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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弓鬼劍神)제16장 천리표국(千里驃局)-1
소문이 눈을 뜬 건 해가 이미 중천에 떠서 그 빛을 최대한 지상에 보내고 있을
때였다. 소문이 이곳 북경에 들어 온지 는 한참이 되었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그를 반겨주는
것은 길 에 굴러다니는 현상금 종이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해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아침까지 잠시 벽에 기대어 쉰다는 게 그 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소문이 왁
자지껄하는 소리와 웅성거림에 살며시 눈을 뜨자 자신의 앞에는 몇 개의 동전이
놓여있었고, 안됐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도 간혹 눈에 띄었 다.
'이건 머지?'
소문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잊고 있었다. 하지 만 잠시 후 그 동
전의 의미를 깨달은 소문은 창피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창피하다고 움츠려 들
면 더 창피 한 법, 소문은 어깨를 펴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덮고
있던 옷인지 걸렌지 유무가 불확실한 장삼(長衫)을 소 리내어 털더니 가지런히 접었다. 물론
땅에 떨어진 동전도 주었다. 소문이 그 동안 구걸하며 익힌 생존의 법칙 제1조
'챙길 수 있을 때 챙겨라'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소문이 너 무나 당당하게 행동하자 그를 바
라보던 사람들은 일순 착각 을 했다. 혹여라도 그를 잘못 본 것인가, 다시 확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미친놈!!'
사람들의 이런 시선을 무시하고 소문이 발걸음을 옮긴 곳 은 북경시내 한
복판에 크게 문을 열고 있는 만인루(萬人樓) 라는 큰 주루(酒樓)였다. 만인루에 들어선 소문은
그 규모에 우선 놀랐고, 안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수에 또 한번 놀 랐다. 만
인루는 총 삼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일층과 이층은 주 로 술과 음식을 파는 곳이었고, 삼층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 들을 위한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객점(客店)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로 파는 것이 술이다보니 주루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닌
듯 싶었다.
'허, 대낮부터 술을 퍼먹는 인간이 머 이리 많지?'
소문은 안에서 술을 먹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음에 상당 히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소문의 마음이 이 해가 되는 것이 만인루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
도로 꽉 차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앞에 식사를 위한 음식보다는 술을 위한
안주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문은 사람이 많건 적건 이왕 온 김에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귀찮고 하여 만인 루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시....흠...."
소문이 들어서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나와 고개를 수직으로 꺾은 점원은 주루
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다가 문득 소문의 신발을 보곤 그 시선을 점차 바지에서 상의로 그리
고 얼굴로 향하더니만 하던 인사를 잠시 멈추고는 기도 안차다는 듯이 소문을
쳐다보았다.
"밥없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라" "........"
"이시키가....여기는 너 같은 거지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어서옵쇼!!!"
황금이 주관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생로병사(生老病死)뿐이 라고 누군가 말
했다지...과연 황금 동전 하나의 위력은 실로 막강했다. 소문을 거지로 알고 눈을 부라리며 쫓
아내려던 점 원은 소문이 말없이 내민 황금 한 냥을 보더니 그 태도가 어 느새
싹 바뀌어 있었다.
"어서오십쇼, 뭘 도와드릴까요? 저희 주루에는 없는 술 빼 고 다 있습니다.
중원의 술은 물론이고 저 멀리 조선의 진짜 이슬로 담근 술과 색목인(色目人)들이 즐겨 마신
다는 술도 있습죠. 에 또한 최고의 주방장들이 동원되어 음식이란 음식 은 모
조리 만들어서 대령하는 그야말로 북경에서 으뜸가는 곳입니다"
소문이 미처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점원은 자기가 할 말 을 다하고 읍을
하며 서 있었다.
'머 이런 놈이 다 있어...'
점원이 하는 말 중에서 소문이 알아들은 말은 그저 술과 음식이 있다는 말
뿐이었다. 소문은 그런 점원을 무시하고 주 루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지만 점원은 그런 소
문을 가만 두지 않았다.
"헤헤, 일층과 이층은 손님들이 다 차서 자리가 없습니다.
삼층의 방으로 드시지요. 요 며칠은 삼층에서도 술손님을 받 고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점원의 말대로 일,이층엔 자리가 다 차서 앉을 자리가 없
었다. 소문은 결국 삼층의 방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방안은 아래의 술좌석과는 다르게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방 한켠에는 침상이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원형으로 된 탁자
가 놓여 있었는데 나무의 뿌리를 잘라 만들었는지 그 모양이 멋들어졌다. 소문이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자 점원은 허리를 굽히고 실실 웃으면서 소문에게 다가왔다. 그 모양이
주문을 받기 위함임은 소문도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술하고 간단한 안주"
소문은 간단 명료하게 말했지만 점원은 그게 성이 안찬 모 양이었다.
"술은 어떤 걸로 같다 드릴까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 종류가 너무 많아
서....헤헤...그리고 안주 또한 하나를 꼭 찍 어서 올리기엔 너무 뛰어난 것들만 있어서...."
'빌어먹을 놈. 내가 아는 게 있어야 시키든지 할꺼 야냐?' "흠...여기서 가
장 유명한 게 아닌 것으로" "예?"
"험험. 여기서 가장 잘 하는 걸로 가져오라는 말일세." "아예.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면 금방 갖다 올리겠습니다."
점원은 재빠른 동작으로 방안에서 사라지다니 일각이 지나 지 않아서 쟁반
가득 술과 안주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헤헤, 이게 저희 만인루에서 자랑하는 죽엽청(竹葉靑)입니 다. 보통 주루에
도 죽엽청을 다 팔고는 있지만 진정한 죽엽 청은 그 숙성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은 것으로 이
런 술은 노 란 빛깔에 은은한 대나무향이 납지요. 허나 그런 죽엽청을 파는
곳은 만인루가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주는 뭐니뭐니해도 북경요리의 자랑
오리고기 입죠. 다른 어떤 안주보다 죽엽청과 잘 어울리는 요리가 바로 요 오리라
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습니다. 북경에 오셨으면 다른 것 은 몰라도 저희 만인루에서 죽
엽청과 오리 안주를 먹어야 비 로소 북경에 다녀갔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는
유명합니다"
점원은 일사천리로 술과 안주에 대해서 소개를 하더니 중 앙에 있는 탁자에
가지고 온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다. 그리 고는 소문을 향해 말을 했다.
"더 시키실 것 있음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그럼 "
점원은 인사를 하더니 방안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 점원 을 소문은 황급히
불러 세웠다.
"저기....옷이...."
"아예. 옷가게는 요 앞에 포목점(布木店)에서 구입하시면 됩니다요. 아님
제가 사다 들릴까요?"
소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화 두 냥을 주었다. 그러자 점원은 깜짝 놀
라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뭔 놈의 돈을 이리 많이 주십니까? 이 돈이면 주 루 안의 사람들
에게 자 사서 입힐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자네가....고마워서..."
"가...감사합니다. 나리. 감사합니다. 제가 후딱 가서 근사한 옷을 사다 드립
죠. 정말 감사합니다. 나리!!"
점원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더니 소문이 혹여 라도 마음을 바꿀
까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점원은 지금 너무 기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죽어라 일해
야 한 달 에 겨우 은자 닷 냥을 벌뿐인데 은도 아니고 금화 두냥이 면... 일
년은 놀고먹어도 될 거금이었다. 점원이 저리 기뻐하 는 것도 당연했다.
소문이 술은 남기고(어제 퍼먹은 술의 여파가...)안주로 나 온 통통했던 오리
를 한참 뼈다귀로 만들어 가고 있는데 예의 그 점원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점원의 손에는 백색
의 무복(武 服) 한벌과 흑색의 장삼(長衫)이 한벌이 각각 들려 있었다.
"포목점에 있는 옷 들 중 최고급으로 만들어진 옷입니다.
백색 무복과 흑색 장삼의 조화는 웬지 분위기가 있는 모양인 지라 요즘 많은
무사님들이 그리 입는다 들었습니다. 점원은 소문이 바닥에 내려놓은 활을 슬며시 보면서 말
을 했다. 소 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점원은 소문의 옆에 서 서 얼
마든지 일을 더 시켜달라는 듯 서 있었다. 소문은 그런 점원에게 자신에게 꼭 필요한 몇 가지
정보를 알아내고자 하 였다. 우선 말하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흠...저기, 사천(四川)..."
