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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마태복음12장22~37절
제목 :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예수님이 귀신 들려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를 치유하셨으나 바리새인들은 이 일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며 예수님을 모함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강하게 책망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1.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22~29절)
1)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심(22절)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그 때에(토테) - '그 때'가 언제인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아마
도 9-21절 사건보다 훨씬 후에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 헬라어 원문의 정확한 의미는 '그 사람은 귀신이 들리게 되었으므로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 자'입니다.
마태는 그 사람의 병을 원인이 특별히 '귀신에 의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능력이 귀신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모함(謀陷)이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예수가 다윗의 자손 메시야이심을 알지못한
바리새인들이 바로 '영적으로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라고 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 마태를 위시한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본 사건이 이적이라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바리새인들과 충돌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본 치유 이적을 간략히 소개하는데 그쳤습니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그 근본적인 장애 요인이었던 영적 장애(귀신들림)에 대한 근원적인 치유를 하심으로써 육체적인 장애(시각, 언어)를 제거해 주셨습니다.
실로 그분은 영. 육의 온전한 구세주이십니다.
2)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23절)
무리가 다 놀라 -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죽어버린 교훈에 이미 익숙해 있었던 무리들은 예수의 생명력 넘치는 이적 앞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실재하는 천국은 기습적으로, 각 사람들의 마음에 돌입합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 예수의 치유의 기적을 보고 놀란 사람들 중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낸 반응의 말입니다.
이 물음은 헬라어'메티'로 시작되는 부정 의문문으로서 부정(不定)하는 답을 예상하고는 있으나 그것에 대한 결정적인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말은 '아무래도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나 그들 자신들이 메시야가 오면 표적을 행하리라고 하는 사실(38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치유기적이 혹시 메시야의 징표(徵表)를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리라(24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 예수의 치유 능력을 보고 놀란 사람들 중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난 반응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첫번째 부류의 삶들이 품고 있는 일말(一抹)의 희망, 즉 예수가 메시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축(一蹴)하고, 그 확신을 제거키 위한 노력에서 나온 적대적 표현으로, 실제로 예수와 그들 사이의 바알세불 논쟁의 계기가 된 문구입니다.
사단이 예수의 영(靈)속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가 더러운 귀신에 들렸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막 3:30 ; 요 8:48).
한편 귀신의 왕 바알세불은 간혹 바알세붑으로도 불리우는데(왕하 1:6), 이 말은 땅의 주인인 '바알'이라는 뜻으로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우상의 이름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후에 유대교에서는 귀신들의 두목인 사단을 가리키는 수 많은 명칭들 중의 하나로 취급하였습니다(10:25).
4)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와 동네가 서지 못하리라(25절)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 시점에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가를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동네...집 - '나라'(바실레이아)는 영토적 지역을 말한다기 보다는 전체를 움짖일 수 있는 힘으로서 왕권, 주권(主權)을,
'동네'는 정치적 사회, 즉 이웃 공동체 집단을,
'집'은 건물이 아니라 가장(家長)을 위시한 질서 체계가 바로 잡힌 가족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집단일수록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세력에 의해서는 하나로 결집되어 그 세력을 막아내지만,
내부에서 발생되는 싸움에 의해서는 완전히 파멸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사단이 그의 부하들인 귀신을 조종(操縱)하는
사단의 나라도 동일한 것입니다(H. Kruse).
즉 만약 귀신들(demons)의 군주인 사단이 그의 부하들을 쫓아낸다면,
그는 사실상 자신을 쫓아내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부하들은 바로 그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Broadus).
한편 여기서 귀신들은 흔히 역사의 전면에서 실제적으로 활약하는 악의 세력으로, 사단은 그 실제적 활약자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궁극적 악의 실체로 이해됩니다.
5)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입니다(26절).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이 말은 사실상 모순(contradiction)입니다. 사단의 나라에는 사단만이 귀신들의 왕이므로 따라서 이말은 사단이 그의 부하세력인 귀신이 사람을 사로 잡고있는 상태에서 그를 축출해 내버리는 것을 뜻하며 이는 그들 나라의 파멸을 자초(自招)하는 결과가 됩니다.
