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은 마운드 위에서뿐만 아니라 9번 타자로서도 국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이렇듯 류현진과 강정호, 그리고 오승환이 속해 있는 내셔널리그는 아메리칸리그와 달리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수가 9번 타석에 들어서는 광경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런데 투수는 왜 9번 타순에 배치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야수들에 비해 타격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몇몇 특별한 타격 재능을 발휘하는 투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감독들은 9번 타순에 배치된 투수에게 희생 번트 외에 큰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는다.
‘타력이 약한 타자’라는 9번 타자에 대한 인식은 KBO리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감독들이 9번 타순에는 작전 수행능력이 좋은 선수를 배치하는데, 이는 앞선 3년간의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4~2016시즌 시즌 별 9번타순의 성적 (괄호 안은 리그 순위)
그런데, 올 시즌 9번 타자로 출장할 시 5할의 타율(6번 타자 0.385/7번 타자 0.333)을 기록하고 있고 ‘9번 타자는 타력이 약하다’라는 통념을 깨버리고 있는 선수가 있다. 그는 10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들 중 0.440(1위)의 타율과 0.495(1위)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문자 그래도 공포의 9번 타자가 되어 가고 있다. LG 트윈스의 2루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손주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진 출처 : 손주인 개인 SNS에 업로드 된 사진
동기들에 비해 크지 못했던 존재감, 새로운 기회를 찾아 LG로
2002년 2차 3순위로 삼성에 입단한 손주인은 입단 동기인 2005-2006 2년 연속 우승의 주역 조동찬,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대미문의 4년 연속 통합 우승 일등공신인 최형우에 비하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타격이 빼어나지 않았던 것은 물론, 2008년 이후 간신히 잡은 대수비 요원의 자리도 전임자였던 김재걸에 비해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갔다. 그리고 2012시즌 종료 후, 그는 ‘재계 라이벌’이라 불리던 삼성과 LG, 두 구단 간의 첫 트레이드 주인공으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 된다. LG에서의 첫 시즌인 2013년. 손주인은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잊지 못할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11년 만의 가을야구, 그 숨은 공신
2013년, LG 트윈스는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2위를 확정 지으며 1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직행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손주인은 2012시즌까지만 해도 LG 내야진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2루 자리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2위에 큰 힘을 보탰다.
2012시즌(위) 2013시즌(아래) LG 주전 2루수의 타격 성적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주인은 전임자였던 서동욱에 비해 모든 타격지표가 월등했으며, 이는 2배가 넘게 차이 나는 WAR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2013년 리그 2루수들 중 타점 2위(41개), 안타 3위(93개)를 기록했고, 규정타석을 채운 단 3명밖에 없었던 2루수 중 한 명이었다. 시즌 내내 꾸준히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는 증거다. 비록 LG는 가을 야구에서 두산을 상대로 아쉽게 탈락했지만 손주인은 플레이오프에서도 0.385(13타수 5안타)의 타율을 기록하며 제 몫을 충분히 해줬다.
2012시즌(위) 2013시즌(아래) LG 주전 2루수의 수비 지표
또한 타격도 타격이지만, 손주인의 가치가 정말 빛난 부분은 수비에 있다. 전임자였던 서동욱도 준수한 수비력을 지닌 2루수였다. 하지만 2013년의 손주인은 평균 대비 수비 득점 기여도(RAA)와 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도(WAA)에서 모두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준수한 수비가 아닌 리그 정상급 2루 수비를 보여줬다. 이런 빼어난 수비능력을 바탕으로 팀 내 주전 유격수 오지환과 함께 절묘한 호흡을 보여주며 9개 구단 주전 키스톤 콤비의 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도(WAA) 합산 1위(3.552)에 올랐다.
사진 출처 : 손주인 개인 SNS에 업로드 된 사진
모든 것이 잘 풀렸던 2013시즌과는 다르게 LG와 손주인의 2014시즌은 쉽지 않았다.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201개)을 세운 넥센의 서건창, 삼성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 등 9개 구단의 2루수들이 모두 역대급 시즌을 보낸 탓인지 타격지표에서는 리그 2루수들 중 하위권에 머물렀다. 또한,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타자인 조쉬 벨의 부진 및 방출로 인해 손주인 본인도 2루와 3루를 번갈아 가며 경기에 출장함에 따라 한 포지션에 확실하게 정착하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뜨거웠던 4월(타율 0.339)과는 정반대로 5월에는 극도의 부진(타율 0.180/최저 2위)을 겪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버텨온 베테랑 손주인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LG가 넥센 - 삼성과 함께 월간 최다승인 13승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힘을 내기 시작한 7월 한 달 동안 나바로, 서건창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맹타를 휘둘렀다.
또한, 끝까지 4강 경쟁을 했던 SK와의 경기에서 본인의 시즌 성적보다 좋은 0.309의 타율을 기록하며 반드시 잡아야 했던 경쟁 팀과의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우여곡절 끝에 포스트시즌에 참가한 뒤, 또 한 번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패하며 대권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LG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대반전 드라마를, 본인은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결과적으로는 2013년만큼이나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2014년 7월 한 달간 손주인의 타격 성적 (괄호 안은 리그 2루수 순위)
팀에게도 본인에게도 아쉬웠던 2015시즌과 반전의 2016시즌
2013년과 2014년, 성공적인 두 시즌을 보내며 대수비 요원에서 계산이 서는 주전 선수로 발돋움한 손주인은 2015시즌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LG 이적 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견고한 2루 및 3루 수비, 그리고 강타자는 아니었지만 여러 타순을 옮겨 다니면서도 제 몫을 해준 손주인. 팀의 윤활유 역할을 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본인의 부진 뿐만 아니라 소속팀 LG 또한 3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데 실패했다.
2013~2015시즌 손주인의 시즌 WAR 수치 (괄호 안은 팀 내 순위)
하지만, 부상과 부진을 극복한 손주인은 2016시즌 현재 2015시즌과는 판이한 모습을 보이며 리그 최고의 2루수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맹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2016시즌 손주인의 타격 성적 (기준 : 100타석 이상 소화한 2루수)
통산 타율이 0.271에 불과한 손주인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타격 페이스는 실로 놀랍다. 물론,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이러한 페이스를 유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뜨거운 타격과 더불어 9번 타자로 출장했을 시의 성적(0.500/0.539/0.729)은 그의 시즌 전체 성적을 섣불리 예측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보여주고 있는 신들린 타격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정도로 대단하다.
특히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파워의 향상은 통산 장타율 0.343을 기록 해온 손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다.
끝으로, 현재(6월 10일 기준) LG는 4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권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타격지표 및 수비지표가 5위 아래에 있어 불안한 4위를 유지 중이다. 손주인이 2루를 지켰던 2시즌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LG는 돌아온 손주인과 함께 다시 한 번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을까. 또 손주인은 개인 통산 첫 100안타 시즌을 만들어내며 LG를 가을야구로 이끌 수 있을까. 이를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은 설렌다.
출처 : 스탯티즈 , KBREPORT , K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