"예, 사천요리도 이곳에서는 취급을 합니다만..." "그게 아니고 사천에...."
"아. 사천에서 오셨다고요. 어쩐지 첨에 무사님의 의복이며 모습이 조금 남루
하여 먼 곳에서 오신 줄 알았습니다" "....."
점원은 말을 하다 말고 소문의 눈초리가 차츰 매서워 지는 것을 보고 이게
아니다 싶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소문의 말 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사천에 자려면...아니 가려면 어찌 가야 하는지?" "아... 사천 말씀이시군요.
헌데 혹시 손님께서는 중원 분이 아니 신가요?
"그렇네"
"흠... 중원 분이 아니시면 지리도 잘 모르실 거고, 더구나 말이 잘 통하지도
않는 듯하니..."
점원은 상당히 곤란하다는 듯이 소문을 쳐다보았다. 소문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 갑자 기 점원의 얼굴에 생기가 돌더니 소문에게 대뜸
질문을 했 다.
"저기, 손님. 혹시 무공을 익히셨는지요?" "약간의 실력은 지니고 있네."
소문은 점원의 뜬금 없는 소리에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대 답을 했다. 그러
자 점원은 환한 얼굴로 소문에게 말을 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손님께서 무공을 지니셨다니 하나 의 방법이 떠오
르는군요."
"그게 무엇인가?"
"예. 알다시피 사천이란 곳은 길도 멀거니와 그 길이 험하 기로 유명한 곳입
니다. 손님처럼 초행(初行)이시라면 더욱더 가기 힘든 곳이 사천이지요. 허나 아무리 먼 곳이
라도 이웃 마을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없단
말인가? 그게 누구인가?"
소문은 반가운 마음에 반문을 하자 점원은 소문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었
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흔히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 을 표국(驃局)이
라 하지요."
"표국? 아! 표국..."
소문은 표국이란 말을 지난 여행 중에 우연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무림인들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조직이라고 했던가... 소문은 자신도 표국을
안다는 것을 자랑이나 하듯 말을 길게 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표국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원 방방곡곡(坊坊曲 曲)을 안가는 곳
이 없죠."
"그래서?"
"아. 그러니까 표사(驃士)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천까지 갈 수 있다 이거죠"
"흠..."
딴은 그러했다. 하지만 표사는 아무나 시켜주나... 소문이 알기에 표사는 무
공실력도 뛰어나고 또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웬만큼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고용하지 않는 것
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점원의 말은 소문의 이런 걱정을 없애 주
었다.
"요즘엔 장사가 잘 되는지 중원 이곳저곳으로 많은 물건들 이 옮겨진다고 하
는데 그래서 그 물건을 운송해줄 표국도 많 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표사가 부족할 수
밖에요. 그 래서 한동안 이곳 저곳에서 표사를 뽑는다고 난리도 아니었 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표국에서 표사를 뽑는 것이 끝났 고 천리표국(千里驃局) 한 곳 만이 남았
다고 들었습니다. 저 기 일, 이층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다 표사가 되려고 모인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손님도 표사에 한 번 도전헤 보시 지요? 된다고만 하면 사천까지
가시는 길이 한결 쉬워질 겁 니다."
"흠. 표사라...."
영락제(榮樂帝)가 정난(靖難)의 변(變)을 일으켜 정원을 잡 은 후 많은 일들
을 하였지만 그중 하나가 환관(宦官)이었던 정화(鄭和)를 내세워 남해(南海)를 정벌한 것이었
다. 이는 명 나라의 세력을 확대시키고 적극적으로 남해 각지에까지 조공 무역
(朝貢貿易) 관계를 확대하려고 하는 의도였는데 그 내용 은 관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뱃길이 열리자 많 은 상인들이 몰려
들어 장사를 시작한 바 중원의 상계는 엄청 난 발전을 하였다. 온갖 물건들이 바다를 통해 들
어오고 중 원으로 뿌려졌다. 또한 중원의 물건들이 해외로 나가는 계기 도 되었
다. 당연히 중원 내에서 상품의 이동이 빈번하였는바 이렇게 상업이 발달하자 이런 물건을 노
리는 녹림도(綠林徒) 의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결국 상인들은 자신들
의 물건의 안전을 위해 표국을 찾게 되고 표국업은 유래 없 이 그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북경에서도 표국업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에 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천리표국(千里驃局) 이었다. 천리표 국의 국주(局主) 일수철권(一手鐵拳) 전원삼(田元
三)은 하남성 (河南省)에 위치하고 있는 중원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 소 림사
(少林寺)의 속가제자(俗家弟子)로 특히 소림오권(少林五 拳)에 달통한 고수였다. 천리표국은
이런 국주 아래로 많은 표두(驃頭) 들과 뛰어난 표사들이 있어 중원의 오대표국(五代
驃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규모와 실력이 뛰어났다. 당연히 표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기왕 표사가 되려면 이런 곳에서 일 을 하는 것을 원으로 삼았다. 해서 천리표국이 표사를 뽑
는 다는 소리에 이처럼 이곳 저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 점원은 소문에게 표 사가 되는 것을 제시 한 것이다.
'천리표국이라....'
소문은 귀가 솔깃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표사 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표사가 된다고 하여도 그날 바로 사천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얼마나 돌
아다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문이 한참 상념에 빠져 있는데 점 원은 소
문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다.
"저...손님. 표사가 되려고 하시면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응? 그건 또 무
슨 소리지?"
"이제 곧 표사를 뽑을 시간입니다. 게다가 그 기간이 단지 오늘 하루뿐인지
라.... 잘못 시간을 지체하시다간 애초의 기회 조차 잃어버리시니 만약 결심이 서시면 지금 즉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점원은 적이 걱정된다는 투로 말을 했다. 한참을 고민 끝 에 결국 소문은
표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어차피 자신혼 자 사천땅을 찾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다
소간의 시간 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기왕 결정한 것 하려면 확실히 해야 했다.
"자네 말을 따르도록 하지. 그래 천리표국은 어디에 있는 가?
"잘생각하셨습니다. 천리표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 니다. 큰길로 계속
가시다보면 큰 정육점이 하나 나옵니다.
거기서 우회전을 하여 이십 여장을 가시다보면 좌측으로 자 그마한 주루가 하
나 나옵니다. 이름이 빈청루(貧靑樓)라고 하 죠. 거기서 다시 좌회전을 하여 일다경(一茶頃)쯤
가시다 보 면 큰 사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서 계속 직진을 하시다 보면 큰 대장
간이 보일 겁니다. 그 대장간에서 우회전하여 반 시 진만 계속 올라가시면 그것이 바로 천리
표국입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어린애라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소문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착하게 보이다가 갑자기 빌어 먹을 놈처럼 보이
는 점원이 하늘 말 중 소문이 제대로 알아 들은 말이 없었다. 소문이 비록 말을 하는데 어색
해서 그렇 지 웬만큼 빠른 말도 모두 알아들었다. 하지만 점원의 말은 직업에
서 나오는 습관인지는 몰라도 소문이 이해하기에는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하지만 '어린애라
도...'라는 점원의 마지 막 말이 마음에 걸려 다시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알아들었
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궁귀검신(弓鬼劍神)제16장 천리표국(千里驃局)-2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자신은 사람들이 일러주는 대로 제대로 왔건만 그
들이 말하는 곳을 가보면 전혀 엉뚱한 곳이 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가고 소문의 마음은 더
욱 조급해 졌다.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만인루에 돌아가 그 점원 을 앞세
워 천리표국으로 온다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소문의 바램으로 끝날 공산이 컸다. 그 동안 물
어물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이 지금 어디 서 있는 지도 몰랐으니
더욱이 만인루가 어디에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소문은 혹 시나 하고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철면피에게 하소연을 했 다.
"면피야 너두 모르겠냐?"
철면피....
