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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스라엘은 가자를 포기하지 않을까? 정전에도 전쟁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 / 5월 6일(수) / 다이아몬드 온라인
하마스와의 사이에 휴전이 성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스라엘은 가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가. 그곳에는 군사와 외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가 있다. ‘약속의 땅’이라는 사상이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움직였으며, 가자 전쟁의 장기화를 초래했는지 그 배경을 해석한다. ※본고는 이슬람 연구자 이케우치 사토시가 편집·저술한 『‘세계를 움직이는 종교’ 강의』(PHP 연구소) 중, 국제정치학자 타테야마 료지 씨가 집필한 부분의 일부를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네타냐후 총리만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이슬람 조직 하마스와의 전쟁은 2년이 흐른 뒤, 2025년 10월 10일에 비로소 휴전이 시작되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 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어 가자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하마스 전멸’이라는 이스라엘의 전쟁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으며, 하마스는 지배 재건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군사적으로는 크게 약화돼 대규모 전투가 재발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히즈볼라와 예멘의 후시파, 이란 등과 다수의 정면에서 무력 대립을 반복했다. 2년간의 전쟁은 예비역 병사에 대한 과도한 부담과 재정 악화, 국제 사회의 강한 비판 등으로 이스라엘에 바람직한 결과를 남겼다고 보기 어렵다.
휴전이 쉽게 실현되지 않은 이유로는, 총리 자리에 집착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개인의 정치적 계산과 연립 정부 내 ‘극우’ 정당의 강경한 태도가 자주 지적되었다. 이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익화와 종교화가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유대 사회에서는 이제 종교 시오니즘을 중심으로 ‘약속의 땅’ 사상에 근거해 점령 지속을 절대시하는 ‘대이스라엘주의’가 큰 사상 흐름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하마스의 기습 공격 충격과 굴욕, 공포심 등이 더해져 가자에서의 전투 지속과 레바논으로의 국경 침입 공격 등 전투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이하에서는 가자 전쟁이 장기화된 배경으로서 ‘약속의 땅’ 사상과 시오니즘, 특히 종교적 시오니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 점령지에서의 철수를 단호히 반대한다 대이스라엘주의가 급속히 확산된 배경
시오니즘은 19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유대인의 민족주의 사상·운동으로, 현재도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이스라엘의 핵심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시오니즘은 세속적인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교도)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켜 국가 건설에 동원하기 위해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과 같은 유대교의 가르침과 상징을 많이 사용했다. 따라서 세속적이라고 해도 유대교와의 친화성은 높다.
시오니즘의 등장에 유대교 세계에서는 두 가지 다른 반응이 있었다.
첫 번째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엄격히 지키려는 초정통파라 불리는 그룹으로, 이산 상태를 신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약속의 땅’으로의 인위적 귀환을 촉구하는 시오니즘에 반대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겪은 뒤 이스라엘이 독립해 현실이 되면서, 초정통파 대부분은 시오니즘과 거리를 두면서도 화해적인 입장을 취했고, 제2의 홀로코스트가 발생했을 때 ‘긴급 피난처’로서 이스라엘에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또 하나는 종교 시오니즘이다. 그들은 시오니즘 사상의 실천, 즉 이산 유대인이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는 것을 신에 의한 구제 과정의 시작으로 해석하고,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독립 후 이스라엘의 지배 지역에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고대 유대 왕국의 중심이었던 현재의 요르단강 서안이 포함되지 않아, ‘약속의 땅’이라는 종교적 이념과 실제 이스라엘의 지리적 범위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를 메운 것이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이다. ‘6일 전쟁’이라고 불리듯,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서해안, 가자 등 ‘약속의 땅’으로 여겨지는 지역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 기적적인 승리의 결과, 종교 시오니즘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우파와 좌파 사이에서도 새로운 점령지 철수를 단호히 반대하는 대이스라엘주의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 이스라엘 국민의 60%가 자신을 '우파'라고 인식
이스라엘의 유대 사회 우익화와 종교화가 대이스라엘주의의 일반적인 흐름과 종교 시오니즘 확대를 촉진했다.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 정치에서는 좌파 혹은 중도 세력이 주류였으며, 점령지 문제에 현실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노동당이 핵심 정당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대이스라엘주의를 내세우는 우파 정당 리쿠드가 부상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까지는 두 당이 병존하는 시기가 지속되었다.
