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이스쿨 다닐때 사람들은 나를 공부 잘한다고 칭찬했다. 처음보거나 자주 못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하는 첫마디는 꼭 "얘기 많이 들었다. 공부 잘한다며?"였고 나의 명성(?)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 갔다. 단순히 공부만 잘한다는게 아니라 그 잘하는 수준이 전교, 전주, 전국일등을 넘어 전세계(?) 일등 수준이었다. 주위사람들의 인식과 평판을 본다면 나는 아이비리그 정도는 쉽게 가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노벨상 정도는 따놓은 당상인 천재였다.
위의 문단을 보면 내 자랑같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법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공부를 잘했다면 지금 이 모양 이꼴로 살고있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추측해보기로는 책을 많이 읽으니 대부분 영어가 서툰 한국사람들 입장에서 항상 어려운(?) 영어책을 읽고있는 나를 보고 책 많이 읽으니 공부 잘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런 소문이 돈게 아니었을까?
난 처음에는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듣는게 기분이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HSC(수능)가 가까워 올수록 부담도 그런 부담이 없었다;;; 결국 학교 졸업하고 HSC도 끝났을 때 제목에 나온 것처럼 "수능 몇점 나왔니? 어느 대학 갔니?"라는 질문에 시달린거 생각하면;;;
지금이야 이모티콘까지 쓰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쓰고있지만 그때는 스트레스도 그런 스트레스가 없었다. 나뿐 아니라 어머니께서도 엄청 스트레스 받으셨을 거다.
대학 못갔다 그러면 사람들은 꼭 "그렇게 공부 잘한다더니..."라면서 비웃고 뒷말들을 했다. 나 스스로 공부 잘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한 비운의 천재라고 보기도 했다. 내가 자주 가는 수퍼아저씨께서는 무슨 대학 갔냐고 물으셔서 TAFE 갔다고 했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시며 괜찮다고 나를 위로하시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께서 돈이 많이 들어가서 일부러 나를 대학에 안보낸거라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ㅠㅠ
물론 그런 소문이 돈 것 자체가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가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나를 고평가하고 나와 동업을 하면 나의 천재적인 브레인으로(...) 금새 부자가 될듯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몇년전 누군가 동업제의를 했을때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당시 변변찮은 직업이 없었고 뭔가를 좀 하라는 어머니의 압력;;;에 의해(여담인데 어머니께 뭐라는건 아니고 어머니께서도 나를 실제보다 고평가하셨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난 사업머리가 없는데 일단 돈은 벌어야 할거 아니냐고 하시던데 사업머리가 있어야 돈을 벌지;;) 사업에 나섰다가 개망해버린 적도 있었고 진짜 잊을만하면 나오는게 동업제의다(ex 걔는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니 같이 동업하면 돈 잘벌거야 etc...).
보통 어떤 사람에 대해 소문이 날때는 안좋은 소문이 나던데 나는 어째 머리좋고 천재라도 되는 듯이 말들을 한다. 나를 높게 평가해주는건 좋지만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본다면 좋은 소문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문 속의 나는 거인이지만 실제의 나는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한명일 뿐이니... 제발 나에 대해 좋은 소문이 날때는 착하다느니 신뢰할만 하다느니 하는 식으로만 났으면 좋겠다. 나는 하버드도 충분히 갈만한 실력이지만 돈이 없어 대학에 가지못한 비운의 천재가 아니다!
몇점 받았냐느니 무슨 대학 갔냐느니 하는 질문들에 시달려 대인기피증상까지 보였던 그시절의 악몽이 떠올라서 써본 글이다. 참고로 대학에 가려면 지금은 사라진 UAI가 최소 60점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내 UAI는 thirty or less였다. 쉽게 말해 30점 이하... 원래 30점 이하는 정확한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 이 점수를 보면 당시의 내가 얼마나 과대평가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첫댓글 힘든 기억이지만, 재미있게 잘 풀어냈네요ㅎㅎㅎ
음냥..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죠. 웨일즈님 만큼은 아니었고 소소한 일화지만, 1학년때 반배치고사를 잘 봐서(전교2등) 장학금을 받게 된 적 있었는데, 그게 다른 애들 귀로도 흘러갔나 봅니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심지어 1학년 1학기 1,2차 고사 모두 반에서 1등, 2학기땐 타학교에서 전학온 애한테 밀려서 2등했고.. 2학년때도 그럭저럭 하긴 했는데 잘 기억은 안나는데 대략 7등 안팍이었떤 걸로 기억나네요. 물론 반에서.. 하도 애들이 공부 잘하는 애라고 이야기하는걸 주워들어선지 스스로 자부심에 쩔어있었던거죠.. 현실은 진짜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저도 친척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는애란 오해가 생겨서 참 남감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현실은 중간도 못했었는데...
운이 좋아서 2호선타고 갈수있는곳에 갔기에 망정이지...
범생스타일인데 성적 나쁘면 스트레스 많죠.
나도 그런 시절이 길어 힘들었었지요. ㅎ
맘고생 많이 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