중원에 온 철면피는 과거 장백산에서와는 달리 행동에서 상당히 수상쩍은
움직임이 간파되고 있었다. 매일 같이 어디 론가 날아가 저녁때나 돌아오고 간혹 며칠이 지나
야 돌아오 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면피를 보고 소문은 중원의 하늘까 지 지배
할 모양이라고 웃은 적도 있었지만 면피의 행동은 한 결 같았다. 지금만해도 소문이 만인루에
서 나오자 어느새 사 라졌던 면피가 나타나 어깨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
전에 헤어진 자신을 용케도 찾아오는 것을 보며 늘 감탄을 하는 소문이었다. 해서 혹시나
하여 물어본 것인데 소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깨에서 나아 오른 철면피는 어디론가 천
천히 날아갔다. 소문은 날아가는 면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뛰어갔다. 하늘을
날아가는 면피를 보며 얼마나 뛰었 을까? 잠시 후 소문이 도착한 곳은 만인루의 정면이었다.
만 인루에 다시 오게 된 소문은 기쁨에 겨워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면피야 네가 나를 살리는 구나..."
소문은 재빨리 만인루로 뛰어 들어갔다. 체면이고 뭐고 따 질 게재가 아니었
다. 만이루에 들어선 소문은 아까 자신을 도왔던 점원을 찾았다. 점원은 쉽게 찾을 수 있었
다. 아니 소 문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 대강 사정을 짐작한 점원 이 알
아서 소문 앞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 점원도 소문을 보 내놓고 웬지 안심을 하지 못하고 있었
다. 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시간을 보니 급히 서둔다 해도 빠듯한지라 점
원은 뒤도 안보고 뛰어갔다. 그 뒤를 소문이 역시 재빨리 쫓 아가고 있었다. 얼마를 뛰어 갔
을까? 점원이 차오르는 숨을 가삐 몰아쉬고 있는데 그 정면에는 실로 규모가 큰 장원(莊
園)이 나타났다. 정문(正門)의 지붕아래에는 커다란 글씨로 쓴 천리표국(千里驃局)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소문이 바라보니 그 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걸어나오고 있었
다.
"휴. 이번에 제대로 온 것 같군. 고맙네." "어서 들어가십시오. 시간이 다
된 듯 싶습니다."
점원의 종용을 받고 소문은 천리표국으로 발을 들여놓았 다. 헌데 그런 그
를 막 천리표국을 나오던 사람들이 불러 세 웠다.
"어이. 이보시오. 혹시 표사가 되려고 왔으면 다 틀린 일이 니 그냥 돌아가시
오."
"아니 어째서요?"
"이미 표사를 뽑는 과정은 다 끝이 나고 이렇게 떨어진 사 람들만 돌아가고
있지 않소"
벌써 끝이 나다니, 소문은 마음이 급했다. 그를 만류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표국 안으로 들어섰다. 표국안 에는 합격을 한 표사들과 시험관인 듯한 중년인이
서로의 계 약조건과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듯 했다.
소문은 그중 사람들의 중앙에 서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중년 인에게 다가갔다.
그런 소문을 보고 그 중년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뉘시오?"
"예. 저는 을지소문이라고 하고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 왔 습니다."
"허, 말은 고맙지만 이미 표사의 선발은 끝났으니 다음에 한번 찾아주시오."
"이곳에서 일하고자 밤에만 달려 왔습니다. 아니 낮에도 달려 왔습니다.
시험이라도 보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이미 끝났으니 나도 어쩔 수 없소. 만약에 당신에
게 시험기회를 준다면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 야 할 터, 이만 돌아가
시오"
소문이 아무리 매달리고 애원을 해도 그 중년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하지
만 소문은 중년인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중년인은 처음엔 점잖히
타이르다가 나중엔 짜증도 내고 화도 냈다. 그러나 소문은 요지부동이었 다. 한
참을 그렇게 실랑이를 하자 중년인은 화도 났지만 한 편 이렇게 애쓰는 소문이 가엽기도 하였
다.
"허허, 그렇게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가?" "예? 예예."
"흠, 그러면 이미 표사의 선발은 끝이 났지만 쟁자수(爭子 手)라면 한번 고
려해 볼 수 있네만... 어떤가 쟁자수라도 한번 해 볼 텐가? 헌데 자네의 복장을 보면 쟁자수
같이 험한 일 을 할 사람은 아닌데..."
소문은 귀가 번쩍 뜨였다. 쟁자수라,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암튼 표국에서 일
을 하는 것은 틀림없었다. 중년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할수 있습니다. 사실 이 옷은 이곳에 들어오고자 제 전 재산을 털어
겨우 장만을 한 옷입니다." "하하, 그런가? 자네의 정성이 남다른 대가 있구먼 그래...
이보게 아삼(阿三). 이 친구를 쟁사수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안내하게. 내가
보냈다고 하고"
"예. 총관 어르신"
중년인은 자신의 옆에서 무엇인가를 적고 있던 사람에게 소문을 부탁했다.
소문이 보기에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 을 보니 그도 이곳 표사인 것 같았다.
"하하. 자네 정말 대단하군. 총관님이 원칙을 어기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그래, 나는 아삼이라 하네. 이곳에서 표사일 을 하고 있지."
"예. 저는 을지소문이라합니다."
"을지소문이라, 암튼 열심히 일해보게" "예. 감사합니다."
아삼이 소문을 데려간 곳은 천리표국의 본각에서 우측으로 삼십여장 떨어진
동쪽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소문이 아까 본 본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그것이 본 각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 는 건물
이었다.
"이곳이 이제 자네가 생활할 곳이네. 본 표국에는 자네 말 고도 사십 여명의
쟁자수가 있네. 이곳은 그들이 쓰는 건물 이고. 그럼 따라오게"
소문이 아삼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행
동이 일순 멈추더니 시선을 소문에게 던졌 다. 소문 또한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건물 안에는 중앙의 넓은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길다란 침상이 차지하
고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이십 여명은 충분히 누워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침상 위의 벽쪽으로
는 개인의 물건을 보 관할 수 있는 간단한 장식장도 놓여 있었다.
"허, 또 주사위인가? 그만들하고 여기 좀 잠시 보게. 오늘 부터 이곳에서 생
활하게 될 을지소문이라는 친구일세.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어 뵈는 듯 하니 많이 도와주게."
"쟁자수 일이라는 게 계집질하고 똑 같아서 몇 번 해보면 자연 익숙해지는 거
지요. 그게 도와준다고 되간요?"
지금 침상 위에선 무얼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삥 둘러앉아 있다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아삼과 들어온 소문을 바라보 고 있었는데, 아삼의 말에 지금까지 주사위를 던
지고 있던 가운데의 사내가 웃으며 말을 하자 주변의 쟁자수들이 맞장 구를 치
며 웃어 제꼈다. 아삼도 그들과 함께 웃다가 다시 한 번 소문을 부탁하더니 곧 밖으로 발걸음
을 했다. 소문은 그 런 아삼에게 크게 읍을 했고 아삼도 웃음으로 답례를 해 주
었다.
"그래. 을지소문이라고?"
"예."
"고향은 어딘가?"
"혼인은 했는가?"
"뭣 때문에 이곳에 왔지?"
아삼이 나가자 그 동안 주사위에 정신이 없던 사람들이 갑 자기 소문을 둘러
싸고 온갖 질문을 해대는 통에 소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때 침상 구석에서 크진 않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만."
구석에서 들려온 한마디의 말은 지금껏 소란스러웠던 상황 을 순식간에 잠재
우는 위력이 있었다. 소문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궁금해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 다. 그곳에는 한 명의 노인이 벽에 기대어 소문을 지그시 바 라보고
있었다. 머리는 하얀 백색이었는데 곱게 묶어서 뒤로 넘기고 손에는 곰방대를 들고 있는 노인
이었다.
'곰방대...'
"저분이 이곳의 책임자인 강량(康亮)어르신이네. 인사드리 게"
옛 생각을 하며 멀뚱히 서있는 소문의 곁으로 아까 여자 운운했던 사내가
소문에게 오더니 조용히 일러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강량이라는 노인은 소문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며 물었 다. 소문은 서둘
러 나아가 인사를 하며 공손하게 대답을 했 다.
