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 1961년은 춘향전의 해였다.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명보·수도극장,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이 국제·국도극장에 걸렸다. 신 감독 아내 최은희와 홍 감독 아내 김지미가 각각 춘향으로 나선 부부 대결이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결과는 '성춘향'의 압승이었다. '전무후무할 흥행-서울서만 74일간 38만명 관람' 1961년 4월 28일 자 조선일보는 '성춘향'의 성공을 톱기사로 실었다. 그해 서울 인구가 258만명이었으니 7명 중 1명꼴로 이 영화를 본 셈이다. 당시 최은희는 서른다섯, 이몽룡 역을 맡은 김진규는 서른여덟. 춘향전 역사상 최고령 커플이었다.
▶최은희는 흰 저고리와 치마가 잘 어울리는 한국적 미인이었다. 주요섭 소설을 영화로 만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나도향 원작 '벙어리 삼룡이' 등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유교적 전통과 인습에 따르면서도 강인한 여인의 내면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담아냈다. 직접 메가폰을 잡고 '민며느리' '공주님의 짝사랑'을 연출하기도 했다.
▶최은희는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끌려갔다. 김정일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최은희는 '김정일은 거의 매주 금요일 나를 불러내 파티를 열었다'고 수기에 썼다. 김정일과 장성택 부부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어느 날은 김정일이 패티 김 '이별'을 불러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함께 납치된 신상옥에 따르면 '목포의 눈물' '노란 샤쓰의 사나이' '동백아가씨' '하숙생' 같은 남쪽 가요가 파티장 단골 레퍼토리였다. 최은희는 "북한에 있던 8년 동안 나는 인생에서 가장 긴 연기를 하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영국 감독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애덤은 2016년 최은희-신상옥 부부의 납치·탈출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를 개봉했다. 두 사람은 "이 사건을 들었을 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여전히 많은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서 목숨 걸고 녹음한 김정일의 목소리가 담겼다.
▶최은희가 그제 아흔두 살의 생애를 마쳤다. 사전 서약대로 두 눈까지 기증했다. 그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나의 애창곡은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했다. 혼을 담은 연기와 영화 같은 삶이었지만 그 자신에게는 '바보 같은 인생'이었을까. 우리 현대사의 격동 한가운데에 있었던 한 여배우가 그 자신이 역사가 돼 우리 곁을 떠났다.
ⓒ 조선일보
김도향 바보처럼 살았군요
여배우 최은희의 말년
90을 넘긴 당대 최고 인기여배우 최은희씨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옛날 조용한 지적 여인상으로 최고의 미모와 연기력으로 한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녀의 인생은 파란 만장한속에 지금은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혼자 떠날 날만 기다리시고 있답니다.
입양해서 키워준 자식들도 최은희를 모시지 않고 양로원에 맡겨놓고 있는상황...
친자식도 그런데 키워준 자식은 오죽하겠습니까?
자식들 모두다 소용없습니다. 우리 자신 들을 위해 삽시다.
자신의 장례식엔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를 장송곡으로 해달라고 하더군요!
참말허무하고 아쉬움에 마음이 휑하였습니다.
아! 김정일이 탐내어 납치까지 한 이런 미모의 배우도 늙음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화려했던 삶에 무기력한채 빈손으로 저승길에 나서니
돈도 명예도 부도 화려함도 다~헛된 물거품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란 노래가 더욱 실감나는 한순간입니다.
인생길 황혼속에 즐겁게 살면서 남은 인생 친구나 혹은, 연인과 함께 여행다니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게 제일 값진 인생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우리모두 힘냅시다!!!
자식 위해 희생하고 고생 하지 맙시다
아이들의 남은 세계는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갈 시간도 많이 있습니다.
나이 먹은 우리는 급하고 시간이 없습니다.
나이는 속일수 없습니다. 남은 인생 즐겁게 삽시다.
중년들이여! 노년들이여! 힘내시고 우리모두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