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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6:1 – 6:13 성전 건축보다 중요한 말씀 순종의 삶
성전의 크기와 모양 6:1~10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2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3 성전의 성소 앞 주랑의 길이는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너비는 성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4 성전을 위하여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
5 또 성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
6 하층 다락의 너비는 다섯 규빗이요 중층 다락의 너비는 여섯 규빗이요 셋째 층 다락의 너비는 일곱 규빗이라 성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아니하게 하였으며
7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8 중층 골방의 문은 성전 오른쪽에 있는데 나사 모양 층계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셋째 층에 오르게 하였더라
9 성전의 건축을 마치니라 그 성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10 또 온 성전으로 돌아가며 높이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하나님의 약속 6:11~13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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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한 지 480년,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째에 성전 건축이 시작됩니다. 성전을 짓고 붙박이 창문, 3층으로 된 다락, 골방, 주랑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분의 법도를 따르고 계명을 다 지키면, 다윗에게 한 말을 이루고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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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크기와 모양 6:1~10
재료와 일꾼이 준비되자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성전을 짓기 시작한 해를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기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은, 성전을 출애굽의 완성으로 보려는 관점 때문입니다. 성전은 성막의 고정된 형태이기에 성막을 본떠서 짓습니다. 성전의 크기는 성막의 약 두 배입니다(2~3절; 참조. 출 26장). ‘주랑’은 일종의 현관으로, 성막에는 없던 구조물입니다(3절). 성막과 달리 성전에는 환기와 채광을 위해 높은 창을 만들고, 성전 벽을 따라 3층짜리 부속 건물(다락)을 만들어 제사장의 처소나 제물 두는 곳으로 사용합니다. 건축 재료를 다른 곳에서 다듬은 후 가져와서 사용했기에 성전 안에서는 철 연장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건축은 철저한 계획과 정교한 솜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성막과 달리 성전에 추가된 구조물들은 무엇인가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철저한 계획과 정교한 솜씨로 함께 진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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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6:11~13
성전 외관이 완성되자 하나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합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함을 하나님이 일깨워 주십니다.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12절)이라고 비슷한 표현을 세 번 반복하시며 ‘말씀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이어서 ‘말씀 순종’에 따르는 세 가지 약속을 알려 주십니다. 첫째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솔로몬에게 확실히 이행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역의 성취보다 항상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말씀 순종’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성전 외관이 완성되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큰 사역을 성취하는 것보다 ‘말씀 순종’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삶은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지어져 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희 가정과 교회가 거룩함으로 채워져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처소가 되도록 인도해 주소서. 지체들이 모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친히 거하시는 성전으로 든든히 서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사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고, 그 사명을 기필코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자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도록 하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성전 건축이 출애굽한 지 480년 만에 시작되었다고 기록함으로, 성전 건축을 출애굽 사건과 연결했습니다. 성전은 출애굽의 목적이자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출애굽 전에 바로에게 여러 번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8:1,20; 9:1,13; 10:3) 하고 말씀하신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성전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고 예배함으로 출애굽의 목적이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구원은 그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11-13절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에게도 ‘순종하면 다윗에게 약속한 바를 지키며 이스라엘을 내 백성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면 성전이 하나님의 처소가 되겠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성전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순종 없는 동행은 없습니다. 숱한 종교 의식도 순종의 삶이 없으면 무용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우리 삶을 성전 삼아 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10절 하나님을 위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 어울리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성전 건축은 석재 공사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전체 외벽과 주랑, 다락, 골방, 층계 등 석조 구조부터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돌을 공사 현장에서 깨거나 다듬지 않고, 채석장에서 치수에 맞게 미리 다듬은 후에 가져왔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망치나 정과 같은 쇠로 만든 어떤 연장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철 연장과 그 날카로운 소리가 거룩과 평화의 장소인 성전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며, 돌 제단을 쌓을 때 정으로 쪼거나 쇠 연장을 대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출 20:25; 신 27:5,6). 하나님을 위한 일에는 실용성보다 거룩함이, 효율성보다 순종이 중요합니다.
기도
공동체-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 ‘내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모든 법과 규정을 지키면 내가 너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이행할 것이다’라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아직 성전이 완공되지 않았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합니다. 본문 내용으로 봐서 겨우 외형공사가 마무리 됐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무언가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거나, 급박하게 지시할 사항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천번제 후 꿈에서 말씀하셨던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실은 그 내용은 다윗이 세상을 떠나면서 솔로몬에게 전한 유언의 카피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여 한다는 것으로 그것은 칭찬도 위로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려와 경고의 뜻입니다. 그만큼 절실한 것으로, 솔로몬이 왕으로만이 아니라 구원 받을 한 인간이라 그렇습니다. 그것만큼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이 추구해야할 선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주님은 그에게 경건의 모습을 묻습니다. 그것은 100점입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어서 그 내용을 묻습니다.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0점은 아닙니다. 부족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정답은 ‘하나님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사실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의 핵심도 그것과 같습니다. 모든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그것이라 그렇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니까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더라도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아프면 간이라도 선뜻 내주는 어머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왕권을 포기하고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요나단의 사랑이 있습니다. 남을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도 있습니다. 반면에 남편이 선지자인데도 성적 즐거움을 쫓은 고멜의 사랑도 있습니다.