"을지소문이라고 합니다."
"흠... 말투를 들어보니 이곳 사람이 아니구먼?" "예. 저는 조선에서 왔습니
다."
"조선? 아니 조선에서 예까지 무엇하러 왔단 말인가? 그리 고 쟁자수라니..."
"사천에 중요한 볼일이 있어 왔지만 지리도 모르고.. 말도 서툴러... 표국의
힘을 빌어 사천에 가려고 이곳에 오게 됐습 니다."
소천은 아주 천천히 말을 했다. 혹시라도 엉뚱한 소리를 할까 긴장을 했
더니 온몬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노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리를 모르는 거야 그렇다쳐도 말은 제법 잘 하는 구만 그래.."
"아닙니다. 지금은 우연히 말이 바로 나오지 않은 것입니 다. 제가 말을 하
면 사람들이 무슨 소릴 하는지 잘 알아 듯 습니다."
소문은 노인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지만 노인은 이미 소문의 실력
을 알아채고 말았다.
"허허, 과연 문제가 있긴 있구만.... 재밌는 친구야"
노인은 잠시 소문을 보며 웃다가 여전히 소문의 뒤에 서 있는 사내에게 조
용히 말을 했다.
"이보게 삼봉(三峯)이! 이 친구가 제법 맘에 드는구만. 저 쪽에 자리 하나
를 마련해주고 이곳 생활에 대해 일러주도록 하게"
"예, 어르신"
말을 마친 노인은 소문에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하. 삼봉이라... 설마 성씨가 장(張)씨는 아니겠지..'
소문은 아까 주사위를 던지다 자신을 강량이라는 노인에게 인도해준 사람이
삼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알고는 실소를 했다. 삼봉이라는 것은 소림과 어깨를 나
란히 하는 도문(道門) 성지인 무당파(武當派)의 조사 장삼봉(張三峯)을 말하는
이름인데 그는 생김이 호방하고 무예가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었다고 들었다. 헌데 그와
이름이 같은 이 사 람은 호방과는 거리가 먼, 좋게 말해서는 눈치 빠르게 생겼
고 다른 말로 얍쌉하게 생긴 그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이었다.
"소문이라 했던가? 반갑네. 나는 장삼봉이라 하네" "헉!"
"아니 무슨 일인가?"
"아...아닙니다."
소문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삼봉이라는 사내 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장삼봉은 소문에게 건물의 입구에 서 좌측에 위치한 침상으로 올라가더니 소문을 불
렀다.
"이제부터 여기가 자네의 자리네. 짐들은 잠시 후에 풀도 록 하고 우선 이
곳에서 같이 생활하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먼 저 하도록 하세"
장삼봉은 소문의 의사는 물을 것도 없이 뒤돌아 크게 외쳤 다.
"어이. 이보게들 오늘 새로 젊은 친구가 왔으니 인사나 하 도록 하지. 들어서
알겠지만 이름은 소문이고 조선에서 왔다 고 하네. 나이는....이보게 소문이 자네가 올해 몇인
가?" "스물 하나입니다."
"흠. 그래...나이는 스물 하나라네. 이제부터 한 식구처럼 지낼 것인즉 잘
대해 주라는 어르신의 말씀도 계셨다네.."
장삼봉의 말이 끝나자 이미 소문에게 다가온 여러 쟁자수 들이 서로 자신들
의 이름을 알려주며 인사를 했다.
"반갑네. 나는 여명(黎明)이라 하고 올해 서른 일세."
이름에 명(明)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 상이 참 좋았다.
"난, 노구(魯邱)라 하고 이 친구는 유금산(柳金山)이라 하네 이름 그대로 돈
이 많으니 잘 우려먹게. 하하하" "예끼, 이 사람아. 가지고 놀게 없어서 이름을 가지고 노
나... 그래 반갑네. 자네도 나만큼이나 키가 크구만....하하하"
노구라는 사람은 오척단구의 작은 몸집을 지녔지만 구리빛 피부가 말해주듯
상당히 강인해 보였다. 반면에 노구와 농을 주고받은 유금산이라는 사람은 그 키가 육척에 달
하는 소문 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고, 빼빼 마른 소문과는 달리 덩치가
우람하여 그 유명한 장군 장비(張飛)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노구와 유금산이 물러서자 두명의 사내가 소문의 앞에 섰 다. 얼굴이 비슷
한 것이 마치 형제 같았는데 그중 나이가 들 어보이는 사람이 소문에게 말을 꺼냈다.
"나는 개세기(改世己)라 하고 이쪽은 내 아우 개지랄(改止 辣)이라 하네"
"크헙!!"
'크허헙, 개세끼에 개지랄이라... 환장하겠네...'
중국식 말로야 아무런 이상이 없는 말이겠지만 소문은 조 선 사람, 조선어
의 뜻으로 들려오는 말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소문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필사적으로
터져 나오려 는 웃음을 참아냈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님께서 나보고 혼탁한 세상을 고치 라 하셨고, 동생
에겐 함부로 말을 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 에서 이런 이름은 지어주셨건만 우리가 불민하여
그 뜻에 따 르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네..." "아예. 이름에 그런 심..오
한...뜻이 있었군요..."
개세기는 소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술 더 떠 이 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 붙였다. 소문은 그때마다 밑에 서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막느라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건 물 안에는 그 외에도 두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그저 평범한 시
골 사람처럼 생긴 사람은 채대식(蔡戴識)이라 했고, 가장 어려 보였던 사내의 이름은 양지령(陽
芝靈)이었는데 나 이가 소문보다 두 살 아래인 열 아홉이었다. 양지령을 제외
한 소개한 모든 사람은 소문보다 나이들이 많았다.
"반겨부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을지소문이라 하고 조선에 서 와서 중원 말
을 잘 못하니까 이해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안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문은 다른 이들의 소개가 끝나자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 를 했다. 그러나
소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 지더니 갑자기 뒤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특히
자신을 노 구라고 소개했던 사람은 어찌나 웃어대는지 눈에 눈물이 고 이기까
지 했다.
"암. 반겨부셔야지, 안 부시면 큰일나지...카카카" "그럼, 그럼. 열심히 하지
않아야 좋은 쟁자수가 되는 것이 라네....크크크크"
'지미...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사람들이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왜 웃는지를 모를 소문은 아니었다.
그들을 말리고 나선 것은 개씨 형제의 큰 형 개세기였다.
"그만들 하게. 말이 서툴러서 그런걸....흠, 그래도 좀 황당 하긴 하구만."
개세기는 말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쟁자수에 대해 설 명을 하기 시작했
다.
"보아하니 자네는 이런 일이 처음인 것 같은데 맞나?" "예"
"흠, 역시 그렇구만. 그럼 내 잠시 우리 천리표국에 대해 말을 해줌세. 표
국은 위로는 국주님과 그 아래로 표국의 대 소사를 관장하는 총관(總管)있고, 모든 표사들의
우두머리인 대표두(大驃頭)와 표두가 있으며 그 아래로 일반 표사들이 있네"
개세기가 잠시 뜸을 들이자 그의 동생 개지랄이 대뜸 말 을 이었다.
"표사들은 표물(驃物)을 도적이나 녹림(綠林)의 무리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하
는 것이고 우리는 표물에 대한 관리에서부 터 짐을 운반하는 말과 마차의 관리, 그리고 노숙
을 할 경우 그 잠자리 마련까지 우리가 하는 일이라네" "아예..."
소문은 그제서야 쟁자수가 하는 일의 성격을 알 수 있었 다. 한마디로 표
국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었다.
"보통 한번의 표행에는 표사들의 수는 그 위험에 따라 변 동이 있지만 일반
적으로 쟁자수의 수는 아홉으로 정해져 있 다네. 물론 그 규모가 너무 커서 표물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야 그 수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쟁자수의 수는 줄어들지
는 않네. 천리표국에서는 이런 쟁자수들이 약 50여 명이 있어 여섯 조를 이루고 있네. 지금
다른 조는 표행에 나섰고, 남은 우리들이 자네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저기 앉아 계시는 분이 우리 조의 조장님이시자 모든 쟁자수 의 수장이 되시는 분이지... 많은
것을 알아야 하겠지만 그것 들은 차차 알게 되겠고 오늘은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할께
야"
"예...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개지랄은 장삼봉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무래도 저 노인을 제외하
고는 장삼봉이라는 사람이 이 무리의 우두 머리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시선을 받은 장삼봉
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강량에게 다갔다.
