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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 김상원 전도사] 열왕기상 6장 1-38절 | 2024. 4. 15
https://www.youtube.com/live/aqRAZlJUSp0?si=mnRcs5Ln73uvDP3Z
열왕기상 6:14 - 6:38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담아 완공한 성전
성전 내부 벽과 지성소 [열왕기상 6장 14~28절]
14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15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16 또 성전 뒤쪽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17 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길이가 사십 규빗이며
18 성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모두 백향목이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19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 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23 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 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 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 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
성전 건축 완성 [열왕기상 6장 29~38절]
29 내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0 내외 성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31 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람나무로 문을 만들었는데 그 문 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
32 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33 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나무로 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의 일이며
34 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35 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 데에 맞게 하였고
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37 넷째 해 시브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38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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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설
솔로몬은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 안벽을 입히고,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습니다. 온 성전 안을 금으로 입히고 내외소 사방 벽에 그룹과 종려, 핀 꽃 형상을 새기고 지성소와 성소를 만들고 문을 만듭니다. 내소에는 두 그룹과 하나님의 언약궤를 둡니다. 7년 만에 성전 건축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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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내부 벽과 지성소 [열왕기상 6장 14~28절]
성전 외관을 완성한 후 솔로몬은 성전 내부를 완성하기 시작합니다. 본문에서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14절)라는 말은 성전 벽과 외관을 완성했다는 의미입니다. 성전 내부는 '성소'와 '지성소'로 나뉩니다. 성전 내부는 전체를 백향목으로 입힌 후 꽃무늬를 아로새기고 그 위에 순금을 입힙니다. 금은 당시 가장 값비싸고 순수한 금속으로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지성소는 길이, 너비, 높이가 모두 20규빗(약 9.12m)씩이며, 창문이 없는 방입니다. 지성소에는 감람나무(올리브나무)로 높이 10규빗(약 4.56m), 날개 길이 10규빗 되는 두 그룹(히브리어로 '케루빔')을 만들어 금을 입히고 마주 보게 둡니다. 거대한 그룹은 인간의 작음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크심'을 시각적으로 보여 줍니다.
● 더 깊은 묵상
지성소 가운데 둔 두 그룹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나요?
하나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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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 완성 [열왕기상 6장 29~38절]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던 성막 휘장처럼,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문을 감람나무로 만듭니다. 휘장에 그룹 모양을 짜서 넣었듯, 지성소 문에도 그룹과 꽃 모양을 아로새기고 문 전체에 금을 입힙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천사입니다. 지성소 문에 그룹을 둔 것은 지성소가 하나님의 보좌임을 상징합니다. 성소 문과 지성소 문에 사용하는 재질에 차등을 둔 것은 지성소가 더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성전이 7년에 걸쳐 지어진 것은 건축 규모가 매우 컸고 백성의 수고와 헌신 또한 컸음을 의미합니다. 성전 완공으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이동식 성막이 아닌 정해진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성소보다 지성소가 더 거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솔로몬은 '금'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무엇으로 표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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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가 필요한 시대
성경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기도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 지성소로 나아오라는 촉구입니다. 내 소원을 아뢰는 ‘강청’ 기도가 ‘나 중심’이라면 지성소 기도는 순수하게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나의 자아가 죽어야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는 순간부터 영적 혼돈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사상에는 하나님의 개입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강한 흡인력이 인간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 본능’입니다. 내 욕심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내 안에서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요즘 시대는 이러한 죄의 결과인 ‘자기중심적 삶’과 ‘자기 사랑’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만 좋으면 다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웃이 어떻게 되든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뜻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기 편의주의 시대 사람들이 맞이하는 결말은 자기 자신조차 기만하면서 에고(ego)의 늪에 빠져 죽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이웃을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서 성령의 소욕이 소멸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날마다 정결함으로 지성소를 사모하십시오. 주님과 교제하는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사십시오.
지성소 기도 / 박인용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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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6장 21~22절
솔로몬은 성소와 지성소 전체를 금으로 입힙니다. 금은 스스로 빛나지 않고, 자신에게 오는 빛을 반사함으로 빛납니다. 성소의 금색 빛은 아름답고 장엄한 외관이 아니라 성전 중심에 있는 '언약궤', 즉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이 비추는 빛을 반사한 빛입니다. 성도는 여러 자격과 조건을 갖춰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반사체입니다.
균형 잡힌 성도의 삶은 말씀과 기도로 균형 잡힌 예배 생활에서 시작된다 -워런 위어스비
오늘의 찬송(새 19 찬송하는 소리 있어)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께서 내게,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검토하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 보도록 하자
때를 따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그분을 믿고 의뢰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내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나가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왕상 6:14~38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삶❞
❚ 하나님을 거룩함으로, 찬양으로 최상으로 예배하여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 어떠한 예배자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 거룩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이어야 합니다(14~22절).