실로 사단은 그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통찰력과 분별력이 있다는 점에서 자기 파괴적 행동은 삼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십니다.(엡6:11절)
6)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27절)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너희의 아들들 - 단순히 '너희(바리새인) 사람들'(your peoele, NIV)을 의미할 수도 있고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자들,
즉 제자들이나 그 당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몇몇 그릇된 상황과 관습에 의존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행 19:13).
특히 유대사가 요세푸스의 보고에 따르면(Josephus, Antiq. VIII, 45-48 ; id., Wars VIII, 185) '솔로몬은 귀족 축출(逐出)법을 터득하여 각종 질병을 치료하고 후대에 전하였는데, 그 방법에 의해 치료받은 자가 다시 그 귀신의 지배를 받지 않을 만큼 완벽한 치료법을 구사(驅使)했습니다.
이 치료법은 오늘날 까지도 효과적입니다.
이로써 솔로몬의 지혜와 기술이 매우 명확히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 바리새인들이 말한 대로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면 그 당시 유대인들 역시 바알세불의 도움에 의해 귀신을 축출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예수의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 예수께서는 그들이 제자들의 귀신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서 일체 부정하거나 인정하는 등의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서 따라서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즉 '너희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면 그들은 너희들이 내게 대하여 잘못된 말을 한 것, 즉 바알세불의 힘을 입었다고 한 것 때문에 너희를 위선자요 죄인으로 선고하리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실로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았다면,
유독 예수만을 바알세불의 능력하에 있다고 하는 것은 부당(不當)한 일임에 분명했습니다.
예수의 이 반론에 의해서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제자들의 귀신 축출 행위가 바알세불에 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또한 예수의 행위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7)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8절)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 평행구절인 눅 11:20에 의하면 '하나님의 손'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의미하는 구약적 표현(출 8:19 ; 31:8 ; 시 8:3)으로서 '성령을 힘입는'것과 결과적으로 동일한 묘사입니다.
예수의 귀신축출행위와 사단과의 연관성은 논리적 모순임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시기심을 밝혀내신 예수께서 이제 자신의 행위가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의한 것으로 역(易)으로 그리스도의 권세가 지상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임을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하나님 나라는 너희가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너희 앞에 전개되어 있다'로 해석하였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사람들의 병을 고친 것은 분명히 사단의 왕국이 괴멸(壞滅)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성령이 현재적(現在的)으로 역사한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적으로 볼 때 단순한 축복의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미치는 전 영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육신 사건으로 인해 이 땅에 실제적이고도 종말론적으로 도래했으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훗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 형태로 도래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천국은 이미(alredy) 도래하였으나 아직(not yet)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8)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29절)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
여기서 '강한 자'란 사단을 가리키는데 예수는 자신이 귀신을 쫓아내는 행동을 통해
(1) 자기가 이미 사단을 결박하고 있다고 함과
(2) 따라서 자신이 귀신의 왕인 사단보다도 더 강한 자('능력이 더 많으신 이', 3:11)라는 사실과
(3) 이 세대의 종말이 지금 여기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현존하여 악의 권세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재림으로 인한 완성된 종말의 날이 될 때까지,
그 강한 자인 사단의 세력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겠지만 그는 이미 예수에 결박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
이는 결국 사단에게 사로 잡힌 자, 즉 귀신들린 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정복자 예수께서 지금껏 사단이 마음대로 지배하던 이 세상에서 영혼과 육체 모두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물건을 빼앗아 악의 세력에서 건져질 것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빼앗은 그들 모두를 다시 인생의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되돌려 보내시어 하나님이 주시는 힘,
즉 성령에 따라 사는 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권세있는 사역은 십자가, 부활 사건 이전에 부터 이미 활발히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은 이미 도래된 메시야의 시대이고 예수께서 사단의 소유물이 되었고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품으로 회수(回收)하시는 기간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예수에 의해 사단의 집이 약탈(掠奪)되어 가는 과정이며 사단의 집이 모두 털린 후에, 즉 악의 세력에서 모든 사람이 풀려난 후에 예수의 재림으로 결박된 사단은 영원히 멸망 당하게 될 것입니다.