"저기..어르신?"
"왜 그러나?"
강량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며 반문을 했다.
"헤헤, 새로 동료도 들어왔으니 술이라도 한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술이라... 그래야 겠지. 허나 새로운 표행이 금방 있을 듯 하니 너무 무
리해서 마시지는 말게" "예, 어르신.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나는 되었으니
자네들끼리 다녀오게...그리고 이건 술값에 보태게"
강량은 주머니 하나를 장삼봉에게 던져 주었다. 황급히 주 머니를 받은 장삼
봉은 크게 인사를 하였다.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삼봉은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오더니 주머니를 흔 들었다.
"흐흐흐, 어르신이 술값까지 주셨으니 오늘은 원 없이 먹 어 보세나..."
"좋지"
"그나저나 이 친구가 우리들의 주량을 견딜지 몰라? 하하 하"
장삼봉을 필두로 하여 강량을 제외한 건물 안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주
루로 향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에 멀쩡하 게 돌아온 사람은 예상과는 달리 소문과 제일 나
이가 어린 양지령이었다. 양지령이야 술을 잘 못해 애초에 먹지를 않아 서 그랬
다지만 소문은.... 과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긴 무 서운 모양이었다.
궁귀검신(弓鬼劍神)제16장 천리표국(千里驃局)-3
"자, 서둘러라. 오전 중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는 표국을 나서야 한다. "
오전부터 천리표국은 몹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니 항상 그래왔으니 오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소문이 속한 조의 쟁자수(爭子手)들과 그들을 이끌고 표행(驃行)길에 나설 표사들이었다.
표국의 대소사를 챙기는 총관 양기(梁驥)는 비록 이번 표행길이 왕복으로 사흘거리에 표물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비단 몇필과 미곡 열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천리표국의 신용에 금이라도 갈까 조바심이 나는듯 짐을 싣고 있는 쟁자수들을 다그쳤다.
총관의 다그침이 효과가 있는 지는 몰라도 물건을 마차에 싣는 일이며 밤에
노숙할 준비며 표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소문이 속해 있는 곳의 쟁자수 들은 이미 막내인 양지령의 쟁자수 경험이 이년에 가까워 올 만큼 경험들이 모두 풍부하다 보니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아는 모양이었다.
다만 총관이 저리 서두르는 것은 그 이유가 쟁자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 구석에 멍청히 서서 노가리를 풀고 있는 표사들에게 있었다.
이번 표행길에 나서는 표사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더구나 표행을 이끄는 우
두머리가 표두도 아니고 단지고참 표사인 아삼이고 나머지 네명의 표사가 모두 이번에 새로
모집한 신 출내기 표사들인지라 은근히 걱정이 되는 터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표물을 실은 마차를 중심으로 맨앞에 이번 표행의 우두
머리인 아삼이 말을 타고 서 있었고 좌우에 표사 둘, 그리고 수레 뒤에 나머지 두명의 표사가
역시 말을 타고 있었다.
소문을 포함한 열명의 쟁자수들은 각기 수레 주변에
서 간단한 취사도구와 야영도구를 봇짐에 챙겨 짊어지 고 있었다. 수레에는 개세기, 개지랄 형제가 앉아 말을 몰 준 비를 했고, 쟁자수의 우두머리인 강량은 소문의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 그는 아무 것도 짊어지지 않고 그저 하나의 곰 방대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거리가 짧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표물을 노 리는 적들이 나올
지 모르는 일, 항상 주의해서 다녀오기 바 라네. 특히 아삼은 첫 표행에 나서는 표사들에게
좋은 경험 을 시켜준다는 의미로 특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고" "예. 총관어른.
염려 놓으십시오"
아삼은 마상에서 당당히 허리를 펴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런 아삼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총관은 수레 뒤에 서 있는 강량에게
다가오더니 조용히 인사를 했다.
"어르신께서도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조심하시고요." "그저 제 할 일
을 할뿐이지요"
강량도 총관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자. 갑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히히힝!!"
아삼의 출발 신호에 마차에 타고 있던 개지랄이 힘차게 채 찍질을 했다. 말
의 힘찬 울음은 이번 표행을 모두에게 알리 는 신호였다.
"달그락, 달그락...."
끝없이 길게만 늘어져 있는 관도의 저 멀리에 또 하나의 작은 마을이 눈에
띄었다. 길 위로 천천히 울려 퍼지는 수 레소린 가뜩이나 더운 여름의 햇살처럼 모든 이들
을 지치게 만들었다. 비단과 쌀을 실은 수레 앞에는 말을 탄 아삼이 선두를
이끌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표사들은 어느새 수레의 맨 뒤로 쳐져 나머지 표사들과 쓸데없는
잡담들을 나누거나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나같이 짙은 회색(灰色)
무복을 단정히 입고 허리 옆에는 하나의 검들을 차고 있었는 데 그 모습이 실로 태평했다. 하
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삼은 뒤도 돌어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었다.
"이보게, 천기(天氣)!"
한가로이 여행을 떠나는 양 여유를 부리던 사내들 중에서 나지막하게 그 옆
의 동료를 부르는 이는 여태까지 하품을 하 며 졸고 있던 고승명(高昇鳴)이란 표사였다.
"왜 그러는가?"
이제 서른이나 된 듯 싶은 사내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백천기라는
사람의 목소리 또한 그를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졸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표행은 오늘이 처음이지?"
"뜬금 없긴,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그 옆에 가던 나머지 표사들도 흥미를 가지고 대
화에 끼어 들었다.
"이번 표행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기 아삼표사를 제외하고 는 다 초행이라
알고 있네만...."
"빌어먹을! 기껏 비단 몇 필과 곡식을 사흘 거리도 안되는 거리에 날라주는
것이 첫 표행이라니.... 재수도 지지리 없 지.."
첨에 말을 꺼냈던 고승명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표사가 불만을 터뜨리자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던 한 사내도 슬그머 니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지 않는가? 곧 온갖 보물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중원을 누빌 날이 올 것이야..." "에휴, 그게 언제란 말인가?"
"그러게 말일세, 지루해 죽겠네 그려" "그 흔하다는 녹림도 들은 다 어디로
갔지? 나타나기만 하 면 내 이 칼로 뽄때를 보여 주는 건데..."
한 표사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들고 호기롭게 외쳤 다. 그런 표사들
의 한심한 짓거리를 보고 있던 강량이 조그 맣게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소문이 슬쩍 고개를 돌려 강량을 바라보자 강량 또한 소문 을 바라보았다.
"너도 저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럼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는 것이냐?" "아, 저...그냥...사
천..."
"흠, 사천에 간다고 했던가? 그래, 걱정이 되긴 하겠구나.
하지만 너무 마음쓰진 말거라. 조만간 사천에 갈 기회가 있 을 것이다."
"예. 어르신"
대답은 공손하게 했지만 사실 소문은 지금까지 엉뚱한 생 각을 하고 있었
다. 자신이 표사가 아닌 쟁자수가 된게 얼마 나 다행스런 일인지... 표사가 됐음 영락없이 말을
탔어야 할 것이고 그랬다면 온갖 체면을 다 구겼을 것이라는 생각에 몸 서리를
치며 소문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 표사들을 미친놈이라고 그랬지?'
소문은 은근히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해서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
는데...
"저자들은 표사의 진정한 의무를 잊고 있다. 표사의 의무 는 물건이 주인에
게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지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싸움은 피해야 한다.
싸움에 이긴다 한들 무엇하겠 느냐?
우리측에 한사람의 피해라도 온다면 이미 진 싸움인 것을...게다가 싸움이 일어나면 가장 많
이 피해를 보는 것이 우리같이 무공을 모르는 쟁자수들이다. 일반적인 녹림도들은
그런 사정을 알고 우리 같은 쟁자수들에겐 피해를 주지 않으 려고 은연중 노력은 하지만 어
디 싸움이 뜻 데로 되느냐?