솔로몬은 성전 외부 공사를 마쳤습니다. 이제 성전 내부를 장식하기 시작하는데,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을 입히고,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았습니다. 성전은 안쪽의 내소(지성소)와 바깥 외소(성소)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지성소에는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와 장막에 안치했던 언약궤를 이제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될 것입니다. 지성소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20규빗으로 정육면체이며, 내부는 백향목으로 입혔고, 그 위헤 모두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백향목 제단도 금으로 입혔습니다. 솔로몬은 성소와 지성소뿐 아니라 성전 안을 모두 순금으로 입혔습니다.
지성소와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내 자신과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것이며, 동시에 나로 하여금 그분 앞에 있는지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묻게 하고 새롭게 결단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그 마음속에 가장 거룩한 지성소를 예비해야 할 것이며, 그 안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모심으로써 말씀 안에 거하며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거룩하고 깨끗한 삶이 바로 성도의 힘이며 바로 내 자신이 힘 있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아울러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정금같이 순전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겠고, 주의 이름을 존귀하게 높여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일상의 삶 가운데 비추는 빛으로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이어야 합니다(23~28절).
내소 안에 두 개의 그룹을 동일하게 조각해서 언약궤 위에 설치했는데, 그것은 감람나무로 만들어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룹의 높이는 10규빗, 날개 길이는 각각 5규빗이었습니다. 그룹의 날개는 펴져 있었고, 지성소의 너비가 20규빗이니 한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옆에 있는 그룹의 날개는 다른 쪽 벽에 닿았습니다. 지성소 안에 세워진 두 그룹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룹은 에덴동산의 생명 나무 길을 지키기도 하며(창 3:24), 이사야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사 6:2~3)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새롭게 지음받은 내 자신 역시도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영광을 찬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억지로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감당 못할 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을 구원하시고, 나와 함께 교제하시며 하나님 당신의 그 기쁨을 나와 항상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며, 그 영광스러움을 매 순간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기쁨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 입술로 새 노래로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내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최상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이어야 합니다(29~38절).
지성소와 성소의 모든 벽에는 그룹 문양과 종려나무 문양, 그리고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은 감람나무로 만들었는데, 두 문짝에 벽의 문양과 같이 그룹과 종려나무와 핀 꽃을 아로새겼습니다. 그리고 문짝을 금으로 입혔는데, 그룹과 종려나무 문양도 금으로 입혔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문은 잣나무로 만들어 금으로 입혔고, 그룹과 종려나무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혔습니다. 또한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로 안뜰을 만들었습니다. 온 성전을 금으로 장식하고 모든 벽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긴 것은 솔로몬의 성전이 최고의 기술과 재료를 가지고 정성을 다해 지은 걸작품임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즉위한 지 제 4년 시브월에 성전 기초를 놓았고,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성전 건축에 헌신하였고, 매우 신중하게 진행했음을 보여줍니다.
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할 때, 최상의 것으로 최선을 다해 예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이며, 정성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 물질과 시간을 드릴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최상의 산 제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라는 것이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내 자신의 삶 전부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단 없이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는 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임을 기억하여 최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상 가운데 비추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최상의 것을 드리며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6:14~38절)...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28절 정성껏 깎고 다듬은 감람나무로 그룹들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혀 놓았습니다. 그룹들의 날개는 지성소 좌우편에 닿았고, 좌우에 하나씩 위치합니다. 그 기묘한 대칭성에는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이, 그 편 날개 아래 그늘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느껴집니다. 그룹의 모습과도 같이 주님은 내 삶의 중심을 잡아 주시고, ‘날개 그늘 아래’(시 17편 8절)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신뢰하여 피난처와 거처로 삼는 사람을 넘볼 세력은 없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4~22절 외부 공사가 끝나자, 이제 성전 내부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잣나무 널판이 성전 마루에 놓이고, 백향목 널판들이 벽과 천장에 자리합니다. 벽마다 아로새긴 호리병박과 핀 꽃의 무늬가 보는 이들의 눈을 매혹합니다. 그리고 성소 한 곳을 따로 구획하여 “지성소”라 이름 짓고 정련된 금을 덧입힙니다. 지성소 안에 둔 “언약궤”가 성전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보좌이며, 그 안에 통치 원리인 두 돌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께서 돌판에 새긴 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을 마음 판에 새기셨고, 그 법을 언약궤가 아닌 우리 안에 두셨습니다. 내 마음의 지성소에는 이 말씀이 간직되어 내 삶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29~36절 내 외소의 모든 벽과 문에는 그룹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형상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사방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룹들이 새겨진 것은 성소가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곳이므로 범죄한 인간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영역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죄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37,38절 기초를 놓은 지 7년 6개월 만에 성전이 완공됩니다.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 주신 설계와 식양대로’ 지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말씀하시고 복을 주실 만큼, 인위적인 성장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어져 가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악한 곁가지를 내지 않고 의로운 마음으로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을 파수하는 일종의 호위천사로,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를 지키는 수호자로, 또한 언약궤를 지키는 영적 존재입니다. 학자들이 보기에 그룹의 모습은 아마도 사자의 몸과 인간의 얼굴 그리고 거기에 날개를 가진 형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은 애굽의 영향을 받아 스핑크스와 흡사한 것으로 보는데, 이 모두 황금 그룹이었으니 가히 그 모습은 위엄이 넘쳤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명은 언약궤에 보관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수호입니다. 