그 이후에도 대이스라엘주의와 그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우파와 중도 우파 정당들이 세력을 확대했으며, 리쿠드는 대부분의 선거에서 제1당이 되었고 노동당은 계속 몰락했다. 그 덕분에 리쿠드 당수 네타냐후는 1996년 이래 현재까지 총합으로 역대 최장인 18년 이상 동안 총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도 우파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스스로를 ‘오른쪽’이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2000년대 초반 40%대에서 2020년대 초반에는 60%대로 상승했다. 학교와 군에서 민족주의 사상이 활발히 가르쳐진 것에 더해, 중동 평화 과정의 실패와 이란 위협 증가 등으로 힘을 중시하는 포퓰리즘적 우파의 강경한 주장이 더욱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점령이 장기화되면서 서안 등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강화되어, 대이스라엘주의 확산의 토양이 되어 왔다.
종교화 요인 중 하나는 종교적 유대인 인구 증가율이 높다는 점이다. 초정통파나 종교 시오니스트 등 종교적 유대인의 출생률은 세속파의 2배에서 3배에 달한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유대 사회에서는 달력뿐만 아니라 국가·학교 행사부터 개인의 결혼·장례까지, 일상 생활의 대부분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게다가 하마스와 히즈볼라 등 이슬람주의 조직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유대인의 종교 의식이 강화되고 있다.
종교적 경향은 정치 의식과도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2003년부터 2022년까지 조사 결과 평균에 따르면, 스스로를 우파라고 답한 종교 시오니스트는 82%에 달했으며, 초정통파에서도 75%가 우파라고 답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속파이며 우파라고 답한 사람은 32%에 불과하고, 거의 같은 비율인 30%가 좌파라고 자처하고 있다. 물론 종교 시오니즘에도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며, 인권·양성 평등·LGBTQ·소수자 권리 옹호 등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종교 시오니즘 내부에서는 최근 우파화와 메시아주의로의 기울기가 더욱 심화되고,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세속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한 한때 반시오니즘 경향이 강했던 초정통파 내에서도 최근 종교 시오니즘 사상이 확산되고 있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자는 부분적으로 겹쳐지고 있다.
● 점령지에서의 철수를 폭력으로 저지하려는 과격 세력도 있다
1993년에 오슬로 합의가 체결되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되자, 종교 시오니스트들 중에는 점령지를 폭력으로 철수시키려는 급진적인 세력이 나타났다.
그 중 한 명은 1995년에 오슬로 합의를 체결한 이츠하쿠 라빈을 암살한 청년이다. 범인은 재판에서 “내게 총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것은 이스라엘 땅을 지키려는 신의 의지이며, 나는 신의 법 앞에서는 무죄다”라고 주장하며 암살을 정당화했다.
라빈 암살 사건 이후, 범인은 극소수의 뛰어난 급진 사상을 가진 인물들로, 유대 사회 전체와는 무관하다는 시각과, ‘빙산의 일각’처럼 수면 아래에 급진 사상을 뒷받침하는 큰 사상 흐름이 존재한다는 대립적인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의 흐름을 보면, ‘빙산의 일각’ 설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2005년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철수했을 때, 가자 정착민 일부는 ‘약속의 땅’의 일부라며 철거를 거부하고, 강제 퇴거시키려는 군대에 맞서려 했다. 또한 상관이 내린 강제 퇴거 명령에 불복을 호소하도록 군인들에게 촉구하는 종교 지도자도 있었다.
