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6.7.25.토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4,7-15 마태20,20-28
섬김의 여정
“질그릇 안에 담긴 참 보물, 예수님의 생명”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시편126,5)
요즘 많은 장마 비로 불암산 계곡 맑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여전히 한결같습니다.
<꼭 하늘 비 내려야>라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맑게 흐르는
불암산 계곡물 소리
꼭 하늘 비 내려야 맑은 물인가
하늘 비 없어도
흰모래 백사장 위
늘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고 싶다”<2026.7.25.>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참 보물, <예수님의 생명> 샘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생명수가
늘 맑게 흐르는 시냇물 인생을 살게 합니다.
오늘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때 꼭 함께 했던 삼총사와 같은 예수님의 최측근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중,
바로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입니다.
열 두 사도 중 최초의 공식적 순교자가 바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야고보 사도입니다.
성 야고보 사도 축일에 생각나는 14년 전 산티아고 순례 여정입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 야고보”를 뜻합니다.
2014년 9.28일 <산티아고 입성>이라는 제하의 강론이 생각납니다.
“어제 9월 27일 마침내 꿈에 그리던 산티아고 대성전에 도착했습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시편말씀 그대로 기쁨에 나는 듯, 발걸음도 가볍게 단숨에 주님의 집, 주님이 계신 곳, 성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는 산티아고 대성전에 도착했습니다.
승전보를 알리듯 한국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카톡으로 소식을 알렸고 많은 축하인사도 받았습니다.”
“산티아고”라 부르지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원래의 이름입니다.
뜻인즉 “별들의 들판의 성 야고보”로 성인의 유해가 발견된 곳을 뜻합니다.
바로 이 명칭은 9세기 펠라요라는 은수자가 별빛 쏟아지는 아름다운 들판에서 바로 성 야고보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합니다.
성 야고보는 순교 전, 선교사로 스페인에 갔었다는 강력한 전승이 있으며, 성인은 사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콤포스텔라 마을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성 야고보의 길”로 알려진 성인의 무덤으로 향하는 산티아고 순례는 중세 초기부터 서 유럽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순례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 야고보는 순례의 수호성인중 한 분이 됩니다.
지금도 면면히 계속되고 있는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과 부활의 예고 후 제베데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청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예수님 양편에 두 아들을 앉혀 달라는 청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예언대로 성 야고보 사도는 주님의 잔을 마시는 순교로 생을 마감합니다.
최선을 다한 진인사대천명, 순교적 삶이 중요하지 주님의 옆자리에 앉는 결과는 우리의 영역도 아니요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동상이몽, 오합지졸의 제자공동체 형제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결코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섬김의 삶을 강조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적 가르침입니다. 제 사제서품 상본 성구와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여기서 유래하는 <종과 섬김의 영성>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이요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섬김의 여정 하나뿐이요 날로 섬김의 모범인 사랑과 겸손의 주님을 닮아갈 때
온전한 참 나의 실현입니다.
사랑의 순교는 주님 사랑의 성체와의 결합입니다.
그러니 성 야고보 역시 순교를 통해 주님을 닮은 <섬김의 절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모든 성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죽기까지 섬김의 여정, 비움의 여정에 시종여일 충실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섬김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백절불굴의 내적힘이 상징하는 바 질그릇 속의 보물인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참으로 질그릇 같은 우리가 대단한 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위대함과 고귀한 품위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바로 우리는 미사 전례시 예수님의 생명을, 사랑을, 평화를, 희망을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모십니다.
다음 바오로의 감동적인 실존적 체험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참 보물>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 보물 예수님의 생명을, 사랑을 지닌 <참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할 때 상대방 안에 있는 예수님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예전 <꽃과 사람은 다르다>라는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꽃과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숱한 꽃송이들 중 하나일 수는 없다
유일한 내가
유일한 사랑이 되고 싶은 거다
너를 사랑하고
너의 사랑을 받고 싶은 거다
너와 사랑으로
하나 되고 싶은 거다
꽃과 사람은 다르다”<1998.8.17.>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생명의 자연스런 욕구란 생각이 듭니다.
바로 참 보물인 예수님의 생명이자 사랑인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영적 목마름과 배고픔이
해소되는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담긴 참 보물인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의 은총이 우리 모두 성공적 <섬김의 여정>을,
<종과 섬김의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가던 그들은,
곡식 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돌아 오리이다.”(시편126,6).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 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