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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이헌영 자화상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원래의 뜻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의 뜻으로 어떤 사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됨을 이른 말이다. 헌데 이 말이 나와 여러 가지로 연관이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이 문구를 배우면서 친구들이 내 이름인 <이헌영>과 발음이 비슷하여 가끔 별명으로 부르든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유부단하고 우왕좌왕하는 나의 성격과도 맞는 것 같아 내 스스로도 내가 <이현령비현령>이 아닌가하는 부정적(否定的)인 의미로 이 고사성어와 인연을 맺었다.
이현령 비현령; 이헌영컴퓨터화
그런데 점차 살아가면서 아니 살아갈수록 <이현령비현령>은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제일 적합한 단어인 것 같아 점차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다. 나는 중도를 걷는다고 하지만 나의 발걸음이 바르지 못해 갈지(之)자로 걷게 되니 좌로 쏠렸다 우로 쏠렸다 한다. 심지(心地)가 깊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다. 부드러운 것인지 혹은 가능성이 많은 것인지 내 스스로도 나를 판단하기 어렵다. 확고한 신념으로 한편에 서서 한 방향으로 가고 반대편을 무자비하게 다구치고 욕을 하는 친구들을 대하면 부럽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사상적으로 나는 이현령비현령이다. 예를 들어 해외 파병문제가 있을 때 어떤 때는 국익에 따라 말하는 사람에 동조하다가, 다음순간 마음이 바뀌어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경외에 중심을 둔 마음이 발동하여 정 반대의 글을 쓴다. 어떤 때는 보수 우파의 말에 동조하다가도 줏대 없이 진보 좌파의 말에도 고개를 끄떡인다. 소위 말하는 회색분자 인 모양이다.
종교는 더욱 이현령비현령이다. 지금 기독교 장로교회의 집사이지만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도저히 교인답지를 않다. 장남인 형님은 유교로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우리 동생들도 함께 제사를 지낸다. 동생은 불교에 심취해 있어 자주 기독교인인 나에게 불교 테이프도 가져다 주고 교리도 설파한다. 보라매 운동장에 나가서는 동호인들과 함께 도가양생장수술이라는 기체조를 한다. 나는 할머님과 어머님께서 절에 다니실 때 따라다니기도 했고, 정화수를 떠놓고 뒤뜰에서 빌고 계신 할머니를 보면서 자랐다. 세브란스에 들어와서 처음 기독교에 접했고 인턴을 하기 전 세례를 받았고 지금은 우리 병원에서 금요일 아침 예배도 보고 주일은 교회를 나가나 아직 신실한 기독교 교인이 되질 못하고 있다.
보라매 연곷
살아가는 환경도 이현령비현령이다. 내주위에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이 많다. 경제적으로 국내에서 손꼽힐 만한 친척들, 친구들이 많이 있다. 이들과도 만나지만 맹인이료연구회, 근육병환자, 장애자 독서회, 생명경외 클럽, 키비탄 그리고 WELL(빛과 사랑의 샘)이라는 NGO 단체를 통해 만나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사람들과도 자주 만난다. 따라서 살아가는 방법도 이현령비현령이다.
정신적인 나이도 이현령비현령이다. 육체적인 나이는 비록 지공처사가 된지 2년이 넘었지만 마음은 항상 어린애 같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못 마땅하여 아내가 가끔 핀잔을 준다. 그러나 의사회에 나가면 고령에 속하고 고문 대접을 받아 항상 점잔을 빼야하는 입장이다. 다른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항상 어린데 억지로 점잔을 빼야하니 그것이 힘들 때도 많다. 그래서 항상 이현령비현령으로 행동한다.
육체적인 나이도 이현령비현령이다. 머리를 물들이고 백두산을 종주할 때를 보면 아직 오십대이다. 그러나 머리에 물을 빼고 원상으로 백발을 노출시키고 손자들과 조금만 놀고 나도 지치는 것을 보면 칠십대이다. 어떤 때는 앞으로 삼사십년은 더 살 것같이 호기를 부리다가도 유명(幽冥)를 달리하는 친구나 후배들을 보는 순간 맥이 빠져 언제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만다.
2002년 초에 사형(舍兄)께서 내게 소정(昭汀)이란 호를 지어 주었는데 그 뜻도 이현령 비현령이다. 어떤 분이 소나무(松)나 대나무(竹)의 글자가 들어간 호를 추천했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소정이란 호를 택했다. 글자대로 풀이하면 밝을 소(昭), 물가 정(汀)으로 밝은 물가이지만 나는 이것을 물가의 모래섬으로 해석하고 그 정경을 사랑한다. 소정이란 호도 물가의 모래섬 같아서 물에 휩쓸려 없어지면 강이 되기 도하고 모래가 모여 섬이 되기도 한다. 또 강변에 붙어 뭍이 되기도 한다. 이 밝은 모래섬에는 물새들이 날아오기도 하여 좋다.
이헌영 컴퓨터화
코에 붙었다 귀에 붙었다 하는 줏대 없는 느낌으로 시작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고부터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남들이 나를 회색분자라 해도, 줏대 없는 무골호인 허허세라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인간은 각자 생긴 대로, 각자의 능력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측은 오리, 좌측은 토끼, 그러면 중간은 무엇일까요?(이헌영 컴퓨터화)
또 이러한 나의 이현령비현령 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격려해주는 Magic card가 나왔다. 나는 최근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은 9up의 아홉 개의 Magic card가 나오는데 그중 4번째의 Magic card는 오리-토끼(Duck-Rabbit Illusion)이다. 어떤 하나의 도형이 관찰하는 방법에 따라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는 도형을 ‘애매도형’ 혹은 ‘다의 도형’이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도형을 보고 토끼로 보기도 하고 오리로 보기도 하는 도형을 오리-토끼(Duck-Rabbit Illusion)도형이라고 한다. 여기에 이어령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진정한 지식과 진리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오늘의 젊은 지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택일 패러다임에서 탈출해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겹눈의 시각으로 이동해야 한다.”
昭汀 이헌영
![]() "이현령비현령* 이란 말 사전에 찾아보니 한자로 "耳懸鈴鼻懸鈴" 즉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란 뜻
좋은 고사성어 배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