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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혜
원주 고산초 교사 |
초등 6학년 사회과교육과정에는 ‘세계의 다양한 모습과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내용이 있다. 문화를 배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여행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서울 속 세계여행을 다녀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우리 반 아이는 네 명뿐이라 내가 직접 데리고 다녀도 괜찮았다. 아이들은 대찬성이었고 필요한 학교 예산도 충분하였다.
여행지를 고르고 일정을 짜는 것, 무엇을 타고 이동할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든 여행계획을 아이들과 함께 세웠다. 국어 시간에는 서울시 관광지도를 같이 보며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을지 토론으로 정하였고, 사회 시간에는 서울에서 엿볼 수 있는 세계 음식과 전통에 대한 것을 조사하며 사전공부를 탄탄히 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6학년 들어 가장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나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울에 한 10년 정도 살았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걸어 다녔다. 지하철을 처음 타보는 데도 “선생님, 이다음 에는요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리면 돼요”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 모습이 괜히 뿌듯하였다.
하지만 여행이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거리에 사람들은 넘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걸어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난타공연을 볼 때 승호가 너무 크게 웃다가 코피가 터지는 일도 있었고, 저녁을 먹다가 진국이가 엎지른 콜라 때문에 은혜 옷이 심하게 젖어 은혜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보미가 “선생님 우리 핫초코 먹어요”하는 말에 나는 정색을 하며 “니 돈으로 사먹어”라고 차갑게 말해버렸다. 여행의 고단함을 아이에게 털어버린 것 같았다. 내 한마디에 보미는 울상이 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싸늘한 분위기와 나의 눈치를 살펴보는 듯했다. 불편한 맘을 바로 풀어 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여행은 서두르는 듯이 마무리 되었다.
며칠 뒤 우리는 서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미야 그때 선생님이 너무 차갑게 말해서 너무 미안했어. 그때 보미 표정 보고 선생님이 진짜 후회 많이 했다. 여행일정만 생각하고 있어서 너희들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해. 같이 밤도 새면 좋았을 걸”
보미는 멋쩍은 듯이 조용히 웃고는 “아, 그래요?”한다. 다른 아이들도 서운하고 아쉬웠던 것을 하나 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는 밤에 더 놀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빨리 자라고 하셔서 아쉬웠어요.”
“너네는 일찍 잤냐? 우리는 2시까지 놀다가 잤는데”
“선생님 그때 제가 왜 울었냐면요. 진국이가 실수로 콜라 쏟았다는 거 아는데, 바지는 다 젖어버려서 꿉꿉하고, 근데 진국이가 ‘야 화 풀릴 때까지 나 때려도 돼’라고 말하는데 그럴 수도 없고 바지는 하나밖에 없고 속은 상하고 그랬어요.”
서로에게 미안하고 아쉬운 맘을 아이들과 함께 털어버렸다. 이제야 여독을 제대로 푼 것 같은 후련함이 들었다. 항상 좋은 얘기만 해줬는데, 불편한 이야기도 성숙하게 주고받는 아이들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이번 일을 통해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가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한 달 남짓한 졸업까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