이제 사랑의 정의를 정정해야 할 것입니다. 보다 높은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에로스 사랑만 사랑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사랑은 더 고귀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도 자기를 조롱하고 있는 사람들의 용서를 구한 사랑이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눈을 돌려 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 눈에 씌어졌던 육체적인 사랑의 비늘이 벗겨지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속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랑이 땅에 한정된 저급한 사랑이 아니라, 하늘로 이어져야 하는 고귀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돌아 갈 본향이 바로 그곳이고, 법도와 율례와 모든 계명들이 다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사랑은 뜬 구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정의한 그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왕상 6:1~13절)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는 삶❞
❚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어떤 예배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까?
➲ 하나님을 충심으로 믿고, 중심이 있는 예배여야 합니다(1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 되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왕이 된지 사년 째 시브월, 즉 2월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 방법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는 장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지정하셨던 장소인 ‘모리아 산’입니다.
또한 이곳은 다윗의 인구 조사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이 이스라엘 전체에 내려질 때에 특별하게 보호를 받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었습니다(삼하 24:16~25). 어느 주석에서는 구약 성경만 사용한 연대표를 보면 솔로몬 성전과 바벨론 포로 귀환 사이도 480년임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은 출애굽의 완성이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예배는 삶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나아가 예배하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안에서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드리거나 의무감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는 예배자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예배가 나의 삶의 중심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을 때, 나의 삶은 든든히 설 수 있기에 하나님을 충심으로 믿고,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순종이 있는 예배여야 합니다(2~10절).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외관과 구조가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즉 전체적은 규모와 윤곽들, 내부 시설물의 구체적인 치수, 즉 키기, 넓이, 높이로 시작하여(2,3절), 바깥 벽 주변의 시설(4~6,8절)과 지붕(9절)을 거쳐, 다시 바깥을 둘러싸는 구조물(10절)로 되돌아갑니다. 특별히 성전을 건축할 때 철 연장 소리가 없었음을 언급합니다(7절). 이는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5)과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신 27:5)는 율법의 정신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돌을 뜨는 곳에서 석재를 다듬어 왔고, 성전 건축 기간에도 성전의 구별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배는 내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즉,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내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걸맞는 아름다운 예배, 그리고 삶 전체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러한 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 일주일 한 번 드린 예배로 책임을 다 했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진짜 예배는 축도를 받고, 교회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주일날 드리는 그 예배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요, 마치 운동 선수들이 동계 훈련을 잘 해야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으로 나아가 승리하기 위한 훈련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라는 중심이 무너지면 나의 삶의 전반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예배 그리고 삶으로 순종이 있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헌신이 있는 예배여야 합니다(11~13절).
성전 건축이 진행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참된 의미와 건축자의 자세에 관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만일 솔로몬이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며 율례를 행하며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확실하게 이루시겠다는 것(11~12절)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약속(13절)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실행하시는 데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인간의 언약은 실패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언약만큼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법을 지킬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안일함과 나태함을 버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때만이 주께서 주시는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시키지 않는다면 결국 버림받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곧 예배드리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은 나의 삶을 하나님은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므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합당하고, 온전한 헌신이 있는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종교적 활동이 아닌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 나아갈 뿐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순위가 되도록 순종의 영으로 충만하여 삶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6:1~13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시점을 이집트를 나온 시점부터로 이야기한 것은 열왕기 기자가 신명기적 역사 관점으로 그 사건을 재해석하고 진정으로 이스라엘 왕이라면 당시 진실로 준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어야 했는지를 돌아보게 할 목적이었습니다.
성전에 대한 화려한 묘사를 기다리는 독자들을 향해, 그 향수를 자극하는 대신, 갑자기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였다고 그 흐름을 단호하게 끊어냅니다.
이는 신명기에서 하신 말씀의 되풀이였습니다.
“보라.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그 땅에서 그대로 지키게 하려고 한다.
규례와 법도들을 잘 지키라. 이것으로 여러 민족들에게 너희의 지혜와 통찰력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례들에 대해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백성이다’라고 할 것이다.(신명기 4:5~6)
”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네가 지금 이 성전을 짓고 있는데(12절)”라고 하신 것은 애는 쓰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힘을 다하고 있긴 하지만, 그 열심에 빠져 진정으로 중요한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망각하거나, 그 보이는 건물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섞인 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매 순간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원하는 인간적인 영광을 거룩의 포장지로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더러운 탐욕을 예배와 찬양의 눈물로 간과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사명 가운데 온전히 집중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와 건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 알기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금은보화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온몸을 다해 드리는
헌신의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채워 공급 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 북한 땅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지혜와 회복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그 뜻을 행하는
거룩한 제사상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