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서 아주 기쁜 소식을 읽었습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프랑스 정부에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한국에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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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 돌려달라
- 프랑스 활동 한인 변호사 김중호씨 소송 준비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가 오는 9일 민간 차원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소송을 파리 행정법원에 제기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알레리옹의 김중호 변호사는 5일 “모든 정치 ․ 경제 ․ 외교적 차원의 고려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역사적 진실과 법률에만 의지해 법원에 직접 호소함으로써, 민간 차원에서도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한 노력을 벌이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9일 우편으로 소장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 제기는 <문화방송> 프로그램 ‘!느낌표’ 제작진의 주도로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및 정계와 학계 인사들이 김 변호사에게 의뢰하면서 추진됐다.
김 변호사는 소송 전 행정기관에 반환요청을 해야 하는 프랑스 법률절차에 따라, 지난해 10월 말에 문화통신부 장관에게 도서의 반환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달 반환거부 서신을 보내옴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판결이 날 때까지 2~3년이 걸리고, 프랑스가 소송을 통해 문화재를 외국에 돌려준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어려운 법정 싸움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소장에서 문화장관이 내린 반환 거부결정의 취소를 행정법원에 요청하고, 외규장각 도서를 비국유화로 전환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또 외규장각 도서의 프랑스 국유재산 편입 및 결과적인 양도불가의 논리는 원천적으로 법적 오류란 점을 강조했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을 벌여온 두 나라는 지난해 도서의 디지털화 및 한국 전시에 합의한 뒤 실무논의를 벌여왔으나, 프랑스가 내세운 3개월 전시안과 한국의 영구 전시안이 맞서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 파리/연합뉴스
: 서기 2007년 2월 7일자『한겨레』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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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되돌려 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왜 프랑스로 건너갔는지, 우리는 그것들을 ‘왜’ 돌려받아야 하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2년 전인 서기 1866년 11월 19일, 로즈 사령관이 이끄는 프랑스군 1천여 명은 조선의 보물창고인 강화도의 외규장각에 불을 지릅니다. - 이 때 불타버린 외규장각 건물은 아직까지 복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지금은 터만 남았죠) - 그들은
- 의궤 345권(그들의 기록에는 “가철된 큰 책”으로 나옵니다)
- 가철된 작은 책 9권
- 흰 색 상자에 든 소책자 13권
- 소(小)책자 10권
- 소책자 8권
- 한/중/일 지도 1점
- 천체도 1점
- 족자 7점
- 한문이 적힌 대리석판(아마 왕의 책봉사실을 적은 옥책玉冊인 듯합니다) 3점
- 대리석판을 담고 있는 작은 상자 3개
- 갑옷과 투구 3점
- 가면 1개
를 약탈한 뒤 나머지 물건들은 내버려둔 채 불을 질렀죠. 그래서 왕족의 신분표지물 19점, 어제(임금이 만들었다는 뜻) 어필물(임금의 글씨) 61점, 의궤 213종 373책, 기타서적 4,338책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가운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다시말해서 복사본이 없는) ‘유일본 의궤’는 235권이나 되었으니, 그 손실이 보통 큰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죠.
더 안타까운 일은 약탈당한 것들의 대부분은 행방을 모르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나마 있는 곳이 알려진 의궤 300권(김 변호사가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의궤들입니다)도 서기 1978년 10월 28일 박병선 박사가 반환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이유 별관의 파손도서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죠(따라서, 저는 “우리가 보관하지 못할 바에는 프랑스가 보관하고 있는 편이 낫지 않느냐? 그들이 더 잘 보존할 텐데....”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창고에 처박아두고 난 뒤 곧 잊어버리고 1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내버려두었는데 어떻게 ‘잘 보존했다’는 말이 나옵니까?).
박 박사님은 이 사실을 알아낸 뒤 한국정부에 의궤들의 반환 협상을 촉구하셨으나, 그 때문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밉보여 사직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의 노력이 완전히 헛되지는 않아서 서기 1993년 9월 15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한 권인『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내놓으면서 이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죠.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만약 한국정부가 고속철도를 달리는 열차를 ‘떼제베(TGV. 프랑스의 철도회사가 만드는 열차임)’로 고른다면 그 의궤 뿐만 아니라, 외규장각의 다른 의궤들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유물을 갖고 있는 국립도서관은 “무조건 반환은 있을 수 없다. (의궤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유물과 바꾸자.”고 말하며 반환을 거부합니다.
그 때 도서관의 여성 직원들이 “이 물건은 절대 못 준다”고 떼를 쓰며 울부짖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정부는 떼제베를 고른 한국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족을 달자면 그 때 울부짖은 직원은 지금은 도서관의 주요 책임자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군요. 이런 게 ‘프랑스식(式) 정의’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금까지 반환을 하지 않고 있죠. 이것이 김 변호사가 프랑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이유입니다. 약탈의 피해자인 우리는 이 소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김 변호사의 소송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만약 그분이 소송 비용이 모자라서 고민하신다면 우리가 푼돈을 모아서 보내는 게 어떨까 합니다).
*덧붙임 : 김 변호사님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거셨으니, 이제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프랑스 해군이 병인양요 때 의궤를 약탈해 갔다면, 미 해군은 신미양요(서기 1871년) 때 조선군의 수자기(帥字旗. 수帥자가 새겨진 깃발)와 “각종 군기 50개”를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수자기는 지금 미국의 해군사관학교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돌려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그 요청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약탈당한 문화재는 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하여, 이 문제를 풀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참고자료
- KBS 역사스페셜「사라진 보물창고, 외규장각」
-『역사 속의 역사 읽기 3』(고석규/고영진 지음, 풀빛, 서기 1996년)
- http://www.koreandb.net/dictionaries/Viewframe.aspx?id=4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