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금요일, ’만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개편 안’ 소식을 듣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뭐라고? 갑자기 무슨 뚱딴지?”였다. 음주운전, 조교 갑질, 아들 부정입학 등 온갖 추문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임명된 박순애 교육부장관의 첫 정책 제안이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도 맞지 않고, 1년 먼저 돌봄 공백이 생기니 사교육만 앞당길 가능성이 불 보듯 뻔했다.
그날 오후, 개편안을 저지하려는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발송하려는데, 연대 단체가 계속 늘어났다. 40여 개 단체 이름을 추가하느라 금요일에 작성한 보도자료는 일요일 오후 6시에 발송됐다. 놀라운 것은 이 안을 철회하라는 국민들의 서명 또한 3일만에 10만 명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8월 1일, 월요일 아침. 사무실은 기자들의 전화로 북새통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1년 먼저 학교에 가라는 걸까
기자회견을 두 시간 앞둔, 전 상근자들의 전체조회 시간이었다. 대체 윤 정부는 뭘 노리고 이런 뜬금없는 정책을 들고 나왔을까가 화두였다. 논란이 폭풍처럼 몰아쳤던 이후의 일주일 동안 장관이 강조한 목적은 ‘교육 격차를 해소하려는 선한 의지’였다. 초등학교에 일찍 입학하면 교육 격차가 줄어드나?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완전 무상교육이 아니니 언뜻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3-5세의 유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2012년부터 누리과정이라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 들어와 1인당 월 29만원의 국가 지원을 받는다. 유아교육기관 취원율은 2021년 통계청 발표 기준 94%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점심 먹고 바로 하교를 하니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 멀쩡히 직장을 다니던 엄마들은 휴직이나 퇴직을 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남은 선택은 사교육 뺑뺑이다. 유치원 다닐 때보다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어난다. 교육부가 설마 이걸 모른다고?
사교육걱정의 한 정책위원은 이런 가설을 제시했다. 교육부장관 인선과정에서 박순애 교수를 추천한 사람이 안철수 의원의 오른팔인 이태규 의원이라고 한다. 후보 시절부터 교육비전이 취약했던 윤 대통령은 안철수 교육공약과 내용을 공유하게 될 전망이었고, 안철수의 대표 교육공약이 바로 만5세 초등 입학을 포함한 학제개편이다. (물론 안 의원은 자신이 제시한 학제개편 안이 보다 총체적인 큰 그림이지, 만5세 입학만 똑 떼어내는 방식이 아니라고 이번 안을 비판했다.)
8월 1일, 대통령 집무실 앞. 철회를 요구하는 첫 기자회견과 집회에 1,000여 명 가까이 모였다. 기자회견을 언론에 예고, 진행, 후속 보도하는 실무는 물론이며 전 과정을 유튜브에 생중계하는 일까지, 이런 일이야말로 좀 과장하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눈 감고도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날씨는 정말 뜨거웠다. 가지고 간 얼음물 플라스틱 병에 이슬이 맺혀 줄줄 녹아 내리듯,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닦을 틈도 없이 눈에 들어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땀에 절어 퇴근을 했다. 마침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딸을 붙잡고 푸념을 늘어놨다.
나 : 아, 오늘 더워 죽겠는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했어. 사람들 다 휴가 반납하고 나왔다니까!
딸 : 왜?
나 : 교육부장관이 일곱 살에 초등학교 입학하게 하겠다고 했거든.
딸 : 왜?
나 : 왜일 거 같아?
딸 : 빨리 졸업해서 나라에 세금 내라고?
나 : 와, 너도 그런 생각하는구나. 뭐, 대외적인 명분은 애들이 학교에 일찍 가면 교육격차가 줄어들 거래.
딸 : 근데, 일곱살에 학교 가면 힘들 텐데? 그러려면 나이에 맞게 교육과정을 다 바꿔야 하잖아,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텐데.
나 : 아, 24살 대학생도 아는 걸 교육부장관은 왜 모른다니?
© 그래픽 : 세계일보
다음날 교육부장관이 직접 소집한 학부모단체 긴급 간담회에서 사교육걱정 정지현 공동대표는 전국구 영유아 부모 대표가 됐다. 강득구 국회의원실에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5만명 중 94%가 이 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재 초등1학년인 만6세들도 40분을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교실문화, 인지학습 과제는 물론 화장실 문제까지 좀처럼 수월하지 않다. 근데 교육학적인 중대사를 전문가들과 아무런 사전 연구나 협의 없이 1년이나 앞당긴다고? 24살 대학생도 알고, 94%의 국민 모두 아는 사실을 교육부 수뇌부와 대통령은 왜 몰랐을까?
8월 5일, 20만 명 국민들의 서명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8월 8일 휴가에서 복귀한 대통령에게 철회를 요구하며 폭우속에도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바로 그날, 교육부장관은 자진 사퇴했다. 8월 9일, 국회 교육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집요한 질문 끝에 교육부차관은 이 안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발언하는데 이른다.
7월 29일 업무보고부터 8월 9일 철회 발표까지 열흘, 시민이, 상식이 승리를 거두었다.
철회 발표가 난 다음날, 장대비에도 튼튼히 들고 서 있을 수 있도록 비닐로 꽁꽁 싼 1인 시위 판넬, 연대단체들이 함께 만든 수백장의 손 피켓, 여러 교사 단체들이 들고 나갔던 현수막과 깃발들, 폭우에 나설 걸 대비해 급히 구입한 우비 등 각종 물품들을 정리했다. 지난 열흘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예산과 에너지가 정부의 헛발질을 막기 위해 들어간 것인가.
교육을 더 좋게 만들고자 고군분투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데, 이나마의 교육을 더 나빠지지 않게 하려고 이 많은 사람들이 땀과 돈과 눈물을 쏟아부어야 하다니, 그야말로 찜통같은 열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