싸우다 보면 어느새 태반의 쟁자수들이 죽어 가는 것을...그런
데 저들은 잠시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저런 말들을 하다니 표사의 기본 자질이
없는 인간들이야. 하긴 처음 표행을 나 서는 대부분의 표사들이 저런 마음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
강량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어조로 천천히 이유를 설명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무명(武名)을 날리고 싶 어하는 일반 표사들에게는 별루 가슴에 와 닿지 않
는 말이겠 지만 과거 여진족간의 싸움에서도 결국은 힘없는 마을 사람 들이 떼
로 죽어 가는 것을 경험한 소문은 그 말이 하고자 하 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루하고 반나절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물건을 인 도하고 대금을 받
자마자 마을을 떠나 천리표국으로 다시 돌 아왔다. 이렇게 소문의 첫 표행은 너무도 간단하
게 끝을 맺고 말았다.
궁귀검신(弓鬼劍神)제16장 천리표국(千里驃局)-4
소문은 아침부터 들떠있었다. 그가 천리표국에서 쟁자수의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두어달, 몇 차례의 표행이 있었지만 대개가 북경근처의 인근지역으로의 표행이다 보니
길어야 열 흘을 넘기지 않는 짧은 표행이 전부였다. 아무리 안전한 표 행을 원
한다지만 이쯤 되고 보면 젊은 혈기에 충분히 지루하 다 여길 정도였다. 헌데 이번에 나서는
표행은 그 질이 틀렸 다. 표행지가 우선 북경이 위치한 이곳 하북성(河北省)을 벗
어나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간 하남성(河南省)성의 정주(鄭州) 에 있는 태화전장(太和錢莊)이
었기 때문이다. 강량어르신의 말로는 족히 한달은 걸리는 긴 표행이라고 했다. 게다가 비
단이나 곡식 몇 섬을 나르던 것과는 달리 엄청난 양의 금괴 를 나르기 때문에 표
물의 부피는 작지만 그 값어치는 실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 했다.
표물의 값어치가 상당했기 때문에 표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보통
때와는 달리 많은 표사들이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 동안 소문이 한번도 보지 못했던 표두(驃頭)를 필 두로 삼십여명의
표사들이 이번 표행에 나서게 되었는데 표 행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당연히 쟁자수들 또한
그 수가 늘 었다. 해서 이번 표행길에는 소문이 속한 조의 쟁자수 외에 한 개
의 조가 더 추가되었다.
점심때가 되어서 표국을 나선 표행은 순조로웠다. 천리표 국을 떠난 표행단
은 하루만에 북경을 벗어나고 다시 사흘만 에 석가장(石家莊)에서 약 백여리 떨어진 조현
(趙縣)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저녁 늦게 이곳에 도착한 쟁자수와 표사들은 표두인 이진 (李珍)의 명에 따
라 노숙(露宿)을 준비했다. 이렇게 표행의 노 숙이 결정되면 가장 바삐 움직이는 것은 소문과
같은 쟁자수 들이었다. 과거엔 노숙이라 해봐야 모닥불 몇 개 피워 놓고 각자
의 모포를 들고 잠을 청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요즘은 자그마한 천막이라도 하나 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었다. 물
론 그 천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되기 는 하 였지만....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행의 식사 준비도 쟁 자수의 몫이었다.
표사들은 항상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 기 위해서 모든 식량은 따로 수레 싣거나 쟁자수들
이 그들의 식량까지 메고 왔다. 표사들은 단지 그들의 무기만을 휴대 할 뿐이
었다. 쟁자수들은 그런 표사들의 처우에 많은 불만이 있었지만, 만약 싸움에서 표사들이 진다
면 자신들의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 불만을 직접적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이보게 소문이"
"예, 형님"
"자네는 표행에 몇 번 따라오지도 않았고, 거리도 그리 멀 지 않았음에도 잠
자리 준비하는 거 하며 음식 만드는 것을 보니 노련한 쟁자수가 따로 없네 그려"
한참 요리에 정신이 없는 소문에게 다가온 노구가 말린 육 포(肉脯)를 뜯으
며 소문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뭘요. 이런건 제가 조선에서 틀림없이 한 것인데 요..."
"그래, 틀림없이 한건 한거고 지금 만드는 게 무엇인가?"
노구는 사뭇 궁금한 듯 소문의 뒤에서 끓고 있는 국을 넘 겨보았다. 소문은
이들에겐 특별한 존재였다. 그 동안 표행에 나설 때 객점에 이르지 못하고 노숙이라도 할라치
면 말린 육 포나 떡을 씹던 이들에게 소문은 항상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주었
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야 말린 육포나 약간의 곡식, 그리고 그때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풀뿌리 몇 개 뜯어다가 집어넣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맛이 상당했다. 게다가 항상
그 맛이 달랐으니 지금 노구가 궁금해하는 것도 이해는 갔 다.
소문은 이런 노구를 보며 슬쩍 웃더니 한쪽 구석에서 무언 가를 하고 있는
개씨 형제를 가리켰다. 노구는 소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개씨 형제는 나란히 한 손에
꿩을 들고
그 털을 뽑고 있었다. 이미 끓는 물에 한번 담가졌는지 축 늘어져 있는 꿩은
형제들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한 움큼씩의 털이 뽑혀 나갔다. 개씨 형제의 행동을 바라보던
노구는 다 시 고개를 돌려 소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철면피에게 웃음을 지어 보
였다.
"또 잡아왔냐? 대단하다. 대단해! 네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 구나! 하하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철면피는 요즘 소문의 곁은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표행을 나설 때는 물론이고 표국안에서 쉬고 있을 때도 항상 어깨에 올라탔다. 처음엔 이런
소문과 철면 피를 못 마땅해 하던 쟁자수들과 표사들은 소문이 면피가 조 선에
서 온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거듭 해명하고 사과하자 어느 정도는 양해를 해주었다. 그러
다가 표행을 갈 때마다 면피의 상상을 불허하는 사냥솜씨는 이들에게 매일 같이 꿩
이며 토끼며 많은 고기를 제공해 주었는바 이제는 철면피가
안보이면 소문을 다그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꿩으로 만들 건가?"
"굽는게 더 맛 없지만 그러면 많은 사람이 먹어서요...그래 서 탕을 만들었습
니다."
이제는 소문이 무슨 헛소리를 해도 그 의미를 다 알아듣는 동료들이었다.
"흠, 탕국이라 기대되는군 그래"
노구는 계속해서 끓고 있는 탕국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 다. 한편 노구와
소문이 이렇게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고 있 을 때 천막에서는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
다.
"지금까지는 관도(官道)도 넓게 트여 있고 황도(皇都)와 가 까운 곳이다 보니
별 이상 없이 무사히 왔지만 이제 이곳부 터는 그 양상이 다르오. 가는 길마다 상당한 주의
와 경계가 필요할 것이오. 지난번 표행에서도 이곳에서 가벼운 마찰이 있다고
들었소."
천막 안에는 길게 깔아놓은 모포 위에 대략 칠 팔명의 표
사와 쟁자수로는 유일하게 강량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이번 표행
의 우두머리이자 천리표국의 표두 이진(李 珍)이 앉아 있었다. 천풍도(天風刀) 이진은 하북
무림(河北武 林)에서 상당한 고수로 꼽히는 자였다. 애도(愛刀)인 천풍을 들고
나서면 근처의 녹림도는 물론이고 한다하는 무림인들도 두어 수 양보할 정도의 위명(威名)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 의 성명절기(姓名絶技)인 칠초의 풍뢰도법(風 刀法)은 강호
(江湖一切)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진이 말을 꺼내자 주위에 앉아 있던 초로의 표사가 말을 받았다.
"그리 염려 마십시오. 표사의 수가 삼십이 넘고 모두 경험 이 많고 노련한
표사들입니다. 게다가 표두님이 계시는데 뭬 그리 걱정을 하십니까?"
"하하, 소(蘇)표사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구려. 허나 만 일을 대비해서라
도 주의를 기울여야하오. 안 그렇습니까?"