눅 10:17, 18의 칠십 명의 전도인들에 의하면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그들에게도 항복하였으며 예수께서는 사단이 하늘로 번개같이 떨어짐을 목격했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권세의 무너짐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음전파와 그 실천적인 삶에 의해 점차 진전(development)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2. 용서받지 못하는 죄(30~32절)
1)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30절)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게 무관심한 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며, 누가복음에선 예수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 아니하는 자'란 바리새인들과 그의 추종자들처럼 '공공연히 예수를 비난하고 서로 의문을 제기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 - 구약에서 흔히 하나님이 추수하는 분으로 묘사되었듯이 신약에서 예수는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모으고 또한 추수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3:12 ; 13:30).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기적행위를 보고 그를 메시야로 고백하려는 자들에 대해 예수가 바알세불의 힘을 입은 자라고 거짓 증언함으로써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려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전진과 확산을 막기 위해 예수로 부터 사람들을 흩으려는 자들이 바로 '모으지 아니하는 자', 곧 흩어버리는 자들인 것입니다. 실로 예수의 위대한 사역은 바로 잃어버린 양을 찾아 모으고 또 모으는 것입니다.
2)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31절)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 공동번역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 역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죄와 비방은 사하심을 받게 될 수 있으나'의 뜻으로 이래됩니다.
예수의 대속사역은 완전, 충만하여 그 어떤 죄악일지라도 능히 용서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 성령의 역사가 분명한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성령께서 인간의 내면에 들어오셔서 감동, 감화하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곧 용서의 가능성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일아 됩니다.
결국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란 어떤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시킬 수 없는 일로서, 죄를 깨닫게 하고 참회케 하는 성령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고의적(故意的)으로 성령에 대항하려는 고집스럽고도 악의에 찬 심령과 그 모든 활약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2절)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 '인자'란 마태가 일반적으로 시사한 바대로(8:20) 성육신(Incarnation)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Origen).
반면 성령이 거역하는 자들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 성령강림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로서 후에 배교(背敎)하거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하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결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 이 말을 단지 관용적 표현으로 취급하여 결단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Plummer).
그러나 대체로 현존(現存)하는 세상과 예수의 재림으로 이뤄질 미래의 영원한 세계라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Calvin).
그리고 로마 카톨릭에서는 '오는 세상에서의 사하심'이라는 말을 통해서 이 '오는 세상'을 현 세상과 마지막 세상 사이의 중간 기간으로 이해 함으로써 이 구절을 그들의 연옥(purgatory)설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즉 회개치 않고 죽은 불신앙인도 세상 끝날에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강림이 그분의 미래적 강림(파루시아)의 기초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미래에 다가오는 세상의 역사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죄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바로 성령 훼방의 죄를 범한 사람은 영원히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위치, 즉 마귀들과 같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의미합니다.
3. 열매와 나무(33~37절)
1)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33절)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 열매에 의한 나무 판단의 교훈은 이미 7:17, 18에서 본 바 있다. 한편 본문을 이중적 구조로 이해하여 첫번째 등장하는 나무와 살과를 성령을 힘 입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치유에 의한 선한 결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등장하는 나무와 실과를 스스로 악히기(나무) 때문에 성령을 훼방하는 말(열매)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바리새인들의 행각(行脚)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Alford).
실로 나무는 필연적 인과(因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좋으면 둘다 좋고 나쁘면 둘 다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고 정의를 외치는 예수의 실과(fruit)는 결국 그 근본 나무가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너무도 분명한 예수의 실과를 부인하지 못하였으니까 대신 예수의 나무를 비방했는데, 그들의 허구성
(虛構性)이 이제 논리로 격파당한 것이다. 예수는 근본과 결과를 모두 선한 교사이신 동시에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소개,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의 교사이기도 하셨습니다.
2)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34절)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독사의 자식들아 - 바리새인의 본성을 지적하시는 엄한 표현으로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서도 나온 말입니다(3:7).
바리새인들은 예수 뿐 아니라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도 '귀신이 들렸다'(11:18)고 했는데 결국 그들은 예수와 세례 요한을 똑같이 정죄(condemnation)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 그 바리새인들은 이제 열매를 맺지 않은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찍혀 불에 던지우게 되는 운명에 이르른 것입니다(3:10).
그들은 종국(終局)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고 말 사단의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 본질과 외부로 표출된 현상이 동일할 수 밖에 없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말입니다.
실로 예수께서는 그들의 실체(독사의 자식)를 노출시킴으로써 그들의 악의적 모함(예수를 바알세불이라 한 것)의 거짓말을 확증하셨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그의 말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인간 본성의 중심체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 '가득한'을 뜻하는 원어 '페리스슈마'는 충일(充溢)함', '(식사의) 남은 찌꺼기'등의 뜻으로 비의지적이고, 체질적이며, 생산적인 넘침을 암시합니다.