2005년 강제 퇴거 문제 이후, 이스라엘 군 내부에 종교 시오니즘이 더욱 널리 퍼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보병 장교 코스에서 차지하는 종교 시온주의자 비율은 1990년에 2.5%였지만, 2014년에는 40%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에는 종교 시오니즘 각 파가 입대 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병사 양성 예비학교를 다수 설립하고, ‘약속의 땅’ 사상을 확고히 익힌 졸업생들을 조직적으로 군에 파견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시오니즘 각 파가 이런 학교를 늘린 것은 ‘약속의 땅’이라는 생각에서 2005년 가자 철수를 ‘과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안에서의 철수와 같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교 시오니즘 사상을 확고히 갖춘 청년들을 군에 파견함으로써 군 내부에서 대이스라엘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케우치 사토시 / 타테야마 료지
なぜイスラエルはガザを手放さないのか?停戦でも戦火が消えない本当の理由
なぜイスラエルはガザを手放さないのか?停戦でも戦火が消えない本当の理由 / 5/6(水) / 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
ハマスとの間に停戦が成立してもなお、なぜイスラエルはガザへの攻撃をやめないのか。そこには、軍事や外交だけでは説明しきれない構造がある。「約束の地」という思想がどのように国家と社会を動かし、ガザ戦争の長期化をもたらしているのか、その背景を読み解く。※本稿は、イスラーム研究者の池内 恵編著『「世界を動かす宗教」講義』(PHP研究所)のうち、国際政治学者・立山良司氏による執筆部分の一部を抜粋・編集したものです。
● 強硬姿勢をとっているのは ネタニヤフ首相だけではない
イスラエルとガザ地区のイスラム組織ハマスとの戦いは2年を経て、2025年10月10日にようやく停戦を迎えた。停戦後もイスラエル軍の攻撃が続いており、ガザの情勢は不安定なままだ。「ハマス壊滅」というイスラエルの戦争目的は達成されず、ハマスは支配の再建を図っている。
それでも軍事的にはかなり弱体化し、大規模戦闘が再発する可能性は減少した。この間、イスラエルはレバノンのヒズボラやイエメンのフーシー派、イランなどと多正面で武力対立を繰り返した。2年間の戦争は予備役兵士への過剰な負担や財政悪化、国際社会からの強い批判など、イスラエルにとって好ましい結果を残したとは思えない。
停戦がなかなか実現しなかった理由として、首相の座に固執するベンヤミン・ネタニヤフ個人の政治的打算や、連立政権内の「極右」政党の強硬姿勢がよく指摘された。この点は否定できない。
だが右傾化と宗教化が進行しているイスラエルのユダヤ社会内では、いまや宗教シオニズムを中心に「約束の地」思想に基づいて占領継続を絶対視する「大イスラエル主義」が大きな思想潮流となっていることは見逃せない。
そこにハマスによる奇襲攻撃のショックと屈辱、恐怖心などが加わり、ガザでの戦闘継続、レバノンへの越境攻撃といった好戦的な状況が続いていた。
以下ではガザ戦争が長期化した背景として、「約束の地」思想とシオニズム、とくに宗教シオニズムとの関係に焦点を当てる。
● 占領地からの撤退に断固反対する 大イスラエル主義が急拡大した背景
シオニズムは19世紀のヨーロッパで生まれたユダヤ人の民族主義思想・運動であり、現在も政治や社会のあらゆる面でイスラエルの基幹イデオロギーとなっている。
シオニズムは世俗的な運動として始まったが、世界に離散しているユダヤ人(教徒)をパレスチナに移住させ国家建設に動員するため、「約束の地」への「帰還」といったユダヤ教の教えやシンボルを多用した。そのため世俗的といっても、ユダヤ教との親和性は高い。
シオニズムの登場にユダヤ教世界では2つの異なる反応があった。
1つはユダヤ教の教えを厳格に守ろうとする超正統派と呼ばれるグループで、離散状態を神の意志によると解釈し、「約束の地」への人為的な帰還を呼びかけるシオニズムに反対した。
だがホロコーストを経験したうえ、イスラエルが独立し現実の存在となったことから、超正統派の多くはシオニズムに距離を置きながらも宥和的となり、第2のホロコーストが起きた場合の「緊急避難先」としてのイスラエルに居場所を見出していった。
もう1つが宗教シオニズムである。彼らはシオニズム思想の実践、つまり離散ユダヤ人が「約束の地」へ移住することを、神による救済プロセスの始まりと解釈し、シオニズム運動に積極的に関与した。
ただ独立後のイスラエルの支配地域には、エルサレム旧市街地や古代ユダヤ王国の中心的な地域だった現在のヨルダン川西岸は入っておらず、「約束の地」という宗教的理念と現実のイスラエルの地理的範囲は大きく乖離していた。