이진은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강량에게 슬며시 말을 돌렸다. 사실 아
무리 쟁자수의 우두머리라고는 하나 이런 자 리에 한낱 쟁자수인 그가 올 수는 없었다. 히지
만 강량이라 는 이 노인은 그 정도의 대접을 받을 만한 충분한 위치에 있 었다.
천리표국이 세워지며 제일먼저 들어온 쟁자수가 그이 고, 표국이 한번의 실수로 문을 닫을
위기까지 처해 있었지 만 끝까지 표국에 남아준 유일한 쟁자수가 바로 그였다. 그
때는 지금의 국주인 일수철권(一手鐵拳) 전원삼(田元三)의 아 버지인 전추혁(田秋奕) 단 둘
이 표행에 나서기도 했다고 했 다. 또한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위협에서도 살아온 강량이었
다. 비록 그가 무공은 없지만 그가 지금껏 표행을 하며 익힌 경험들은 그 어떤
무공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해서 국주인 전원삼은 물론이고 천리표국의 많은 표두와 표사들
마저 쟁 자수인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였다. 그런 강량에게 이진이 의
견을 구한 것이다. 강량은 그런 이진의 물음에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반나절을 더 가다보면 삐죽삐죽한 산봉 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으로 유명한 창암산(蒼巖山)이 나옵니다. 하남(河南)으로 가려면 꼭 이 길을 지나
야 합니다.
우회로(迂廻路)도 있긴 하지만 사나흘은 더 돌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가야 겠지요. 문제는 이곳에 호구채(虎 口砦)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난번 표행에서도 여후
량(呂侯亮) 표두가 이끄는 일행과 잠시 부딪쳤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 이외에
도 정주까지는 많은 산채와 녹림도가 있긴 하지만 그 규모가 작아 이곳만 무사히 잘 지나면
앞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흠, 그래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비록 한번의 마찰은 있었지만 우리
표국과는 그리 소원(疏遠)한 관계가 아닙니 다."
"하하. 다행입니다. 난 또 지난번 마찰이 있었다길래 일반 적인 인사치레론
문제가 생길 줄 걱정을 했습니다..."
이진이 강량의 말에 한시름 덜었다는 듯이 크게 웃자 나머 지 표사들도 입에
미소를 머금었다.
조현(趙縣)마을 어귀의 야산에서 하룻밤을 지낸 표행단은 아침을 빌어 다
시 길을 재촉했다. 그들이 창암산(蒼巖山)의 초입에 들어선 건 해가 중천에 떠서 서쪽으로 천
천히 달려가 고 있을 무렵이었다.
"자, 지금부터는 모든 표사들은 한치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
제도 말했듯이 이곳은 호구채(虎口砦)가 있는 곳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
맨 앞에 서서 표행단을 이끌고 있는 이진은 마상에서 몸을 돌려 표사 및 쟁
자수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를 했다. 하지만 노호채의 녹림도들은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
고 있었다.
극도로 긴장을 했던 표사들은 차츰 그 긴장이 풀리고 경계
의 눈초리 또한 약해지고 있었다.
"이보게 승명이"
"왜 그러나?"
"쉿! 목소리를 낮추게"
"알았네. 그런데 왜 불렀나? 고참 표사들이 보면 뭐라 할텐 데..."
"흥, 뭐라 할라면 하라지. 입은 말하라고 달린 거지 닫고 있으라고 달린 게
아니라네."
"아..알았으니 음성을 낮추게 좀 전에는 나보고 핀잔을 주 더니만 자네의 음
성은 왜 그리 높은가?" "하하. 그랬나? 그런데 이번의 표행은 뭔가 신나는 일이 있
을 줄 알았는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저 그럴 모양이네" "아무 일도 없다면 좀 심심
하긴 해두 그걸로 다행이지...
자네는 꼭 도적이라도 나타났음 하는 말투네 그려." "하하. 그랬나 하긴 지금
심정 같아선 그놈들이라도 나타 나주었으면 하네. 내 나타나기만 하면 단번에 목을 쳐버릴텐
데..."
'미친놈들'
지금 표행단의 맨 뒤에서 잡담을 하는 두 표사는 소문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소문과 마찬가지로 첫 표행을 북경의 근처로 나갈 때 같이 같던 사람들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여전히 만고의 쓸데없는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표사고 자신은 쟁자수, 그들을 상관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
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소문은 이내 시선 을 거두고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런 소
문을 은근 하게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소문은 온몸의 감각을 극 대화시
켰다. 그러자 확연히 느껴지는 기운들이 있었다. 소문 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 지금까지
잡담에 정신이 없는 표사들을 보았다.
'호오, 네놈들 말대로 재밌는 친구들이 왔으니 어디 한번 두고 보마...'
소문이 느끼기에 칠십 여장 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들 의 주인은 적어도
오십여 명이 넘는 듯 했다. 오십 여명이면
삼심명의 표사들 보다 거의 배나 되는 수치였다. 그들이 기 다리는 지도 모르
고 표행단은 점점 그들에게 다갔다.
"멈춰라!"
이진의 갑작스런 말에 수레를 몰던 개씨 형제들은 급히 말 을 멈추고, 표사
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무기를 빼어 들었다.
"어느 호걸께서 행차하시었소? 모습을 보여주시구려..."
이진은 십여장 떨어진 숲을 노려보며 차분하게 말을 했다.
"와!! 와!"
그러자 조용했던 숲이 마구 흔들리며 칼과 도로 무장한 녹 림의 무리들이 쏟
아져 나왔다.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천리표 국 표행단에게 달려 왔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표 사들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쟁자수들은 벌써 수레에 오르 거나 바
싹 붙어 있었고, 표사들은 수레를 빙 둘러싸고 방어 의 태세를 갖추었다. 호구채의 녹림도는
순식간에 표행단을
포위했다. 이진은 다른 표사와는 달리 말 위에 오연히 앉아 그런 그들을 가만
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거세던 함성소리가 멈추며 한 명의 사내가 포위망의 중앙에서 이진의
앞으로 걸 어나왔다.
"하하. 이게 누구신가요? 천리표국의 표사님들이 아니신가 요?"
"그렇소. 우리는 그대 말대로 천리표국의 사람이고 나는 이 표행을 담당
하고 있는 이진이라 하오." "아... 천풍도 이진 대협이셨구려. 몰라 뵜소이다. 나는 이
곳 호구채를 이끄는 거력웅(巨力熊) 능패(陵覇)라 합니다." "아, 능호걸이셨구려. 그
래 어찌 우리의 길을 막은 것이 오?"
"하하. 막다니요. 저희는 이곳을 지나가는 분들이 계시다기 에 그저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인데요..." "호오, 그렇구료"
잠시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인사치레가 이어졌다. 이 진은 어차피 그들
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짜고짜 '돈 줄테니 물러서라'하는 것은 예의에 어 긋나는 것이라
생각하여 정중히 말을 이었다. 아니 예의라기 보다는 표국을 하는 사람들과 녹림도의 은연중의
약속이라고 나 할까? 그러자 능패 또한 능청스럽게 한참을 둘러대더니 결국은
돈을 좀 내놓으라고 했다. 산채가 부서져서 수리비가 든다나 어쩐다나...
"휴, 그들이 하두 험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협상이고 머고 없이 바로 싸우는
줄 알았네 그려"
"그러게 말일세. 난 깜짝 놀란 가슴이 아직도 뛰네"
수레에 달라붙어 추이만 살피던 쟁자수들은 대화의 분위기 가 차분히 가라앉
고 안정되는 것을 보곤 안심을 했다. 하지 만 그런 그들의 의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일을 엉
뚱한 곳에 서 터지고 말았다.
"으악!"