실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자연적이고 체질적으로 '말' 또는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요구하는 것은 마음의 참된 변화였던 것입니다.
3) 사람은 선·악을 쌓은 대로 내느니라(35절)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 '쌓을 선'을 새 번역에서는 '선한 마음의 곳간'으로, 공동번역에서는 '선한 마음을 쌓아 두었다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로 마음이란 그 사람의 모든 사상과 생각과 의지와 도덕률의 총체적(總體的) 창고입니다.
선악의 창고인 사람의 마음에서 선한 말 혹은 악한 말이 나오는데,
선한 창고, 즉 착한 마음씨에서 사람들에게 좋고 유익한 말이,
악한 창고, 즉 악한 마음씨에서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결국 이 표현은 '그 실과로 나무를 알 수 있다'고(33절)하는 진리와 일맥상통합니다.
4)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는다(36절)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 여기서 '무익한'(아르곤)이란 부정 접두어 '아'와 '공적'(功積), 또는 '일'을 뜻하는 '에르곤'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부주의한', '쓸모없는' 등을 뜻합니다.
특히 본문에서 이 말은 '근거없는'(unfound, JB)이라는 의미보다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내지 않은 채 '무가치한, 무의미한'(insignficant, Stendahl, Peake) 말, 곧 생명력이 결여된 도덕적으로 무익한 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말을 일일이 아십니다.
심판 날에...심문을 받으리니 - 전우주적 종말이 이를 때, 곧 심판 날에(10:15) 심판주이신 예수께서는 각인의 사소한 행동까지, 특히 그 사람의 '무익한 말까지 심문하실 것입니다(갈 6:7 ; 엡 6:8).
실로 인간의 현재적 언어생활은 종말의 영욕(榮辱)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입니다(엡 5:3, 4 ; 골 3:17 ; 약 1:19 ; 3:1-12).
5) 자기가 한 말로 의롭다함과 정죄함을 받습니다(37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네 말로 의롭다...정죄함을 받으리라 - '의롭다 함'과 '정죄함'의 기준은
선한 말을 하였느냐, 악한 말을 하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말과 행위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선한 말을 할 수 있고,
또 진정한 의미의 선행을 베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수준을 그 사람의 말하는 것에서 판단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의롭다하심, 정죄하심을 인간의 말에 의해서 판단하십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이'는 단순한 음성으로의 말이 아니라 발화자(發火者)의 의식과 내재적 지식을 담고 있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국 심판 대상이 되는 말은 겉으로 드러난 입술만으로서의 화려한 말이 아니라 그 원칙적 동기인 속마음으로 부터의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예수는 인간의 속 깊은 생각을 익히 알고 계십니다(22:18 ; 요 2:24, 25).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똑같은 기적을 보고도 정반대의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22~24절).
귀신 들려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치유되고 회복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메시아)이라고 고백하는 무리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귀신의 하수인이라며 예수님을 모함하고 비하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믿지 않는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선입관과 전제들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들을 바로잡아줄 수 있을까요?
2) 믿음이란 전투에서 중립지대는 없습니다(28~30절).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반대하는 자며, 자신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같으며, 예수님의 통치를 받지 않을 때 우리는 결국 귀신의 지배를 받아 살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 편입니까? 예수님의 적입니까?
3) 죄 고백과 회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31,32절).
따라서 성령님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것은 스스로 용서의 통로를 차단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혹시 성령을 모독함으로써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근심한다면, 그 근심이야말로 우리가 그 죄를 짓지 않았다는 표시이며 증거입니다.
성령님을 거역하거나 근심하게 하지 말고, 예수님을 알리고 높이는 성령의 역사에 기쁘게 동참합시다.
4) 나무는 열매로, 마음은 말로 알 수 있습니다(33~37절).
나무를 보면서 열매를 아는 것은 나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열매를 보고 무슨 나무인지 아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삶의 열매들을 맺으며, 어떤 말들을 합니까?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들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말이 심판의 근거가 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진실하고 신중하게 말합시다. 기도
공동체-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하고, 선한 말과 행실로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열방-중국은 과도한 개발로 인해 1950년대에 존재했던 강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면서 물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남용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