この乖離を埋めたのが1967年の第3次中東戦争である。「6日間戦争」と呼ばれるように、イスラエルはわずか6日間でエルサレム旧市街地や西岸、ガザなど「約束の地」と見なされる地域のほとんどを手に入れた。
この奇跡的な勝利の結果、宗教シオニズムだけでなく、世俗的な右派や左派のあいだにも、新たな占領地からの撤退に断固反対する大イスラエル主義が急速に拡大した。
● イスラエル国民の6割が 自身を「右派」と認識
イスラエルのユダヤ社会の右傾化、宗教化も大イスラエル主義の一般的な流れや宗教シオニズムの拡大を後押しした。1970年代までのイスラエル政治では、左派ないし中道勢力が主流で、占領地問題への現実的な対応を主張する労働党が中核政党だった。
ところが1970年代後半から、大イスラエル主義を掲げる右派政党リクードが台頭した。その結果、2000年代初頭までは2党並立時代が続いた。
さらにその後も大イスラエル主義やそれに近い主張をする右派や中道右派政党が勢力を伸ばし、リクードはほとんどの選挙で第1党となり、労働党は凋落を続けた。そのおかげでリクード党首ネタニヤフは1996年以来、現在まで合計で歴代最長となる18年以上も首相の座にある。
世論調査でも右傾化は顕著だ。みずからを「右」と答える者の割合は、2000年代初めの40%強から2020年代初めには60%強になった。学校や軍で民族主義思想が盛んに教えられていることに加え、中東和平プロセスの失敗やイランの脅威増大などで、力を重視するポピュリズム的な右派の強硬な主張がより支持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また占領の長期化は、西岸などへのイスラエルの支配を当然視する風潮を強め、大イスラエル主義拡散の土壌となってきた。
宗教化の要因の1つは、宗教的ユダヤ人の人口増加率が高いことにある。超正統派や宗教シオニストなど宗教的なユダヤ人の出生率は世俗派の2倍から3倍もある。
さらにイスラエルのユダヤ社会では暦だけでなく、国や学校行事から個人の冠婚葬祭に至るまで、日常生活のほとんどはユダヤ教の教えや伝統に基づいている。
加えてハマスやヒズボラなどのイスラム主義組織との対立激化が、ユダヤ人の宗教意識を強めている。
宗教的な傾向は政治意識ともかなり相関している。2003年から2022年の調査結果の平均で、みずからを右派と答えた宗教シオニストは82%に上り、超正統派でも75%が右派と答えている。
これと対照的に世俗派で右派と答えた者は32%しかおらず、ほぼ同数の30%が左派を自認している。もちろん宗教シオニズムにもさまざまな思潮があり、人権や男女平等、LGBTQや少数派の権利擁護などリベラルな価値観を支持する者もいる。
だが宗教シオニズム内では近年、右傾化やメシア主義への傾斜がいっそう進み、リベラルな価値観や世俗主義への反感が強まっているとの調査結果もある。
またかつては反シオニズムの傾向が強かった超正統派内にも近年、宗教シオニズム思想が広がっており、若い世代を中心に両者は部分的に重なり合ってきている。
● 占領地からの撤退を 暴力で阻止する過激勢力も
1993年にオスロ合意が締結され、パレスチナとの和平プロセスが動き出すと、宗教シオニストのなかには占領地からの撤退を暴力で阻止しようとする過激勢力が現れた。
そのうちの1人は1995年に、オスロ合意を締結した首相イツハク・ラビンを暗殺した若者である。犯人は裁判で「私に銃の引き金を引かせたのは、イスラエルの地を守ろうとする神の意志であり、私は神の法の前では無罪である」と主張し、暗殺を正当化した。
ラビン暗殺事件のあと、犯人はごく一握りの突出した過激思想の持ち主で、ユダヤ社会全体とは無関係という見方と、「氷山の一角」のように水面下には過激思想を支える大きな思想潮流がある、との対立する見方があった。
しかしその後の状況の推移から、「氷山の一角」説が的を射ていたように思える。
たとえば、2005年にイスラエルがガザから撤退した際、ガザの入植者の一部は「約束の地」の一部であるとして撤去を拒み、強制退去させようとした軍の部隊に力で対抗しようとした。また上官が出す強制退去命令への不服従を兵士に呼びかける宗教指導者もいた。
この2005年の強制退去問題はその後、イスラエル軍内部に宗教シオニズムがより広く浸透する事態を生み出した。歩兵の士官コースに占める宗教シオニストの割合は、1990年には2.5%だったが、2014年には40%に達したと推定されている。
背景には宗教シオニズム各派が、入隊前の若者を対象とした兵士養成予備校を多数設立し、「約束の地」思想をしっかり身につけた卒業生を組織的に軍に送り込んでいることが指摘されている。
宗教シオニズム各派がこうした学校を増やしたのは、「約束の地」の考えから2005年のガザ撤退を「過ち」と捉えたからだった。
彼らは西岸からの撤退という同様の事態が起きないように、宗教シオニズム思想をしっかり身につけた若者を軍に送り込むことで、軍内部で大イスラエル主義が拡大する状況をつくり出していったのである。
池内 恵 / 立山良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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