표행단의 뒤에서 처절한 비명성이 울리자 막 산채의 수리 비 명목으로 호구
채의 두목인 능패에게 은자를 주던 이진의
손이 멈추고 역시 그 돈을 받으러 가던 능패의 손 또한 순간 멈춰버렸다. 동시
에 한 단어가 이들의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빌어먹을...'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그것도 잠 시 그들 손에는
어느새 자신의 무기가 들려있었고, 그것을 신호로 하여 호구채의 녹림도와 표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었 다. 녹림도의 수가 표사들에 비해 훨씬 많았지만 개개인의 능력은
표사들을 따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피를 본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고 무엇
보다 지난번 이진과 대화를 했던 소삼중(蘇芟重)의 말과는 달리 표사들 중에는
경험이 적고 싸움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표사들이 몇 명 끼 어 있어서 전체적인 싸움은 호
구채의 우위로 흘러갔다.
'역시... 말 많은 놈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못 봤다.'
소문은 얼굴을 찌푸리고 겨우 호구채 졸개 한 명을 맞아
쩔쩔매며 뒤로 밀리고 있는 고승명을 바라보았다. 이미 싸움 의 발단이 된 백
천기(白天氣)는 어디서 날아 온지 모르는 창 에 가슴을 뚫리고 죽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
도 소문은 이 싸움이 어찌 시작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허풍을 떨때 와는 달
리 호구채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포위하자 고승명과 백천기는 겁에 질려버렸다. 그때 우두머
리끼리의 협상이 잘 진행되는 듯 싶자 호구채의 졸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와 농
을 걸었다. 보통 이쯤 되면 긴장을 풀고 웃는 얼굴로 상대를 대하곤 했던 졸개였는지라 아무
생각 없이 다가왔는데 그의 이런 생각은 백천기라는 어설픈 표사에게 걸려 산산히 부서
지고 말았다. 겁에 질려 웃으며 다가오는 사내를 자신을 죽 이려는 의도로 착각한
백천기는 자기도 모르게 칼을 휘두르 고 말았으니, 반항도 못하고 목숨이 달아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외마디의 비명뿐이었다.
소문이 잠시 딴 눈을 파는 사이 어느새 한 명의 표사가 또
쓰러졌다. 표두인 이진마저도 호구채의 두목인 능패와 능패 를 돕는 아홉명의
부하들에게 둘러 쌓여 천풍도라는 호가 무 색할 정도로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쟁자수들 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음을
안 소문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켜 수레위로 올라갔다.
"아서라. 괜히 싸움에 나섰다가 네 목숨마저 잃는다. 저들 이 비록 표사들과
싸움을 하곤 있지만 우리 같은 쟁자수는 쉽게 죽이지 않으니 조용히 앉아 기다리거라"
강량은 소문이 젊은 혈기에 싸움에 나서려고 한다고 생각 했다. 해서 수레
위로 올라가는 소문을 만류했는데 소문은 그런 강량에게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강량의 손을
뒤로 한 채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는 표행때면 항상 수레 위에 올려 놓는 자신
의 철궁을 집어들었다. 화살이 많지는 않았지만 여 차하면 나뭇가지를 잘라 쓰면 되는 것, 크
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소문이 우선 정한 목표는 이진을 압박하고 있는 호 구채의 졸개들이
었다.
"핑!"
날카로운 파공성(破空聲)과 함께 한 명의 졸개가 쓰러졌다.
아니 연이어 날아온 화살에 이진을 막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호구채의 졸
개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리되니 당황한 것은 지금껏 여유있게 이진을 몰아붙이고
있던 능패 였다. 자신들이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진을
묶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 그는 가장 뛰어난 수하 아홉과 함께 이진을 합공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이 순식간 에 쓰러지고 말았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자 그럼 이제..."
그 쪽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소문은 한창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활을 돌렸다. 이미 촉이 있는 화살을 떨어졌지만 몸이 날랜 쟁자수 양지령과 노
구가 소문
의 눈짓에 따라 벌써 상당수의 나뭇가지를 발 아래에 모아 놓은 상태라 화살
은 충분했다. 노구와 양지령은 만약 싸움에 서 표사들이 진다면 그들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
가지인지라 나뭇가지를 모으는데 필사적이었다.
소문이 활을 돌린 순간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결정적인 기 회를 맞이하여 표
사를 핍박할라치면 어느새 날아온 화살에 주춤하게 되고, 그 순간 표사의 검이 자신을 베고
있었다. 호 구채의 졸개들은 환장할 일이었다. 뻔히 날아올 화살에 대비 하자니
앞에 있는 표사의 검이 춤을 추었고, 표사에 집중하 자니 언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화살의
공격에 노출되었다.
결국 몇 명의 졸개들이 소문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다가왔 지만 수레에 채
이르기 전에도 소문이 날린 화살의 재물이 되고 말았다. 소문이 속사라는 것을 괜히 배운
것이 아니었 다.
"크악!"
이진의 도가 능패의 목을 몸과 분리시키면서 호구채와의
치열한 싸움은 끝이 났다. 두목을 잃은 졸개들은 뒤도 안 돌 아보고 산채로 도
망을 갔다. 그런 졸개들을 보며 한숨을 쉰 이진은 표행단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수레로 다가
왔다.
호구채의 녹림도는 그 대부분이 죽고 도망친 자가 몇 되지 않았지만 천리표
국이라 해서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제일 먼 저 죽은 백천기를 비롯하여 표사가 열 넷이 죽었
고, 부상자 는 부지기수였다. 무사한 것은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쟁자수 들 뿐이
었다.
"허허, 이를 어쩔꼬... 그 많은 표사들이.... 그 가족들과 국 주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하나? 허허허"
참담했다. 자신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이진은 싸움의 결과 에 망연자실했다.
잘 되어가던 협상이 왜 갑자기 깨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냥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이진은 곧 강량에게 뒷수습을 맡겼다. 그리고 그 자 신은 소
문에게 다가왔다.
"자네 이름이 소문이었던가?"
"예. 표두 어른"
"허허,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였네. 자네 덕에 우리가 살았 구만...."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저야 그저 활로 적들의 정신을 혼란 시켰을 뿐입
니다."
"아니야. 아니야. 자네의 활약이 없었다면 그 포위 속에서 내가 어찌 살고,
표사들이 어찌 도적들을 벨 수 있었겠나? 정말 대단한 솜씨였어...."
"제 고향에서 사냥꾼으로 일한 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을 뿐입니다."
"어쨎건 자네의 공은 내 잊지 않음세. 우리들의 은인이 야..."
이진이 소문의 활약에 감탄을 하는 동안 강량의 지휘에 따 라 쟁자수들은 신
속하게 움직였다. 우선 시체를 한곳에 모으 고 부상자들을 부축하여 상처가 심한 표사들을
우선적으로 치료했다. 다행히 상처를 입은 표사들은 대부분이 가벼운 외 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표사들의 실력이 뀌
어난 것도 있었지만 죽은 이들은 거의 다가 소문이 싸움에 참여하기 전에 당
한 것이고 소문의 지원을 얻은 표사들은 그 다지 힘들지 않게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시신들은 한데 모아 가매장을 하도록 하고, 후에 다 시 이들을 돌보기
로 하세. 우선은 이곳을 벗어나 상처들을 치료하도록 하고.... 어서 가세나...이곳은 정말 다신
오고 싶 지 않구만..."
침울한 강량의 말에 모든 이들이 힘없이 움직였다. 다리에 상처를 입은 두명
의 표사는 수레에 올라탔고, 나머지 표사들 은 말을 타면 몸이 흔들려 상처 자리에 고통이 온
다는 이유 때문에 수레 뒤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처음 천리표국을 나설 때만 해
도 당당했던 그들은 비록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너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기에 승리의
기쁨보다는 패배의 슬픔을 맛보고 있었다.
창암산(蒼巖山)을 벗어난 표행단은 비봉현(飛鳳縣)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사흘을 머물고 다시 정주(鄭州)로 향 한 그들은 강량의
예측대로 이후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도 착할 수 있었다.
창암산(蒼巖山)에서의 처절한 전투가 있은지 보름, 그들이 천리표국을 떠난
지 정확히 열 아흐레 되던 날이었다.
첫댓글 감사해요~~~^~
즐감
ㅎㅎㅎ
감사합니다
즐감 ~!
즐감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잼납니다
표사
슬슬 실력발휘를~
즐감요~
즐감하고 갑니다.
ㅈㄷㄳ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요
즐감합니다.
좋아좋아
즐독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