다. 그래서인지 셔츠의
소매가 손까지 가린다. 바지는 반바지라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진이 입었을 때의
그 위치보다 조금 내려와 있다. 무엇보다도 허리가 너무 헐렁해서 잡아댕기면 바
로 벗겨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좋았다. 진의 옷이니깐.
" 어, 다 씻었냐? 배고프지? 이리와서 밥 먹자. "
" 풉."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이 나의 웃음에 쑥쓰러운 듯 화를 냈다. 너무 귀여웠다.
앞치마를 매고 아침밥을 하는 진의 모습이란...!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진은
아침을 거른 적이 없다. 아침을 못 먹으면 그 날은 에너지 다운인걸. 그런 진은
건강을 위해서라면 요리는 집적 해먹는다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도
평소처럼 아침을 열심히 차렸다.
" 뭐냐... 아카니시 진. 유치원생도 아니고 앞치마에 캔디그림있네? "
" 야!!! "
나의 놀림에 진은 하이톤의 소리를 빽- 지르며, 열받은 듯 앞치마를 확 벗어선
바닥에 던져버린다. 그의 투정조차 귀엽다. 가슴의 통증따윈 아무렇지 않다.
술 먹은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나 귀여운 진의 모
습 볼 일은 있었겠는가.
이건 나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 둘을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통증도 어지러움도...
그의 웃음이 다 치료해주고 있다.
" 하하. 안 웃는다. 안 웃어..쿡...
아아~ 맛있겠는 걸. 아카니시 진군. "
" 장난치면 죽는다. "
" 아무렴. 맛있게 먹겠습니다-! 오바상(일본어 '아주머니'란 뜻)~"
" 뭐? 오바상? 이걸 콱! "
" 어라~먹는 거 앞에서 험악하게 굴면 벌 받는 다며? "
" 야, 너 내가 만든 거 먹지마. "
" 아, 정말. 바카아니야? 바카니시 진.
니가 만든 음식 내가 안 먹으면 누가 먹어주냐? "
" 그거 칭찬이냐? "
" 당연히 칭찬이지~
내가 소화기능 하난 죽여. 니꺼 먹어도 병원가서 주사맞는 일은없을꺼야. "
" 아오!! 이 거북이를 그냥!! "
나는 히히덕, 거리며 장난쳤고 진은 음식 앞이라 한 대 치지도 못하고 나를
노려 보기만 한다. 참 나, 먹는 거 앞에선 꼼짝 못 한다니깐. 진이 만든 음식
들을 먹는다는 기분이 묘했다. 젓가락질을 하는데 손이 자꾸 떨린다. 혹여
나 집은 음식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진이 만든 건데...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먹어야지.
진이 만든 음식은 하나나 둘이나 열가지나 모두 다 맛있다. 입에서 아이스
크림을 녹여먹듯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 카메, 이 김치 먹어봐 "
" 김치? "
" 어. 이 김치 내가 집적 만든 거야. 대단하지 않냐?
얼마나 맛있는데. "
" 너 정말 오바상이잖아. "
" 거북이가 자꾸 틱틱-거리네.
옆 집에 사는 한국유학생 형 어머니한테 배운 거라고.
얼마전에 아들보러 1달 있다 가셨는데.
내가 시간 틈틈이 날 때 한국음식 얼마나 배운지 알아?
먹고 맛있다고 더 줄라 하지마라. "
" 먹을테니 보채지마. "
자기가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김치를 먹어보라고 안달이다. 한국 김치가
일본 김치보단 백 배는 낫다고 들었는데 한 번 먹어볼까. 진이 만들었다
는 게 조금 불안하지만 다른 음식들이 괜찮으니깐 뭐 믿어보지.
윤기나는 게 왠지 군침이 도네.
꿀꺽-
....
맛있다. 매운데 뭐랄까. 짜운 듯하면서도 짜지않는 그 맛. 눈이 동그래져
서 진을 쳐다봤다. 진은 나의 놀란 눈에 자신감이 찬 듯한 웃음을 짓는다.
훗- 보라고. 역시 나니깐- 이런 식의 웃음이란 건 말 안해도 알꺼라 믿는
다.
" 우냐? 야...왜 우냐? 어이, 카메. 김치 맛 없냐? "
뚝뚝- 웃기지도 않게 눈물이 난다. 오늘따라 눈물이 왜 이렇게 나는지 모르
겠다. 눈물샘이 고장났나 보다. 좀 그쳤으면 좋겠는데 그칠 줄 모른다. 눈물
이 난지도 몰랐는데 울고 있었나 보다.
진이 당황한 듯 물어왔다.
" 맵다... 이거... "
" 에- 김치는 원래 매운 거야. 일본 김치가 이상한 거지.
소금물 뿌려놓거 같이 짜잖아. 그래서 싫어? "
" 어...진짜 싫다...바보야...사람 죽일려 그래...흑.. "
진아...이거 너무 맛있다. 니가 만들어서 그런가봐. 나 오늘 일 평생
못 잊는다. 죽어도 못 있는다. 내 기억 속에 담아갈께. 진아. 나 니가
너무 좋은가봐. 참 나, 주책이지. 니가 만든 음식이라서 그런지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다.
하...진아...진아...나 죽기 싫어.
" 맵다고 우는 바보가 어디있냐? 그쳐라.
남자가 우는 거 아니다. "
[-니 앞에서라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고 싶어.]
" 너 요리 너무 못 해 "
[- 사실은 요리 너무 잘 해. ]
" 니가 한 거 너무 맛 없다. "
[- 니가 한 거 너무 맛있어. 나한테만 매일 요리해줄래?]
" 너무 맛 없어서 미치겠다. 임마...요리강습 좀 더 받아라. "
[- 너무 맛있어서...니가 만들어준 음식때문에 기뻐서 미칠 것 같아.]
" .........."
나의 말에도 아무 말없이 진지하게 나를 쳐다본다.
뭐야...이러면 화라도 내야지.
니가 만든 거 모조리 맛 없다는 화내야지.
왜 안 내는데?
더 좋아지잖아.
이렇게 잘 해주면 내가 너 너무 좋아하게 되잖아.
나요...살고 싶어요...죽는다는 게 말이 되요?
내 가슴에 손을 대고 느껴봐요..
내 가슴에 귀를 귀울이고 들어봐요.
내 심장-, 이렇게 뛰잖아요!
내 앞에 있는 아카니시 진이라는 사람 앞에서
격렬학 파도처럼 미친듯이 뛰는 내 심장소리를 들어봐요!!
이런 내가...이런 내가 어떻게 죽는 다는 거예요?
이런 내가...이런 내가 어떻게 암말기 환자라는 거예요?
기뻐서 울다가...슬퍼서 오열한다.
나 너 너무 사랑하나 보다.
죽고 싶지 않을 만큼 나 너, 너무 사랑하나 보다.
첫댓글 너무 사랑한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