이는 말씀에 순종해야 이스라엘이 영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림을 받는다는 것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선포입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예루살렘 성전은 불과 세워진 지 약 40년이 안 되어 운명이 갈리고 맙니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난 것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오지 않고 그들이 따로 세운 사마리아 성전에서 예배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여야 하는 선민 이스라엘이 가나안 신들을 음란하게 섬깁니다. 절기 때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평시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가증스러운 짓을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열방을 의지하고, 급기야 전쟁이 나면 애굽이냐? 앗수르냐?를 선택하려고 고심을 했지 성전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를 안 듯, 솔로몬은 후에 여호와께서 자기가 지은 성전에 거할 수 있겠느냐고 외칩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지, 결코 하나님의 거처가 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단지 기도하는 장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신약시대 제사장들은 성전을 건물 그 이상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사흘에 세우겠다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것이지요. 오늘날 교회건물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그 어디나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우리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정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하며 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것이나, 육체의 소욕이나, 더 나아가 더러운 세력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악독 등등은 우리 몸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단호히 배격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머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뱀과 같이 꽈리를 틀어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성령의 열매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충성과 온유 등등 그것들은 우리 몸을 빛나게 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 안에 있는 것들로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출 때, 우리 몸은 더 이상 우리 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외치는 황금 그룹입니다.
https://blog.naver.com/lds2011/223415554270
보이는 세상을 짓는 데는 6일이면 충분했지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온통 정금으로 입혀 거룩하게 짓는 데는 평생이 걸리는 것입니다
죄와 어둠의 속사람이 의와 빛의 속사람으로,
무지와 미숙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속사람으로 건축되려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곧 우리를 정금 입힌 성전으로 서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솔로몬 성전이 다윗의 터 위에 세워진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지는 성전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2:20)
솔로몬 성전이 내외소에 다락들과 골방들이 연접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 안에서 각 지체가 건물마다 연접하여 성전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2:21)
우리는 주의 열심으로 오늘도 지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그래서 우리의 보이는 겉사람은 낡아질지 모르나,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속사람은 날로 더 새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
7년동안 성전은 설계도에 따라 건축되었고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역대하 3:8 을 통해 그 지성소 안에 사용된 순금만 600달란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달란트가 30kg 이상이라고 볼 때 금 한 달란트는 지금의 돈으로도 20억 원이 넘으니 지성소 안에 사용된 금의 가격만으로 1조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상 7장 51절을 통해 자기 아버지 다윗이 바친 물건들,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안으로 들여 여호와의 성전 창고에 두었다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솔로몬이 사용한 이 모든 값진 것들은 다윗이 이미 준비한 것들에 추가로 더 국가 내외부로부터 걷어낸 것들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솔로몬은 그 화려한 성전이 제 기능을 하기 전 내부와 외부를 한 번쯤은 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고,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 중에서도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1년에 한번 들어갔을 것이므로
그 화려함은 대부분에게 감춰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무너질 성전의 곳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피땀이 사용되었으나 아무도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성막과 성전은 결국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세상은 귀한 것에 제한을 두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허용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그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어디서나, 어떤 마음에서나 하나님의 나라와 접촉하고 그 영원한 세계의 문에 들어가도록 허락됩니다.
세상에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오늘 하루의 시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전체 우리의 모습과 삶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에 성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구조와 장식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냈습니다. 정방형의 내소(20절)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성소 내부를 가득 입힌 금은 하나님의 고결하심과 순전하심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를 지키는 두 그룹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내소 앞에 드리운 금사슬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의 장식은 하나님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성전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성전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입니다(고전 3:16; 엡 2:21,22). 우리 성품에서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드러나고, 우리 삶에서 우리 왕이신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16,17,20절 삶이 안정되고 풍족해져도 하나님을 향해 처음 품었던 사랑과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성전은 옛 성막보다 두 배나 커졌고(참조. 출 26:20-30) 장식도 화려해졌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비율은 거의 같았습니다. 웅장한 성전의 근본정신이 아담한 성막에서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솔로몬 통치기의 이스라엘은 광야를 떠돌던 시절과 완전히 달랐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지녀야 할 태도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내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소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37,38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 삶은 성전이 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솔로몬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성전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알려주신 설계와 식양대로(참조. 대상 28:11-19) 지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들어진 삶을 산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면 그 삶은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다우려면, 우리 삶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말씀대로 살아 성전답게 되고, 성전답게 되어 하나님을 나타내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여호와 아버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게 하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성전이 되는 인생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고
놀라우신 그 섭리 안에 걸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순종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